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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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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5.29 22:59
조회
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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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20쪽

04화 - 3

DUMMY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을 유지한 채, 우리는 그저 묵묵히 샤프를 움직인다. 뭐, 재미있을만한 게 있나, 고등학교 3학년생의 수능 공부라는 게. 자고로 뼈대가 튼튼해야, 건물이 튼튼하게 서는 법이여. 40년 한옥 건축장인 김○○씨의 고집은 오늘도 대단합니다. 근데, 나는 뼈대가 튼튼하지가 않잖아. 아마 안 될 거야. 아핳, 이힣, 우흫. 잘은 모르겠고, 리듬이나 탑시다. 음악 들어야징.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지 말라니깐. 해석이 돼, 그거 들으면서 하면?”

“······넵, 죄송합니다.”



조금이나마 행복한 기분이 들 것 같았는데. 하늘과도 같은 나희세님의 명령이라면, 나는 따라야만 한다. 수학문제 푸는 때 제외하곤 음악은 듣지 말 것. 그나마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희세다. 음악 들으면 가사나 리듬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나. 별 수 없이, 서글픈 표정으로 나는 이어폰을 뺏다. 아아. 진짜, 죽을 것 같당.


별다른 것은 없다. 늘, 똑같이 공부하는 일상. 조금이라도 딴짓을 하면, 희세에게 잔뜩 혼나는 그런 일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지만, 공부라는 게, 그렇지만. 하아. 죽겠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공부하지 않는 그런 생으로 태어나고 싶어.






“······.”

“······.”



침묵의 열람실. 고3들의 밤은 한참 길다. 10시에 야자가 끝나도, 기숙사에 가서 12시가 넘도록 공부한다. 심한 애들은 2시, 3시까지 한다고도 하는데. 나는 절대 그렇게는 못 하겠다. 그럼 다음날 오전에 엄청 졸리잖아. 여자애들은 생긴 것과 다르게 독종이 많아서,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피 터지게 공부하는 애들도 많은데. 어휴, 이래서 여자애들이 공부 잘 하지. 남자애들은 다 뭐 잡고 반성해야 해. PC방이나 가고, 만화나 보고. 그러고 결과가 같길 바라면 도둑놈 심보지.


스윽 열람실에서 머리를 까고 열을 내며 공부하고 있는 여자애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기분이 미묘하다. 격세지감이랄까, 1학년 때 기숙사 처음 들어와서, 성빈이랑 같이 기숙사 올라와서. 공부하는 고3 누나들 보고, 참 대단하다 생각하면서 나도 언젠간 그렇게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그 누나들 꼴이 되었다. 그 누나들, 다 대학 갔겠지. 하하.







“스터디 그룹 같은 거 하고 있지 않아?”

“응?”



갑갑한 마음에 잠깐 열람실 옆 옥상에서 쉬고 있는 타이밍.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성빈이. 다행히 급진세력(?)처럼 머리를 까는 행위는 하지 않아 청초한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성빈이다. 아무리 불편해도 그런 짓거리(??)는 하지 않는 성빈이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나.



“응, 토요일마다 모여서 하고 있긴 한데.”

“나도 같이 해도 될까?”

“아······ 방해만 될 텐데.”



성빈이의 제안에 나는 조금 망설이며 대답했다. 정상적인 스터디 그룹이라면 뭐, 얼마든지 환영하겠지. 성빈이는 성실하고, 공부도 잘 하고, 스터디 그룹에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 방해는 되지 않을 아이니까. 하지만, 우리 스터디 그룹의 특수성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바보 3남매 스터디 그룹이라. 수준이 무척 낮아. 사실대로 말하자면, 스터디 그룹이라기보단 희세가 알려주는 재활치료 같은 거랄까.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발버둥 쳐보려는 바보 3남매의 수능 재활 프로젝트.”

“에헷, 바보 3남매라니. 수능 재활은 또 뭐야.”

“실제로 그러니까.”



나의 창의적 명명법에 성빈이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이런 썰렁한 개그에도 잘 웃어주는 성빈이는 분명 천사임에 틀림이 없다. 아, 영어 너무 많이 봐서 이제 생각도 영어 직역체로 하게 되네. 성빈이는 뭐, 1학년 때부터 치유계였으니까. 내 머릿속 임의 정의에 따르자면 말이지.



“누구누구 하는데?”

“나랑, 리유랑, 미래랑, 희세. 뭐, 실질적으론 희세가 시간 내서 우리 감독해주는 식이나 다름없지만. 토요일에 모여서 모의고사 문제만 들입다 풀고 체점하고 혼나고, 뭐 그런 거지.”

