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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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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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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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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DUMMY

그 해 겨울, 아직 눈이 오지 않은 시기, 누구라도 축복받아야 할 것 같은 크리스마스에, 우리에겐 너무나 큰 일이 다가왔다.


침착맨의 교통사고. 나는 당일날 미래의 전화를 받고 병원까지 가서 상황을 봤고, 다른 애들도 곧 소식을 들었다.


침착맨은, 우리랑 직접 알고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미래 남자친구니까, 꽤나 알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미래랑 침착맨 초창기에 미행해서 고백하고 사귀는 장면 다들 지켜봤으니까. 아는 사이도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침착맨’이란 별명이 있는 걸 보면, 남이라고 단정짓기는 애매하다. 그래서 남일같지 않다.




“어떻게…… 되었데?”

“아직. 중환자실.”



점심시간. 밥을 먹으며, 모두의 눈치를 살피며 나에게 묻는 희세. 나 또한 착찹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사고로부터 이틀. 달라진 건 없다. 우리가 생각한 교통사고보다 훨씬 큰 것을 당했는지, 침착맨은 중환자실에 있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중환자실인데. 불안한 기운이 엄습하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미래는, 사실 뭐 여자친구니까, 다친 당사자 친족은 아니니까 학교를 빠지거나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학교에는 나와 있지만, 온종일 멍한 상태. 당연하겠지. 오후 보충수업 끝나면 홀연히 학교를 나선다. 침착맨 상태 보러 가는 거겠지. 선생님한테 말하고 가는건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 해도, 선생님도 뻔히 보셨으니까. 그 절박한 상황을. 안타까운 미래의 심경을.



“많이…… 다쳤구나.”

“응……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후우.”



성빈이의 가냘픈 말. 한숨 짓는 유진이. 나 또한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세한 정황을 미래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정황 상 사고 현장에 미래가 있었던 것 같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저번에, 경찰 진술 때문에 수업 몇 시간 안 나왔으니까. 침착맨 다친 그 사고 현장에서, 사건 진술 하러 간 미래 심정이 얼마나 아플까.


그런 껄끄럽고 착찹하고 씁쓸한 점심시간. 미래는 입맛이 없다고 오지 않았고, 해서 나머지 애들끼리 학교 앞 분식집에서 거지같은 분위기로 앉아 밥을 먹는 시간. 우울한 분위기, 축축 처지는 기분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암만, 유쾌할 리가 없다. 미래가 그런 일 당했는데. 눈치 없이 발랄하게 얘기할 것 같은 리유조차. 묵묵히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미래, 어떡해. 벌써 우울증 걸린 것 같애. 그 애, 죽는 거야? 죽으면 어떡해?”

“아니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럴 리가 없잖아. 죽긴 왜 죽어. 다 같이 응원해야지.”

“그치만…….”



그렇게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눈치없이 말을 꺼내는 리유. 미래가 없었기에망정이지, 아무리 리유라도 이런 말 하는 거 미래가 들었으면…… 피가 거꾸로 솟지 않을까.

리유의 당치도 않은 소리에 펄쩍, 내가 변명이라도 하듯 얼른 대답한다. 죽는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리유의 말에 유진이도 민서도, 다들 침울한 표정이다. 더욱 처지는 분위기. 미래의 괴로운 마음, 우리도 충분히 영향을 받고 있다.


다들 암묵적으로 느끼고 있지. 「중환자실」이라는 단어의 무거움을. 교통사고에, 중환자실이면 어떻게 되는 건지. 현대 한국의 의료를 굳건히 믿고, 또 생각보다 많이 다치지 않아서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중환자실」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죽음’이란 걸 은연 중에 다들 염두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욱 말을 꺼내기 껄끄러워 하고 있고.



“끝나고, 저녁시간에 병문안 가보자. 야자 조금 늦어도. 아니면 선생님한테 말하고 가던지.”

“그래, 그러자! 다들 괜찮지?”

“으응…….”



희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라도 해야, 모두의 마음이 위로가 될 것 같다. 우울한 분위기가 그나마 잠시라도 나아진 것 같다.





사실, 이전까진 굉장히 들뜬, 흥청망청한 분위기였다. 꿈에 그리던 희세랑 사귀고, 어색한 기간도 지나 굉장히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고, 그러면서도 성빈이나 리유나 유진이나 민서나 시아나, 다른 애들하고도 어색하지 않고 충분히 즐거운 학교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으니까. 크리스마스 때에도 희세랑 데이트하고 잘 놀았고. ……그 때에, 미래는 그런 사건을 당했지만.


