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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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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277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7.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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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빛으로 향하는 길(3)

DUMMY

“방금 봤어요!? 선배!”


균형이 깨지는 모습을 본 것은 나뿐만은 아닌 듯 바닥에 내려온 서우가 외쳤다.

그 소리에 몇 사람의 시선이 위를 향했지만 아주 잠깐의 변화였기에 다들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도망쳐! 고서우!!”

“네?”


해맑게 웃고 있던 서우의 얼굴이 멈췄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칼날이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내려다 봤다.


“우와.. 진짜 빠르네.”


그걸 마지막으로 피를 토하며 작은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쓰러진 서우를 표정 없이 바라보던 조호완이 다시 칼을 들었다.


고개를 들자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다음 타겟은 나구나.”


생각이 채 끝나기 전에 조호완의 몸이 땅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아직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지만 칼의 손잡이를 쥐었다.


“진짜 너무하네.”


조호완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와 나 사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같이 탑에 오르기 위해 떠났지만 그는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었고.

나는 그저 수많은 탑꾼 중 하나였을 뿐이니까.


그런 사람의 시선이 오롯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영광이라고 생각할게요.”


조호완이 로운에게 영웅이었고, 친한 형이었으며 소중한 존재였듯이.

나 또한 그에게 빚이 있었다.


덕분에 내 살림이 나아졌으니까.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관대했던 그였기에 탑꾼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애매하지만 어떤 능력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거창하게 진 빚은 아니니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탠 것으로 퉁치자고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리라.


앞으로 대략 10m.

조호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 수많은 얼음 가시가 내리꽂혔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한 조호완이 바닥에 내려와 뒤를 돌아봤다.

앞으로 5m.


“형. 이제 진짜 그만 하자.”


로운의 주변으로 황금빛의 마력이 넓게 넘실거렸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 바닥이 얼어붙었다.

공중에 나타난 얼음 조각들은 언제라도 조호완을 공격하겠다는 듯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

“뭐라고 말 좀 해봐... 진짜 형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거야?”


다시 한 번 얼음 조각들이 조호완이 있던 자리에 내리 꽂혔다.

언제 어디로 공격이 날아올지 알고 있다는 듯이 조호완은 능숙하게 공격을 피했다.


공격을 피하면서 점점 뒤로 온 조호완과 나 사이의 거리는 채 1m도 남지 않았다.


“로운씨...”


로운의 주변으로 넓게 펼쳐져 있던 마력이 점차 짙어지더니 어느새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나와 로운 그리고 조호완을 가두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순식간에 돔모양으로 우리를 둘렀다.

흡사 이글루 같은 모양새의 공간은 이글루와 달리 서늘한 한기로 가득했다.


로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얼음으로 만든 칼을 쥐었다.

이글루와 함께 얼려버린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달려온 그의 칼이 조호완을 향했다.

하지만 조호완은 피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로운의 모습만을 바라봤다.

차갑게 날이 선 로운의 칼날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었음에도 그의 칼은 계속 나를 향하고 있었다.


최대한 멀어지려고 했지만 이런 몸으로 조호완을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공격을 막으려던 칼이 무력하게 부러지며 그의 칼 끝이 나를 꿰뚫었다.


너무 놀라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던가.

그런 말 다 거짓말이다.

정확히 왼쪽 가슴을 관통한 칼을 중심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으아아악!”


살면서 이런 고통을 느낄 일이 있었던가.

숨을 쉬기 어렵다.

심장... 심장을 꿰뚫리면 죽는 거겠지.


숨이 쉬어지지 않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감기는 시야에 조호완이 로운의 공격을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 가슴에 자신의 칼을 꽂아두고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어째서...


감기는 눈을 애써 뜨며 가슴에 꽂힌 검을 바라봤다.

검은 빛이 칼과 나 사이를 단단히 잇고 있었다.


그런가...

이렇게... 어차피 도와줄 거면서...


이제는 눈을 뜰 힘도 없다.

어두워진 세계에서 불에 타듯 뜨거웠던 고통은 차갑게 식어갔다.

손가락하나도 까딱할 힘이 없다.

졸리다...


어쩌면 죽는 건... 잠드는 것과 비슷한 거였나...


조금 더 아픈 잠...


+++


에스프레소는 심기가 불편한 듯 다리를 꼬고 앉아 발끝을 까딱거렸다.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냐.”

“...”


에스프레소만큼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스모어가 불편한 미소를 지었다.


“하... 우 지혁.”


조금 짜증이 나려고 했다.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이상 우 지혁. 그 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게 하려고 했는데 일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너희 아이는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속에서 들끓는 이것들을 인간들은 짜증 혹은 분노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나도 지금 고란한 상황이니까 조용히 해.”


묵묵히 에스프레소의 말을 듣고 있던 스모어가 겨우 내뱉은 말이었다.


우 지혁도, 고 서우도 거의 동시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결국은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 일을 그르쳤다.