“그럼 나두 할래! 같이 공부하는 거잖아? 모르는 거 있으면 나도 도와줄게.”

“폐 아닐까······ 우리 같은 병X 돌머리 가르치느라 희세도 골머리 앓고 시간 낭비 하고 있는데.”

“으으응! 가르쳐주는 게 더 확실하게 배우는 거니까. 괜찮다고 봐!”

“그런 긍정론이 통하기엔 너무 갈 길이 시급한 수능이 아닐까, 싶은데요. 흐헣.”

“같이 해도 되?”

“뭐.”



어쨌든 성빈이는 치유계 성녀 타입인지라,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내 부정적인 말에도 고개를 저으며 어떻게든 스터디 그룹에 들어오려 말한다. 앞서 말했지만, 성빈이가 들어오면 우리는 이익이면 이익이지 손해는 아니다.


희세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조금은 분산될 수도 있겠다. 아무리 희세가 공부를 잘 해도, 세 명을 혼자 컨트롤하는 건 조금 무리가 있을 테니까. 무리라기 보단, 시간 낭비가 심하니까. 듀얼 코어가 되면 좀 더 효율적으로 바보 3남매를 컨트롤 할 수 있겠지.


응, 괜찮겠다. 이제 두 사람의 인생을 조지는 거야. 바보 세 명이서. 물론 바보 세 명의 인생은 괜찮아지지 않으니까─좋은 대학을 못 가니까─, 도합 다섯 명의 인생이 망하는 거야. 이힣! 망했어, 전부 망했다구! 하하하하하하핳핳ㅏ하!



“그러면, 이번주 토요일부터. 아예 같이 만날까?”

“응! 언제야?”

“아침부터 하는데, 9시에 딱 모이기로 했거든.”

“와, 되게 아침부터 하네?”

“공무원처럼 8시간 빠싹 하는 거지. 희세 지론이 아침에 집중 잘 된다는 마인드라서, 주말인데도 강제로 일찍 일어나서······ 어휴.”

“응, 알았어.”



적절하게 약속을 잡는 나와 성빈이. 성빈이는 스터디 그룹에 대한 기대로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희세에 이어 성빈이의 인생까지 말아먹을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농담이지. 성빈이한테까지 방해되지 않게,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네. 애들한테도 말해야겠다. 우선 마나님한테 보고부터 해야겠지. 내 멋대로 다른 여자애를 끌어들였(?)지만 뭐, 괜찮겠지.



“뭐, 상관없지.”

“우리 바보 3남매가 방해나 되지 않을까 싶은데.”



공부를 다 끝내고, 새벽 1시. 열람실을 나오며 걸어가는 때에 희세에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하는 희세. 이런 거 저런 거 다 빼도, 성빈이랑 희세는 친하니까. 당장 룸메이트기도 하고.



“공부 열심히 하면 되지. 방해는 아니니까, 나도 공부 하고 있으니까.”

“응, 그치만─ 하아. 가끔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겨우 3번 해 놓고 무슨 쉬고 싶다그래. 누가 들으면 하루에 막 10시간 씩 고시패스하려고 공부하는 고시생인 줄 알겠네?”

“아하핳. 안 하던 공부 억지로 들이미니까 미쳐버릴 것 같아서. 내가 내가 아니게 돼버렷!”

“시끄러. 밤이잖아.”



계단을 내려가며 드립을 치는 나. 싱긋 웃으며 태클 걸어주는 희세. 뭐랄까, 이렇게 희세랑 공부얘기 하면 기분이 묘~하다.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아직까지 이상하고 어색한 기분이 남아서 희세만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울렁거리고 좋았었는데. 지금은, 좀 과하게 말하면 ‘부부’가 된 기분이랄까. 익숙하고 편하고 좋다.



“우리는 이제, 부부같이 된 거 같아.”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 이상한 얘기가 아니라. 되게 편해지고, 그런 것 같아서. 잘 싸우지도 않고.”

“내가 참는 거지, 내가.”

“아핳. 그렇지. 희세찡이 관대한 거니까. 미안합니다.”

“······흫.”



두 손을 모으고 비는 것처럼 희세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사실 희세가 엄청 관대한 거지. 나한테는 과분한 여자애지. 잘 알고 있기에 늘 감사하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드는 찰나, 희세가 입술을 깨물며 나를 쳐다보는 게 보인다.



‘쪽.’

“자.”

“······넵.”



