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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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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3)

DUMMY

“뭐야... 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제천이 석 씨를 바라봤다.

굳은 표정의 석 씨는 표정만큼이나 입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뭔데, 왜? 왜 둘이서만 눈빛 교환해?”


그런 둘 사이에 미혜가 끼어들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잖아.”


긴 침묵 끝에 석 씨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래도 죽은 사람이... 아...”


제천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석 씨를 바라보던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나는... 나는 못해.”

“이제 와서 무섭냐?”


서우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이 서있는 제천에게 말했지만 평소와 달리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두려움이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일종의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몬스터를 보고 느끼는 두려움은 아닐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앞두고 도망치고 싶은 두려움이라면 모를까.


“아저씨나 대표님은 뭔가 알고 있는 거죠?”

“그냥 예상이지.”


몬스터가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저 반응을 봐서는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지만.


“괜찮아요. 사람이 무서울 때도 있는 거지. 그럼 제가 먼저 확인해 볼게요.”


가끔은 두려움이라는 걸 느끼면 좋을 것 같은 서우가 먼저 세 번째 구간에 발을 내디뎠다.


“안 돼. 잠시만.”


그런 그를 향해 제천이 외쳤지만 서우의 발은 그의 말만큼이나 빨랐기에 이미 통로를 벗어났다.


그 증거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이 안내창.


[63층의 새로운 주인 ‘되살아난 희생’과 조우하였습니다.]


역시나 이곳은 보스가 있는 방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곳의 원래의 주인이 아닌 새로운 주인이며... 되살아났다.


“뭐, 아무것도 없는데요?”


먼저 들어선 서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말에도 뒤따라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서우야. 돌아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니, 뭐가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요?”


서우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지면에 익숙한 형태의 빛이 생겨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종종 보이던 빛은 바닥에 둥근 선을 남겼고.

선은 면이 되어 원기둥 모양의 빛이 되었다.


“뭐야. 마법진?”


흰색 같기도 하고 노란색 같기도 한 빛이 마지막 구간을 환하게 비쳤다.


눈을 뜰 수 있을 정도로 빛이 사라지자 경기장 한 편에 인형이 하나 나타났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색 슬랙스를 입은 모습이 대학생 같기도 하고, 성실한 회사원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같기도 한’인 이유는 그의 주먹에 둘러져 있는 검은 붕대와 바닥에서 30cm 정도 떠있는 그의 발 때문이었다.


“사람... 인가?”

“그럴 리가 있겠어?”


놀랐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서우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그렇게 날고 있네. 사람은 날 수 없지.”


물론 그랬다. 이변 이전의 세계에서는 말이다.

본인조차도 허공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스킬을 쓰면서도 하늘을 날고 있는 대상은 신기해하는 서우였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데...”


불안해 보이는 표정의 미혜가 서우의 곁으로 가려다가 멈춰 섰다.


“여기... 못 들어가는데.”


미혜가 손을 뻗어 보이지 않는 벽을 만지듯 허공을 매만졌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나래 씨가 웃는 듯, 우는 것 같은 얼굴로 ‘되살아난 희생’을 바라봤다.


“다들 이전에 한 번...아니 몇 번인가 들어본 적 있을 거예요. 저 사람은 예찬 씨에요.”


울 것 같은 목소리지만 정작 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나래 씨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짓이겨 물며 내뱉었다.


“예찬이면... 홍 제천의...”


말을 되새기던 미혜가 반대편에 서있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정한 외모가 제천과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목구비를 뜯어보니 닮았다.


하지만 이야기로 들었던 다정한 사람은 거기 없었다.

앞에 있는 대상만을 무심히 바라보는 시선에 온기란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죽었죠. 소원 씨의 기억에 의하면 말이죠.”

“...”

“그리고 유정 씨가 그러셨죠. 블랙은 죽은 사람도 데려와서 탑에서 살아가게 한다고.”


나래 씨는 다음 말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지 물고 있는 아랫입술이 하얘졌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예찬 씨는 죽어서 63층의 보스가 된 것 같네요.”


말을 마친 나래 씨의 시선이 제천을 향했다.

멍하니 경기장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이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과 비슷했다.


완전히 포기한 표정, 이 넓은 세상에 완전한 혼자가 된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래 씨는 제천이 데리고 안쪽에서 쉬어주시겠어요?”

“... 네.”


넋이 나간 것은 제천뿐만이 아니었다.

설명을 해주고 있는 나래 씨 또한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로운도 데려가 주세요.”

