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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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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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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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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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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싸우면서 크는 거지(3)

DUMMY

“좀 진정이 돼?”

“... 응.”


한참 소리를 지르다가 진정이 된 듯 제천은 멍한 눈으로 힘없이 앉아 있었다.

대답은 했지만 우리를 보고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 여자를 죽이면 다 끝날 수 있을까. 너무 지긋지긋 한데...”


힘없는 목소리가 구겨진 이불 위에 눌러 붙었다.


“나름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제천의 곁에 선 나래 씨가 이해한다는 듯이 제천의 머리를 살살 토닥였다.


“일부러 그랬던 거지? 그 여자는...”

“...아마도.”


대답을 회피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의 답이 돌아왔다.

낮게 잠겨있는 탓에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왜 우리 형이었을까... 그냥 편안하게 죽었더라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살아서도 고생하고 죽어서도 고생하게 해야만 했던 걸까.”


+++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어.

분명히 아주 어렸을 때는 가족끼리 소풍도 가고, 다 같이 요리도 해먹으며 행복했던 것 같거든.


또렷하진 않지만 그런 기억들이 희미하게 남아있어서 때때로 기억나고는 해.


아마 시작은 아빠였던 것 같아.

원래도 카드놀이를 좋아하는 아빠였지만 사람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더라.


“아빠 친구 만나고 올게.”


아빠의 외출이 잦아졌어.

처음에는 아빠가 나와 형과 함께 하던 놀이를 친구들과 하러 가는 건 줄 알았어.


간간히 어디 가냐고 물어보면 아빠가 기쁜 얼굴로 카드놀이 하러 간다고 했었거든.


아마 다른 이름이 있었겠지만 당시의 내가 그거까지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이야기 했던 거겠지.


잦아진 아빠의 외출은 어느 날부터 외박이 되었고.

하루씩 있던 외박이 일주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어.


그 무렵부터였을 거야.

엄마가 술에 손을 댄 거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우리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으니까.

그냥 조용히 술만 드셨어.

정신이 들면 술을 찾았고, 거나하게 취해서 조용히 잠드셨지.


가끔은 너무 조용히 자니까 죽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형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어른들을 잃은 집에서 어린 아이가 살아남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최소한 나는 할 수 없었을 거야.

형이 나를 학교에 보내줬고, 밥을 챙겨줬어.


밤이 되면 함께 자기도 했지.


“제천아. 우리 나갈까?”


여름이 시작되던 시기의 더위가 기억나.

형이 먼저 들어갔고, 나는 그 뒤에서 신발을 벗고 있었어.


안을 본 형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어.

그 당시에 잘 웃지 않던 형이 오랜만에 활짝 웃더라.

만약에 집 안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형만을 봤더라면 정말 행복해서 웃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때의 난... 어렸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고등학생이었던 형이 그런 얼굴로 웃었다는 걸 생각하면 속이 타.


신발을 벗고 집안에 들어와 형의 옆에 섰어.


거실에는 빈 병들과 엄마가 자기 마음대로 누워있었고, 방에는 눈 밑이 거뭇한 아빠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어.


응. 아마 죽은 건 아니었을 거야.

지금은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까지도 심각성 같은 건 느끼지 못했어.

내 안의 가족들은 당시의 모습이 아닌 조금 더 과거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말이야.


중학생이 되고나서는 조금 반항심도 들었지만.

형이 있었으니까. 형을 생각해서라도 티를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른 거 같아.”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어. 정수리부터 목덜미까지 천천히.

형이라고 해서 그런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겠지.

누가 사랑했던 부모를 버리고 집을 나가고 싶겠어.


하지만 형한테는 혼자 자립이 가능한 사랑하는 어른보다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랑하는 동생이 더 먼저였던 거야.


이후에 형은 학교를 관뒀어.

내 생각이기는 한데. 처음부터 학교에는 가지 않았던 것 같아.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어. 꽤 오래됐을 거야.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형은 곧잘 집에 있었고, 나를 데리러 왔으니까.


그걸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는 게 나는 더 이상해.

눈치도 없고,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고.


난 다시 태어나서 내가 형의 형이 된다고 해도 그런 선택은 못했을 거야.


그만큼 강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강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강하지 않았다면 일찍부터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어.


결국은 이렇게 형이 죽어서도 편해지지 못하게 만들어버렸으니까.


알아.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나를 위해 살아준 형에게 내가 해줄 수 있던 거잖아.

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던 거였잖아.


그것마저 못해줬다는 거지.

내가 너무 약했기 때문에...


+++


제천은 뒷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힘없이 늘어지는 목소리로 느리게, 느리게 한 마디씩 이어가며 짧은 이야기를 끝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살아가는 게 형을 위한 거란 것도 알아. 그런데도... 참을 수가 없는 거야.”


구겨진 이불에 제천의 손 안에서 한껏 더 구겨졌다.


“그 여자는 그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 거야?”


울분이 담긴 물음에 누구도 답할 수 없었다.


아니 답하는 이는 있었다.

그게 조금 늦게 나타났을 뿐이지.


“서윤화 아줌마는 아무도 죽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니까요.”


문을 닫으며 답하는 서우가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제천을 제외한 방안의 사람들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요?”


하지만 그걸 눈치를 볼 서우가 아니었다.


“이상하잖아. 아무도 죽지 않은 세상이라고 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고 있는 거죠.”

“미래라... 아무도 남지 않은 세상에서 미래만 남아버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은 서우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으며 제천의 물음에 답을 이어갔다.


제발 그만해줬으면 좋겠지만 여기서 말린다면 더 이상한 꼴이 되지 않을까.