아무렇지도 않게 내 볼에 뽀뽀하는 희세. 짧게 한 마디 ‘자’ 라고 말한다. 굿나잇 키스 같은 건가. 얼떨떨 해서 대답하는 나. 희세는 만족한 듯 미소 지으며 홱 돌아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복도를 걷는 희세를, 몇 발자국 쫓아가 팔을 잡아당겨 몸을 돌리고, 이번엔 내 쪽에서 먼저 뽀뽀를 했다.


······키스 같은 건 아니고, 그냥 가볍게 뽀뽀.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 기숙산데. 이 새벽에 누가 보겠냐만은. 아직 열람실에 애들 있거든? 희세는 마냥 웃으며 ‘됐으니까 이제 가, 자야지 내일 공부하지.’ 하고 말한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유치원생이 된 나. ‘응.’ 하고 다시금 계단 쪽으로 간다.


······편해졌다는 거, 아직은 함부로 할 말이 아닌 것 같네. 다시 막 두근거리잖아. 막 떨리잖아. 음······ 잘은 모르겠고, 잠이나 잡시다.












--












“응, 근데 버스는 왜 타는 거야?”

“나는, 결심했거든.”

“응?”



버스에 탑승해, 나란히 자리에 앉은 나와 성빈이. 성빈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묻는다. 그도 그럴 게, 토요일에, 스터디 그룹을 하기로 약속하곤 만났는데 갑자기 버스를 타고 다른 데를 가고 있으니. 시내 멀리에서 공부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겠지만 유감, 우리 스터디 그룹이 공부하는 유진이네 학원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성빈이를 쳐다보며, 나는 말했다.



“나는 고3을 포기하겠다!!”

“에?!!”



부끄럽게도 꽤 큰 소리로 말한 나.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버스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힐끔 나를 쳐다볼 정도로, 꽤 큰 소리로 말했다. 성빈이도 창피해하며 놀란다. 아, 괜히 깝쳤어.



“그러니까, 어쨌든 스터디 그룹으로 가는 건 아니야. 미안해, 네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고 말았어.”

“무슨 소리야? 우리 어디 가는 건데?”

“놀러.”

“에?”



나는 우유부단한 편이다. 나는 결정장애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늘만큼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구 샘솟는다. 나는, 성빈이와 일상을 탈출하겠다. 노예가 되지 않겠다! 우워어어엉! 물론 성빈이의 시간과 인생을 망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나 때문에 여러 인생들 망치는구나. 하하하.



“일종의 상담 같은 거랄까.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에······ 한 2개월 전쯤부터.”

“엄청 옛날이네.”



금세 수긍하고 내 드립을 받아주는 성빈이. 역시 치유계야. 화내지 않고 차분히 들어주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마음의 울분을 토해내듯 천천히 말을 꺼낸다.



“계속, 계속, 계~속! 공부만 해야 하니까. 죽을 것 같잖아. 숨도 못 쉬겠잖아. 주말이고 뭐고 없어. 주말엔 그냥 좀 널널하다 뿐이지, 공부만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잠깐 짬내서 게임 할 수도 있어. 잠깐 짬내서 인터넷 할 수도 있어. 그치만 그것도 기숙사 사니까 불가능. 휴대폰이라도 없었으면 진짜 말라 죽었을지도 몰라.”

“응. 그렇지.”



심각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던 정 군. 공부에 대한 압박, 수능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는데. 그의 일탈에 묵묵히 수긍하며 들어주는 임 양. 같은 학생으로서, 묵묵히 공감하며 대답해줍니다.


······무슨 인간극장 같은 컨셉인데. 어쨌든 성빈이에게 말하고 성빈이는 들어준다. 버스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나의 넋두리는 계속된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계속 하고 있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2학년 때와 3학년 때의 생활패턴이 너무 극적으로 확 바뀌어 버렸으니까.


자취라도 하고 있다면, 그나마 컴퓨터라도 하며 숨통이 트일 텐데. 내가 자처해서 들어간 기숙사지만, 컴퓨터 한 번 못 하고 공부만 계속 하니 죽을 노릇이지. 친구들, 내가 남고라서 친구들이 있었다면 같이 PC방 가고 인생을 낭비했을 텐데. 여긴 여고이고, 내 주위 애들은 다들 PC방 안 가니까. 더 죽을 노릇.



“그래서 충동적으로 오늘 하루 놀겠다는 거야?”

“······그렇지요.”

“그리고 괜히 나까지 끼어서?”

“······죄송합니다.”