“네? 저는... 왜...”


앉아있던 로운이 놀라서 되물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둥둥 떠 나래 씨의 부축을 받고 있는 제천의 뒤를 따랐다.


“웬만하면 저 셋의 힘까지 쓰지 않는 선에서 끝나면 좋을 텐데...”


그렇게 바라고 있었지만 쉽지 않은 바람이라는 것은 알았다.

홍예찬의 주변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마력은 일반인의 수준을 벗어났다.


경기장 바닥부터 천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마력이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왔다.


이 방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그의 마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꿈틀거리고 있는 마력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서우야.”

“네. 선배.”

“조금 슬픈 소식이 있는 것 같구나.”

“조금 이면 얼마나 일까요?”


조용히 말을 걸자 그에 답하듯 귓속말을 하는 것 같은 목소리의 답이 돌아왔다.

대답은 하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홍예찬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일단 우리가 못 들어가는 것 같다. 왠지 경기장 모양이더라니. 일대일을 원하는 것 같구나.”

“흠...”

“그리고 다른 슬픈 소식은 네가 첫 번째라서 패턴 같은 걸 알아 와야 할 것 같다는 거다.”

“그나마 낫네요.”


가볍게 웃는 모습이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좋은 소식은 없나요?”

“...”


그냥 하는 소리겠지만 그래도 좋은 이야기는 없을까 싶어 머리를 굴렸다.


“미안하다.”


그러나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앞선 두 개가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으니까요.”


진심인가 싶어 표정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고개는 잠시도 이쪽을 볼 생각이 없었다.


“아. 혹시 여기서 탈주하는 방법은 아십니까?”

“응?”

“일대 일이라면 포기한 선수가 나갈 곳은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찾아볼게.”

“제가 시체가 돼서 나가고 싶진 않아서 말이죠.”


자발적이기는 했지만 또 다시 위험을 무릅쓰게 한 점이 미안하니 탈출구를 알아봐야겠다.


그래봐야 우리가 살필 수 있는 거리는 통로와 이어져있는 부근뿐이지만 말이다.


“미혜야. 저길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나 살펴봐.”

“예압”


한 눈으로는 출구를, 다른 한 눈으로는 서우를 살폈다.

서우가 칼 손잡이에 손을 대자 허공에 떠있던 홍예찬의 발이 땅을 디뎠다.


-쿠르릉


그와 동시에 직사각형 공간의 외곽에 빛이 나더니 복싱링의 기둥 같은 것과 줄이 솟아났다.


“완전 제대로네! 복싱 좀 해보셨나.”


미혜가 감탄하며 그 모습에 관심을 가졌다.


“예찬이... 복싱을...?”


그 옆에서 상반된 표정의 석 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홍예찬 씨는... 생... 아니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나요?”


나도 모르게 생전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혹시나 들었을까 싶어 곁눈질로 석 씨의 안색을 살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생전이라는 말보다도 홍예찬이라는 사람이 복싱을 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정도로 관련이 없던 건가?


“예찬은... 분명 선한 사람이었지만... 그 또한 강함을 추구했지만 사람을 때리는 일은 없었다.”


조금은 갈라진 것 같은 목소리.

경기장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석 씨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예찬과는 제법 오래 알던 사이라고 할 수 있겠군.

처음 만난 건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였다.


그러니... 벌써 십 년은 더 된 이야기군.


19살에 무대를 설치하는 일을 했었다.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된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좋았지.


무엇보다 무대가 설치된 이후 공연을 하면 공연까지 볼 수 있었으니.

그때의 나로서는 그만한 일이 없었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군.

다들 힘들어 보이기도 했고, 종종 다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그 중에서 예찬은 조금 특이한 사람이었다.

항상 그렇게 밝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그 후로도 거의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한 번은 그게 너무 신기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지.


“힘들지 않나? 항상 웃고 다니네...”

“응? 아, 고마워. 잘 마실게.”

“...”

“음... 좋잖아. 세상이 평화로운 게.”

“평화로운가...”


이해할 수 없었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는 고통 받고 일그러진 얼굴로 욕을 뱉으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 것 같더군.

언제나 더 최악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예찬은 그걸 알고 있던 거겠지.


“오늘 하루를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산다고 해도... 오늘을 살아갈 수 있잖아. 아직은 그걸로 만족해.”

“그런가...”


‘아직은’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묻지 못했다.

왜인지 물으면 너무 많은 말이 돌아올 것 같았거든.


