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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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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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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6,715

작성
24.04.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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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무대 밖에서(3)

DUMMY

눈으로 들어오는 모래를 피해 눈을 감았다.

유난히 새까만 눈꺼풀의 안쪽이 보였다.


휘몰아치는 모래는 겹겹이 쌓여 형체를 유지했고.

그 안에 빛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다.

빛뿐만이 아니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귀에 부딪쳐 흩어지던 바람 소리도.

까슬거리던 모래의 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 두 눈이 떠지지 않게 누르고 있는 이 가벼운 압박감은 뭐지?


...


살짝 달싹인 입술 사이로 텁텁한 모래가 흘러들어왔다.

모래를 한 겹 벗겨내면 동료들이 있을 테지만 지금 이곳은 완전히 고립된 고요다.


서우는 거인의 핵을 잘 처리했을까.

거인이 팔을 든 이후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지?

제법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면 실패한 게 아닐까.


아니야...

감각이 차단된 상태라서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걱정과 불안감을 떠안은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내가 시선을 빼앗는 순간 서우가 이 녀석의 핵을 친다.

그게 원래의 계획이었지만 계획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내부에서도 뭔가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내가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의 모래에 파묻힌 거라면 이미 압사 당했을 테니까.


팔에 힘을 주고 움직이니 눈보다는 무거운 압박감이 옷 위에서 느껴졌다.

이건 모래 인가... 아니면...


‘...’


사람 목소리...?

밖에서 나는 소린가.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가 서서히 볼륨을 키웠다.


‘옛날 옛날에...’


간신히 전해지는 소리는 어떤 여성의 것이었다.

나긋나긋하면서 다정함이 묻어있는 목소리.


‘누구하나 굶지 않는 풍족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주듯 천천히 이어졌다.

듣는 사람의 반응을 살피듯 혹은 애를 태우듯 다음말까지 이어지는 텀이 길었다.


‘... 샐리우드의 펜더스 왕은 청렴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왕이었어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처럼 저항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게 돌아갔다.


고개뿐만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팔도 다리도 쉽게 나아갔다.

눈은 여전히 감긴 채 떠지지 않았지만.


‘... 풍요로운 나라, 마음 고운 백성들, 나라를 위해 애쓰는 바른 신하들까지 걱정거리 하나 없을 것 같은 펜더스 왕에게도 고민거리는 있었답니다...’


먹을 걱정도, 배신당할 걱정도 없는 펜더스 왕에게 고민거리라...


목소리를 향해 다가갈수록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 목소리라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분명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그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목소리였다.


한 발, 두 발 움직이던 발에 속도가 붙었다.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향하는 길이 들렸다.


‘... 하나 뿐인 아들 헬리. 아주 오래된 저주가 헬리 왕자에게 손을 뻗었을 때. 펜더스 왕은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 헬리. 어째서 네게 이런 일이 생겨야만 하는 거니.


잔잔한 여자의 목소리 사이로 연극톤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제 막 중년에 들어서는 것 같은 남자의 단단한 목소리였다.

듣기만 했을 뿐인데도 얼굴과 모습이 그려졌다.


그가 펜더스 왕이구나.


‘펜더스 왕은 샐리우드 왕가에 전해 내려오는 저주에 대해 수소문했어요. 모든 왕족은 저주를 받았지만 그게 발현되는 것은 한 세대에 한 명뿐. 앞서 몇 번인가 저주를 풀기 위한 선대 왕들의 노력이 있었으나 성공한 사례는 없었답니다.’


조금씩 다가갈수록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눈을 압박하는 느낌도 덜해져갔다.


‘... 어머... 잠이 오지 않는 거니?’


목소리가 코앞에서 들린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

여자의 목소리는 이야기를 멈추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이라면 눈을 떠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뜨자 오랜만에 빛을 받아들인 눈이 간지러웠다.


뿌연 시야가 맑아지면서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비녀로 곱게 말아 올린 여자.


그녀는 목소리만큼이나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려다... 보고 있다...?


“으...으엥...”


뭐라도 묻고 싶은 마음에 입을 열었지만 나오는 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였다.

마치 아기의 그것과 같은 소리.


“우리 아가.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니?”