희세한테 놀자고 할 순 없잖아. 된통 혼날걸. ‘공부나 해!’ 하면서. 리유나 미래는, 분명 희세에게 이를 것 같고. 리유는 천진난만하게 악의 없이, 미래는 킬킬 웃으며 작은 악마와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나마, 내가 사정하면 보안을 유지해줄 것 같은 애가 성빈이니까. 성빈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를 쳐다본다.



“웅도 너 그러다 희세한테 혼난다? 공부 때문에 노는 것도 노는 거지만, 나랑 이렇게 데이트 하듯이 놀러 가면 희세 엄청 화내지 않을까?”

“희세는 관대하니까, 그 정도 가지고 화내진 않을 거야. 어때, 하루만 노는 건데! 뭐 별 거 엄청난 거 하고 놀겠다는 거 아니잖아! 그냥 푹 쉬고 싶은 건데!”

“어휴. 못 말린다니깐.”



그냥 푹 쉬는 건 방에서 퍼질러 쉬는 게 최고인데. 그럴 수 없지, 기숙사 사는데. 희세랑 같이 사는 거나 마찬가진데. 그나마, 오늘은 ‘성빈이 데리고 온다’는 핑계로 그녀의 감시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



“희세한테 전화 오면 어쩌려고?”

“전화는 이미 꺼놨지─ 하핳. 망했어. 나도 몰라, 이제.”

“나한테 전화오면?”

“음······ 그건, 그 때 생각해봅시다. 우선은, 잘은 모르겠고, 놉시다!”

“어휴. 진짜아!”



막무가내식 멸망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그리고 논개인 양 성빈이까지 이끌고 이렇게 멸☆망. 자리에서 일어나 부저를 누르고 문 앞에 선다. 이제 시내로 왔으니까, 놀아볼까! 성빈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논다고 해도, 그렇게 엄청 대단한 걸 하고 노는 건 아니다. 고등학생인데 뭘 얼마나 많이 재미있게 놀겠어. 양아치도 아니고. 아니, 양아치라도 노는 것 자체는 그다지 다를 게 없잖아.


뭐, 영화 보고, 빙수 먹고, 괜히 옷 가게 돌아다니고, 카페도 가고, 아핫, 돈 쓰는 일만 널리고 널렸구나. 그런 거지. 남자애들하고 논다면, PC방 가고, 당구장 가고, 노래방 가고, 이 세 개만 주구장창 하겠지만. 성빈이 데리고 그럴 순 없으니까.


영화, 재미있었지. 특히 X나 짱 센 역사상 가장 강한 악역이 중반 이후로 뭔가 모자란 삼류악당이 되어가는 과정이. 모든 뮤턴트들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중엔 종말을 닦아주는 이도 있었다. 아하핳! 내 2시간 30분! 내 9000원! 똥이야! 똥이라고!


꽤나 더워져서, 빙수도 먹었다. 오늘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평소엔 돈 쓰기 아까워 하는 나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막 즐기고 싶은 마음에 내 쪽에서 먼저 ‘빙수 먹자!’ 하고 들어갔다. 말만 들으면 내가 다 산 것 같지만, 실은 더치페이. 돈 없는 학생이 무슨 돈을 다 내겠어. 희세랑 데이트 해도 내가 다 못 내는데, 데헷☆



“사실 나도, 생각한만큼 공부가 잘 안 되. 그래서, 오늘 막무가내로 놀러 와도 그냥 넘어가는 거야.”

“그지그지? 공부 더럽게 안 된다니까~ 아후.”

“응. 생각한 것보다 성적이 너무 안 올라서······ 후흫. 공부 잘 해야 하는데.”

“그지~ 뭔가 지향점이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어쨌든 그지. 공감할 수 있다면야 뭐.”

“하핳.”



성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는대로 지껄인다. 공부가 안 되긴 하는데, 나와 성빈이가 안 되는 게 서로 다를 텐데. 나는 아예 공부를 못 하고 있는 거고, 성빈이는 자기가 목표한 만큼 공부가 안 되는 거겠지. 애초에 나는 제대로 된 대학이나 갈까, 하고 빌빌대고 있는 녀석이고 성빈이는 법대가 목표라니까. 클라스(?)가 다르잖아잉? 이미. 내 자포자기 화법에 성빈이는 깔깔 웃는다.





“마른 하늘으으을↗ 달→려↘ 워어어엌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있는 힘껏 노래하는 나. 성빈이는 그런 나를 보며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둘이서 노래방을 가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참 거지같은 이유지만 어쨌든, 코인 노래방에서 몇 곡 간단하게 부르고 있다. 성빈이는 별로 노래 부르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 나만 잔뜩 노래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이제 목이 다 나간 것 같다.



