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2,969
추천수 :
274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4.10 09:00
조회
17
추천
0
글자
12쪽

역할극(2)

DUMMY

“승주야! 승우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외침이 되지 못한 미혜의 목소리가 두 사람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으로 흩어졌다.


저 또한 역할에 빠져있기 때문인지 쌍둥이는 무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봤다.


어떤 말도, 어떤 제스처도 하지 않은 채.

마치 멈춘 것처럼 아래에 있는 우리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왕자님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1시간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래 씨가 보고를 하듯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마녀의 터에 들어온 미련한 인간들은 누구인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자로 된 석상의 입이 움직였다.

입이 움직일 때마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듯 작은 돌조각들이 떨어졌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입과 달리 파수꾼의 목소리는 머리 안에서 울렸다.


머리의 안과 밖으로 울리는 소리 탓에 실제로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모시는 자의 저주를 받은 자로구나.


파수꾼의 시선이 로운을 향하는 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돌로 된 눈동자가 드드득 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으니 안 볼 수 없었다.


-자비로운 마녀의 뜻에 처음은 용서하라 하였지만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


과연 석상도 웃을 수 있을까.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묘하게 일그러지는 사자의 주둥이를 보니 그가 웃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샐리우드의 멸망을.


파수꾼의 앞발이 높이 올라가더니 그대로 바닥을 내리쳤다.

강한 진동과 함께 몸을 구속하는 감각이 느슨해지면서 철창 두 개가 나타났다.


새장처럼 생긴 철창에는 각각 하나 씩 한 명의 사람이 갇혀 있었다.


하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로운을 데려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장에서 나온 것으로 어떤 여자가 철창을 붙잡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왕자님! 여러분!”


그 목소리에 아래에 있던 우리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했다.


처음 보는 얼굴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가 기울어졌다.


하지만 나는 저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잊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모래 거인의 안에서 봤던 누군가의 기억.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던 여자였다.


아마도 이번 층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생각되는 여자가 철창 너머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자신의 쓴 이야기에 직접 공주로 등장하는 작가라...


“저 사람은 누구에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도 탑에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


나래 씨가 물었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묻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탑에 들어오는 순간에 우리 말고 다른 이들은 없었으니까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저 사람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람 같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에 깃든 두려움이 진심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저 분을 구하면 되는 거죠?”


미혜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몸의 자유를 찾은 미혜와 제천이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나무 판넬을 들고 있는 서우가 뒤뚱거리며 뛰어왔다.


“으악. 이거 안 부서져요!”

“그렇겠지.”


투덜거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뛰어오는 모습이 제법 귀엽다.


“이건 하나의 역할극입니다.”

“그런 거 같아요... 하지만 어째서 이런...”


의문에 찬 신음소리가 들렸지만 이에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이 일어났던가요.”


그런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런 것들뿐이다.


“그저 주어진 것을 해결해 나가는 거죠. 늘 그랬던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에 어디서 들어도 몇 번은 들었을 것 같은 말들밖에 할 수 없었지만 다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이 역할극을 무사히 수행해야 해. 판넬이 부서진다면 그건 무대 사고니까. 당연히 안 쪼개지지.”

“으으...”


서우는 분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혜가 자신의 뒤로 보이는 파수꾼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파수꾼은 우리가 몰려있는 것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또한 역할극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다음 장면은 우리와 파수꾼의 전투 장면일 텐데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장면은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일단 공격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는 주 전력이 빠진 상태다.

로운도, 석 씨도, 헤나투도 자신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제한된 전력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배치가 필요했다.


“선생님도 대표님도 안 계시니까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논리적으로 당연한 판단이었지만 쉽게 그러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중에서 강인한 육체로 앞장서서 길을 뚫어갈 수 있는 사람.

어떻게 생각해봐도 미혜 밖에 없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마요. 내가 그 동안 다른 사람들 보호를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보호할 때일 뿐이에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미혜.


“아저씨가 우리를 아끼는 건 이해 하지만. 솔직히 말해도 나도 쌍둥이도 이제 성인이에요. 심지어 아저씨나 선생님들과도 별 차이 안 난다고요.”


