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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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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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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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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DUMMY

수업의 끝을 알리는 교수의 말과 함께 여기저기서 지친 한숨의 소리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던 에리사도 끌어 올렸었던 긴장감이 빠지자 무심코 숨을 크게 토해냈다.


조금 쉬고 싶다.


나약한 생각과 동시에 에리사는 상체를 숙여 책상 위에 엎드렸다.


편하다.


요즘 들어 가만히 있어도 어깨가 뻐근하기도 하고 제법 지쳤었나 보다. 생각보다도 더 노곤해진다.


너무 편하기에 조금 더 누워있고 싶었다. 그러나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문득 떠올랐다.


깜짝 놀란 에리사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흡?!”


너무 서두른 나머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상한 소리에 옆자리에서 교과를 정리하고 있던 사람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왜 그래, 에리사?”

“어, 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이리스 군.”

“음, 그래? 그런데 군은 빼달라니까. 편하게 불러줬으면 해. 힘들면 그냥 불러도 되지만.”

“으응······ 아, 아이리스.”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대답을 들은 아이리스는 살짝 미소를 보이고는 짐을 마저 정리했다.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이러한 감정을 숨기려 에리사는 서둘러 교과를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그렇지만 시선은 자꾸만 아이리스에게로 향한다.



“응? 뭐 잃어버렸어?”


아······ 너무 쳐다보느라 손을 멈춰버렸다.


여자아이처럼 긴 속눈썹이라든가,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등. 늠름한 아이리스의 얼굴이 잔상처럼 어른거렸지만 떨쳐내고는 쑤셔 넣듯 가방에 짐을 넣었다.



“그렇게 급하게 안 해도 되는데.”

“아, 아냐! 다 했어. 기다려줘서 고마워.”

“뭘.”


무심코 고개를 돌릴뻔한 웃음을 보인 아이리스는 그럼 가자며 걸음을 옮겼다. 손에 든 짐은 없었는데, 여태 그랬던 것처럼 [수납]의 마도구에 넣은 듯하다.


‘편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리스를 따라가려 움직임과 동시에 뒤에서 말이 걸려 왔다.



“가방을 맡아두겠습니다.”


말을 건 사람은 새롭게 온 아이리스의 사용인으로, 정말 무지무지하게 예쁜 여성이었다. 최근 매일매일 아이리스와 함께 다니는지라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은 외모에 볼 때마다 흠칫한다.



“발렌시하 님?”


순간 넋을 잃고 쳐다봤던 에리사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가, 가까우니까요. 니, 님도 괜찮고요! 에리사라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에리사 양. 괜찮으시다면 부디 저도 델리안이라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예, 예! 델리안 씨. 그······ 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엉망진창인 대답. 아이리스와 같은 기품은 자그마한 파편조차 있지 않다.


하지만 여성 사용인―― 델리안은 이쪽이 전혀 무안해지지 않게 미소로서 안도감을 심어줬다. 눈높이도 슬쩍 맞춰주고 여러모로 정말 마음씨가 곱다. 행동거지도 마치 귀족처럼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어쩌면 진짜 귀족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집안의 계승권과는 거리가 먼 자제들은 귀족의 사용인으로 취직하는 예도 많다고 하니.


이런 델리안을 보고 있자니 패배감이 몰려와 괘씸하게도 부러움과 질투가 질척질척하게 피어올랐다. 사용인으로서 당연하겠지만, 언제나 아이리스와 함께 있다는 점이 이를 더욱 부채질하였다.


‘우······ 내가 싫어지네. 아이리스 군을 도와주시는 분께 이게 뭐람.’


더욱이 델리안은 단순 사용인 이상으로 아이리스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있다. 곁에서 계속 봐왔던 것이기에 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친구를 아껴주어 감사하다고 여기진 못할망정······’


스스로에게 든 혐오감에 에리사가 고개를 떨궜다.


그럴 때였다. 앞서 걷던 아이리스가 어느새 돌아왔는지 고개를 숙여 이쪽의 안색을 살폈다.