어딘가 상처받은 것 같으면서도 사랑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다들... 엄마가 쓴 이야기를 좋아해주지 않아...”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목소리는 점차 혼자만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미안해... 이런 엄마라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버려서.”


낮게 내리깐 속눈썹에 물방울이 맺혔다.

울고 있는 여자를 달래기 위해 손을 뻗자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아기의 손이 보였다.


“어머. 나도 모르게 그만... 그래도 우리 아가는 엄마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주니까 늘 고마워. 사랑해.”


여자의 입술이 이마에 닿으며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이 아이는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가 무섭게 여자의 뒤쪽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형체를 잃어가는 벽이 모래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벽뿐만이 아니다.


햇살이 들어오는 별다른 장식 없는 창문도,

천장에 매달려있는 모빌도,

심지어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머리카락마저도...


모래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그래... 여기는 모래 거인의 안이다.

이런 공간이 있을 리도 없고, 이 여자가 살고 있을 리도 없다.


아주 잠시지만 누군가 받았을 사랑에 어딘가 데인 것 같은 감각에 잠시 잊고 있었다.


조금씩 흘러내리던 모래가 이제는 쏟아지듯이 무너지며 바닥에 쌓였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고 앞으로도 볼 일 없는 사람이겠지만 ...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다.


“으앵...”


손을 뻗어 허공을 헤집듯 흔들자 여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머리카락에 이어 피부도 모래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눈가에 맺힌 눈물만큼은 그대로였다.


손을 흔들자 여자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닿을 것 같은데.


눈물을 채 다 담을 수도 없을 것 같이 작은 손이 눈가에 닿았을 때.


오랫동안 산소를 공급받지 못했던 폐에 숨이 들어오듯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감각에 눈을 떴다.


“아저씨...? 울어요?”

“어...?”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온몸을 두르고 있던 온기는 사라졌다.


물론 상황은 비슷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안겨있었다.


그게 좀 전에 보았던 여자의 모습이 아닌 그을린 피부가 건강해 보이는 근육질의 남자였다는 것뿐이지.


“아... 어... 제가 왜 이러고 있죠?”

“...”


석 씨는 나를 바닥에 내려주더니 무대의 가운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시선의 끝엔 언덕에 가까운 모래 더미 위에 칼을 늘어트리며 들고 있는 서우가 있었다.


“난 진짜 미친놈인줄 알았다니까.”


미혜가 자신의 오른쪽 관자놀이 옆에 손가락으로 가볍게 원을 돌리며 말했다.


“너도 무모했다.”

“... 알고 있습니다.”


모래 거인이 나에게 그렇게까지 집착하지 않았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상황에서도 그런 판단은 옳지 못했다.


그럼에도 서우의 의견에 따랐던 건...

조금 지쳐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쟤는 왜 저러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래 더미의 가장자리에서 머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첫 번째 머리를 선두로 다른 머리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후아... 나 이 층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나래 씨가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섞여든 모래를 털어내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흔들어 털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아저씨가 제일 무사하지 못할 뻔 했지.”

“...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흐음...”


미혜의 굳게 다문 입이 금방이라도 질문을 퍼부을 것 같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상대를 살피며, 그 안에 든 것을 알아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집요한 눈빛이 따라왔다.


“좀. 고서우 화 된 것 같아요. 아저씨.”


내뱉듯 말을 꺼낸 미혜는 하반신이 파묻혀 나오지 못하는 승우를 끌어당기고 있는 승주에게 달려갔다.


고서우 화라니. 말이 심하네.


“둘이... 무슨 일이 있었나?”

“둘이요?”

“서우와 너.”


여전히 짧은 말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함께한 시간이 있어서 인지 석 씨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 친해졌죠.”

“그런가...”

“...”

“...”


“무슨 일... 있었나요?”


되돌아오는 질문이 없어 미혜에게 듣지 못했던 답을 듣기 위해 물었다.


“조금 위험할 뻔 했다.”


+++


집요할 정도로 지혁만 따라다니는 군.


“하. 우리한테는 관심이 하나도 없네.”

“...”


짜증나는지 제천이 땅을 거세게 찼다.


“지혁이 사람들을 컨트롤하기 때문이다.”


간간히 들려오는 대화를 들어봤을 때 가능성은 그것뿐이었다.

