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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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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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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6,715

작성
24.03.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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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살아간다는 건(3)

DUMMY

밤바람을 한참 맞고 나서야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깨지 않은 서우를 등에 업고서.


“뭐야. 둘이?”


미혜가 팔짱을 낀 채 문 앞에 기대어 서있었다.

의문 같기도 하고, 놀람 같기도 한 얼굴에 어이없다는 목소리였다.


“그냥 어쩌다보니.”

“같이 탑에도 가시더니 이제 밤 데이트도 하는 거예요? 저 쫌 서운하려고 해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었다.

미혜의 눈동자에 깃든 장난기를 읽었다.

놀려먹을 건수를 하나 찾았다는 듯이 끈질기게 추궁할 것이었다.


게다가 스모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었다.


이전에 캐롤라인 사제님이 천기누설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겠지.


“별 거 아니야. 아무튼... 얘는 어디 재워야 하나.”

“여자들 숙소는 저기에요.”


미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며 앞장섰다.

하지만 그 말에 의식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받은 기분이었다.


“아... 얘 여자였지.”

“...”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에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 좀... 나보다 두 배 정도는 서운할 얘긴데. 자고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요.”

“그런 걸 신경 쓰려나.”

“...”


걸음을 멈추고 완전히 뒤를 돌아선 미혜가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성격도 나랑 안 맞고, 취향도, 사고방식도 안 맞지만. 그래도 아저씨 하나 보고 우리랑 있는 애 아녜요?”

“음...”


“음... 이 아니라. 내가 볼 때는 아저씨 없으면 이 녀석도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걸요.”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곤히 자고 있는 고서우의 이마를 가볍게 밀치는 미혜였다.


“그게 왜? 오히려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는 거 아냐?”

“가끔 아저씨 보면 얘랑 닮은 것도 같아.”

“무슨 그런...”


농담이었다는 듯이 미혜는 허공에 손을 휘휘 저었다.


“성별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서운한 거지. 완전 관심 밖이라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나.”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기억이 나면 챙기는 것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렸다.

그게 누군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는...


“아무튼 내가 뭐라고 구박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저씨만은 잘 챙겨줘요. 우리 중에서 그나마 가장 가깝잖아.”


춤을 추듯 빙글 돌아서며 말끝을 흐렸다.


“이래서 눈치 없는 남자는 곤란하다니까.”


눈치 빨라서 좋겠네.


그 뒤로도 대화를 이어갔지만 미혜가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정확히는 여자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낮에 로운과 석 씨를 찾으며 봤던 개성 없는 건물들과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가득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이곳은 30이라는 숫자가 적힌 표지판이 있었다.


“30번부터 130번까지 여자들 거처로 하기로 했어요.”

“벌써 그렇게 많이 만든 거야?”

“다들 열심히 했으니까요. 우리가 탑을 오르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렇지...”

“다들 이전 같은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니까요.”


익숙한 것들은 옆에 있는 동안에는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처음 이변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이전의 몬스터가 없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하루라도 빨리 이런 장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면서.


그러나 지금은 그 불만조차도 그리워졌다.

이미 한 번 무너졌던 사회를 수많은 사람들이 몇 십년간의 노력으로 쌓아 올려놨다.

누군가에게는 기적이라고 불리는 일들은 쉽게 일어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쌓는다.


“남자들 거처는 저기 240번부터 340번이에요. 저쪽으로 가다보면 있어요. 아마 지금 불 켜져 있는 곳은 거처뿐일 거니까. 찾기 쉬울 거예요.”

“아 고마워. 그... 사이 안 좋은 거 알지만 얘 좀 잘 챙겨줘.”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서우를 조심스럽게 미혜에게 건넸다.


“내가 얘랑 같이 잘 수는 없으니까.”

“알겠어요.”

“그럼 너도 잘 자고. 컨디션 관리 잘 하고 있어.”

“그런 걱정은 서랍 깊숙이 넣어둬요.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까.”

“그래. 너니까.”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어둠속으로 걸어가자니 미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우리 계속 함께 탑에 오르기로 했잖아... ”


“또 다시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뒤를 돌아봤을 땐, 네모난 건물의 어설프게 만들어진 나무문이 막 닫히던 참이었다.


향할 곳을 잃은 대답은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그대로 삼켜졌다.


+++


간만에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지 해가 머리 위에 있었다.


“지금 몇 시지.”

“해시계라도 만들어야 하나 봐요.”


기지개를 피며 건물 밖으로 나오자 벽에 기대어 서있던 로운과 만났다.


“아. 좋은 아침...”


어쩐지 말을 걸기가 어색한데.


“네. 많이 피곤하셨죠.”


어색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 로운도 적당한 단어를 고르는 듯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남은 시계도 거의 없거니와 그걸 돌릴 만한 자원도 거의 없어요.”

“전기 능력자들이 ...”


생각해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시계들은 흔히 건전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전력이 있다고 해도 그걸 담을 그릇이 없다면 의미가 없겠지.


“뭔가 과거로 돌아온 기분이네요.”

“그러게요. 이렇게까지 과거로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우리는 조용히 웃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그러고 보니 벙커는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했었잖아요.”

“그렇죠.”

“다른 벙커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


로운이 조용히 허공을 바라봤다.