“컨디션이 안 좋아졌어?”


아이리스의 안에서 자신은 몸이 병약하다는 이미지가 생겼나 보다. 자주 몸의 상태를 확인한다.


당연히 몸은 너무 멀쩡하다. 아픈 곳 따윈 전혀 없으며, 감기조차도 근 몇 년간 걸린 적이 없다. 건강해도 너무 건강하다. 그저 아이리스만 보면 굳어지는 반응 때문에 착각하는 것이리라.



“괘, 괜찮아. 아픈 덴 없어.”

“그래? 혹시라도 나빠지면 말해줘야 한다?”

“으응.”


걱정해주는 건 순수하게 기쁘지만,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든다.


그런 떳떳하지 못한 기분으로 아이리스와 함께 강의실을 나왔다. 다음 수업은 마법 기초이론으로, 강의실은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지만 서둘러서 나쁠 건 없다.


그렇게 잠시 걷고 있으니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페리에게 줄 게 있었어.”

“페리에게?”

“응.”


마침 사람도 없고 하니 잘 됐다. 대답하면서 에리사는 가방을 뒤졌다.


그런데······ 가방 안이 처참하다. 급했다지만 너무 막 집어넣었나 보다. 교과와 필기구들이 마구 뒤엉켜있다.


급한 건 아니니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고, 교과들과는 별개의 칸에 에리사는 손을 넣었다.



“이거······”


에리사는 꺼낸 물건을 아이리스에게 보여줬다.


자그마한 손 위엔 종이로 된 봉투가 올라가 있었다.



“봐도 돼?”

“응.”


허락을 얻은 아이리스는 봉투를 열어 안을 봤다.



“과자?”

“으응. 페리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과자도 괜찮을까 해서 만들어왔어. 무, 물론 짜거나 너무 달지 않게 했으니 걱정하지 마. 채소를 기본으로 뒀으니 제대로 영양가도 있을 거야.”

“와~ 직접 만들었어? 굉장하네.”


딱 아이들이 만들만한 수준의 과자이건만 아이리스는 눈을 빛내며 거짓 없는 칭찬을 해준다. 그러고는 흥미 가득한 눈으로 봉투 안을 응시했다.


조금 창피하지만 힘내서 만들길 잘했다.


살짝 볼을 붉히며 에리사는 물었다.



“이거 줘도 괜찮을까?”

“기껏 만들어 준 건데 싫어하진 않겠지. 정 불안하면 직접 물어보자.”

“응. 해볼게.”


에리사는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오던 페리에게 과자를 내밀었다.



“페리, 이거 먹을래?”


그렇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똑똑한가 보다. 페리는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천천히 다가왔다.


킁킁. 손에 놓인 누런 과자의 냄새를 맡는다.


촉촉한 코가 벌렁거리는 그 모습은 매우 귀엽다. 하지만 눈높이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덩치이다 보니 조금은 압박감 같은 게 있었다.


그렇게 잠시 긴장한 채 있으니 날름, 페리가 손 위에 있던 과자를 물었다.


원형의 한입 크기로――페리 기준―― 만들었기에 먹기 좋았는지 페리는 단숨에 와작와작 과자를 씹어 먹었다.



“괜찮았나 보네.”

“응!”


페리도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두 가락의 꼬리를 흔들며 지긋이 쳐다본다. 아마 하나 더 달라는 거겠지.


에리사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스럽게 다른 사람은 없다. 애당초 넓은 길목 한복판이니 통행에 불편을 줄 그런 위치가 아니긴 하다.


그렇게 눈치 볼 필요도 없이 반복하여 과자를 페리에게 나눠줄 때쯤, 아이리스가 말을 걸었다.



“혹시 부스러기 같은 거 있어?”

“어, 어? 으응, 있어.”


조심히 가져오긴 했으나 역시 가망 안에 있다 보니 몇몇 부서진 쪼가리들이 있었다.



“오, 다행이네. 괜찮으면 그거 받아도 될까?”

“무, 물론이지.”


