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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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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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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6,715

작성
24.04.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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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무대 밖에서(5)

DUMMY

+++


“그렇게 된 거다.”

“어... 그렇군요.”


많은 부분이 생략된 것 같기는 하지만 석 씨를 만난 이후로 가장 길게 해본 대화였다.


모래로 된 구가 무너지면서 안에 있었던 나를 데리고 나온 석 씨와 미혜만 모래 밖에 있었던 거고...


밑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모래에 깔렸다는 거지.


“어? 선배! 무사했구나!!”


멍하니 서있던 서우가 주변을 살피듯 고개를 돌리다가 이내 우리를 발견하고는 칼을 높게 휘두르며 뛰어왔다.


“너... 팔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던 것이 가까워지자 짙은 냄새까지 더해졌다.


“아... 어. 괜찮아요. 어차피 치료해 주겠죠.”

“치료가 문제가 아니잖아.”


옷소매를 모두 적실만큼의 피였다.

상처를 살피기 위해 칼을 뺏어들자 고통스러운 듯 미간 사이가 일그러졌다.


“아무리 치료를 해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칼을 놓은 손은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그 사이로 길게 찢어진 상처가 보였다.

손바닥에서도 이렇게 피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단 어... 손바닥 이렇게 하고. 가만히 있어.”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핀 상태로 세워두고는 승우를 불렀다.

승우는 모래 더미 사이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인지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제야 곳곳에서 피에 젖은 무기들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치료를 끝낸 서우는 신기하다는 듯이 자신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했다.


“참 신기해요. 이렇게 단 시간 내에 상처가 사라진다는 게.”

“태평한 소리하네.”


가장 심한 상처는 서우였던 듯, 그를 끝으로 위험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두 번째 구간이 무사히 클리어 되었다는 것을 알리듯 무대 위와 관중석에 있는 모래들이 빛이 되어 사라졌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출발할까요.”

“이미 다들 쉬고 있어요.”


나래 씨의 말에 뒤를 돌아보니 제천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몇 명은 누워서, 몇 명은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수고하셨어요.”

“그런 표정으로 그런 말해도 와 닿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나래 씨의 작게 웃는 소리가 경쾌하게 흩어졌다.


“안에서 무슨 일 있던 거죠?”

“뭐... 많이 티 나나요?”

“아뇨. 뭐 그런 건 아닌데. 뭔가 나오자마자 울었다는 것도 그렇고. 죽을 뻔 상황에서 울만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보고 계셨군요.”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녀였지만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안에서 꿈같은 걸 꾼 거 같아요.”

“또 꿈인가요. 고층으로 올수록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무언가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진 것 같아요.”


확실히 저층은 물리적인 힘에 의존해서 클리어할 수 있었다.


“꿈... 아니면 누군가의 기억이 아니었을까 해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소원이 60층의 보스로 나왔던 것처럼. 이곳도 인간이... 보스인 층일 수 있다는 거죠.”

“그건 좀 씁쓸한 이야기네요.”


우리가 만나지 못했을 뿐이지 훨씬 많은 인간들이 몬스터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한 층의 보스가 되어 반드시 죽음을 당해야 하는 존재가 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탑의 몬스터들은 죽으면 탑으로 되돌아가 다시 몬스터가 된다.


그렇다면 몬스터가 된 인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지혁 씨? 지혁 씨!”


잠깐 생각에 잠겼던 것 같은데 생각이 아닌 잠에 들기라도 한 건지 나래 씨가 나를 흔들며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저 잤나요?”

“잔 건 아닌데. 완전 혼이 빠진 사람처럼 가만히 계셔서요. 지혁 씨야 말로 휴식이 필요한 것 같네요. 요람이라도 만들어 드릴까요?”

“요람이요?”

“네.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한 명 정도는 약한 강도로 다룰 수 있다고.”


그러니까 염동력으로 흔들흔들하게 해주겠다는 건가.


“아뇨. 감사드리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내 몸은 아니었다지만 아기였던 기억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러고 있다면 많이 수치스러울 것 같다.


“아쉽네요. 나름 고민 끝에 만든 건데.”

“그런 건 왜...”

“전투 중에도 휴식을 위한 잠은 자야 하니까.”

“그렇...군요.”


애써 시선을 돌렸다.


“하여튼... 이번 층은 자연스럽게 생긴 층이 아닌 것 같네요.”


에스프레소의 말에 의하면 이 탑은 꽤나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아이템은 오래된 것은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것도 있다.


그런데 모래 속에서 보았던 기억은 어디로 보나 현대의 풍경이었다.


이변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탑에, 것도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던 층에.

현대를 배경으로 한 어디로 봐도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는 여자의 기억이 있는 몬스터가 있다?


“기억이... 아닌 건가.”

“네?”

“아... 그게 말이죠.”


나는 좀 전에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자세하게 나래 씨에게 설명했다.


“흠... 확실히... 좀 이상하기는 하네요. 하지만 저는 기억이 맞다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일단 다른 수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첫 번째고요. 다음은 이 탑을 만든 사람이 굳이 그런 일까지 했을 것 같지 않은 게 두 번째에요.”


확실히 에스프레소라든가 스모어가 인간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내가 만났던 여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에게서는 인간의 우울감... 혹은 무력감 같은 게 느껴졌으니까.

그런 부분까지 구현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블랙이 탑에 관여하기 시작했잖아요. 그 사람들 짓이 아닐까요?”

“그렇게 보시는 군요. 혹시 이유라도...?”

“음...”


나래 씨는 손가락 끝으로 자신의 턱을 몇 번 튕기더니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여자의 감. 같은 거죠.”

“여자의...감... 제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분야겠네요.”


