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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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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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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2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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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9쪽

05화 - 2

DUMMY

자라나라 머리머리.



당신은 대머리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지금 당장 ‘아 여기 있네 빵 통조림!’ 이라는 댓글을 달지 않으면 대머리의 저주에 걸려 빡빡이가 될 것입니다.



“어······ 어······.”

“······뭐!”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하는 희세. 나는 얼떨떨해져서 말을 잘 못 잇겠다. 이런 상황을 전에 겪어본 적이 있나. 아니, 전혀 처음 보는데. 여자애가, 이렇게 머리를 빡빡 민 거는. 거기다 그게 내 여자친구, 나희세 씨라니.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왔어. 그······ 성빈이랑 놀아나서.”

“됐어. 그딴 마음에도 없는 사과 듣고 싶지 않으니까.”

“아니, 아니야, 마음에도 없는 사과가 아니라! 정말, 정말로 미안해서······!”

“응, 됐거든. 또 나 나쁜년 만들지 말고.”

“······응.”



역시, 사과는 통하지 않는다. 예상했던 반응이기에, 나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어 받아 들였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심통을 부릴 순 없는 일이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희세는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본다.




희나와 함께 거실 문을 열고 희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깨 너머까지 오는, 결이 좋은 희세의 갈색 머리칼. 약간 웨이브 기운이 있는 그 머리카락은 온데간데없고, 무슨 서양 영화에서 보이는 서양 여배우처럼 머리를 빡빡 밀었다. 여자 스님 정도는 아니고, 반삭 수준인데. 그것도 9mm 정도 되려나, 머릿속이 다 보일 정도로 엄청 짧게 밀어버렸다.


머리카락이 얇고 가는 희세인지라, 반삭이지만 거의 삭발 수준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남자애도 아닌 여자애가 머리를 민 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좀 외계인 보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저기.”

“말하지 마.”

“넵.”



넌지시, 그러나 희세 기분을 살펴서 ‘머리는 왜 민 거야.’ 하고 물어보려 했지만 희세는 대번에 내 입을 틀어막는다. 몇 년을 같이 지냈는데, 서로에 대해 눈치 100단이지.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사실 여자애에게 그런 걸 물어보는 시점에서 이미 기분 좋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지.



“언니 머리 스님 같지? 언니 펑펑 울었어. 희나도 슬퍼서 펑펑 울었어.”

“야 너······ 저녁 먹고 얼른 학원 가!”

“으이잉. 그치만 오빠 겁먹은 표정인걸?”



부엌으로 향하는 희나는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나에게 알려준다. 희세는 순식간에 얼굴이 벌게져선 희나를 다그친다.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부엌으로 가는 희나. 희세는 뚝딱뚝딱 금세 희나 저녁상을 차려준다. 그리곤 거실로 돌아와, 다시금 내 앞에 앉는다.



“머리, 밀었어. 이상하지.”

“왜······?”

“공부하려고.”

“그런 게 어디 있어. 여자애가. 남자애도 아니고.”

“왜. 여자애는 머리 밀면 안 돼?”



또다시 성차별적 발언으로 나를 몰아세우려는 희세. 지금은 그런 게 그런 게 아니잖아. 고3인 남자애가 공부하려고 머리를 빡빡 미는 것과, 여자애가 머리를 미는 건 분명히 달라. 가치가 다르다고.



“엄마아빠랑 대판 싸워서. 머리 밀렸어.”

“그, 그래도,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하는 희세.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잖아. 여자애에게 머리카락은, 단순한 머리카락 이상의 가치가 있잖아. 그걸 이렇게 밀어버리다니, 대충 어물적 넘길만한 사건이 아니잖아.



“······싫으니까.”

“어떤······ 게?”



서글픈 표정이 되어, 말을 꺼내는 희세.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슬픈 기색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것도 괴롭겠지만 지금은 우선은 머리카락이 없는 것부터가 엄청 큰 슬픔이겠지. 농담이나 장난이 아니라, 평생을 머리가 길었던 여자애인 희세인데. 어떤 식으로 대판 싸웠길래 머리를 밀었을까.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말했었지. 학기 초에, 나한테 물어봤잖아. 꿈이 뭐냐고, 지망 대학이 뭐냐고.”

