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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그 마음속에 영원히 피어날

상남자의 중세 판타지 공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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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림
작품등록일 :
2024.07.29 17:00
최근연재일 :
2024.09.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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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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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튜토리얼의 끝 (1)

DUMMY

2화. 튜토리얼의 끝



흑색표범을 죽인 지 벌써 며칠이 흘렀다.


정확히 며칠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몇 주가 흘렀을지도 모르지.

그런 걸 계산할 정도로 여유 있지도 않고, 솔직히 지금은 그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곳에 오래 있었으니까.


‘이 빌어먹을 숲에 갇힌 지 몇 년이나 지났더라?’


이곳에 처음 떨어졌을 때의 황당함은 어렴풋하게 기억났다.

컴퓨터를 하다가 난데없이 숲 한가운데 떨어진 데다가, 정신없이 풀숲을 헤매다가 흑색표범에게 죽었으니까.


‘생살이 씹히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기억은 잊기 쉽지 않지.’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내가 죽는 순간에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가며 성좌들의 채팅이 쏟아졌던 기억이다.


-아, 이 새끼 누가 데려온 거냐? 오자마자 뒤지네

-얘 상태 안 좋은 듯?

-솔직히 운이 없었지. 첫날부터 수문장한테 걸렸으니까.

-요즘 인간 스트리머 너무 많은데 좀 줄여도 괜찮지 않나?

-씹노잼 인간 새끼들 좀 그만 데려와!!!


‘내 죽음을 품평하는 그놈들의 대화는 도저히 잊혀지지 않아.’


그렇게 나는 다시 숲속 한가운데서 눈을 떴다. 생살을 씹어 먹혔던 기억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멀쩡한 몸으로.


부활을 한 거다.


‘대신 옷가지 하나 없이 맨몸이었지만.’


이런 상황을 한번 겪어보니, 본능적으로 이게 꿈이나, 환상 따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초월적인 무언가에 의해 대한민국에서 이 숲속으로 떨어졌고,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몸을 갖게 되었으며, 내 죽음을 품평하는 성좌들의 채팅을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됐지.’


도시에서만 살던 내가 맨몸으로 이런 야생에서 살아남기란 수월하지 않았다.


수없이 다치고,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났다. 수년. 어쩌면 수십 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살아남겠다는 미명하에 점점 미쳐갔다. 사방이 꽉 막힌 숲속에서 며칠이 멀다하고 죽고 부활하길 반복했다.


매일 밤, 눈을 감으며 꿈속이길 바랐다가, 눈을 뜨고 현실을 자각할 때마다 자살 충동이 일었다. 꿈이고 나발이고 이대로 죽어서 편해지고 싶었다.


‘······아마 내가 부활한다는 것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자살했겠지.’


실제로 시도해본 적도 있다. 물론 다시 눈을 뜨고 나서 포기했지만.


[죽지 못해서 산다.]


그게 당시 내 상태였다. 문자 그대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때도 유난히 까맣던 밤하늘을 보며 지구에서의 기억을 회상하던 중······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기억이 나지 않아.’


가장 친했던 친구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함께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이상하게 얼굴만 시커먼 노이즈가 낀 것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건망증이겠거니 했다. 사실 그 친구의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았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단순히 친구들의 이름이나 얼굴에서, 점점 함께했던 기억들이 도려내기라도 한 듯 떠오르지 않았다.


상사를 욕하던 포장마차에서의 술자리. 취업을 축하하며 들어 올렸던 술잔. 졸업 후 떠났던 여행. 철없던 학창시절······ 그 모든 장면들이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기만 했다.


그다음엔 혈연관계로 맺어진 어릴 적 기억들이 가뭄에 말라버린 강바닥처럼 증발했다. 숙부와 숙모. 사촌 형제들. 할아버지 할머니. ······나의 어릴 적 기억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 이름이 뭐였더라?’


부모님의 기억까지.


애써 외면했던 것들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나는 섬뜩함과 함께 공포를 느꼈다.

온갖 괴물들에게 생으로 씹혀 먹히면서도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낀 거다.


‘사실······ 믿고 싶지 않았기에 외면했던 거였어.’


기억이 사라진다니? 그냥 단순히 깜빡했다고만 생각했다. 왜냐면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오롯이 사람과 그 관계에 대한 기억뿐이었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수록, 다른 기억들은 훨씬 선명해졌다. 예를 들어 이 게임의 공략집 내용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억이 소멸되는 범위가 마침내 부모님의 기억에까지 닿았을 때······ 나는 그제야 심각함을 느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는 기억이다. 인간이 나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 또한 켜켜이 쌓인 기억 때문이니까.’


이대로 부모님의 기억마저 잃는다면 나는 나라는 정체성의 근원 또한 잃게 된다. 내가 어디로부터 비롯됐는가? 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릴 수 없을 테니.


더 큰 문제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 그다음은 누구에 대한 기억일까?’


기억이 사라지는 순서로 봤을 때, 가장 중요도가 낮은 순위대로 소멸된다.


그럼 부모님의 기억마저 사라진 뒤라면, 그다음엔 어떤 기억이 소멸할까?


‘······아마 나 스스로에 대한 기억이겠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


내가 나로서 살아온 시간이 모조리 소멸되고, 내가 나라는 것조차 모르는 때가 온다면······ 그건 ‘나’일까?


‘그럴 리가. 그냥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거나······ 혹은 인간조차 아닐 수도 있겠지.’


존재의 소멸. 그건 육신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영혼의 소멸을 뜻한다.

내가 만약 평범했다면, 존재의 소멸을 죽음으로 받아들였을 거다. 그토록 바랐던 평온한 죽음이니까.