지켜보다 보니 아이리스도 건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에리사는 냉큼 과자의 파편을 꺼내 건네줬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러한 생각과 달리 아이리스는 전혀 페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건네받은 과자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다 말릴 틈도 없이 자신의 입가로 가져갔다.



“아, 아이리스?!”

“우움······. 응. 맛있어.”

“엑?! 어······ 아니, 지, 진짜? 페리용으로 만든 거라 간이 밋밋할 텐데······”

“아냐. 꽤 그리운 맛이야.”


그리 말한 아이리스는 눈을 가늘게 하고는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만든 자신이 잘 안다. 과자는 분명 재료 본연의 맛밖에 나지 않을 거다. 특별한 맛 따윈 없었다.


물론 사람이 못 먹을 건 아니다. 자신도 맛을 보긴 했으니. 다만 그러므로 과연 맛있을까 하는 의문엔 아무래도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러나 웃는 아이리스를 보노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든다.


착하기에 단순히 친구를 위로하려 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볼 수 있다. 아이리스는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걸 확인하자 에리사는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격한 맥동이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따스한 빛을 내리쬐고 있는 아이리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에리사?”

“어, 으응? 아, 아냐.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허둥지둥 변명하긴 했으나 너무나도 어색하다. 그렇지만 빤히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기엔 더 부끄럽다.



“그, 그! 아, 맞아. 그, 근데 그리운 맛이라니? 아이리스는 이런 걸 자주 먹었었어?”


혼란했던지라 그냥 되는 대로 물었다.


아이리스도 이를 안듯했으나, 그는 별말 않고 대꾸해주었다.



“어렸을 때 잠깐. 어머니가 잘 소화를 못 하셔서 할머니가 자주 이런 간이 약한 음식을 해주셨어.”

“그······ 어, 어머니가 어디 아프셨어?”


물으면서도 가슴이 옥죄어오는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엔 몸이 안 좋으셨었나 봐. ――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은 완전 건강하셔.”


역시 아이리스. 무얼 걱정한 건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저, 정말 지금은 괜찮으신 거야?”

“내가 태어날 때쯤엔 완쾌하셨었대. 할머니도 그저 노파심 때문에 당분간 그러셨던 거라 금세 평범하게 바뀌었어. 뭐, 원래 내 음식은 따로 주셨지만. 간이 약한 음식은 어머니를 위한 거였는데 내가 몰래 훔쳐 먹었을 뿐이야. 참고로 비밀이다?”

“으응!”


비밀을 공유한다. 참으로 친구 같은 행위와 더불어 한시름 덜게 된 에리사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 기세를 몰아 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 번 만져볼 기회가 있긴 했지만, 만질 때마다 엄청나게 복슬복슬하고 매끈한 감촉이 너무 좋다. 분명 집에서 잘 돌봄을 받는 거겠지.


털도 잘 빠지지 않는 것이 언제까지고 쓰다듬어주고 싶다.



“페리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슬쩍 속삭인 말에 페리는 마치 사람이 코웃음 치듯 콧김을 내뿜었다. 그렇지만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은지 얌전히 서 있었다.


천천히 쓰다듬는 상태로 에리사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리스 군. 괜찮으면 앞으로도 과자를 만들어와도 괜찮을까?”

“그렇다는데, 페리는 어때?”


질문을 받자 페리는 크흥 하며 울었다.



“마음대로 하라는 거 같네.”

“에? 아이리스는 알 수 있는 거야?”

“얼추······ 대강?”

“그렇구나······.”


과연 잘 돌봐주기에 페리의 의사도 알 수 있는 모양이다. 새삼스러운 것도 같지만 진짜 대단하고 멋있다.


‘이런 애가 나와 친구라니. 헤헤······’



“자, 에리사. 이만 갈까? 페리의 간식은 조금 있다가 주자. 너무 간식만 먹는 것도 몸엔 나쁘니까.”

“아! 응.”


밝은 분위기로 다시금 강의실로 향해 걸었다. 남은 과자를 못 먹은 게 페리는 내심 불만인 듯싶었지만 똑똑한 아이답게 투정 부리지 않고 얌전히 따라왔다.