“응, 말했었지. 유아 교육과 가고 싶다고 했잖아.”

“까먹진 않았네. 까먹었으면 진짜 화내려고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으며 말하는 희세. 내 옆에 다시금 앉는다. 나는 이동하는 희세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랬었지, 유아교육과 가고 싶다고, 유치원 선생님 되고 싶다고 했지. 어린아이를 좋아하고 잘 돌봐주는 희세에게 딱이라고 생각했지.


······이런 생각 하면 좀 그렇지만 성적이 좀 아깝긴 한데. 전국의 유치원 교사 선생님들 죄송합니다. 저는 유아교육과는커녕 대졸도 무리일 것 같네요. 아 ! 전국의 고졸출신 여러분 죄송합니다. 아 뭐가 이렇게 불편한 게 많아! 이거 나만 불편해?! 그냥 똑바로 말해, 희세 성적에 유아교육과는 아깝다고! 거의 의대나 법대는 갈 수 있을 수준인데, 희세 성적은!



“엄마아빠는, 나 의대 가길 바라거든.”

“어······ 의대?! 의대, 충분히 가지, 희세 너라면!”



생각을 꿰뚫린 것 같아 어물쩍 거리며 얼른 대답하는 나. 그렇지, 무릇 모든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의대에 가길 바라지 않겠어? 꼭 의대가 아니더라도, 그 끕(?)의 대학들을 가길 원하시겠지. 죄송합니다, 부모님. 불효자는 웁니다.



“저번 주말에, 잔뜩 싸웠지. 그럴 거면 대학 가지 말라고. 누구 마음대로 대학을 가냐고. 등록금 다 벌어다 혼자 살으라고. 의대 안 갈거면 연 끊어버리라고. 온갖 험담은 다 들었지. 나는 나대로, 잔뜩 싸우고. 왜 내 인생 엄마아빠가 왈가왈부하냐고. 내가 가고 싶은 거 왜 못 하게 하냐고.”

“······그렇구나.”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대며 말하는 희세. 싸웠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그다지 표정이 좋지 않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희세를 보며 대답한다.



“다짜고짜 머리 밀어버린다고, 안 그럼 집 나가라고. 곱게 말할 분위기가 아닌 거야. 근데 나도, 알량한 자존심은 있으니까. 짜증나고, 내 의견은 포기하고 싶지 않고. 그래서, 정말 미친 짓인 건 알지만 내 발로 순순히 가서 머리 밀렸어. 당분간 학교 안 나가기로, 엄마가 학교에 전화 했고. 더 싸가지 없는 행동이거든, 그게.”

“······.”



희세, 대단하다. 원래부터 원리원칙주의 페미니스트 같은 느낌에, 여장부 스타일에 할 말 다하는 당찬 여자애인데. 이 정도일 줄은, 남자친구라고 있는 나도 예상하지 못 했다. 이 정도 큰 희세의 고민을 보고 있자니 내 고민은 참 작고 알량한 것 같아 절로 부끄러워진다.



“나도 싫어. 이러고 있는 거. 그치만, 절대 포기하고 싶진 않아. 엄마아빠 의견은 그냥 참고하고 조언일 뿐이지. 내 인생은 내가 정하는 거잖아.”

“······그렇지. 네 말이 옳아.”

“뭐야, 그 교과서에서 나오는 것 같은 대답은. 꼬아?”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 대답에 희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지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대답했다. 너무 황송해서 그래. 내가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어서.”

“잊진 않아. 까먹진 않아, 절대로. 그치만 지금, 학교 안 나오고 연락 못 받고 그러는 건 너 때문이 아니니까. 내 미래 때문이니까.”

“······으응.”



솔직한 내 대답에 희세는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음, 확실하게 사과를 받아주는 건지 어쩐지 모르겠어. 하지만 또, 이런 분위기에서 더 내 사과에 대한 얘기만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처사겠지. 그만 일어나야겠다.



“······사과, 받아줄게.”

