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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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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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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61
추천수 :
274
글자수 :
1,19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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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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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역할극(5)

DUMMY

“뭐하냐.”

“뭔가...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게 더 있을 거야.”


필요한 음료 외에도 몇 개의 병이 더 굴러다니고 있었다.


‘꽤 양이 많은데... 제법 무거웠을 텐데 이걸 매번 들고 다니셨던 건가.’


미혜는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지혁은 힘이 약하고 지켜줘야 한다는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무거운 가방을 들고는 매번 탑에 올랐을 것을 생각하니 측은한 기분이 안 들 수 없던 것이다.


“이런 거라도 마시면...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미혜는 가방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겼다는 병을 집어 제천에게 건넸다.


“이렇게 막 꺼내 마셔도 되는 거야?”

“... 뭐. 다 이렇게 쓰려고 가져오신 거 아니겠어?”


조금은 걱정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자신이 아는 지혁이라면 이 정도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혹여 혼낸다면 달게 혼나리라.

물론 조금은 억울한 기분이 들겠지만.


“아무튼 시선 좀 끌어줘.”

“오야.”


제천이 거드름을 피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또 한 마디를 하고 싶은 기분이 피어났지만 더 이상의 피해가 없이 일을 끝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혜였다.


‘내가 조금 더 어른스러우니까 참자.’


스스로에게 되뇌며 일어나 단숨에 음료를 마셨다.

벙커에서 나온 이후로 얼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에 지혁은 로운에게 얼음을 부탁했다.


이전에 쓰던 얼음보다 더욱 차갑고, 오랫동안 지속됐다.

단점이 하나있다면 너무 차가워서 마시는 사람마다 족족 머리가 띵한 경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음료를 마심과 동시에 나타난 안내창을 끈 미혜가 제천을 바라봤다.

제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제천의 움직임을 따라 석상의 고개가 움직였고, 그에 따라 승주와 승우의 시선도 제천을 향했다.


모두의 관심이 제천에게 쏠리자 미혜는 빠르게 시선의 뒤편으로 뛰었다.


자신은 서우처럼 높게 뛰는 재주는 없었다.

뛸 수 있는 높이에도 한계가 있지만 뛰어오른 다음이 문제였다.


허공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면 의미가 없었다.

그랬기에 선택한 것이 사자 석상의 꼬리를 타고 뛰어올라가는 것이었다.


털까지 섬세하게 돌로 조각되어있는 등은 밟고 갈 것이 충분했다.


‘조금만 더 가면...’


달리던 미혜가 상황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승우와 눈이 마주쳤다.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좀 전까지 보이던 모습과 조금 달랐다.


“승우야...?”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승우를 올려다봤다.


승우는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세어 나오려는 목소리가 차마 소리가 되지 못한 채 발버둥 쳤다.


“설마...”


승우의 의식은 깨어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미혜가 아랫입술을 조용히 깨물었다.


연극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배역을 주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만들었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자신이 아끼는 동생들이었다.


그들은 탑의 영향이든, 연극의 영향이든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게 스스로의 뜻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걸 증명하듯이 승우는 자아가 두 개로 나뉘기라도 한 것처럼 상반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승우야.”


다행인 점이 있다면 자신을 돌아본 것이 승주가 아닌 승우라는 점이었다.


미혜는 속도는 높이면서 소리를 줄이며 승주에게로 다가갔다.


‘이전에 아저씨가 다가갔을 때 어느 지점을 지나면 돌아봤었지...’


미혜는 이전에 석상의 시선을 끌면서 봤던 지혁과 나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기억에 의하면 곧 승주가 돌아볼 것이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조금 더 인가?’


멀리 있던 탓에 정확한 지점을 알 수 없어서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다가갔는데 여전히 미동도 없는 승주였다.


그리고 마침내 뛰어서 승주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도착했을 때.

미혜는 자신들에게 한 사람이 더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승주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묶여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승주야 이제 그만 하자.”


석상의 등을 세게 밟자 돌조각이 튀어나왔다.

마치 다리가 되어주듯 승주를 향해 뻗어 있는 돌조각을 밟고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불안한 듯 고통스러워 보이는 얼굴이 더 잘 보였다.


“괜찮아. 괜찮아.”


미혜는 들고 있던 병의 뚜껑을 따서 승주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파르르 떨리고 있는 입술이 승주 또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거 한 모금 마시면 다 끝날 수 있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입술이 서서히 벌어지며 작은 틈이 생겼다.

그 사이로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음료가 조금씩 흘러들어갔다.


반은 흘린 것 같았지만 음료의 효과는 확실히 드는 듯 떨리던 몸에서 힘이 빠지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


그 모습을 미혜는 말없이 바라봤다.

이렇게 해서 자신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었고, 어쩌면 탑이 생기고 마법진이 생기는 상황에 적응하며 어떻게 해서든 살아갈 방법을 찾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건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한 번의 변화를 더 겪었다.


이게 맞는 걸까.


힘이 빠진 승주의 몸이 천천히 내려가 지혁과 서우가 누워있는 곳으로 향했다.


“승우도 자자.”


미혜는 승주에게 했던 것처럼 승우의 근처로 다가가 돌을 세게 밟았다.


조금 전보다 더 길게 이어진 돌조각이 승우를 지나 뻗어나갔다.


아이에게 약을 먹이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승우에게 음료를 먹였다.

나름 해봤다고 승주보다 더 많은 양을 먹일 수 있었다.


승우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자 미혜가 밟고 있던 바닥이 흔들렸다.


정확히는 사자 석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대한 금이 생겼다.


“으아아아아악!”


미혜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석상이 곧 무너질 것이란 걸.

그리고 자신도 이곳에서 떨어질 것이란 걸.