어떠한 무리든 우두머리를 잃으면 휘청이기 마련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


모래 구덩이에서 벗어난 지혁과 서우가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들리지 않는다.


“어? 어?! 형! 저 형 미친 거 아냐?”

“나도 보고 있다.”


잠깐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 싶더니 지혁의 몸이 그대로 몬스터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지혁을 잡으려는 듯 몬스터의 팔이 올라가며 그 안에서 빛나고 있는 구가 보였다.


“저걸 부숴야한다.”


누군가에게 명령하듯 말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구를 향해 뛰어오르며 주먹을 쥐었다.


뒤늦게 제천도 따라오고, 다른 곳에서 헤나투와 로운도 구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구 근처까지 도착한 것은.

입은 굳게 다문 채 노려보듯 구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는 서우였다.


창-


서우의 칼이 힘없이 튕겨나갔고, 뒤이어 닿았던 사람들도 모두 튕겨나가고 말았다.


“뭔데!!”


서우의 외침에서 초조함이 조금 묻어났다.

평소답지 않다.


“진짜 저거 뭔데.”


뒤를 이어 제천이 말했다.

물론 그에 대해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몬스터가 이제는 사람의 형체가 아닌 거대한 구가 되었다.

모래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면 지금 부피가 줄어든 몬스터의 밀도는 사람의 형체였을 때보다 높을 터.


팔을 뻗거나 공격을 할 때만 빛나는 구가 보였다는 건 모래가 구를 감싸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저 구를 중심축으로 모래가 이동하고 변화한다.


“지금은 공격해도 소용이 없겠군.”

“하지만 지혁 형이...”

“...”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확실하게 목표로 한 존재를 가두어 죽인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탑을 클리어하는 데 있어서는 누군가 찾아준 답을 따라 움직였기에 깊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아니 형은 답지 않게 무모한 짓을 하고...”


조바심이 나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이 발을 구르는 제천을 보니 지혁이 무슨 생각을 가졌을지 이해가 가는 군.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깡-


또다시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우만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야아아아!”


별다른 말도 없이 떨어지는 기합소리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서우를 향했다.


베면 튕겨나고,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다시 모여드는 모래에 티도 나지 않았지만.

서우는 빠른 속도로 칼을 휘둘렀다.


방금 전의 초조함을 특유의 가면 아래에 숨기고

몬스터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칼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모여드는 모래에 티가 나지 않았지만 한 곳만을 집요하게 노리며 파고들었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면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겠지.


“형...? 같이 가!”


뭉쳐있는 모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맨 바닥을 향해 주먹을 휘두를 때처럼 단단한 무언가에 막혀 힘이 전해지지 않았다.


물방울이 반복되면 바위도 깨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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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서로 다른 존재 (4) 24.06.24 10 0 12쪽
211 서로 다른 존재(3) 24.06.21 8 0 13쪽
210 서로 다른 존재(2) 24.06.19 10 0 14쪽
209 서로 다른 존재(1) 24.06.17 10 0 12쪽
208 흩어지는 미로(5) 24.06.14 9 0 13쪽
207 흩어지는 미로(4) 24.06.12 10 0 12쪽
206 흩어지는 미로(3) 24.06.10 13 0 13쪽
205 흩어지는 미로(2) 24.06.07 10 0 13쪽
204 흩어지는 미로(1) 24.06.05 8 0 14쪽
203 싸우면서 크는 거지(5) 24.06.03 10 0 13쪽
202 싸우면서 크는 거지(4) 24.05.31 9 0 12쪽
201 싸우면서 크는 거지(3) 24.05.29 8 0 12쪽
200 싸우면서 크는 거지(2) 24.05.27 10 0 13쪽
199 싸우면서 크는 거지(1) 24.05.24 11 0 14쪽
198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5) 24.05.22 8 0 13쪽
197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 (4) 24.05.20 13 0 11쪽
196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3) 24.05.17 13 0 14쪽
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2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13 0 10쪽
193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5) 24.05.08 13 0 11쪽
192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4) 24.05.06 12 0 10쪽
191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3) 24.05.03 13 0 11쪽
190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2) 24.05.01 13 0 12쪽
189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1) 24.04.29 17 0 13쪽
188 죽음을 피하는 방법(4) 24.04.26 1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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