“······뭔가, 희세 네 복잡한 개인사정 때문에 어물적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네?”

“시끄러. 꼭 분위기 좋게 사과 받아주려고 해도 초를 쳐. 그럼, 계속 이러고 있어?”

“아, 아니야. 응, 정말 미안해, 고마워, 미안해.”



사과를 받아주는 것에 태클을 거는 건 일말의 마지막 양심의 발현. 이렇게 대충 넘길 일이 아닌데, 희세 지금 상황이 워낙 복잡하니, 그냥 덮어놓고 눈감아주는 느낌인 걸 내가 알겠다. 희세는 짜증스럽게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얼른 넙죽 엎드려 사과를 받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고 다니는 남자앤데, 그 정도는 감안 해야지. 한 번 더 바람 피우면, 그 땐 진짜 없애버려야지.”

“응, 내가 잘못했어, 그 땐 정신이 어떻게 나갔었나봐, 앞으론 잘할게, 정말 미안해, 용서해 줘. 고마워.”

“좀 시끄러우니까 그만 말 해. 기분 나빠질 거 같으니까.”

“넵!”



지금은 그야말로 희세 마님 말씀하시는대로 행동해야만 한다. 넙죽 엎드려 절을 하곤 다시금 공손히 자리에 앉는다. 부엌에서 혼자 밥을 먹던 희나도 킬킬 웃는다. 희세는 멋쩍은 듯 싱긋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공부는 잘 하고 있어? 스터디 그룹은.”

“응, 잘 하고 있어. 성빈이가 대신 애들 잘 가르쳐주고 있어.”

“참, 좋겠네.”

“아, 아니! 이상한 건 안 해, 그냥 공부만 하니까!!”



간만의 근황을 물어보는 희세. 잠자코 대답한다. 순간적으로 눈빛이 빛나는 희세. 아차. 괜히 말했다. 무엇 때문에 희세랑 사이 틀어졌는데, 그걸 모르고 눈치도 없이 또 성빈이 얘기를 하고 마는 나. 허둥대며 얼른 변명한다. 다시금 무조건적 항복을 구해야 겠다. 8월 15일 이후로 어떠한 교전 행위를 일체 금하며······



“됐어, 이젠. 바람 피울려면 피우던가. 우리 헤어질까?”

“그,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그런 말 하지 마!”

“오호? 화내내? 지금 누가 누구한테 화내? 아~ 남자친구가 화내니까 이제 더 장난도 못 치겠네~ 그만 해야겠다. 잘못하면 맞기도 하겠어.”

“크윽······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희세는 싱글벙글, 간만에 날 놀리는 재미에 빠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무조건적인 사과를 한다. 내가 잘못했다. 정말 잘못했다. 그래도 희세가 착해서 용서해준 거잖아. 난 정말 운이 좋은 녀석이야. 이런 마음 착한 천사 같은 여자친구랑 사귀고 있으니. 지금은 뭔가, 천사보다는 여자 스님 같은 느낌인데. ‘비구니’라고 하지, 여자 스님을?



“그럼, 당분간 학교는 안 오는 거야?”

“너 같으면 이 머리로 학교 나가고 싶겠어?”

“아······.”



그것도 그렇다. 남자애들이야, 반삭 했어도 아무렇지 않게 바깥으로 나가겠지만. 여자애들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희세네 부모님이 학교에 미리 전화해놨겠지. 참, 골치 아픈 일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대학교는······?”

“나도 모르지. 결국엔 떠밀려서, 가기도 싫은 의대 가거나. 내가 이기면, 내 뜻대로 하겠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하나의 시위니까. 딸이 머리 밀고 학교 안 가고 있으면,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어. 나도 이러기 싫어, 그치만. 엄마아빠 맘대로 하는 건 더 싫어. 그러느니, 차라리 대학 안 가.”



난감하다. 난감하고, 참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다. 부모님의 의견과, 희세의 꿈. 어느 쪽이 옳은지, 나는 모르겠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먼저 걸어온 어른으로써, 부모로써 최선과 최적의 길을 알려준다는 부모님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지,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오롯이 가겠다는 희세의 비망록이 올바른 것인지.


