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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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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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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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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0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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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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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9쪽

17화 - 2

DUMMY

“뭐…… 라고?!”

“아, 어서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그거 있잖아, 그거. 프릴이 치렁치렁 달리고, 치마이면서 미묘하게 몸매가 드러나는 듯한 마법의 옷. 남자가 좋아하는 3대 옷, 교복, 제복에 이은 메이드복! ……그냥 개인 취향 아닌가 싶은데.


따, 딱히 내가 메이드복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메이드복 좀 좋아해서 어때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좋잖아?! 메이드! 영국 신사! 셜록홈즈! 증기기관! 얼마나 좋아! 개인취향 막 나오네.


나는 단순하게, 성빈이와 희세를 보러 온 것인데. 희세네 반은 완전한 별천지가 돼 있다. 온통 핑크색으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 무엇보다 서비스를 하고 있는 모든 여자애들이 입고 있는 옷이, 메이드복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이후로 이런 걸 현세에서 볼 수 있다니. 많이 발전했구나, 우리나라도. 아니, 1999 문화개방을 해선 안 됐어! 아니, 좋은 것도 같고. 이상과 이성이 서로 싸우고 있는 중이다.



“앗! 어서와 주인님!”

“있잖아, 오늘도 그거 하자! 낑낑!”

“무…… 뭘 하는 건데 너희 둘?!”



화려한 밝은 분홍색 메이드복 차림의 성빈이와, 검은 차분한 느낌의 메이드복을 입은 희세. 각각 물과 메뉴판을 내려놓으며 한 마디씩 한다. 성빈이는 나름대로 적응했는지 싱긋 웃으며 말하지만 희세는 영 부끄러운지 얼굴이 상기돼 있다.


……저 대사, 엄청 엄한 대사거든?! 주인님은 뭐고! ‘그거’는 뭔데! 게다가, 희세 목소리에 전혀 안 어울리는 ‘낑낑’은 대체 무슨 의미인데!? 몰라 뭐야 얘네 무서워!



“미, 미래가, 이런 대사 하면 좋아할 거라고…… 해서!”

“걔 말을 믿어?! 근미래 한두번 겪었어?! 엿 멕이려는 거라고 걔는!”

“왜에, 귀엽지 않아? 희세 귀엽지 않아?”

“야아, 뭐가……!”



내 질문에 희세는 잔뜩 부끄러워하며 머뭇거리며 말한다. 크학! 뿅가죽네! 몸매는 어지간한 성인 여성보다 좋아서 이 반에 있는 모든 애들중에 가장 메이드복이 잘 어울리면서, 저런 귀여운 모습이라니! 순간적으로 코피가 나올 것만 같았다.


꾸욱 참고 태클을 거니 성빈이가 대답. 귀엽지 않냐고? 응, 희세 귀엽지, 나도 좋아해.



“메뉴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주인님?”

“……주인님 소리는 안 하면 안 될까. 손발이 없어질 것 같은데.”

“어머, 안 된답니다! 저희 메이드 카페에서는 손님들 모두가 주인님이시니까요☆ 아핫, 미안! 아핳!”



평소의 차분한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성빈이는 잔뜩 텐션이 올라간 하이톤의 억지 귀여운 목소리로 말한다. 근데 그것도 귀여우면 귀엽다는 게 함정. 내 제의에 성빈이는 잔뜩 귀엽게 방긋방긋 웃으며 말하다 자기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으며 사과한다.



“우와, 엄청 비싸. 뭐 이래. 무슨 바리스타라도 있어? 월급 한 500만원 주는?”

“이렇게 꾸미고 옷도 다 빌렸는데, 이 값에 안 팔면 본전도 안 나와요, 주인님! 웃는 얼굴에 서비스값까지 포함된 거랍니다!”

“성빈이 너…… 참 의외구나.”

“에헤헷.”



카페에 왔으니 주문을 해야지. 희세가 가지고 온 메뉴판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나온다. 여기 서울이에요? 뭐 이렇게 비싸요? 커피 한 잔에 5000원?! 야, 나가서 돈가스 하나 시켜먹겠다!


성빈이는 특유의 오그라드는 목소리로 귀엽고 차분하게 설명해준다. 뭔가…… 평소 이미지랑 너무 달라서 이미지 확 깨는데. 뭐, 귀여우면 된 건가. 더듬거리며,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아메리카노요, 그러면 그걸로 가져다드리겠, 앗!”

‘촤악!’

“으헉!”



별다른 말이 없던 희세. 성빈이가 철판 깔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파트를 다 맡았으니 희세도 무엇인가 하겠다는 의지가 만만한 모양이다. 적극적으로 주문을 받으려고 메뉴판을 가져가려다 그 옆의 컵을 밀어 내 바지에 그대로 쏟아버린다. 흠칫 놀라는 성빈이와 희세.



“죄, 죄송합니다!”

“저희 신입 아르바이트생이 처음이라…… 죄송합니다! 제가 닦아 드릴게요!”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희세. 얼굴이 잔뜩 빨개졌다. 성빈이는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하더니 품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손수건이라니. 이 무슨, 애니메이션 같은 상황인데. 게다가 물을 흘린 데가 에먼 곳이라서……?!



“앜! 으힉!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고! 이것도 근미래가 시켰어?!”

“……그러면 웅도가 되게 좋아할 거라고 해서, 쿡쿡쿡…… 푸하!”

“으으…… 나 근미래부터 족치고 올래!”