어쨌든 그래, 우리라도 굳건히 나서서 미래를 도와줘야지.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벌써 2년 가까이 친구인 미래인데. 늘 활기차고 말도 안 되는 드립 치던 미래가, 저렇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창밖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참, 기분이 이상하다. 교실엔 30명이 있는데 실제론 한 명도 없는 것처럼 텅 빈 느낌. 얼른, 침착맨이 낫고 미래도 활기참을 다시 되찾았으면 좋겠다.







--






“저, 저기…….”



굉장히 창피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간호사 분에게 말을 걸었다.


병원. 침착맨 병문안을 위해 저녁도 안 먹고 보충수업 끝나자마자 다같이 버스 타고 병원에 왔다. 나, 희세, 성빈이, 리유, 유진이, 미래, 시아. 미래 빼고는 전부 다 왔다. 미래는 보충수업도 전에 이미 조퇴 형식으로 나가버려서. 선생님한테 말하고 나갔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럴 정신도 아니겠지.



헌데 웬걸, 병원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예상한 그런 게 아니다. 대강 ‘신경외과’ 라고 적힌 병동 쪽으로 알고 있었는데, 병실을 아무리 찾아봐도, 침착맨 이름이 적힌 병실은 없다. 침착맨 본명이 ‘송 준’ 이라는 것 정도는 아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 이름은 없다.

우물쭈물 다들 어쩔 줄 몰라하는 때. 이런 때, 남자인 내가 나서지 않으면! 하고 말해도, 나도 일개 고등학생. 어디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뭔가 되게 겸연쩍고 창피해졌다. 야무진 희세가 물어봐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지 말라니까! 내가 한다! 하곤 당당하게 카운터 같이 생긴 곳으로 가 앉아 있는 간호사 분께 물었다.



“집중치료중환자실 계시구요, 집중치료실은 면회시간 아니면 면회 하실 수가 없거든요. 미리 시간을 보고 오셨어야 하는데.”

“아…… 네, 그…… 그러면, 지금은 못 보는 건가요?”

“네, 집중치료실은 환자 분께서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라, 면회시간 외에는 보실 수가 없습니다.”

“네…….”



카운터에 앉아 있는 간호사 분의 친절한 설명에, 나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뭔가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 몸을 뒤로 돌려 애들을 쳐다보니 애들도 다들 기가 죽은 분위기다. 그렇게까지, 심각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데.


과연, 그제야 병실이 아닌 ‘집중치료실’이라고 적힌 큰 문이 보인다. ‘면회가능시간 : 14:00, 16:00, 15분 간.’, ‘면회 시 반드시 입구에서 손을 씻고, 방역모자 및 옷을 입을 것’ 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래서 미래가 먼저 나갔구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훨씬 심각하게 다쳤구나, 침착맨. 그런 착찹한 정보들만 들어올 뿐이다.



“어…… 미래야. 어디야? 우리, 그…… 병원 왔는데. 응. 아. 어. 응.”



미래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지금 시간은 이미 6시가 훌쩍 넘은 상태. 면회시간하곤 너무나 많이 동떨어진 시간이기에, 미래는 아마 병원에 없겠지. 전화해서 물어보니 의외로, 병원에 있댄다. 집중치료실 조금 건너에 ‘보호자 대기실’이란 곳이 있다는데, 그 곳에 앉아 있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황급히 미래를 찾아 나선다.



“…….”

“왔어요. 바람 좀 쐬러 나갈가요. 음료수 좀 사 줘요.”

“어…… 응.”



의자 몇 개와 벽걸이 TV가 있는 황량한 보호자 대기실. 그 곳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미래. 우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소곳한 존댓말로 말한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하다. 그렇다고 반말 쓰면 또 어색해서 그것대로 이상할 것 같은데. 뭐랄까,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덤덤해서 더욱 이상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가녀린 미래를 따라 밖으로 나선다.





“……괜찮아?”

“안 괜찮아요.”

“……그래.”



다들 음료수를 하나씩 들고, 옥상 위로. 병원이 커서 그런가 옥상도 상당히 크다. 바람에 미래의 머리칼이 흩날린다. 쓸쓸한 표정으로 저 멀리를 바라보고 있는 미래에게, 눈치없이 물어본다. 별 망설임 없이, 평소와 비슷한 투로 말하는 미래. 조금 기운이 없어 보인다. 볼이 조금 홀쭉해진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의외로 말투가 평소 비슷해서 내가 다 놀랍다.



“기운 차려야죠. 계속 그러고 있을 순 없잖아요.”

