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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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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290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7.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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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빛으로 향하는 길 (4)

DUMMY

“서우 언니... 진짜 괜찮은 거야?”


그제야 서우의 시선이 미혜를 향했다.

시선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고개는 확실히 미혜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보고 있다는 듯이 서우가 방긋 웃었다.

정말 괜찮다는 듯이 웃어보였지만 미혜는 기묘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마치 인간이 동물의 표정을 따라하는 것 같은 어색함이었다.

아무리 감정 표현에 서툰 서우라고 할지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입의 근육은 얼마큼 쓰고, 눈은 어떻게 감아야하는지 계산된 미소였다.


미혜를 보며 잠시 미소 지은 서우가 자신의 칼을 들고 다시 빛을 향해 내달렸다.

조금 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 예리하게 빛을 갈랐다.


하얀 빛줄기를 베자 천장에서 섞여 들고 있는 흑과 백의 흐름에서 잠시나마 흑색이 사라졌다.


“역시 혼자는 안 되나.”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며 위를 바라보며 말하는 서우의 모습에 미혜는 등줄기를 따라 한기가 흘렀다.


아무렇지 않게 천장을 올려다보는 표정도,

높낮이 없는 목소리도,

그의 주변으로 느껴지는 묘한 압박감도,

무엇하나 평소의 서우를 떠올릴만한 것이 없었다.


미혜는 지금의 서우가 평소의 서우와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다른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촉이 그 말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학고 있었다.


“거기. 어... 예쁜 아이야. 나 좀 도와줄래?”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것을 느낀 것인지 서우의 고개가 미혜를 향했다.


“아... 네.”


미혜는 애매하게 있던 자세를 바로잡고 섰다.


“아마 그... 에스프레소... 아니. 뭐냐. 서우가 좋아하는 인간이 있지.”

“예...?”

“알잖아. 하여튼 그 아이가 재밌는 걸 가지고 있잖아. 그것 좀 찾아다 주겠어? 지금쯤이면... 아마 그 아이도 일어났을 거야.”


서우가 턱짓으로 로운이 만든 이글루를 가리켰다.

알아들었으면 빨리 움직이라는 뜻이었다.


“하...하지만.”

“너는 촉이 좋은 아이니까.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


미혜는 떠오르려는 잡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뒤를 돌아 달렸다.

서우의 안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자신에게 촉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니 자신의 촉이 하라는 대로 따라도 된다는 뜻이리라.


도착한 이글루 앞에는 익숙한 문이 하나 있었다.

나무로 된 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오래된 나무로 이루어져있었지만 짜임새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곳에 이글루는 웬 말이고, 나무문은 웬 말이야.”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밀어봤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자세히 보니 문 가운데 세로로 사각형 4개가 나란히 있었다.

사각형 옆에는 돌릴 수 있는 손잡이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이건...”


손잡이를 잡고 살짝 돌리자 아무것도 없는 칸에 ‘1’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 비밀번호로 라도 치라는 거야? 지가 무슨 사춘기 소녀라도 되는 줄 아나.”


미혜는 당장이라도 문을 부수고 싶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될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 생각을 해보자. 아저씨도 나한테 머리 좀 쓰라고 했으니까... 음. 그러니까.”


미혜는 생각했다.

과연 로운이라면 여기에 어떤 번호를 적었을까.

애초에 이런 걸 만들면서 비밀번호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의식적으로 한 게 아니라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숫자가 아니었을까?


“내가 저 사람 속을 어떻게 아는데.”


미혜는 머리가 지끈 거렸지만 생각하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가끔은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존재한다는 걸 ...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한편 서우의 갑작스러운 행보를 지켜보고 있던 것은 미혜 뿐만이 아니었다.


“서우 님. 괜찮으세요?”

“... 괜찮나.”

“서우 씨!”

“야 꼬맹이!”


사방에서 몰려든 사람들에 의해서 서우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에 이상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배의 상처나 다른 곳의 상태를 살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야망도, 가능성도 없지만. 좋은 아이들이구나.”