“안 불러?”

“응, 나는 괜찮아.”

“한 곡밖에 안 불렀잖아. 한 곡 정도는 더 불러야지.”

“으으응, 부르기 싫어.”

“쳇.”



내 말에 성빈이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코인 노래방은 이게 좋지, 노래 안 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으니까. 아, 또 내가 불러야 하나. 목이 좀 쉬고 싶은데. 혼자서 주구장창 부르는 것도 좀 뻘쭘하니까. 마이크를 내려놓고, 성빈이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래도, 성빈이 덕에 오늘 제대로 노네.”

“응?”

“희세였으면 택도 없는데, 혼나기만 엄청 혼났겠지. 성빈이는 착하니까, 아핳. 스트레스 다 풀리네.”

“······.”



사실이 그러니까. 뒤가 켕기긴 하지만, 어쨌든 잘 놀았다. 오래간만에 찌뿌두둥한 몸을 푼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제 힘내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애, 그런 변명도 절로 나온다. 활시위를 너무 당겨만 놓으면 나중에 못 쓴다잖아. 가끔은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도 필요한 법이지.


성빈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지 않는다. 공감하는 것일까. 성빈이도 요즈음 무언가에 쫓기듯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까. 뭐, 그건 다들 그러고 있지만.



‘쪽.’

“?!! 엣······!”



오락실 노래방은 기본적으로 좁다. 그리고 마주보고 앉게 되어 있는 구조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서, 내 볼에 냉큼 뽀뽀를 하는 성빈이. 에에에엑!? 갑자기, 뭔데 이거?! 성빈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왜 갑자기! 이거 무슨 꿈 같은 건가? 아니, 그러기엔 너무 생생한 감촉인데?!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성빈이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웅도 잘못이야······ 이건.”

“네?! 뭐라구요!?”



이제는 책임회피까지?! 나의 성빈쨔응은 이러지 않아! 뭐 잘못 먹었어? 빙수 먹은 거 체했어!? 뭐야 이거!



“······나도 웅도 좋아했었잖아. 이렇게 데이트 하고, 희세보다 괜찮다는 말 들으면······ 아무리, 아무리 마음 다잡아도 흔들리잖아. 이건 웅도가, 명백하게 잘못한 거야. 그러니까······ 비밀.”

“······어.”



성빈이의 말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 나. 그러니까, 내가 꼬리쳤다(?) 뭐 그런 말? 왜 이렇게 패기가 넘치는데, 성빈이! 생긴 건 순진하게 생겨서, 응?! 요즘들어 애들 캐릭터 붕괴가 트렌드야? 섹드립 치는 리유도 그렇고, 성빈이도 이 모양이고! 고3 돼서 다 미쳐버린 거야?! 으앙앙아!





성빈이와의 짧은 데이트는 참, 많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거기서 그렇게 갑자기 뽀뽀를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게다가, 성빈이가 아직도 그런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 줄은.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너무 내 위주로만 편하게 생각했으니. 이러니까 괜히, 희세 보기도 미안해진다. 돌아오는 동안, 어색해서 별 말도 안 하고 묵묵히 왔다.



“잘 가.”

“응.”



여전히 어색하게 성빈이와 헤어지고. ······괜히 이렇게 했나. 이제야 후회가 밀려온다. 아니, 성빈이가 그런 짓만 안 했어도, 오늘 하루 무척 즐겁게 놀았다고, 후회따위 없었는데. 두려움에 떨며 휴대폰을 켰다. 부재중전화 59통. 새로운 톡 89건. 문자메세지 23개. ······나, 이제 죽으러 가면 되는 걸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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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6.11.14 18:53
    No. 1

    이거 혹시 작가님이 작가님 스스로 이랬으면 좋겠다고 쓰시는거 맞지요?
    작가님 현실은 시궁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농담 농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오랜만에 보는 달달한 스토리~
    그동안 공부하는 내용만 줄창 나와서 지루한감도 있었는데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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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6 1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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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18화 - 4 +1 16.02.22 829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7 10 19쪽
228 18화 - 2 +8 16.02.01 906 10 22쪽
227 18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7 16.01.26 878 12 16쪽
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6 17 7쪽
225 17화 - 4 +7 16.01.06 809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68 13 19쪽
223 17화 - 2 +8 16.01.03 941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4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1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3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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