그걸로 괜찮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한 거다.

예찬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넌?”

“나?”


오히려 되묻는 질문에 더 물어볼 생각을 못했던 걸지도 모르고.


“노래하는 거... 좋아하잖아.”

“취미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던가 싶더군.

왜냐면 우리는 일하는 곳에서 유일한 또래였기에 같이 다녔을 뿐이지.

그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취미라... 좋네!”

“넌 없어?”

“나는... 취미라...”


예찬은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취미라고 하는 것이 고민할 정도의 문제인가 싶기는 했지만 따로 할 말은 없어서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입을 열더군.


“동생이랑 노는 게... 제일 재밌긴 해.”


그때 처음 제천에 대해 들었다.

들은 거라고 하기는 그게 전부였으니 이야기를 해줬다고 보긴 어렵겠군.


아... 하나 더 있군.


“내 동생 이제 중학생이야. 귀여울 것 같지 않아?”

“그렇군.”


내 대답에 예찬은 소리 내서 웃었었다.

정말 즐거운 장난을 들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후 몇 년이 지나고 우리는 각자 다른 길로 갔지만 꾸준히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나고 어느 때처럼 예찬의 연락으로 만났는데 그런 얘기를 하더군.


“석아. 나 능력이 생긴 것 같아.”


그거 아나? 능력자들은 이변이 일어난 직후 가장 많이 생겼어.

이후 그 수가 줄어들고... 지혁.

너나 미혜처럼 나중에 능력이 생기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거다.


“어떡할 거냐?”


그때는 능력이 생겨도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당시의 나에게도 지금의 능력이 생겼었다.

나 또한 고민거리였던 문제였기에 하지 않아도 됐을 질문을 했던 거겠지.


“나는... 사람들을 도울래.”

“그렇군.”


예상했던 반응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전만큼 바쁘지 않거든.”

“그런가.”

“동생도 이제 다 커서 직접 돈을 벌겠다고 했거든.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하겠다는데 말릴 수는 없잖아?”

“...”


“석이 너도 같이 할래?”

“어?”


조금 당황스럽더군. 아직 예찬에게 내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내가?”

“너라면 내 등을 맡길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래. 예찬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소년 만화나 청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곧잘 했었다고 할 수 있겠군.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네?”

“...”

“너는 표정에 생각이 다 드러나거든. 그래서 오히려 더 믿을 수 있어.”

“왜...”


뭘 하려고 묻냐는 질문에 왜라고 말하는 나에게 예찬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을 도울 거야. 능력이 없어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도울 거야.”

“그렇군.”

“난... 착한 게 아니야. 다 날 위한 거야.”

“...”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네. 괜찮아. 이해받길 원한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그 말에 예찬과 팀을 꾸렸다.

하던 일도 모두 관두고, 생계는 용병을 뛰어 해결했지.


우리는 제법 호흡이 잘 맞았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표현이 서툴렀으니까...

몸으로 할 수 있는 것 밖에는 못하는데 예찬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을 줄 알았으니까.


그랬기에 선두에 나서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었지.

그렇게 나래가 합류하고 하루하루가 즐거웠지.


한 날은 우리 셋 다 마법진에 갇힌 적이 있어.

나흘 정도 이어진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켜야 할 상대들이 많았어.


초등학교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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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싸우면서 크는 거지(3) 24.05.29 6 0 12쪽
200 싸우면서 크는 거지(2) 24.05.27 6 0 13쪽
199 싸우면서 크는 거지(1) 24.05.24 7 0 14쪽
198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5) 24.05.22 4 0 13쪽
197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 (4) 24.05.20 6 0 11쪽
»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3) 24.05.17 6 0 14쪽
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6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6 0 10쪽
193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5) 24.05.08 7 0 11쪽
192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4) 24.05.06 6 0 10쪽
191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3) 24.05.03 6 0 11쪽
190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2) 24.05.01 6 0 12쪽
189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1) 24.04.29 10 0 13쪽
188 죽음을 피하는 방법(4) 24.04.26 8 0 13쪽
187 죽음을 피하는 방법(3) 24.04.24 7 0 12쪽
186 죽음을 피하는 방법(2) 24.04.22 10 0 12쪽
185 죽음을 피하는 방법(1) 24.04.19 10 0 12쪽
184 역할극(5) 24.04.17 8 0 12쪽
183 역할극(4) 24.04.15 8 0 13쪽
182 역할극(3) 24.04.12 9 0 11쪽
181 역할극(2) 24.04.10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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