그간 하지 못했던 말들이 많다는 듯 그 무게에 눌린 아랫입술이 점점 밖으로 튀어나왔다.


“우리는 애가 아니란 말이에요.”


“맞아. 형은 애들을 너무 애로 봐.”

“그쪽이 가장 애처럼 보일 걸요.”

“나무 째로 불타고 싶냐.”


한 마디 했다고 열 마디를 티격 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찌 애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르게 말하면 아저씨도 아직 애라는 거죠. 아저씨 말에 따르면 말이죠.”


그저 나이로 어른과 아이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 위험할 것 같으면 적당히 빠져.”

“알고 있습니다요.”


원하는 대답을 얻었다는 듯 밝게 웃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어린 아이의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걱정하는 것도 나 혼자 뿐인 것 같지만.


옆을 보니 똑같이 귀엽다는 듯이 웃는 나래 씨가 보였지만.

그 얼굴에 걱정은 있을지언정 불안감은 없었다.


“일단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부터 생각해볼까. 거기 둘도 그만 싸우고.”


말이 끝나자 두 사람의 몸이 가볍게 허공으로 떠오르며 멀어졌다.


서우는 미혜의 옆에, 제천은 내 옆에 사뿐히 내려왔다.


“상대는 석상이야.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공격은 통하지 않을 거야.”

“확실히... 제 능력도 저 사람 능력도 큰 의미가 없겠네요.”


돌은 불 앞에서도, 바람 앞에서도 강하다.


“돌은 쪼갤 수 있잖아요.”


미혜가 당연한 걸로 고민한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그렇지. 근데 저만한 크기를 쪼갤 수 있는 압도적인 무력이 우리 중에는 너밖에 해당이 안 된다는 거지.”

“제가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럼 막아줄 사람이 없구나.”


방금 미혜의 말로 뭔가 떠오를 것 같았는데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형 음료 중에서 도움이 될 만한 거 없어? 뭐 괴력의 머시기 있었잖아.”

“그걸 마셔도 기본적인 스탯이 충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저렇게 큰 녀석이라고.”


내 말에 고개를 돌린 제천이 노골적으로 파수꾼을 노려봤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훑는 시선이 끝날 줄 모르고 올라갔다.


“이번 층은 완전 스케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것 같아. 귀찮게 시리.”


서우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62층은 몬스터의 수가 많거나, 크기가 큰 몬스터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그걸 돌파할 수 있는 부분은 확실하게 있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약점이 있을 거예요.”

“흠...”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는 듯 했지만 별다르게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탑은 인간에 의해 클리어 되어야 한다.

신이라는 존재들이 그렇게 말한 이상 가능할 것이다.

혹은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몬스터들에게 유리한 부분이 있다면 분명히 불리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제 3자의 개입.

저 공주라고 불리는 사람은 62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탑에서 태어난 존재는 아니다.

또 그 녀석들이 무언가를 한 모양이었으니 밸런스 또한 기존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겠지.


“근데 저거 아무리 봐도 그거 닮지 않았어요?”


석상을 올려다보던 제천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그 있잖아요. 사막에 있는 거. 막 난센스 퀴즈내고 하던 애.”

“스핑크스겠지 멍청아.”

“아씨. 사람이 상황이 상황이다 보면 기억이 안 날수도 있지 멍청이라고 해야겠냐.”


이번에는 상대를 바꿔 미혜와 투덕거리는 제천.

그런데 제천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스핑크스와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양쪽으로 수호천사를 두고 있다는 것과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사자 얼굴을 한 스핑크스가 어딨담.”

“뭐...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


앞서 말한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확실히 비슷했다.

스핑크스를 대신해서 피라미드 앞에 둬도 잠깐이라면 속을 수 있을 것 같다.


“스핑크스는 문제를 내서 풀기라도 하면 되지만. 저 파수꾼이라는 몬스터는 그냥 싸움을 바라는 거 아니에요?”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니까요. 하지만 뭔가 관련은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까지 닮을 수는 없다.


