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279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6.24 09:00
조회
13
추천
0
글자
12쪽

서로 다른 존재 (4)

DUMMY

“헤나투...?”


석의 부름에 유리로 된 눈동자가 천천히 두 번 깜빡였다.


“왜...”


업고 있던 승주를 헤나투 옆에 내려두고 상태를 살폈다.

빛가루가 퍼즐을 맞추든 차곡차곡 쌓이며 형체를 이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부분까지 재생이 되고 나서야 헤나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섞여 있었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난 괜찮소...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 둘은 괜찮소?”

“...”

“저희는 괜찮아요. 다만 다른 분들이 아직 어디 있는지 몰라요.”


고개만 끄덕이는 석을 대신하여 승주가 답했다.

이에 헤나투의 시선이 부드럽게 둘을 스쳤다.


“소원과 나래... 미혜와 서우는 안전하오.”

“어디 있는지 아나?”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사하오. 내 손이...”


이제 어깨 부근까지 생긴 몸을 바라보며 헤나투가 눈을 감았다.


“앉으시오.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줄 테니...”


헤나투의 말에 석이 승주와 헤나투를 마주보는 자리에 대충 앉았다.

음지의 돌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이 피부에 닿았다.


“그게...”


헤나투는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길을 찾아서 돌아다녔던 일, 괴물과 마주하고 있는 서우와 미혜를 만났던 일, 물속에 들어가 길을 찾았던 일.


“문에 그리 적혀 있었소. 이 문을 지나려는 자... 죽음을 마주하라.”

“...”

“다른 이들에게 죽음은 한 번 뿐이지 않겠소. 그래서 품에 넣고 도망쳐 나온 것이오.”

“품에 넣고...?”

“음... 그걸 뭐라 하더라...”


헤나투는 어떻게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다시금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그 마법진을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요? 가끔 호수도 꺼내고, 낚싯대도 꺼내고 창도 꺼내는.”

“맞소. 그곳에 들어가 있소. 그러니 팔이 재생된다면 그들을 이곳으로 불러낼 수 있소.”

“... 고생했다.”

“별말씀을...”


헤나투의 말을 끝으로 셋은 모여드는 빛을 바라봤다.

그저 품에 넣은 이들이 걱정되어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헤나투도.

헤나투라는 존재가 인간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는 석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마주해야 했던 헤나투가 고마우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승주도.


그저 말없이 모여드는 빛을 바라봤다.


긴 침묵 끝에 처음 입을 연 것은 헤나투였다.


“이정도면 되오.”


아직 복부 아래로 형체를 이루지 못했지만 양팔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마력이 모여들고 마법진을 그리려고 하는 헤나투의 팔을 석이 잡았다.


“무리 하지마.”

“조금이라도 빨리 꺼내주는 게 좋을 것이오.”

“지금 이 모습을 그들이 볼 거야.”

“...”


석의 말에 헤나투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하반신으로 향했다.


“그런가... 충격을 받겠지.”

“...”


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승주의 고개가 가로로 움직였다.


석은 솔직한 사람이었지만 말수가 적어 오해를 사기 쉬웠다.

방금도 순전히 헤나투를 위한 말이었음에도 헤나투가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기에 다른 말을 덧붙였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서운할 수도 있는 말이 될 수도 있음에도.

물론 헤나투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이는 아니었다.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과 비교하기에는 그가 지나온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죽음마저도 무뎌질 수 있을 긴 시간이었다.


“사실... 우리도 죽을 수 있소. 우리 일족은 당신들이 말하는 탑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지만... 선택받은 존재들은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듯이 헤나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곳에는 밖의 존재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족과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소... 그게... 그대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웃돌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소.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오... 그저 오늘 있었던 일이 나에게 제법 충격적이었기에... 조금 이야기 해보았으면 하니 너무 힘들게 듣지 마시오.


탑에서 선택받은 이들은 몇 번을 죽어도 되살아날 수 있소... 그대들에게 말해주지 못했지만... 나 또한 그대들과 같이 죽음이 두렵소. 우리의 몸이 마나로 이루어져 있고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은 맞소...


하지만 그게 어디서 되살아날지, 되살아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들지 모르오... 우리는 그걸 길을 잃는다고 하오.