아직 한참 병신인 나는 잘 모르겠다. 난 희세랑 똑같은 고3이지만, 아직 한참은 모자란 것 같다. 더 별다른 말을 하지는 못 하고, 희세와 작별하고 집에서 나왔다.












--











“······어떻게 생각해, 민서야.”

“엣? 뭐, 뭐? 나 뭐 못 들었어?”



뜬금없이 불쑥 말하는 내 말에 당혹스러워하는 민서. 그럴 리가, 애초에 지금 민서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말하는 첫 마디가 저건데. 그래도 민서는 자기가 뭔가 못 들은 줄 알고 허둥댄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민서 너는, 어디 대학 갈 거야?”

“응? 가, 갑자기 그건 왜?”



희세의 일에 대해, 아무데나 천방지축 말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으니 적절하게 돌려서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되게 오래간만에 만나는 것 같은 민서에게 질문한다. 희세와 같은 상황이라면, 다른 애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그걸 보고 생각해보려고.


내 질문에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는 민서. 그렇게 당황스러워할 질문도 아니지, 고3인데. 우리의 지상과제가 바로 수능이고 명문대학 아니었어. 12년동안 의무교육을 받아온 이유가 뭔데. 결국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지상목표 때문이잖아.



“나, 나는······ 아직까지, 솔직히 정해진 건 없는데.”

“아, 나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미정이야. 일단은 희세랑 같은 대학교 가고 싶은데. 여자친구니까. 근데, 희세가 워낙 공부를 잘 해야지. 그래서 간당간당 하지. 못 가면 재수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오······ 희세 공부 엄청 잘 하잖아. 분명히 인서울 쪽으로 갈 텐데. 아니면, 포스텍 같은 데?”



뭐, 정해진 대답 같은 것일까. 얼마 전에, 한 번 아이들의 꿈을 탐구해보자! 했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의 대답들이었지. 제대로 정해진 건 희세, 성빈이 정도려나. 유진이도, 뭐 한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나고. 나, 리유, 미래 바보 삼남매는 말할 것도 없이 흐지부지한 앞날이고, 거기에 민서도 추가구나.



“근데, 희세 왜 학교 안 나와? 어디 아프데?”

“음······ 사실, 희세랑 싸워서, 연락을 못 하고 있어.”

“엣······ 크게 싸웠어?”

“어, 그렇지. 사과는 했는데. 그래도 기분 안 좋나봐.”

“에······.”



희세의 안부를 묻는 민서. 내 대답에 표정이 안 좋아진다. 확실히, 같은 반이 아니니까 정보 전달이 더디구나, 민서. 예전과는 달리 요즈음은 꼴에 고3이라고, 교실에 박혀서 공부만 하니. 대충 둘러대며 싱긋 웃는 나. 속은 편하다, 그래도.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는 거 없어? 나 같은 경우엔 공부 하라고 잔뜩 뭐라고 하기만 하는데, 대학까지는 내가 알아서 정하라는 분위기랄까.”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부모님에 대한 것으로 돌리는 나. 뭐, 딱히 이상할 건 없지. 희세와 같은 충돌은, 굉장히 특이한 사례라거나 그런 게 아니니까. 오히려 더 많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희망사항은 굉장히 높지만, 우리들은 시궁창이거든. 민서는 내 질문에 대답을 꺼려 한다. 무엇인가 결심한 듯,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본다.



“난 사실, 대학 안 갈까 생각중이야.”

“엑?! 왜, 왜!”

“그냥, 그래. 그것 때문에 엄마랑 엄청 말다툼 했는데.”



뭐야, 이 갑작스런 전개는. 민서에게, 평범한 애들은 어떤 느낌으로 부모님과의 충돌을 해결하나 싶어서 물어본 건데. 전혀 평범하지 않잖아, 도리어 희세랑 같은 강한 충돌이잖아. 거기에 더해, 대학을 안 가겠다니. 그 무슨 폭탄선언 같은 말인데. 숨을 죽이고 민서의 말을 경청한다.