“그 사람한테는 인간이나 몬스터나 결국 같은 생명이라는 거죠. 탑을 이용하면 현재 남아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확실히 죽지 않고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 지도 몰라요.”

“이성도 잃고, 생전에 가까웠던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하는게 죽은 거랑 다를 게 뭐야.”

“결국 숨쉬고, 움직이잖아요.”


혹시나 서우가 아닌가 싶어 냄새를 맡아봤지만 단내는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로 진심으로 저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평소 제천의 성격을 알고 있을 테니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시비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텐데.


“서우야.”


서우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나를 돌아보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왜요?”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정말 모르겠다는 순수한 눈빛뿐이었다.


“우리 산책 갈까?”

“저 방금 다녀왔는데...”


그러고 보니 산책하러 간다고 하고는 나갔었다.


“너는 그 사람 편이야?”


겨우 가라앉았던 감정이 다시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분노를 참고 있는 듯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편은 아니지. 굳이 편을 가르자면 나는 이쪽이지.”


서우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야?”

“상대를 알아야 싸움을 해도 이길 수 있는 거니까요. 정보를 숨기고 있어봐야 아무 쓸모가 없어요.”


감정이 격해지고 있는 것은 제천 뿐만은 아닌 듯 서우의 말도 점차 속도를 높였다.


“그래... 너 그 사람들하고 관련이 있다고 했지. 너 때문인 거네 그러면.”

“제천아. 그건 아니야.”


이번에는 나래 씨가 나서서 제천을 말렸지만 화로 가득 차 들리지 않은 듯 했다.


“혹시 모르잖아. 쟤가 우리에 대한 정보를 다 가져다 줘서. 우리 형도, 소원 누나도 몬스터로 만들어버린 걸지도.”


어디선가 얕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몬스터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제천아 그만해. 너희 갑자기 왜 싸우는데.”

“쟤가 시비 걸잖아요.”

“의심되는 걸 의심된다고 말하는 게 뭐 어때서.”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말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깨달았다.


이건 의견 차이에서 나오는 싸움이 아니다.

싸우기 위해서 의견 차이를 만든 거다.

이렇게라도 남을 탓하고, 화를 내야 풀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둘이 그런 자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스트레스가 쌓인 제천과 ...

서우는 왜지.


“너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야.”

“하.”


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박차게 일어난 탓에 나무로 만든 의자가 힘없이 뒤로 넘어지면 둔탁한 소리를 냈다.


“민폐가 되었다면 네가 더 됐겠지. 아무리 노력하면 뭐해. 목숨 걸고 싸우면 뭐해. 결국은 이딴 식으로 밖에 받아들이질 못하는데.”


서우는 그렇게 쏘아붙이더니 그대로 방을 나갔다.


“저 언니는 갑자기 와서 왜 불을 지피고 가는 거람...”


미혜가 쾅하고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형은 왜 저런 애를 데려온 거야!”


“홍제천!!!”


기어이 갈 곳을 찾지 못했던 분노가 나에게 닿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고함소리에 제천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옆을 바라봤다.


“정신 차려. 여기 지금 장난치는 사람 아무도 없어.”


딸꾹.

나래 씨의 고함에 놀랐는지 제천의 작고 귀여운 딸꾹질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지혁 씨랑 미혜는... 서우 씨 따라가 봐요.”

“아... 네.”

“넌 나랑 이야기 좀 해.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나래 씨가 곁에 서있던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요.”


로운을 제외한 이들만이 알겠다며 조용히 방을 나섰다.


“아저씨 우리도 가요.”

“그래.”


나는 미혜의 힘에 의해 끌려가다 시피 이끌려 방을 나섰다.

방 안에는 얼굴에서부터 화가 느껴지는 나래 씨와 우리에게 어서 나가보라고 손짓하는 로운.

그리고 풀네임을 불려 기가 죽은 아이 같은 얼굴로 앉아 있는 제천이 남았다.


+++


“그나저나 어디로 갔으려나.”


미혜는 방을 나오고 나서야 손을 놔주었다.

얼얼한 감각이 피부에 남았다.


“어디로 간지 알아도 워낙 발이 빠르니까 어디까지 갔을지 모르겠네.”


밖으로 나왔을 때는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언니는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했을까요.”

“뭐... 워낙 사회성이 없잖아. 그 상대도 사회성이 없었다는 게 문제를 키운 거겠지.”

“...”


미혜는 동의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언니를 믿어요?”

“음...”

“고민하면 안 되는 거 아녜요?”


장난스럽게 건네는 말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믿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걔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어.”

“...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죠.”


서우는 탑을 오르는 일에 진심이었고, 지금 우리 팀에서 섞여 들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본인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라고 한다면 쉽지 않다.


이래서 첫 인상이 중요하다.

첫 인상을 망쳐버렸으니 진입 장벽이 더 높아진 거 아닌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지나야 이해할 수 있다.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나쁜 인상을 남기는 유형이었다.


“그래도 제법 발전하지 않았어?”

“그렇죠.”


이번에는 미혜가 웃었다.

아직도 투닥거리며 말싸움을 하지만 미혜는 서우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대 쪽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이건 서우 언니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한테 전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무리 뭘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그래.”


맞는 말이었다.

우리가 백날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하더라도 본인의 진심을 전달하기에 본인만큼 효율적인 사람이 없다.


“자 어디로 갔나 들어볼까.”


눈을 감았다.

들려오던 크고 작은 소리가 선명해졌다.

수많은 소리 속에서 서우를 찾아야 한다.


가볍고 빠른 발걸음 소리.


“저쪽인가.”


이미 소리는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곳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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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우면서 크는 거지(3) 24.05.29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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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5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14 0 10쪽
193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5) 24.05.08 14 0 11쪽
192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4) 24.05.06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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