길을 잃은 여행자에게 남는 건 진정한 죽음뿐이오... 정말 운이 좋지 않는 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테니까...


만약에 문에 적혀있던 문구가 그들의 언어가 아니었다면 읽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선택은 하지 않았겠지.

탑을 만드는데 목숨을 다했다는 마법에 능숙한 그들이 남긴 말이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죽음이 두렵지 않아 이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뿐이니까...

그러니 승주... 그런 표정으로 보지 않아도 되오.”


헤나투의 시선이 승주를 향했다.

그를 따라 석의 시선도 승주를 향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오랜 시간 느꼈을 고독함이라든가, 자신들을 위하는 마음 등이 복합적으로 느껴져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친부에게 맞으며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었는데.

이런 상황에 어떤 저항도 없이 흘러버리니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승주 본인이었다.


“죄송해요. 눈물이 나도 모르게...”


거칠게 닦아 봤지만 쉽게 그치지 않았다.

승주는 이 사람들이 참 좋았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자신과 동생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왔었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처음 이곳에 왔던 이유를 잊은 지도 오래였다.

하지만 일행들과 함께하고 있어서 살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맞을 걱정도, 상처를 들킬까봐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을 대신하여 소리죽여 우는 동생을 볼 일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만 산다면 이런 세상도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마저도 하는 차였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고...

저렇게까지 말해주는 이들이 옆에 있다는 것이 이 순간에 너무나 감사해서 승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


“...”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 헤나투와 석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조용히 작은 어깨를 토닥였다.

그게 더 울어도 된다는 것처럼 느껴져 이제 소리 내어 우는 지경이 되었다.


멈추고 싶어도 수년간 쌓였던.

어쩌면 태어나 기억이 있기 시작한 이래로 참아왔던 눈물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걸지도 몰랐다.


동생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줄 수 없었던 모습.

웬만해서는 떨어져 지내지 않았기에 울 수 없었던 아이에게.


정말 기대어 울 수 있는 어른이 생겼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이후 헤나투가 자신의 품에 품고 있던 이들을 꺼낸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


헤나투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고.

승주의 부어오른 눈가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라앉은 뒤에야 말이다.


헤나투가 뻗은 손을 따라 벽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이제 막 다시 육체를 가진 탓에 마나가 불안정해서 평소처럼 유연하게 그려낼 수 없었다.


“정말 괜찮아요...?”


그 모습에 승주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걱정은 마오.”


마법진이 완전한 형태를 이루자 먼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드디어 나간다.”

“거기 맞는 거야? 언니가 먼저 나가봐.”

“내가 무슨 실험체라도 되냐.”


서우와 미혜가 옥신각신 하는 소리와 함께 서우를 선두로 문을 지나오듯 마법진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 뒤를 소원과 나래가 차례대로 나왔다.


“진짜 이게 되네. 어떻게 한 거야. 헤나투?”

“혼자만 쓸 수 있는 순간이동 마법을 썼다네.”

“진짜?”

“농담일세.”


서우는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표정 변화도 없이 말장난을 할 수 있는가.

그런 농담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서우였다.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아하는 헤나투의 마음도, 그렇기에 말을 돌렸다는 사실도 끄덕임과 함께 이해했다.


이를 보고 서우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혜뿐이었다.

그리고 서우를 보며 뿌듯하게 웃는 미혜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승주뿐이었다.


“그래서 진짜 어떻게 한 거예요?”


소원이 헤나투의 곁으로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에 담긴 미안함이 그녀가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알아도... 바뀌는 건 없소. 당신들이 무사히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오.”

“...”


살며시 웃으며 한 답이었지만 자신의 질문에는 절대 답해주지 않겠다는 완강함도 함께였다.

소원의 시선이 석과 승주를 향했다.


두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조금이라도 봤을 거라는 소리였지만...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저 둘이 이야기 해주지는 않겠지...’


소원 또한 서우를 따라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헤나투의 곁을 떠났다.


“승주도, 석 씨도 무사해서 너무 다행이에요.”


나래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일행들은 괜찮을까 하며 하던 걱정이 조금 줄어들었다.


“...”