“……의젓하네. 미래.”



나에게 먼저 말하는 미래. 조금 야윈 모습으로 당당하게 말하니 뭔가 짠한 느낌. 대답은 옆에 있는 희세가 대신해준다. 미래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곤 옥상 난간에 올려놓고 다시금 먼산을 보며 말을 잇는다.



“크리스마스 날, 준이 알바하고 있었어. 나랑 약속 했었는데, 갑자기 편의점 대타 뛰어야 한다고. 당연히, 울고불고 난리 피웠지. 그 때, 아마 민서랑 유진이는 같이 봐서 알 거야.”

“응…….”



불과 며칠 전, 그 때의 기억에 민서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유진이도 착찹한 표정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미래는 애들을 한 번 둘러보다, 다시금 이번엔 먼 하늘를 바라본다.



“알바 끝나고, 9시 넘어서. 지금이라도, 아직 크리스마스 안 끝났으니까 같이 놀자고. 그랬거든, 준이가.”

“…….”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 미래. 리유가 괜히, 내 옆에 와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성빈이도, 불안한 눈초리로 미래를 본다.



“그런데…… 그 때 내가, 괜히 내가, 내가…… 귤……! 귤 먹고 싶다고 해서. 준이가 그거 사주겠다고. 왜 하필이면 그런 때만 날뛰어서! 괜찮다고, 집 가서 먹는다고 했는데…… 그래도, 남자친구가 사준다고 하니까, 나도 좋아서…… 말리지 않았는데……!”



격앙된 미래의 목소리. 이제는 완연하게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 목소리만 떨리는 게 아니라 몸도 같이 떨린다. 시아가 미래 옆에 가 미래의 어깨를 붙잡아준다. 미래는 계속 몸을 떨며, 말을 잇는다.



“그 때…… 내가 그런 말만 안 꺼냈어도…… 귤, 그깟 귤, 먹고 싶다고 뗑깡만 안 피웠어도! 이런 일, 없었을 텐데……!”

“아니야, 그런 거! 미래 네 잘못 아니야, 그건! 남자친구가, 너 생각해서 그러다 그런 거잖아. 죄의식 가질 필요 없어, 응?”

“그래! 네가 그 때 옆에 있었으니까 빨리 신고해서 바로 병원 올 수 있었잖아! 네 역할이 큰 거야!”

“……그치만, 그치만……!”



얼굴을 이 쪽으로 돌리며, 토해내듯 말하는 미래. 부들부들 떨리는 작은 가냘픈 몸,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 온 몸으로 슬픔이 퍼지고 있는 미래의 모습에 다들 어쩔 줄 몰라한다. 성빈이가 먼저 위로해주고, 나 또한 허둥대며 말을 잇는다. 시아는 미래 손을 꼭 잡아주고, 리유도 반대편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미래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준이…… 잘못되면 어떡해……? 나, 그럼 어떻게…… 어떡해, 나 때문에?! 응? 어떡해…….”

“잘못되긴 뭘! 지금 충분히 잘 치료하고 있잖아! 녀석이라면 분명, 금방 이겨내고 나올 거야! 응! 그러니까 네가 기운내야지! 우리가 기운 내야지! 우리가 응원해줘야, 이겨내고 나올 수 있지! 그치?!”

“응, 응!”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정을 토해내는 미래. 슬프겠지, 많이 슬프겠지. 어떨 때엔 차라리, 울음을 멈추지 말고 다 울어버리는 게 속 시원할 때도 있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말린다고 울지 않을 미래가 아니기에, 울지 못하면 더욱 슬플 미래기에 위로의 말만 건넨다. 옆에서 리유도 내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아…… 후읏, 큿! 후으…… 흣.”

“…….”



겨우 울음을 그치고 훌쩍이는 미래. 두 손으로 아이처럼 눈물을 닦는다. 초토화된 분위기에 다들 침묵. 묵묵히 미래만 바라본다.



“하앗. 버텨야죠. 버텨야지. 응, 난 괜찮아. 하핫.”

“응…….”



존댓말 한 건 나한테 하는 말이고, 뒤부터 반말은 다른 애들에게도 하는 말일까. ‘나는 괜찮다’고 어필해서, 애들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것일까. 실제론 누가 봐도, 괜찮지 않은데. 쓸쓸한 표정으로 희세가 대답해준다.



“엄마는, 그런 말도 하더라구. 네가 뭐 와이프냐고. 아주 열녀 나시겠다고. 엄마랑 사이 안 좋긴 한데, 진짜 그런 말까지는…… 나도, 내가 겨우 여자친구 주제에 준이 이렇게나 다치게 해서, 얼마나 미안한데, 얼마나 죄스러운데…….”

