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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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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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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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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6,715

작성
24.03.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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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증명(5)

DUMMY

모래 거인은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에도, 나이스를 외치는 제천의 목소리에도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래 씨의 능력에 의지하며 허공을 날아다니는 우리만을 따라왔다.


“왜 저러는 걸까요. 진짜. 슬슬 내려가고 싶은데.”


나래 씨가 얼마동안이나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는 한 방울의 땀방울이 힘겨워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힘내야 해요.”

“네에...”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지만 나래 씨의 시선도 모래 거인 못지않게 한 곳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가 움직이면 자신도 그에 맞춰 움직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만약 지금 우리가 바닥으로 내려가 시선을 끈다면 걸리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하나는 저 모래 바닥을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래 거인의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제천이 자신이 본 정보를 공유하거나 베기 전까지는 버텨야 했다.


+++


한편, 승주는 지금 상황에 조바심이 났다.

무대 위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인의 존재도 위협적이었지만.

집요하게 지혁과 나래만을 쫓고 있는 모습에서 광기마저 느껴졌다.


“괜찮아?”


옆에서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동생의 말에 양팔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조바심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명령도 떨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로운을 올려다봤지만 그는 그저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 그가 그런 행동을 취했을 때는 조금 무서웠다고...

승주는 기억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그가 생각할 때의 버릇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지금도 그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기다렸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갈 동안 그는 미동도 없었다.


모래 거인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움직이는 나래의 비행이 점차 섬세함을 잃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저러다가 벽에 부딪치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지혁이 제천에게 무언가를 던지는 모습도 봤다.

제천이 당황한 얼굴로 무대를 한 바퀴 뛰고, 두 바퀴 뛰는 모습이 보였다.


석과 미혜는 모래 거인의 관심을 끌기위해 다가갔다가 모래에 빨려 들어갈 위기만 여러 차례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승주는 자신의 양팔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누나...? 정말 괜찮아?”


자신과 쏙 닮은 남자 아이... 아니 이제는 성인이 된 동생이 여전히 풀어지지 않는 미간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우리가 뭔가 할 수 없을까.”


승주의 시선이 자신의 주변을 훑었다.

로운은 여전히 생각에 잠긴 듯 했고, 지혁이 데려온 헤나투라는 이름을 가진 몬스터는 말없이 서있었다.


그게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저 멍하니 있는 건지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었다.

투명하게 비치며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을 흐릿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승주의 시선이 서우를 향했다.

지혁을 따라다니는 시선에서 자신과 같은 초조함이 느껴졌다.


“대표님!”

“...”


자신의 부름에 로운의 시선이 허공에서 천천히 자신을 향했다.


온전히 생각에 집중하고 있던 탓인지 얼굴에는 평소의 다정함은 없었다.

무슨 할 이야기가 있냐는 표정만 알 수 있었다.


“뭔가...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나래가 뛰어간 이후로 같은 모습으로 있는 그였다.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척 나래처럼 뛰어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간 뒤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닥을... 바닥을 얼려보는 건 어떨까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로운의 표정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되었다.

당차게 부른 것 치고는 기운 빠지는 의견이었다.


“얼려...볼 생각도 했지.”


갈라지는 목소리로 어렵사리 내뱉어지는 말에 확신은 없었다.


“모래를 그냥은 얼릴 수 없어... 저 정도로 바싹 마른 모래는 특히.”

“대표님의 얼음을 제천 님에게 녹여달라고 하는 건요.”

“...”


로운의 고개가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제천의 불은 위험해. 저 모래들을 모두 얼리려면 엄청나게 많은 물이 필요해. 그걸 얻으려다가 모든 게 타버릴 수 있어.”

“...”


나무로 된 무대에 불이 붙는다면 다른 일행들도 위험할 수 있다.

제천이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았다.


그러나 노력과는 별개로 섬세하게 능력을 사용하는 재주가 그에겐 없었다.


그의 노력만을 믿으며 다른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는 선택을 차마 로운은 할 수 없었다.


“아... 물. 물이면.”


반짝이며 승주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모습이 있었다.

첫 번째 구간을 끝내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동안 누군가는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 연못.


다시 구할 순 없는 걸까.


승주의 시선이 헤나투를 향했다.

승주를 따라 로운의 시선도 그를 향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헤나투의 고개가 둘을 향해 움직였다.

인간에게서는 느껴지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그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 피부가 아닌 유리라는 사실에서 오는 위화감일 것이다.


승주는 아직 그가 편하지만은 않다.


“그... 물... 호수를 빌려주실 수 있나요?”

“...”


무엇보다 생각을 짐작할 수 없는 그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게 됐다.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알았소.”


대답과 함께 그의 앞으로 빛이 나오더니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완성된 마법진에 손을 넣어 꺼낸 것은 빛으로 된 구였다.

환하게 빛나고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청아하게 만들 것 같이 맑은 빛이었다.


구를 바닥으로 던지자 빛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연못이 나타났다.


“이걸로 되오?”


연못은 생각했던 크기보다 작았다.

이정도의 양으로 물로 저 무대를 모두 얼릴 수 있을까?


“뭔가 계획이 있는 거죠? 저도 알려주세요.”


초조하게 지혁을 쫓고 있던 다른 하나의 시선도 승주와 로운을 향했다.