그렇기에 뛰어왔던 등줄기를 따라 달려 내려갔다.

내리막길을 달릴 때는 리듬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의 힘에 중력까지 더해져 거의 구르듯이 뛰고 있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중심을 잃으면 굴러서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미혜는 몸의 중심이 자신의 통제 밖으로 뛰쳐나갔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미혜야!!”


중심을 잃고 다리 대신 등으로 바닥을 짚기 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며 미혜의 눈에 모든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어어어언니이이이...!”


반가움도 잠시 미혜는 자신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이 아닌 자신이 느리게 구르고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어라.”


구르는 줄 알았던 몸은 둥글게 말려 그대로 떠서 나래의 뒤를 따랐다.


수없이 많았던 위기의 순간.

팀원을 들고 뛰어야 했던 많은 순간들이 나래로 하여금 그 어떤 침대보다도 포근한 승차감을 구현할 수 있게 하였다.


“아니. 이게 뭐야.”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마치 땅위에 스스로의 발로 서있는 것처럼 안정적인 감각이었다.


“그... 바보... 아니 홍제천은요?”


뒤늦게 자신이 아이들을 재울 동안 시간을 끌어준다고 했던 제천이 보이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미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있어.”


미혜의 시선이 조용히 통로 앞으로 향했다.

거기엔 서서 자신을 향해 뭐라뭐라 외치고 있는 제천이 있었다.


얄밉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기분이 묘한 미혜였다.


“세이프!”


통로 앞에 도착하자 제천이 팔을 양쪽으로 펼치며 외쳤다.


그 모습 또한 저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그래도 그의 곁에서 곤히 자고 있는 두 아이를 보니 나오려던 화도 참을 수 있었다.


“이걸로 끝난 건가.”


제천이 한 건 해결했다는 듯이 소매로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아니야. 아직이에요.”


승주의 곁에 앉아 말하는 나래의 목소리에 제천의 시선도 둘을 향했다.


나래는 승주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책을 빼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누나. 이제 그 정도로 힘이 없는 거야?”


어딘가 측은한 느낌이 담긴 목소리로 말한 제천이 나래 옆에 앉아 승주의 팔을 잡았다.

마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바위를 밀고 있는 기분에 놀라 손을 놓고 말았다.


“왜 그러는데?”


그런 둘을 미혜가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없는 상태였다.

예상이 빗나간 것일까?


“연극의... 영향인 것 같아요.”

“연극의 영향이요?”


누군가의 목소리에 셋의 시선이 동시에 통로 쪽을 향했다.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지혁이었다.


“쌍둥이들 역할은 조각상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바위처럼 단단한 거라고?”


제천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고작 연극이었다. 연극에서 배역을 맡았다고 해서 체구 차이가 나는 여자아이의 팔 하나도 자신이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여기는 탑이야. 다들 잊으면 안돼요.”


탑.

생성부터, 돌아가는 원리까지 인간에게는 미스터리만을 안겨준 존재였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만 인류의 역사에 탑이 존재하는 시간은 불과 몇 년일 뿐이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가지고 있던 상식을 한순간에 버릴 수는 없었다.


“아... 어.”


제천은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급하거나 방심하는 순간에는 이곳과 관련된 모든 전제를 잊어버리고는 했다.


“그럼...어떡해요?”

“똑같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돼.”

“음...”


미혜는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배역이 무대를 벗어나게 하면 될까요?”


잠시의 침묵은 나래의 목소리에 의해 깨졌다.


순간 나래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에 웃음이 터질 뻔 했다.


머리 위로 물음표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제일 좋은 건 석 씨가 나레이션을 해주면 좋겠지만... 그건 쉽지 않을 거 같죠?”


마치 천장에 석이 있다는 듯이 위를 바라봤지만 거긴 환하게 빛나는 헤나투만 있을 뿐이었다.


“무대 밖으로 내려가면 되지 않을까요?”


나래의 말에 네 사람의 시선이 중앙을 향했다.

무너진 석상의 잔해가 있었고, 그 위로 철창에 갇힌 사람이 둘 있었다.


“아... 아니다.”


홀린 사람처럼 둘을 향해 걸어가던 나래는 이내 허공으로 떠올라 공주가 갇혀있는 철창 앞까지 향했다.


철창 안에는 한 여자가 힘없이 주저앉아 로운이 갇혀 있는 철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에서 그런 난리를 치고 있었는데 시선 한 번 안 주고 있던 건가.’


코앞까지 사람이 다가왔는데도 여자는 미동 하나 없었다.


“오렐리아 공주님.”



나래의 목소리에 여자의 시선이 천천히 나래를 향했다.


“...”

“왕자님을 살릴 방법. 알고 있는 거죠?”

“...”


시선은 얻었지만 오렐리아 공주는 그저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방법을 알려줘요.”


나래는 옆에 있는 철창을 바라봤다.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져있는 로운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로운에게서 시선을 거둬 다시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본 나래의 시선에 낯선 물건이 들어왔다.


종이 뭉치로 보이는 것 위에는 ‘대본’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아... 당신... 그래 이상했어. 어쩌면 당연했는데 파수꾼한테 시선이 쏠려서...”


대본에서 여자로 이동하는 시선에 분노가 실렸다.


“당신이 이 층의 보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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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싸우면서 크는 거지(4) 24.05.31 9 0 12쪽
201 싸우면서 크는 거지(3) 24.05.29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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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3) 24.05.17 11 0 14쪽
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0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12 0 10쪽
193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5) 24.05.08 12 0 11쪽
192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4) 24.05.06 11 0 10쪽
191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3) 24.05.03 13 0 11쪽
190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2) 24.05.01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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