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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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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5.06 09:00
연재수 :
1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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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45
추천수 :
267
글자수 :
1,057,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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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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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죽음을 피하는 방법(1)

DUMMY

“당신이 이 층의 보스군요.”

“나는...”


여자의 입이 열리고, 조금은 서글픈 느낌이 드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오렐리아...에요.”

“...”


나래는 오랜만에 속에서 화가 끓는 것을 느꼈다.

제천이 사고를 칠 때도,

서우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도,

그보다도 더 전에.

그저 평범하게 남들만큼만 착실하게 살아가던 그 시절의 진상들을 만났을 때도.


나래는 잘 보낼 수 있었다.

그건 그녀가 가진 특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분노를 분노로 마주하지 않기.


“... 그럼 오렐리아 공주님.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고 하잖아요.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살려야 하는 게 아닐까요?”


숨을 깊게 쉬고 내뱉는다.

자신의 안에 있던 부정적인 감정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그렇게 부정적인 요소가 빠져나간 분노라는 감정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힘이 된다.


지혁의 말대로 이곳은 탑의 안이고, 자신들은 한창 연극을 진행중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오렐리아 공주라고 말하고 있는 상대에게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하면 된다.


어쩌면 자신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혹은 이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한 몬스터를 자신의 힘으로 돌려보낸다면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래의 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적의를 드러내지도, 살의가 깃들어있지도 않은 눈을 한 사람을.

그게 비록 몬스터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죽이고 싶진 않았다.


“저... 파수꾼이 아직 살아있어서... 안돼요.”


그런 나래의 인내심에도 돌아오는 것은 답답한 답뿐이었다.


오렐리아는 떨고 있었다.

손도, 입술도, 나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도 떨렸다.


‘나를... 무서워하고 있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이 여자는 이 층의 주인일 것이며, 몬스터라는 뜻이었다.


그런 존재가 자신을 보며 떨고 있었다.

그 순간 여자의 손이 나래의 시야에 들어왔다.

하얗고 작은 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에는 굳은살이 박혀있었고, 오른손가락 마디는 묘하게 휘어있었다.


사람의 몸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한 곳이 손이라고 나래는 생각했다.


손가락이 휘고, 굳은살이 박힐 정도로 이 여자는 무언가에 열정을 다하던 사람이었으리라.


‘그런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의문이 들었지만 고통스러운 듯 앓고 있는 로운의 목소리에 또다시 여러 감정들이 끓어 넘치는 듯 뚜껑을 달그락 거렸다.


“저는 약사입니다.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 제가 대신 만들게요... 일단 살려야 할 거 아니에요. 이 철창에서는 그 다음에 반드시 꺼내드릴게요.”

“...”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나래와 눈을 마주쳤다.


“모든 건... 대본대로... 해야 하는 거예요.”


몸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떨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걸까.


“그러면 조금 흔들릴 수 있는데 꽉 잡으세요.”

“...”


더 이상 지체할 시간도, 감정도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신체 일부와 같은 염력으로 철창을 쥐었다.

그대로 잡아 끊어낼 생각이었다.

그게 안 된다면 천장의 일부까지도 뜯어내어 데려갈 생각이었다.


철창의 염력을 이기지 못해 찌그러지는 와중에도 쉽게 끊어지지는 않았다.


철창이 기울어지자 두려움에 차있던 여자의 얼굴이 변하면서 구석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종이뭉치 하나가 철창 사이에 얹혀 있었다.

흔들리는 창 사이로 언제라도 떨어질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 아직... 아직 파수꾼이 남아있으니까요!”

“...”


나래는 말없이 그저 무슨 말이 하고 싶냐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당신은... 약사라고 하셨죠? 그러니 당신의 능력으로 파수꾼을 처리할 수 있어요!”


새된 비명소리에 가까운 외침이 들리고 흔들리던 철창은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 배우가 잠들었다고 해서 그가 가진 역할도... 잠드는 건 아니니까요.”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말하는 모습이 해서는 안 될 소리를 하는 사람의 것과 닮아있었다.


“분명... 당신에게 주어진 소품에도...”


소품이라니 그런 걸 받은 기억은 없었다.


“당신이 있던 자리에 있을 거예요. 없을 리가 없어요! 그런 건 완벽한 연극이 아니니까.”


나래는 뒷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바닥으로 내려와 자신이 처음 서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사라지지 않은 석상의 잔해들로 인해 대략적인 위치는 알 수 있었지만 여자가 말한 소품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돌무더기를 구간의 밖으로 내던졌다.

하나 둘 씩, 그 다음에는 세 개 네 개 씩 던지다 못해 손까지 이용했다.


“언니!”


나래가 바닥으로 내려올 때부터 뛰어오던 미혜가 그녀의 곁에서 돌무더기를 꺼내 치웠다.


“뭔가 찾아야 하는 거죠?”

“소품이 있다고 했어요. 그게 뭔지는 몰라도 도움이 되는 걸 거예요.”


몬스터의 말을 순순히 들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물인 이상 그렇게 두려움에 찬 눈으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인간이나 몬스터이기에 내린 생각이 아니었다.

최소한 공포라는 감정을 아는 생명체에 대한 믿음이었다.


“어? 이건가...”


한참을 꺼내고 있자니 돌무더기 사이에서 가방하나가 나타났다.


“뭐야. 아저씨 가방이잖아.”

“아니... 잠깐만.”


지혁의 가방과 똑같이 생긴 가방을 금방이라도 던져버리려던 몸짓이 나래의 목소리에 멈췄다.


“혹시 모르니까요.”


나래의 말에 미혜는 던지려던 가방을 내리고 함께 안을 살폈다.