“…….”



그것만큼은, 더 어떻게 대답할 수 없는 무겁고 진지한 말. ……솔직한 내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엄마란 사람이 어떻게 딸한테 그런 소릴 할 수 있을까, 싶다. 딸이 남자친구 다쳐서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는데, 마음에 상처를 잔뜩 입었는데 위로는 못 해줄망정 상처를 더 깊이 내 버리다니.


와이프는 아니지, 여자친구지. 근데 그게 그렇게 단순한 관계는 아니잖아. 어른들처럼 계약혼, 사실혼 이런 관계는 아니지만. 청소년들의 가벼운 관계라고 단순히 생각하나본데, 전혀, 그런 거 아니거든. 어떻게 보면 부모님보다 훨씬 가깝고, 부모님에게도 공유하지 않는 비밀, 자신에 대한 일, 서로에 대한 일. 누구보다 가깝게, 누구보다 친한 게 남자친구였는데. 특히 미래에겐.


침착맨이랑 사귀고, 미래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자기가 봐도 참 괴팍한 성격인데, 준이는 그걸 다 맞춰준다고, 그래서 너무 좋다고. 그리고 나는 두 번째 정도로 좋다고. 나는 맞춰주긴 하지만 드립 정도까지니까, 그런 식으로 장난식으로 말했었다. 어쨌든 그 정도로 좋아하는 미래다. 그런 미래 마음도 모르고, 그런 소릴 들었다면…… 충분히, 너무도 슬펐을 것 같다.



“어쨌든, 다들 고마워. 이렇게 와 줘서. 아─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 모두한테 위로 받으니까.”

“……회복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그럼 다시 질질 짤까요. 언제까지 울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 우리 미래, 다 컸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순식간에 울음을 그치는 미래. 다시금 평소 같은 밝은 표정과 말투로 말한다. 또 전혀 의외라,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하니 싱긋 웃으며 말하는 미래. 정색하곤 대답한다. 평소와 같은 활기찬 웃음이지만 뭔가, 여전히 서글픈 느낌을 지울 순 없다.



“같이 가요. 희망으로.”

“그래.”



아직도 드립 치는 미래가 조금은 어색하다. 다 마신 음료수 캔을 들고 우르르 같이 옥상을 내려온다.








--







밤, 기숙사. 연말이고 나발이고 우리는 늘 기숙사에 묶여 있다. 뭐, 당연한 것이려나. 아직 학기도 안 끝났으니까. 야자도 끝나고, 기숙사 돌아와서 적당히 침대에 누워 휴대폰이나 보다 잠이나 잘까 하는데 희세의 성화로 강제로 4층 열람실로 끌려갔다.



“음─ 춥다. 추워.”

“겨울이니까 당연히 춥지.”



잡히지 않는 공부를 하다가,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아 바람 쐰다는 핑계로 열람실 밖 쉼터 같은 의자에 앉았다. 바깥도 아닌데도 춥다. 딱히 난방이 되는 건 아니니까. 희세도 같이 나와 앉았다.


사실 지금의 기숙사, 상당히 널널한 편이다. 고3 언니(?)들은 수능이 끝났으니 다 나갔고, 1,2학년만 있는 가운데. 연말 가깝기도 하니 누군들 마음이 싱숭생숭하지 않을까. 공부하는 애들도 별로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째서, 열람실로 끌고 올라온 건지, 희세는. 가뜩이나 미래 일 때문에 심란한데. 미래 일 때문에 공부 안 한다고 하면, 그건 또 핑계겠지만.



“고3이잖아. 그렇게 퉁퉁 불은 표정 짓지 말구. 공부 해야 하잖아.”

“그렇지, 알지, 아는데. 흠.”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희세는 토라진 남동생 달래는 누나처럼 말한다. 알지요,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라는 것. 하지만, 그 이전에 좀. 그렇다고. 확실히, 신경이 그 쪽으로 쏠리니까. 뭘 해도 안 잡히겠지만 특히 공부는 전혀.



“……웅도 너는, 이런 일 생기면 어떡할 거야.”

“음, 굉장히 아파하면서 중환자실에서 치료 받고 있지 않을까.”

“아니, 무슨 소리야!”

“내가 다치는 포지션 아닌가, 남자친구니까.”