“강원도와 충청도 벙커는 서울과 같은 상황이에요. 몬스터가 된 사람들에 의한 습격으로 무너졌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서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자력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판단되어 서울로의 이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이 좋지 않은 걸로 보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 사람들이... 거부하고 있어요.”

“거부...라뇨.”

“하나는 죽더라도 고향에서 죽고 싶다는 사람들이고요.”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서울로 오면 더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의견이었다.

대한민국의 탑은 서울에 있으니까 몬스터로부터 가장 마지막까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래서 원하는 사람들만 이주를 돕고 있는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자원이 별로 없어서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군요.”


아무리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한 두 명도 아니고 쉽지는 않으리라.


“아. 그럼 경상도나 전라도 쪽은요?”


내 질문에 로운의 표정에 간만에 희망적인 표정이 떠올랐다.


“그쪽 벙커는 아직 건재합니다. 주기적인 자원 공급으로 생활터전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유지라면...”

“그쪽도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숨 막히는 정적.


“혹시 다른 나라 사정도 들은 거 있으세요?”

“다른 나라 사정이라고 하신다면?”

“그냥 근황 같은 거요.”

“다... 비슷한 거 같아요. 모든 정보를 알 순 없지만 들리는 바에 따르면 몬스터의 범람을 예상하지 못한 나라들은 이미...”


로운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지지 않은 말을 알 수 있었다.


대비하지 못한 나라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간단하면서도 체감할 수 없는 이야기.


“계속 도망치며 소수의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 같기는 한데... 국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요.”

“그렇군요.”


애초에 한국은 미래를 본 백 소장이 재앙을 준비했다.


다른 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몇 군데나 있었을까.


이 상황을 예견하는 단 한 명의 능력자가 없어서 무너진 나라도.

그런 능력자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아서 사라진 나라도 많을 것이다.


“소장님은... 잘 계시죠?”

“아. 네.”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이후로 관리자와 일반인 간의 경계가 흐려졌다.

관리를 할 대상도, 관리를 받아야 할 대상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관리소는 존재했고.

사람들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요즘은 사소한 업무까지도 직접 다 하고 계세요. 아무래도 인력이 없으니까.”


하룻밤 사이에 있었던 일로 인해서 일반인뿐만 아니라 다수의 관리자들도 죽었다.


“그래도 소장님은 좋은 분이세요.”


백 환은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였지만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만은 진심인 사람이었다.


권력을 가지기 위해 관리소를 세운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소장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는 것.


“나중에 안부라도 전해주세요.”

“하하. 뵐 수 있으면요. 저도 요즘은 거의 못 뵀거든요.”


다시 한 번 멈춘 대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는 헤나투를 보러 가봐야겠네요.”

“네. 밥 잘 챙겨 드세요.”

“로운 씨도요.”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헤나투를 찾아 나섰다.

어제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최대의 화제는 누가 뭐래도 헤나투였다.


“굉장한 사람이야! 사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하여튼 우리가 하는 말도 한 번 들으면 다 기억하고 따라해. 특히 그 이상한 곳에서 연못도 꺼내더라니까.”


어젯밤 늦게까지 헤나투와 있었던 제천이 흥분한 기색으로 떠들었던 걸 들었었다.


그에 또래의 다른 남자들도 합세하여 밤늦도록 헤나투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 덕분인지 낮부터 인파가 몰려있는 곳으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헤나투가 있었다.


“아. 지혁. 잘 잤소?”

“어... 으응.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무리에서 나를 발견한 헤나투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누가 저런 말투를 가르친 걸까.


“그나저나 뭐하고 있어요?”


오는 길에는 인파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가까이 가자 보였다.

그건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보았던 나무와 연못이었다.


“나는 이고시 펴나니까. 고맙게도 제안하는 집은 받지 아났소.”

“춥진 않았고요?”

“춥...다?”


하루 동안 대체 무슨 대화가 오갔으면 벌써 이렇게까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거지?


의심의 눈초리로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지만 다들 왜 그러냐라는 반응뿐이었다.


“말이 많이 늘었네요.”

“다들 친절하다. 특히 나비족의 그녀가 알려주어쏘.”


나비족이라면... 아마 소원을 말하는 것이겠지.


“춥다가. 무슨 뜻인가 지혁?”


아마 주변에서 잘 가르쳐 준 것도 있겠지만 헤나투의 저런 호기심이 그가 말을 배우는 데 도움을 준 듯 했다.


“음... 공기가 차가운. 이렇게 떨리는.”


최대한 추위에 대해서 몸으로 표현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게 사람들 앞에서 원맨쇼를 하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었다.


“음...”


그때 검은 나비하나가 날아와 헤나투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자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헤나투가 답했다.


“아. 빛을 섬기는 우리는 느끼지 않는다.”


갑자기 여기서 나타난 나비라니.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제법 행복하오.”


검은 나비는 그대로 날갯짓을 멈추고 투명하게 비치는 헤나투의 어깨 위에 앉았다.


그럼 저 말투도... 소원이 가르쳐 준 건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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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2) 24.05.15 10 0 13쪽
194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은 없다(1) 24.05.13 1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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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뜨겁게 탈수록 빨리 꺼진다지 (3) 24.05.03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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