“네. 덕분에요.”


말없이 서있는 석과 그를 대신하여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승주를 보자니 정말 별 탈 없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하는 나래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요? 이동해 왔지만 결국 또 여기네요.”


서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은 맞았으나 괴물이 있던 곳에 가기 전에 걸었던 길과 지금의 이 길이 큰 차이가 없었다.


“이걸로 이동할 거다.”


석이 반쪽짜리 태극 모양 돌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른 이들이 있는 곳을 알려줄 테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빛이 바로 옆에 있는 문을 향했다.


“저기 문 열면 물 들어와서 다 죽는 거 아니에요?”

“물이요?”

“우리가 여기 오기 직전에 물속에서 문을 발견했거든요. 그 문 반대편이 여기라면 이걸 열면...”


무슨 소리냐는 듯 물어보는 승주에게 서우가 사촌 동생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듯 목소리를 깔며 답했다.


“어... 하지만 이거 분명 우리가 갈 길을... 알려 주는데...”


승주는 수영에는 자신이 없었다.

서우의 말대로 정말 물이 쏟아져 나온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못하고 휩쓸릴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왜 애 겁을 주고 그래!”

“내가 뭘! 으악! 때리지 마.”

“아주 맨날 매를 벌어요. 그냥! 얼마나 부자가 되려고!”


옥신각신하는 둘을 뒤로 하고 석의 주변으로 남은 이들이 모였다.


“어떡해요? 서우 씨 말도 틀린 말은 아닌데.”

“...”

“석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

“선생님...?”

“...”

“석. 꿀이라도 먹은 것이오?”


네 명의 질문을 받는 와중에도 석은 말없이 목걸이만 바라봤다.

목걸이에서 뻗어 나온 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문틈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 빛은 계속 한 곳만을 가리켰다. ”


반대편 길로 간다고 해도 답은 없었다.

이미 석과 승주가 걸어온 길에 다른 길은 없었으니까.


그러니 이리되었든, 저리되었든 나아갈 길 밖에는 남지 않았다.


석이 문을 열기 위해 양손으로 문을 짚었다.

서늘한 감각이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이게 진짜 깊은 물 속 특유의 차가움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석의 머릿속에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석의 손을 따라 무거워 보였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7 빛으로 향하는 길 (4) 24.07.15 8 0 12쪽
216 빛으로 향하는 길(3) 24.07.12 12 0 10쪽
215 빛으로 향하는 길(2) 24.07.10 8 0 12쪽
214 빛으로 향하는 길(1) 24.07.01 9 0 11쪽
213 서로 다른 존재(5) 24.06.28 14 0 11쪽
» 서로 다른 존재 (4) 24.06.24 14 0 12쪽
211 서로 다른 존재(3) 24.06.21 11 0 13쪽
210 서로 다른 존재(2) 24.06.19 12 0 14쪽
209 서로 다른 존재(1) 24.06.17 11 0 12쪽
208 흩어지는 미로(5) 24.06.14 11 0 13쪽
207 흩어지는 미로(4) 24.06.12 11 0 12쪽
206 흩어지는 미로(3) 24.06.10 14 0 13쪽
205 흩어지는 미로(2) 24.06.07 12 0 13쪽
204 흩어지는 미로(1) 24.06.05 9 0 14쪽
203 싸우면서 크는 거지(5) 24.06.03 13 0 13쪽
202 싸우면서 크는 거지(4) 24.05.31 10 0 12쪽
201 싸우면서 크는 거지(3) 24.05.29 8 0 12쪽
200 싸우면서 크는 거지(2) 24.05.27 10 0 13쪽
199 싸우면서 크는 거지(1) 24.05.24 11 0 14쪽
198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5) 24.05.22 10 0 13쪽
197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 (4) 24.05.20 14 0 11쪽
196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3) 24.05.17 13 0 14쪽
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5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13 0 10쪽
193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5) 24.05.08 13 0 11쪽
192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4) 24.05.06 13 0 10쪽
191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3) 24.05.03 13 0 11쪽
190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2) 24.05.01 14 0 12쪽
189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1) 24.04.29 20 0 13쪽
188 죽음을 피하는 방법(4) 24.04.26 16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