이런 엄한 드립도, 아까 미래의 당찬 태도를 보지 않았다면 못 치겠지만. 미래가 ‘이겨 나가야지.’ 하고 그나마 활기찬 태도를 억지로라도 보여주니 나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희세는 잔뜩 얼굴을 붉히며 짜증을 낸다. 이런 장난은 희세는 별로 안 좋아하니까. 꽤 진지한 타입이니까, 희세는.



“괴롭겠지. 미친 듯이 괴롭겠지. 세상 누구보다 괴롭겠지. 정말…….”

“피. 그런 사람이 그런 말장난 해? 미래 들었으면 진짜.”



지금도 괴로운데. 미래가 당한 일인데도 내가 다 괴로운데, 내가 그 당사자라면. 솔직히 기절해버리지 않을까, 그 자리에서. 희세가 심하게 다친다면.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면. 게다가 미래는, 엄마라는 사람한테 그런 정신공격도 당했으니. 그럼에도 버티고 있는, 미래의 정신력이 참 대단한 것 같다. 나사 한두개 빠진 것 같이 보여도, 실제론 굳건하구나, 이번에 느꼈다. 미래에 대해. 희세는 내 대답에 믿음이 안 간다는 듯 뾰로통한 표정으로 툭 내뱉는다.



“그건…… 뭐. 희세 너는?”

“…….”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희세. 생각하는 중인가. 힐끔 희세 눈을 쳐다보니, 어떤 때보다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건, 절대 싫어. 절대. 그렇게 되면 나…… 미래처럼 견디진 못할 것 같애.”

“……보통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가 미래 도와줘야지.”

“응.”



아, 얘 갑자기 왜 이렇게 귀엽냐. 나 빤히 쳐다보면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하는데 왜 이렇게 귀여워. 평소 고압적이고 자존심 강한 태도는 어디가고 갑자기 무슨 리유 같은 느낌으로 의존적으로 말하는데. 기분 이상하잖아. 아무렇지 않은 척 심드렁하게 대답하니 희세는 여전히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에 잠깐 집 갔다 와야지. 도시락 싸오게.”

“도시락? 도시락은 왜?”

“미래 챙겨주게. 요즘 밥 거의 안 먹는 것 같아서. 그러다 쓰러지겠어.”

“응, 그렇네.”



도시락이라니, 되게 엄마 같은 씀씀이구나. 다른 건 몰라도 끼니만큼은 꼭 챙겨주는 엄마 마음. 하긴, 희세는 그게 좋았지. 예전에 자취방 살 때도 매일 같이 와서 아침밥 지어줬는데. 갑자기 추억이 새록새록 하네.



‘우우우우웅─’

“어오 깜짝이야.”

“응?”

“어어, 미래.”



전화가 오고, 흠칫 놀랐다. 아니, 아닐거야. 두 번째로 놀란 건, 휴대폰에 「미래년」이라고 뜨니까. 어깨를 들썩이며 놀라는 나를 보고 묻는 희세에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한다.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 어째서일까.


미래에게 전화올 일이 별로 없는데, 게다가 이 시간에 오는 전화라면.


받고 싶지 않지만, 안 받을 수는 없기에. 전화를 안 받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희세 눈치도 있고, 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

“어어.”



다시금 기운이 없어진 미래의 목소리. 울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은, 차분한 목소리라 일말의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삼킨다. 하긴, 나는 참 무슨 이상한 상상을 한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준이…… 갔어.」

“………………어?”



미래의 말에 움찔, 그대로 멈췄다. 한 20초 동안은 말을 못 한 것 같다. 얼마나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는지 희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정도. 겨우, ‘어?’ 하고 물으니 미래도 한동안 대답이 없다.



「……방금 전에, 5분 전에, 이제…… 그렇게 됐데. 나, 마지막까지 지켜봐주지도 못하고…… 흣, 하아. 어떡하지.」

“…….”



더듬거리며 말하는 미래. 울먹인다거나 그런 목소리는 아니다. 차분하고, 힘없는 목소리. 도리어 그래서 더 무섭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어떤 감각도 없는 것 같은 건조한 미래의 목소리에.











더는 뭐라고, 대답해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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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01화 - 3 +3 16.03.23 1,050 1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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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9 11 20쪽
232 3부 시작은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3 16.03.15 994 10 15쪽
231 18화 - 5 +7 16.02.23 1,064 12 17쪽
230 18화 - 4 +1 16.02.22 830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9 10 19쪽
228 18화 - 2 +8 16.02.01 909 10 22쪽
227 18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7 16.01.26 880 12 16쪽
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8 17 7쪽
225 17화 - 4 +7 16.01.06 811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71 13 19쪽
223 17화 - 2 +8 16.01.03 944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7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3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9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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