“소품...이라더니.”


가방 안에는 소량씩 포장된 각종 약초들이 들어 있었다.


“근데 이거 뭔지 알아요?”

“이건 모르지만 이걸 알 만한 사람은 알죠.”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 입구로 뛰었다.


+++


나래 씨가 저렇게까지 흥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점차 옅어지고 있던 로운의 숨소리와 상관이 있으리라.


“으...”

“형. 일어날 수 있겠어?”

“어차피 다리만 다친 거야.”


물론 그 다리를 움직일 힘이 없는 게 문제겠지만.


멀리서 나래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오렐리아라고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제법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화 한 번 안내는 나래 씨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미혜야.”

“네?”

“나래 씨가 내려오거든 나래 씨를 도와줘.”

“네.”


뭐 때문인지 물을 법도 한데 미혜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나는?”

“너는... 혹시 모르니까 내 옆에 있어줘.”


제천까지 간다면 분명 도움은 되겠다지만 이쪽도 언제 상황이 나빠질지 모른다.


승주와 승우가 지금은 자고 있지만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었다.


둘이 깨어난다면 의식을 잃은 서우와 움직일 수 없는 내게는 무척 유감스러운 상황이 될 테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래 씨의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멀리서 보이는 나래 씨의 마력은 평소 마력 컨트롤이 좋은 그녀를 생각했을 때 꽤나 불안정했다.

마력은 과하게 흘러나왔고, 움직이는 속도는 빨랐다.


바닥에 내려와 돌무더기를 뒤지던 두 사람은 무언가를 찾았는지 다시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아저씨!”


미혜의 손에서 낡은 가죽 가방 하나가 흔들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의 가방인데.


“이거 이것 좀 봐줘요.”


미끄러지듯 우리 앞까지 와 앉은 미혜는 가방을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보여주었다.

각종 약초들이 소분되어 투명한 주머니에 담겨있었다.


“사람을 재울 수 있는 약초가 있을까요?”

“잠시만요...”


약초를 자세히 바라보자 글자들이 나타났다.

진통제나, 해독제 등의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약초들이었다.


그 사이로 하얀 꽃이 피어난 약초 하나를 집어 나래 씨에게 건넸다.


“이게 수면제 같네요.”


정확히는 심신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과다 복용 시 깊은 잠을 자게 될 거라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이만큼 유용한 게 있을까?


약초를 받아든 나래 씨는 약초 가방 안에 함께 들어있던 돌로 된 절구를 꺼내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 갈린 약초를 승주와 승우에게 차례대로 먹였다.

잠든 와중에도 일그러지는 둘의 표정으로 보아 맛은 굉장한 모양이었다.


승우까지 즙을 낸 약초를 모두 삼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녀의 파수꾼이 쓰러지고 갇혀있던 헬리 왕자와 오렐리아 공주는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오렐리아 공주는 고통스러워하는 헬리 왕자에게 다가가 약을 먹였습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은 헬리 왕자의 신음소리가 점차 작아졌습니다.


석 씨의 나레이션과 함께 멀리서 로운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품에서 약을 꺼내 먹이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것은 나혼자 만은 아니었기에 누군가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옆을 돌아보기 무서워 보지는 못했지만 그 소리의 주인이 나래 씨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회복된 헬리 왕자와 오렐리아 공주는 각 나라로 돌아가 두 나라를 화해시키고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갑작스러운 엔딩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만큼 흔한 결말이었다.


[62층의 ‘샐리우드의 전설’이 막을 내렸습니다.]

[62층의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나레이션이 끝나고 안내창과 함께 석 씨의 모습이 보였다.


“... 형 계속 여기 있었어?”

“...”


제천의 물음에 석 씨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바로 옆에 있었지만 해설자라는 역할 때문에 어떤 간섭도 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천장에 있던 헤나투가 내려오면서 내부거 붉어지며 어두워지자 어디선가 나타난 빛나는 작은 구체가 떠다니며 내부를 밝혔다.


“다들 고생했소.”


내려오자마자 우리를 향해 온 헤나투의 표정에서 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


뜬금없는 말이었겠지만 헤나투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로운에게 가보죠.”


나는 제천에게 서우는 헤나투에게 승주와 승우는 각각 미혜와 석 씨에게 업힌 채로 무대의 중앙으로 향했다.


무대의 중앙에는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잠들어있는 로운과 그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앉아 있는 여자가 있었다.


로운의 이마에 달라붙어있는 머리카락이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것인지 이번에는 ‘쯧’이라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나는 제천에게 말해 여자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묻고 싶은 거요?”


역시 이전에 모래 속에서 봤던 여자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사람이었죠?”

“...”


여자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여기서 왜... 아니 어떻게 여기 있는 겁니까?”

“음...”


여자는 말을 끌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전에 나래 씨와 대화할 때처럼 의도적인 것처럼은 들리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는 사람 특유의 끌음이었다.


“저는 이유정이라고 해요. 살아생전에는... 작가였습니다.”


일단은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이유정의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조금은 갈라진 것 같은 음성이 불안정하게 한 글자씩 떨어져 나왔다.


“살아생전이요...?”


이유정의 말을 되새기듯 미혜가 되물었다.


“네... 저는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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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역할극(2) 24.04.10 7 0 12쪽
180 역할극(1) 24.04.08 7 0 13쪽
179 무대 밖에서(5) 24.04.05 10 0 12쪽
178 무대 밖에서(4) 24.04.03 13 0 12쪽
177 무대 밖에서(3) 24.04.01 13 0 12쪽
176 무대 밖에서(2) 24.03.29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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