“네?”


여전히 높낮이 없는 목소리에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지만 평소의 서우를 생각했을 때 이상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 서우의 이상함을 깨달은 이는 없던 것이었다.


“이 빛을 잘라내야 한다.”

“빛이요?”


서우의 말과 함께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이 바로 옆에 있는 빛을 향했다.

빛을 자른다는 것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서는 자를 수 없지.”

“그러면...”

“마력은 마력으로 끊어내야 하는 거지.”


서우의 고개가 제천을 향했다.


“딱 좋네.”

“...? 나?”


제천이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답 대신 서우는 들고 있던 칼을 크게 휘둘렀다.

허공을 가른 칼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서우 씨!?”


칼의 궤도 안에 있던 승주가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이에 나래의 마력이 서우의 팔을 잡았다.


“...”


서우는 그게 거슬린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며 나래의 염력이 닿는 곳을 바라봤다.


“지금 너희가 견제해야 할 이는 내가 아닐 텐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나래의 염력을 털어낸 서우가 다시 한 번 칼을 휘두르자 좀 전의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살아있는 자들의 피부에 자상을 남겼다.


“이...이게 무슨.”


나래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너무 놀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베여 흐르는 피를 닦을 정신도 없었다.

너무나 쉽게 자신의 힘을 끊어낸 것도 놀라운데 서우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기라도 하듯 움직였다.


처음에는 가볍게 뛰는 수준이던 움직임이 어느 새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로 빨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면서 날카로운 파편 같은 것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왔다.


“일단... 조금 떨어지지.”


멍하니 서우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던 나래의 눈앞에 돌로 된 기둥이 솟았다.

날아오던 파편이 기분 탓이 아니었다는 듯이 돌기둥에도 무언가가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소원의 더듬이가 힘없이 쳐져 흔들렸다.

그게 마치 생각에 잠긴 사람의 고개 같다는 생각이 드는 승주였다.


“마력의 기운으로 봐서는 헤나투 씨에요. 하지만...”

“헤나투 씨가 왜 서우 씨를 공격해요?”


말하는 소원도, 그에 의문을 가지는 나래도 답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건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승주를 향했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위해 손을 들어 올린 아이처럼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헤나투 씨가 이유 없이 우리를 공격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제 와서 헤나투가 자신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그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할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헤나투... 처음부터 안 보이지 않았어?”


제천이 고개를 사선으로 기울였다.

조호완의 공격으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얼핏 남은 기억 속에 헤나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특이한 사람이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는 제천을 다른 이들이 조용히 바라봤다.

어쩌면 이곳에서 가장 편견이 없는 존재는 제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시지만 일행들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확실히... 헤나투 씨가 있었다면 기억을 못할 리가 없어요.”

“어쩌면 빛에 묻혀 버린 건 아닐까요?”


의문만 꼬리를 물고 있는 와중에 승우가 가운데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빛줄기를 가리켰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안 보인다고?”


되돌아오는 제천의 물음에 승우의 어깨가 가볍게 솟아났다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저... 저 분을 갑자기 공격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요.”


승우는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듯 말음 더듬거리며 서우를 바라봤다.

여전히 한 치의 틈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대치하고 있는 서우와 헤나투였다.


“승우의 말에 일리가 있다. 헤나투라면...”


석은 헤나투가 자신을 소개했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는 분명 자신을 ‘빛을 섬기는’ 이라고 설명했었다.


저 빛이 그 빛일까?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저 빛을 잘라내야 한다는 저 자의 의견도 맞겠군.”


석의 시선이 조용히 서우를 향했다.

서우의 몸이었고, 서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왠지 석은 그가 서우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형.”

“...”

“어떻게? 빛을 자른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린데.”


이해할 수 없다는 제천의 표정이 옆에 있던 사람에게, 또 그 옆에 있는 사람에게 빠르게 전염됐다.


“아오 답답해. 역시 안 되겠어. 여기서 생각해봤자 아무 소용없어.”