“난 어릴 때부터, 엄마아빠 하시는 국밥집 일 도와드렸거든. 당연히, 어른 되어서도 엄마랑 같이 일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왜인지 모르게, 당연하게 대학을 가라는 거야. 대학은, 공부 더 하고 싶은 사람이 가는 거 아니었어? 난 솔직히, 공부 소질도 없고,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에······ 음······.”



엣······ 대학, 그냥 가는 거 아니었나? 다 가니까 가는 거 아니었어. 물론 사전식 정의에 따르면 큰 대자에 배울 학자니까, 정말 큰 배움이 있는, 학문의 전당 같은 느낌이라지만······ 그건 1960년대 얘기고, 지금은 전국민 대졸자 프로젝트 뭐 그런 거 아니었어? 대학 진학률이 85%가 넘어가는 대한민국이라는데. 큰 학문? 그런 거는, 우리한테는 있을 수가 없어.


사실, 생각해본 적 없는데. 대학, 그냥 취업하려고 가는 거 아니었나? 우선 대졸자여야 뭐 할 수 있는 거 아니었음? 고졸이면 무시하는 거 아니었어? 잘은 모르겠는데 대충 어른들이 그러니까.



“엄마아빠는 엄청 반대하시는데. 나도 엄청 반대하고 있거든. 왜, 무조건 대학을 가야돼? 고졸이면 무시해서? 상관없잖아. 대학은 내가 나중에 정말 가고 싶을 때 가도 되는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하면 이렇게 의미없이 공부하는 것도 정말 싫고. 휴우. 이런 얘기, 웅도한테만 처음 얘기하는 건데.”

“······뭔가 되게 의무감 가지게 되네. 상담해줘야 할 것 같고.”

“아아니, 아니야, 그런 건 아니구. 너무 답답해서, 말하고 싶었어. 들어준 것만으로 고마워.”



민서의 얘기를 들으니 또,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민서는 어른스러운 것 같다. 분명하게,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아 나 공부하기 싫어 대학 안 갈래~’ 하는 생때가 아니다. 대학의 필요성과 이해득실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본인의 의지로 가지 않겠다는 것. 본인이 필요하지 않는데 뭣하러 4년이란 시간과, 그 기간동안 등록금에, 책값에, 이것저것 많은 지출을 하느냐, 그런 말이지. 취업이 문제라면, 엄마아빠 국밥집에 취업한다거나. 아니면, 막말로 민서가 하고 싶은 거 어떤 것이든 4년간 열심히 배우면 취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어른스런 생각을 하는 민서를 보고 있자니 나는 내가 부끄럽다. 대충 주워 들은 얘기로, ‘고졸이면 무시당해. 취업 때도 고졸이면 무시당해. 무조건 대졸 졸업장은 따고 있어야지’ 하는 느낌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 하고 있는 자신도 또 부끄럽고.



“나는, 네 생각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에······ 너무 대충 대답해주는 거 아니야? 대강대강?”

“아니, 말로는 잘 설명 못 하겠는데. 어쨌든 그런 기분이야. 민서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부모님과 말다툼할 정도라면. 네가 원한다면, 그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 생각이 들어.”

“······응, 고마워.”



희세의 일을 보고서,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민서에게 물어본 것인데 도리어 민서의 고민을 듣게 된 나. 하지만 그걸 들으니까, 한 가지 확실하게 확신이 선다. 부모님의 의견보다, 내 의견이 중요하다는 것을. 어찌됐던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 사실 내가 조언해줄 것도 없이, 희세랑 민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만. 괜히 나대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마음이 들었다.


좋아, 행동으로 옮겨보자! 야자 끝나고, 기숙사 들어가는데 무슨 행동으로 옮겨, 옮기길. 이건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내일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희세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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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01화 - 3 +3 16.03.23 1,047 10 20쪽
234 01화 - 2 +7 16.03.20 903 9 23쪽
233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6 11 20쪽
232 3부 시작은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3 16.03.15 991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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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18화 - 4 +1 16.02.22 829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8 10 19쪽
228 18화 - 2 +8 16.02.01 906 1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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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7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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