인간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걸 질투심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간 잘 참는 거 같더니 결국 완성을 코앞에 두고서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겠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건 우리야. 고작 인간 따위를 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네가 욕심만 안 부렸어도 됐어.”

“그럴까.”


스모어가 어깨를 천천히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자신의 욕심?

그게 있었다면 인간들을 사랑한 것뿐이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찰나의 순간만을 살았다가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주고 싶었다.

그저 그거뿐이었고, 같은 뜻이 있는 인간에게 도움을 조금 주었을 뿐이었다.

운이 좋게도 그 인간이 도움을 받기 좋은 체질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자신은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니다.

사랑과 욕심을 같은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너야말로. 불만이 있으면 네가 직접 나서든가.”


에스프레소는 스모어가 싫었다.

같은 운명을 가지고, 동시에 태어난 둘 사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좁혀지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자신의 것과 닮은 목소리로 말하기를 즐기는 스모어가 싫었다.


“너는 인간들을 사랑해?”

“사랑 같은 거.”


사랑 같은 건 인간들이 만들어낸 감정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 결국 인간들이 만들어낸 생각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스모어가 그리고 수많은 존재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인간들은 언어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가장 유사한 말이었을 뿐이다.


“그런걸 보고 인간들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거라니까.”


장난기 서린 목소리가 어느 순간 귓바퀴에 닿았다.


“나는 서우 살리러 갈 거야.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싱긋 웃는 스모어의 주변으로 진한 단내가 진동했다.

코를 막고 싶을 정도로 불쾌한 감각이었다.

스모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쓰러져있던 서우의 몸이 일어났다.


몸을 관통한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지만 눈을 뜨고 있는 서우의 시선은 어디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너는 솔직하지 못해. 조금은 가볍게 살아.”

“너는 너무 가벼워.”


어째서 그들은 자신들을 만들어낸 것일까.

어째서 이 탑을 맡겼고, 이 탑에 가두어 살아가게 했을까.

존재가 사라지기 전까지 함께 해야 하는 운명을 쥐어주고는 서로만큼은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을까.


“다 재수 없어...”


에스프레소는 바닥을 내려다 봤다.

짙은 어둠은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끝없는 구덩이로 빠질 것 같은 어둠이었다.


무표정한 소년의 얼굴이 아래를 노려봤다.

아주 멀리서 이제 막 숨을 멈춘 인간의 육체가 있었다.

순간에 멈춰있어 지금이라면 살려낼 수 있었다.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비록 반쪽짜리 신인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마. 애들 서운하다.”

“넌 좀 조용히 해.”


스모어가 파리처럼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조잘거렸다.

저 녀석이 자신에게 조금만 더...

아니 아예 관심을 끊어주기만 하면 좋을 텐데.


“에휴... 그래 내가 어떻게 형을 버리겠어.”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힘없이 쳐져있던 인간의 육체가 꿈틀거렸다.

육체는 죽음으로부터 끌어냈지만 잃어버린 정신이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지혁이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그가 마주했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

인간들은 그걸 기적이라고 부르던 것 같다.


“이번만이야.”


이번만.

이번이 마지막.

정말 마지막.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된 말이었지만.

에스프레소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의일 테니까.


+++


“서우 언니! 괜찮아?”

“...”


조금은 쉰 목소리로 외치는 미혜의 얼굴은 붉게 부어있었다.

흘렀던 눈물길을 따라 다른 눈물이 뒤를 이으며 흘러내렸다.


서우가 공격을 당하고 쓰러지자마자 달려온 미혜가 몇 번이나 흔들어 깨우고, 뺨을 때려도 미동조차 없었다.

오히려 힘없이 떨어진 손이 살아있는 사람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이 아닐 거라며 포기하지 않는 미혜의 눈에 서우의 뚫린 배 주변으로 하얗게 모여드는 빛이 보였다.

그러더니 상처가 사라지고 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


다시 한 번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서우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진한 단내가 미혜의 코끝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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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서로 다른 존재(3) 24.06.21 11 0 13쪽
210 서로 다른 존재(2) 24.06.19 12 0 14쪽
209 서로 다른 존재(1) 24.06.17 11 0 12쪽
208 흩어지는 미로(5) 24.06.14 11 0 13쪽
207 흩어지는 미로(4) 24.06.12 11 0 12쪽
206 흩어지는 미로(3) 24.06.10 14 0 13쪽
205 흩어지는 미로(2) 24.06.07 12 0 13쪽
204 흩어지는 미로(1) 24.06.05 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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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싸우면서 크는 거지(4) 24.05.31 10 0 12쪽
201 싸우면서 크는 거지(3) 24.05.29 8 0 12쪽
200 싸우면서 크는 거지(2) 24.05.27 10 0 13쪽
199 싸우면서 크는 거지(1) 24.05.24 11 0 14쪽
198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5) 24.05.22 10 0 13쪽
197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 (4) 24.05.20 14 0 11쪽
196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3) 24.05.17 13 0 14쪽
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5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13 0 10쪽
193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5) 24.05.08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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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3) 24.05.03 13 0 11쪽
190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2) 24.05.01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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