······‘평범’했더라면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지. 아주 큰 문제가.’


나는 죽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죽어도 부활한다. 기억의 일부를 대가로.


즉, 내 영혼은 죽을지언정 내 육신은 영원히 되살아난다는 거고, 무슨 짓거리를 할지 모른다는 거다.


기억의 소멸이 존재의 소멸이고, 이는 영혼의 소멸이다······ 라는 건 ‘가정’이다.


만약 지금의 내가 소멸되지 않고 무의식 아래로 가라앉고, 그 대신 다른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가는 거라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핸들을 잡는다면?


영원히 되살아나는 또 다른 나를 지켜보기만 할 뿐, 어떤 행동에도, 의식조차 미치지 못한다면?


무슨 뜻이냐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뜻이지. 억겁의 세월을 되살아나는 이 육신의 죽음을 함께 겪으며.’


그때부터였다. 필사적으로 죽지 않으려 애썼던 게.


원래라면 몇 번이고 실험으로 몸을 던져서 괴물의 밥이 된 후에야 사냥했다면, 이제는 철저히 놈들을 추적하고 관찰한 후에야 공략했다.


덕분에 성장 속도가 대폭 늦춰졌다. 빌어먹을 성좌 놈들이 지루하다며 악담을 퍼붓기 시작한 것도, 선택의 순간마다 훼방을 놓으며 방해했던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나로서 죽고 싶지, 이 육신에 갇힌 채 영원히 떠도는 망령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 목표 자체가 없었기에 의욕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죽지 못해, 죽지 않고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세계수를 발견했지.’


세계수 위그드라실.


나무도, 풀도, 호수도 온통 새까만 이 숲에서 유일하게 회색백을 띠고 있는 거대한 나무.


나는 그때야 깨달았다.


‘이 빌어먹을 숲속이 내가 하려던 망겜의 튜토리얼 지역. 「검은 숲」이라는 사실을 말이지.’



* * *



이 게임을 하기 전에 공략집을 달달 외우는 것부터 시작했었다. 신입 스트리머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면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줘야 했으니까.


결국, 게임은 시작도 못 해보고 이곳에 끌려왔지만, 덕분에 나는 모든 공략을 머릿속에 꿰고 있었다.


‘사실 이걸 처음 깨달았을 땐 너무 허무했지.’


공략집 보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게임의 튜토리얼만 해봤더라도 훨씬 일찍 깨달았을 거다. 이곳이 게임 속 세계인지.


그랬더라면 내가 그렇게 개고생하며 지난 세월을 보냈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죽을 일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환호했다.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찾았으니까.’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목표 없이 점점 미쳐가던 나에게 처음으로 ‘목표’라는 게 생겼다.


바로 이 빌어먹을 망겜의 튜토리얼에서 탈출하는 것.


‘그때부터 튜토리얼 공략대로 움직여서 지금 이 순간이 된 거지.’


무기가 없는 이곳에서 동쪽의 철산 바위를 깨뜨려 돌칼을 얻는 게 1순위.


케냐 줄기로 올가미 덫을 만들어 수문장을 잡는 게 2순위.


다행히 수문장은 랜덤이었는데, 그나마 상대하기 편한 표범이 걸려서 다행이었다. 곰이나 고릴라였으면 올가미 덫으론 어림도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이제 마지막이다.


이 튜토리얼을 탈출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는······ 아니, 삼킨 놈.


‘열쇠를 삼킨 토끼.’


마침내 놈을 잡을 준비마저 끝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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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슈뢰딩거는 고양이의 꿈을 꾸는가? (3) +6 24.08.30 709 34 14쪽
28 슈뢰딩거는 고양이의 꿈을 꾸는가? (2) +2 24.08.29 709 30 15쪽
27 슈뢰딩거는 고양이의 꿈을 꾸는가? (1) +9 24.08.28 746 40 13쪽
26 혼돈계 스킬 (3) +2 24.08.27 753 29 13쪽
25 혼돈계 스킬 (2) +3 24.08.25 739 30 12쪽
24 혼돈계 스킬 (1) +2 24.08.24 789 37 13쪽
23 포르토의 구원자 +1 24.08.23 799 2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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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괴물사냥꾼이 힘을 안 숨김 (3) +4 24.08.20 845 28 15쪽
19 괴물사냥꾼이 힘을 안 숨김 (2)★ +3 24.08.19 869 34 13쪽
18 괴물사냥꾼이 힘을 안 숨김 (1) +2 24.08.18 902 33 15쪽
17 언데드 토벌대 (3) +13 24.08.17 921 37 14쪽
16 언데드 토벌대 (2) 24.08.16 954 3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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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Killing Monsters (2) +3 24.08.13 1,015 34 10쪽
12 Killing Monsters (1) +2 24.08.11 1,060 37 15쪽
11 거인 왕의 무덤 (4) +2 24.08.10 1,064 32 15쪽
10 거인 왕의 무덤 (3) +3 24.08.09 1,056 33 12쪽
9 거인 왕의 무덤 (2) +3 24.08.08 1,063 36 13쪽
8 거인 왕의 무덤 (1) +2 24.08.07 1,116 38 13쪽
7 검은 숲의 괴물사냥꾼 (3) +2 24.08.06 1,131 42 14쪽
6 검은 숲의 괴물사냥꾼 (2) +4 24.08.04 1,173 40 14쪽
5 검은 숲의 괴물사냥꾼 (1) +2 24.08.03 1,241 33 13쪽
4 튜토리얼의 끝 (3) +3 24.08.02 1,339 33 13쪽
3 튜토리얼의 끝 (2) +1 24.08.01 1,400 3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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