그렇게 잠시 걷던 에리사는 문득 볼 일이 떠올랐다.


꼭 이렇다. 안 좋은 버릇임을 알고는 있지만 매번 분위기에 휩쓸려버리면 자꾸만 잊어버리고 만다.


‘어, 어쩌지······’


이제야 이야기한다는 건 너무 뜬금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화두가 끝난 지 좀 됐으니까. 분위기 파악도 못 하냐며 핀잔을 주던 이전 친구인 척 같이 다닐 뿐인 아이들이 떠올라 망설여진다.


하지만――


에리사는 굳게 다문 입에 힘을 주었다. 자신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금방 포기했겠지만, 이번에는 그게 아니었다.



“저기, 아이리스.”

“응?”

“괘, 괜찮다면 아이리스의 것도 만들어도 될까?”

“으음. 혹시 과자를 말하는 거야?”

“마, 맞아!”


어떻게 안 건지. 정말 신통방통하다.



“나야 당연히 좋은데······ 힘들지 않겠어?”

“아, 아냐! 어차피 페리 걸 만들면서 같이 만드는 거라 그리 어려운 것도 없어!”


아니. 거짓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페리와 아이리스의 것을 따로 만든다면 간부터 달리해야만 했다. 그렇다는 건 애당초 반죽에서부터 2개를 따로 준비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이후 손도 2배로 많이 간다.


하지만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에리사는 드물게 욕심을 냈다. 어떻게든 아이리스에게도 과자를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니 잠시 빤히 쳐다보던 아이리스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되네.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알겠지?”


에리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응! 맡겨줘!”


기쁘다, 용기를 내보길 잘했다, 등등 무수히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그 행복한 감정을 에리사는 몇 번이고 곱씹었다.


이 시간이 쭉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행복이란 길게 가지 않는 법인가 보다. 저 멀리서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4명의 여자아이로, 입학식 이후로 아이리스에게 친근히 굴어대는 애들이다.


그녀들은 선두에 선 아이를 필두로 나란히 다가왔다. 그리고 사뿐히 치마를 잡고 인사를 건네왔다.



“우연이네요, 아이리스 군. 여기서 만날 줄이야.”


‘거짓말.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하루 이틀도 아니니 아이리스도 모르진 않을 거다. 오히려 익숙해진 패턴에 아이리스는 자신보다 먼저 그녀들을 발견하여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딱히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게 아이리스답다고 할까? 그는 미소로 뻔뻔한 변명을 대며 나타난 그녀들을 반겼다.


――따끔.


‘어라······? 또?’


요즘 들어 가슴 쪽에서 왠지 모를 먹먹한 아픔이 느껴진다.


아이리스의 걱정대로 혹시 진짜 병에 걸린 건 아닌가 싶다가도 금세 상태가 좋아지니 정말 이상할 따름이다.


자신의 상태에 에리사가 의아해하고 있는 동안 선두에 서 있던 아이―― 이 그룹의 리더인 그녀가 대표로 말을 걸었다.



“아이리스 군,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함께 가도 될까요?”

“그건 괜찮지만······ 잠시 들러볼 데가 있는데 괜찮아?”

“물론이죠.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네. 권한 건 저희인데 불만은 없어요.”


어차피 늦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리더인 아이를 비롯해 다들 이구동성으로 괜찮다며 외쳐댄다.



“에리사는 괜찮아? 혹시 준비할 게 있다면 어울리지 않고 먼저 가도 돼.”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렸던 에리사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냐! 그런 거 없어. 나, 나도 함께 갈게!”

“다행이네. 그럼 같이 갈까?”

“으응.”


환한 아이리스의 미소에 다시금 볼을 붉힌 에리사.


그렇게 인원은 늘어났지만, 행복한 기분을 맛보며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들를 데는 어디인가요?”

“고등부에 있는 가족 좀 보려고.”

“이스피리아 님을 말입니까?”

“응. 지금은 훈련장에 있을 거거든. 수업 전에 잠시 보려고.”