의문 속에 찾아온 침묵에 가만히 앉아 있던 제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물론 형들이나 누나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제천이 칼 손잡이를 쥐었다.


“근데 가끔 보면 고서우 쟤가 더 속 시원하게 싸워.”


칼을 쥔 제천이 빛을 향해 뛰었다.

달려가는 제천의 옆으로 그의 키만 한 돌기둥이 솟아났다.


“석 오빠?”

“...”


제천이 뛰는 걸 주변에 알리는 방법이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소한 공격해오는 방향을 하나로 좁힌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석이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제천아. 단순히 자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알고 있어!”


뛰어가며 외치는 제천의 목소리가 돌기둥 사이에 부딪치며 작게 메아리쳤다.


조금 전에 빛을 잘라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가 마력은 마력으로 끊어내야 한다 말했다.


‘그렇다면 칼에 마력을 실어서...’


제천은 다른 사람들처럼 마력을 다루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나래나 로운처럼 능력을 섬세하게 쓸 수 있도록 마력을 조절하지도 못했고.

미혜나 서우처럼 사물에 마력만 담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지혁이 보고 있었더라면 손끝에 감각을 집중해서 칼에 마력을 담으라고 한 소리에 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제천은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게 됐으면 진작 했지.”


노력을 안 한 게 아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포기했었다.

자신의 재능은 거기까지고, 발전하지 않아도 오늘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노력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작은 결과물로 남는다.

안개에 옷이 젖어가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남는 것이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하는 만큼 더 여유를 가지고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노력도, 끈기도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은 노력도 끈기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내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고.


“이럅!”


제천이 쥐고 있는 칼에 불이 붙더니 크게 타올랐다.

불이 붙은 칼이 어떤 저항도 느끼지 못하며 빛을 가로 질렀다.


“이게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반대편으로 튀어나와 바닥에 내려앉으려던 제천의 몸이 무언가에 맞아 튕겨나갔다.


“멍청하긴.”


서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부드럽게 닿았다가 사라졌다.

허공에서 내려오고 있는 자신을 쳐낼 겸 발로 차낸 서우가 빠르게 자세를 잡고 칼을 휘둘렀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날카로운 마찰음이 아닌 무언가 금이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전해졌다.


“하. 저 예쁜이는 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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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빛으로 향하는 길(1) 24.07.01 9 0 11쪽
213 서로 다른 존재(5) 24.06.28 14 0 11쪽
212 서로 다른 존재 (4) 24.06.24 14 0 12쪽
211 서로 다른 존재(3) 24.06.21 11 0 13쪽
210 서로 다른 존재(2) 24.06.19 12 0 14쪽
209 서로 다른 존재(1) 24.06.17 11 0 12쪽
208 흩어지는 미로(5) 24.06.14 11 0 13쪽
207 흩어지는 미로(4) 24.06.12 12 0 12쪽
206 흩어지는 미로(3) 24.06.10 14 0 13쪽
205 흩어지는 미로(2) 24.06.07 12 0 13쪽
204 흩어지는 미로(1) 24.06.05 10 0 14쪽
203 싸우면서 크는 거지(5) 24.06.03 13 0 13쪽
202 싸우면서 크는 거지(4) 24.05.31 11 0 12쪽
201 싸우면서 크는 거지(3) 24.05.29 8 0 12쪽
200 싸우면서 크는 거지(2) 24.05.27 10 0 13쪽
199 싸우면서 크는 거지(1) 24.05.24 11 0 14쪽
198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5) 24.05.22 10 0 13쪽
197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 (4) 24.05.20 16 0 11쪽
196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3) 24.05.17 13 0 14쪽
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5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14 0 10쪽
193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5) 24.05.08 13 0 11쪽
192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4) 24.05.06 13 0 10쪽
191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3) 24.05.03 13 0 11쪽
190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2) 24.05.01 14 0 12쪽
189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1) 24.04.29 20 0 13쪽
188 죽음을 피하는 방법(4) 24.04.26 1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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