“결정적인 단서는 없지만요.”

“그냥 평소대로 해요.”

“평소대로?”

“네. 우리 원래 맨땅에 헤딩하고는 했잖아요.”


서우의 말에 나와 나래 씨의 눈이 마주쳤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굳이 지금 하지는 않기로 했다.


투닥거리며 소리를 높이는 것은 저 둘이면 충분했다.


“미혜야. 제천아.”

“응?”

“네?”

“우리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로운은 생사의 기로에 있다는 거잖아.”

“그...렇죠?”


그제야 지금 상황에 심각성을 다시금 떠올렸다는 듯이 두 사람의 싸우는 소리가 완전히 멈췄다.


“일단 생물체보다는 석상에 가깝기에 주된 공격을 미혜가 한다.”

“네? 하지만...”

“너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미혜의 시선이 나와 나래 씨를 지나 서우와 제천으로 옮겨졌다.


“그렇긴 한데...”

“일단 서우와 제천이 저 녀석의 관심을 끌 동안 미혜는 곳곳에 균열을 내며 패턴을 파악해.”

“넵.”


“그리고 나와 나래 씨는 문제를 찾아볼게.”

“문제요?”

“그래. 제천이 한 말도 일리가 있어. 일부러 저런 외형으로 만들었다면 거기에 힌트가 있다는 거 아닐까. 무리하지 말고 기회를 보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어.”


미혜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너희 둘도 조심하라고 한 소리야.”

“알겠다고~”

“물론이죠.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뭐? 네가 뭔데 우리를 돌봐.”


어쩌면 서우에게는 다른 사람의 화를 돋우는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유난히 그의 재능에 반응하는 것이 제천과 미혜거나.


“크기가 크니까... 평범한 방법으로 문제를 찾을 수 없으니까 말이죠.”

“알겠습니다.”


나래 씨도 이해한다는 듯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녀의 여유로운 미소가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 없는 나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의 목숨이 걸린 이상 지금 가장 마음이 급한 사람 중 하나가 나래 씨 일 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7 빛으로 향하는 길 (4) 24.07.15 4 0 12쪽
216 빛으로 향하는 길(3) 24.07.12 10 0 10쪽
215 빛으로 향하는 길(2) 24.07.10 7 0 12쪽
214 빛으로 향하는 길(1) 24.07.01 8 0 11쪽
213 서로 다른 존재(5) 24.06.28 9 0 11쪽
212 서로 다른 존재 (4) 24.06.24 10 0 12쪽
211 서로 다른 존재(3) 24.06.21 8 0 13쪽
210 서로 다른 존재(2) 24.06.19 10 0 14쪽
209 서로 다른 존재(1) 24.06.17 10 0 12쪽
208 흩어지는 미로(5) 24.06.14 9 0 13쪽
207 흩어지는 미로(4) 24.06.12 10 0 12쪽
206 흩어지는 미로(3) 24.06.10 13 0 13쪽
205 흩어지는 미로(2) 24.06.07 10 0 13쪽
204 흩어지는 미로(1) 24.06.05 8 0 14쪽
203 싸우면서 크는 거지(5) 24.06.03 10 0 13쪽
202 싸우면서 크는 거지(4) 24.05.31 9 0 12쪽
201 싸우면서 크는 거지(3) 24.05.29 8 0 12쪽
200 싸우면서 크는 거지(2) 24.05.27 10 0 13쪽
199 싸우면서 크는 거지(1) 24.05.24 11 0 14쪽
198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5) 24.05.22 8 0 13쪽
197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 (4) 24.05.20 13 0 11쪽
196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3) 24.05.17 12 0 14쪽
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1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12 0 10쪽
193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5) 24.05.08 13 0 11쪽
192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4) 24.05.06 11 0 10쪽
191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3) 24.05.03 13 0 11쪽
190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2) 24.05.01 12 0 12쪽
189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1) 24.04.29 16 0 13쪽
188 죽음을 피하는 방법(4) 24.04.26 13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