“이 물로 저 모래들을 얼려볼까 해요.”

“부족하지 않겠어요? 이거 다 써도 돼요?”


서우가 연못의 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헤나투는 말없이 어깨를 한 번 올렸다가 내렸다.


“지혁을 구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어설픈 발음이었지만 그 뜻은 명확했다.

이 둘은 지혁이 데려온 자들이었다.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엮여 자신들에게 온 자들이었다.


어찌 보면 승주와 승우도 지혁 덕분에 이곳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얇게 뿌리면 되지 않을까?”

“조금씩이라도 젖어 있으면 충분할 것 같아요.”


연못 옆에 쭈그려 앉은 서우가 물을 손 위에 담았다.


“얼마나요? 1cm 정도?”

“할 수 있다면 더 두꺼워도 되고요.”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지는 대화였지만 승주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연못을 어떻게 1cm 두께로 무대를 덮을 수 있을까?

그걸 왜 서우라는 사람이 로운에게 묻는 걸까.


자신과 같은 생각인지 승우가 승주의 소매를 잡았다.

그가 편안하지 않은 상황이거나 이해가 되지 않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이 연못 통로 앞까지 옮겨주세요. 반만 넣어도 되고요. 선배가 나오지 말랬으니까.”


서우의 말에 헤나투가 손을 들자 연못이 빛의 형체가 되더니 그가 말한 위치로 나아갔다.


“다들 바람에 휩쓸리지 않게 조심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 기쁜 것인지 서우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믿...어도 돼요?”

“...”


로운이 조용히 어깨를 으쓱였다.

로운도 아직 서우를 인정하지 못했다.

그건 지혁을 제외한 모든 팀원이 마찬가지일 거라고 로운은 생각했다.


그럼에도 지혁은 서우를 데리고 다녔다.

요즘에는 그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기까지 했다.

로운은 지혁이 무슨 생각인지 궁금했다.


진짜 서우라는 자가 어떠한 가능성이 있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저 지혁의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지.

이참에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연못 앞에 선 서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바람은 마력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바람은 연못의 가운데로 모여들었고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작았던 소용돌이는 부지런히 자라서 하나의 기둥이 되었고 그대로 무대로 뻗어나갔다.


“흡.”


서우의 심호흡과 함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던 물기둥이 무너지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물기둥이라는 것이 확실했는데 퍼져나가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물의 양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말 얇은 막을 쳐놓은 것처럼 넓게 깔렸다.


“어? 이거 뭐야.”


무대 위에 서있던 이들이 자신들의 발목 높이에 있는 물에 당황하기도 잠시.

넓게 깔린 물이 그대로 바닥에 내려앉았다.


석 씨가 고함치듯 미혜와 제천을 향해 외치는 모습이 보였지만 통로 앞에 있는 이들에게까지는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비어버린 연못의 옆에 선 로운이 양손을 앞으로 뻗고 눈을 감았다.


방금 전 서우가 능력을 사용하면서 느껴졌던 바람의 기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더니 춥다 생각될 정도의 한기가 밀려왔다.


통로 앞에 흩어져 있는 모래가 얼었다.

그걸 시작으로 물이 퍼졌을 때처럼 빠른 속도로 얼음이 번져갔다.


집중하고 있는 로운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빙판길처럼 바닥을 얼리면 안됐다.

그렇게 되면 무대 전체를 태워버리는 것만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뾰족하게 날을 세워 얼릴 수도 없었다.

걸림돌이 될 테니까.


밟아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모래를 지탱하게 얼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무대 크기만 한 넓이에 최대한 고르게 능력을 써야 했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온 신경을 집중한 탓이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에 로운은 감탄했다.


이런 걸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끝낸 사람이 서우였다.

상황 판단도, 논리력도 없었지만 능력을 활용하는 센스만큼은 진짜였다.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마저도 최근에는 지혁과 가까이 지내며 많이 줄어든 그였다.


재밌네.


로운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잠깐의 잡생각에 작은 얼음 기둥 하나가 느닷없는 곳에서 튀어나왔다.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끝낸 뒤에야 로운은 팔을 내릴 수 있었다.


숨을 한 번 내뱉고 무대 위를 살폈다.

혹여 자신의 능력에 얼어버린 사람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둘러봤지만 다들 신기하게 바닥을 바라볼 뿐이었다.


“방금 전에 다 같이 뛰셨어요.”


로운의 걱정을 눈치 챈 것인지 그의 곁으로 다가온 승주가 좀 전의 상황을 설명했다.


고함치는 석 씨 그리고 곧이어 제자리에서 높게 뛰어오른 사람들.

겉으로 보기에는 어디까지 언지 티가 크게 나지 않은 탓인지 로운이 팔을 내릴 때까지 세 사람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고.


“하아... 다행이다.”


긴장이 풀리고 걱정도 해결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제 우리도 가도 돼요?”


주저앉은 로운의 곁으로 다가온 서우가 처음 소풍에 가보는 초등학생처럼 말했다.


“아직...아직이에요.”


아직 지혁에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계획을 세워달라고 했지만 이곳에서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도 함께 했었다.


아직 지혁과 나래는 허공에서 거인의 손길을 피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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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흩어지는 미로(4) 24.06.12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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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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