내 반응에 경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농담이고요. 제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지혁 씨 말에 의하면 여기는 순정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순정이요?”

“그. 개조가 되지 않은 원래 상태의 모습... 이라고 할까요. 게임이나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쓰는 말 같던데.”


의아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다른 말로. 누군가 손을 댔다는 거니까요.”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일단은 지혁 씨도 조금 쉬고 출발하는 게 좋겠어요. 우리 단시간 내에 너무 지친 것 같거든요.”

“네.”


나래 씨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가볍게 훑으며 말했다.

잠깐 대화하는 사이 앉아 있던 이들도 그대로 잠이 든 듯 고요했다.


“다들 피곤했나 봐요.”



나와 나래 씨도 각자 자리를 잡고는 눈을 감았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피로가 누적됐는지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잠이 들었다.



+++


간만에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아저씨. 일어나요. 이제 가야죠.”


재촉하는 목소리와 제법 위협적인 손길에 눈을 뜨니 나를 뺀 모두가 일어나있었다.


“좀 더 잘래요?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업고 갈까 싶기는 했거든요.”

“아니야. 일어나야지.”


잠에서 깨어났는데 눈앞에 몬스터가 있다면 그다지 상쾌한 기분은 아닐 것 같다.


이전의 모래 범벅이었던 무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보다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느낌이 더 강할 정도로 깨끗했다.


“조금 허무한 것도 같고...”


그렇게 고생 끝에 잡았는데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앞으로 나아갈 권리가 남았으려나.


“뭐가요?”

“...”


언제나처럼 소리 없이 다가온 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뭐가 아니에요?”

“...”


질문에 답을 하면 또 다른 질문이 돌아오고 만다.

그냥 답을 안 하는 게 좋겠다.


“그나저나 이번 층은 제법 재밌네요.”

“재밌어?”


누구는 죽을 뻔 했다가 돌아왔는데.

물론 그게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마는.


“뭔가 연극하는 느낌이잖아요. 춤도 추고, 무대도 있고.”


즐겁다고 웃는 모습이 비웃음 같기도 하고 진심 같기도 한 탓에 그가 하는 말이 어디까지 진심인지 알 수 없다.


“게임 같아요. 질리지 않는 게임. 목숨을 걸어서 그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서우는 앞장 서 걷고 있는 미혜의 곁으로 다가가 시비를 걸었다.


투닥거리는 소리가 통로를 가득 채웠다.


투닥거림이 오래 되지 않아 통로가 끝나고 세 번째 구간이 나타났다.


앞의 구간들과는 다르게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터가 나타났다.


“일단 들어가지 말고 상황을 살펴봐요.”


이제는 오히려 아무것도 없으면 걱정이 든다.

저기서 또 어떤 이상한 것들이 쏟아져 나올까.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을 로운이 막았다.


“어?”


하지만 로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타난 안내창에 그를 향하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각자 앞에 나타난 안내창을 향했다.


[당신의 역할을 ‘약사의 조수’입니다.]


내 ‘역할’이 약사의 조수?


“이게 뭐에요? 호위기사?”

“호위기사면 양반이네. 나는 마부야.”


미혜와 제천이 서로를 향해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나와 비슷한 내용의 안내창을 본 것 같다.


다만 각자 다른 역할을 부여받은 것 같은데...


“로운 씨는 뭐에요?”

“어... 저는.”


내 질문에 로운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 옅게 붉어진 뺨을 봐서는 곤란하다기보다는 부끄러워하는 건가.


“뭐가 나왔기에 그래요.”


타인의 안내창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대답을 미루는 그의 모습에 더욱 궁금해졌다.


“그... 저는. 왕자네요.”

“네?”


왕자라. 확실히 로운과 잘 어울릴지도?


“로운 씨가 정한 역할도 아닌데 왜 그렇게 쑥스러워해요?”

“그냥... 이런 건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네요.”


몇 번을 겪어다라.

어릴 때 학예회에서 왕자 역할 좀 맡아 봤나?


“석 씨는요?”

“...”


로운과 반대로 석 씨의 표정엔 온기가 없었다.

무표정하게 안내창을 바라보는 모습이 제법 무섭기까지 하다.


“우와. 선생님 표정 지금 완전 무서워요. 쌍둥이들은 조각상이라던데. 따로 컨셉 안 잡아도 되겠다. 선생님 표정 보고 굳어버렸거든요.”


서우가 석 씨의 표정을 보더니 과장된 동작을 취하며 연극톤으로 말했다.


“넌 뭔데.”

“저는 나무요.”

“그렇구나... 제발 가만히 있어.”

“제가 뭐 매번 사고만 치는 줄 알아요?”

“그간 그랬던 것 같아서.”


나는 보란 듯이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서우를 무시하며 석 씨를 바라봤다.


“그래서 뭐가 나오셨기에 그래요.”

“... 해설자.”

“그...렇구나.”


석 씨의 나레이션이라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어찌 보면 이곳에서 가장 나레이션 역할에 잘 맞는 사람도 석 씨가 아닐까 싶다.


“헤나투는?”


뭔가 어린 시절 제비뽑기로 역할 정하던 때의 기분이 들어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헤나투에게도 물었다.


“태양.”

“아.”


나는 납득의 의미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면서 역할을 모르는 다른 사람이 있을까 둘러봤다.


“나래 씨는요?”

“저는 약사네요.”

“이햐. 제 상사시네요.”

“하하. 잘 부탁드려요.”


반쯤 장난 같은 대화가 오가며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그런데...”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가던 중에 서우의 목소리가 흐름을 끊었다.


“우리 공주는 없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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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1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1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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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3) 24.05.03 13 0 11쪽
190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2) 24.05.01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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