“아~ 장안의 화제인 그 모임이로군요. 무척이나 수준이 높아 많은 분이 모임에 가입하길 희망한다고 들었습니다만.”

“헤에······ 그렇구나.”

“네. 저희 중등부에서도, 특히 일반반에서는 조금이라도 식견을 넓히기 위해 될 수 있다면 시간을 내 누님분의―― 영웅의 모임에 얼굴을 비춘다고 합니다.”

“하······하··· 뭔가 명칭도 붙었고 대단하네.”

“아이리스 군은 한 번도 안 가보셨나요?”

“아~ 그게, 내가 가는 걸 반기지 않는 듯해서. 부끄러운가 봐.”

“그렇습니까? 뭐, 가족 간이니 그런 섬세한 감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한데 오늘은 어쩐 일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해서. 하지만 난 다음 수업이 있잖아? 아마 1학기 때의 시간표와 착각하고 권한 듯해서 알려주려고.”

“과연, 그러하시군요.”


하하 호호 웃으며 걷는 둘은 선남선녀라는 말처럼 무척이나 어울린다.


수수하고 내세울 게 하나 없는 자신과는 다르다. 그녀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고귀한 기품과 어른스러운 여유가 느껴지는 아이리스의 옆에 서 있음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집안에서도 부족함이 없어 훌륭한 재력가의 영애로 귀족은 아니지만, 자작 집안에 버금간다고도 한다.


마치 천생연분이란 이런 걸까. 싫지만 끼리끼리 잘 만났다는 느낌이다.


그녀의 뒤를 이어 맨날 함께 다니는 아이들도 그러했다. 다들 그녀보단 부족하지만, 상당한 재력가의 집안 혹은 진짜 귀족인 남작 가의 영애이다.


자신감이 없어진다. 과연 자신이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건지, 매번 들던 의문이 더욱 커져만 간다.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고 있을 때였다.


툭.


어느새 아이리스와는 조금 떨어져 걷던 자신을 누군가가 뒤에서 살짝 밀었다.



“어? 페리······?”


의아해하는 에리사에게 페리는 크흥―― 코를 울렸다.


허튼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에리사는 왠지 그게 힘내라고 하는 페리의 응원 같이 여겨졌다.


‘그래. 누가 뭐라고 하든 난 아이리스의 친구야.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는 중요하지 않아! ······아니, 중요할 것도 같긴 한데, 적어도 이렇게 침울해 있는 것보다는 나아!’


고마움의 표시로 페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나 힘낼게, 페리. 고마워.”

《헹. 과자의 보답일 뿐이다, 계집. 기어오르지 마라.》

“······어?”


어쩐지 페리의 말이 들려온 것 같았다.


하지만 착각이겠지. 이런 귀여운 아이의 입이 그리 험할 리가 없지 않은가. 목소리도 저런 말괄량이가 아닌 좀 더 애교가 많고 깜찍한 것이 훨씬 잘 어울릴 것이다.


너무 생각이 많아져 지쳤나 보다.


‘그래. 동물이나 마수의 말이 들릴 리가 없는데.’


역시나 다시 들려오는 페리의 울음소리는 단순한 동물의 울음소리였다.



“아쉽네.”


기대와는 다르고 또 착각에 불과했지만, 막상 못 듣는다니 왠지 섭섭하다.


‘그렇지만 계속 축축 처져선 안 되겠지?’


이러나저러나 격려해준 페리에게도 실례다.


마지막 페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끝으로 에리사는 마음을 다졌다.


여러 차례 할 수 있다며 자신을 다독인 에리사는 마침내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는 아이리스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순간――


이를 막듯 뭔가를 후려친 게 아닐까 싶은 묵직한 금속음이 크게 울렸다.


깜짝 놀란 모두는 소리의 출처로 고개를 돌렸다.


마찬가지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 에리사.


그리고 보았다.


――은빛의 대검을 크게 휘두른 듯 호쾌한 자세인 여자아이와 검을 팔뚝에 대고 하늘을 날고 있는 성인 남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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