내 살면서 이 근방(?)을 여자애게 보이거나 만져진 적은 별로 없었는데, 이런 수치심은 난생처음이다. ─생각해보면 아니기도 한데. X알은 선생님한테 붙들린 적있고, 기숙사에서 기절했다가 성빈이한테 알몸 보인 적도 있고. ……뭐야, 나 걸레였네. 본인은 자각 못하는 걸레라니. 아니, 걸레라니!


이런 짓을 희세와 성빈이 둘이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굳이 사실을 추궁하지 않아도, 이런 뻔한 짓을 생각할만한 녀석은 우리 학교에 딱 한 녀석밖에 없지. 애초에 메이드 카페라니, 거기서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근미래, 네 녀석 소행이었구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화를 부리니 성빈이는 깔깔 입을 가리고 웃고, 희세는 ‘그 바지 꼴로 어딜 간다고! 이, 일단 앉아, 변태야!’ 하고 말한다. 그렇기도 하다. 굉장히 남사스럽잖아, 이거. 오줌 지린 것도 아니고.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뭐가 ‘이렇게’야. 청춘 제대로 즐기고 있구먼. 그러니까, 그게─ 축제지, 아마?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반 인원은 대강 반으로 나뉜다. 연극 같은 장기자랑 하는 부류와, 작은 가게를 여는 부류. 사실 둘 중에 하나만 해도 된다. 그걸 꼭 해야만 한다, 그런 법칙이 있는 건 아니니까.


뭐, 어쨌든 나는 미래에 의해 강제로 연극을 하게 됐으니까. 널널함이 모토인 미래 사단은 오늘 하루, 축제를 만끽하기로 했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리허설 때 최종적으로 한 번, 이렇게 세 번만 맞춰보고. 어차피 주말까지 불려서 엄청 연습했기 때문에, 지금 본방으로 들어간다 해도 괜찮을 정도로 호흡은 많이 맞춰놨지만.


해서, 오전에 간단하게 한 번 맞춰보고 각자의 축제를 즐기러 가는 것으로.




─같이 돌아다닐래.

─아하하~ 저는 쭈니쭈니 보러 가기로 했거든요!? 놀러 온댔으니까! 흥흥! 오빠도 희세나 보러 가요!

─나도, 방해꾼이니까 민서랑 같이.

─머, 먹거리 장터 가기로 했어. 웅도도 같이…… 갈 수는 없지.

─나는 시아랑 놀거야! 웅이는 비니네 반 가보는 거 어때? 비니랑 히이 둘 다 있잖아 거기?




……이런 말 하기는 그런데. 그냥 어장관리(?) 할 걸 그랬나. 하나같이 죄다 나를 버리고 놀 애들이 있구나. 제일 얄미운 건 침착맨과 이루어진 미래인데. 대놓고 뿡뿡 놀려대곤 리얼충 라이프 즐기러 가는 모습이 아주…… 얄밉네.


유진이와 민서야 대놓고 일부러 나랑 안 놀고 희세와 짝을 맞추려는 모습이지만, 리유는 정말 의외인데. 그냥 여동생 같은 느낌으로 예전처럼 놀려고 했는데. 그 때로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정녕.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혼자서 터덜터덜 희세네 반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랬는데, 이런 호강과 이런 봉변을 당하고 있구나, 희세네 반에서.


물을 엎지른 해프닝은 그런대로 지나가고, 나는 가만히 주위를 둘러본다. 꽤나 사람이 많은 희세네 반 메이드 카페. 그도 그럴 게, 현역 여고생들이 메이드복 입고 카페를 한다고? 나라도 당장 뛰쳐와서 15000원어치 사먹고 가겠다. 구경도 잔뜩 하고, 눈호강도 하고. 희세랑 성빈이가 투톱으로 있으니 눈이 심심하진 않겠지.


뭐, 아무리 좋다고 해도 두 가지 한계가 있지. 마케팅·광고와, 대한민국 학교. 마케팅이니 광고니, 그런 건 벽보 붙이고 SNS에 올리고 전단지 몇 장 뿌리고 하면 해결될 일인데, 결정적인 건, 다른 고등학생들이 올 수가 없다는 거잖아. 우리가 축제하는 오전·오후에, 다른 학교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테니까. 저녁 전야제야, 야자 째고 와서 본다고 쳐도.


그 문제는 학교의 관대한 처사로 무난히 해결. 주중 공휴일인 날에 학교축제를 열었다. 대신에 다음주에 쉬는 날 아닌 날을 공휴일로 대체한댄다. 웬일이래? 대한민국 학교가 이렇게나 선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뭐, 나는 잘 모르겠지만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겠지.



“주, 주문 주시겠어요, 주인님……?”

“네, 저, 그……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네?!”



희세의 수줍은 오더. 사복 차림의, 남고생으로 추측대는 남자애들은 희세의 압도적인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며 헤벌죽 거린다. 저 기분나쁜 시선을 본다면 100% 남고생임을 유추할 수 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희세에게 엉뚱한 것을 물어보는 녀석. 희세는 흠칫 놀라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없는데, 왜요, 작업이라도 걸게요?”

“에?“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희세의 대신으로 대답. 어이가 없는지 남자애는 ‘에?’ 하고 나를 쳐다본다. 저들끼리 쑥덕거리는 남고생들. 아차. 괜히 나댔나. 이따가 나만 따로 이슥한 곳에 불러서 때리면 어떡하지.



“남친은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죄송해요, 그러니까, 수작질은 안 받을게요.”

“아…… 네.”



이상해지는 분위기를 단박에 정리하는 희세. 남자애들은 납득하며 또 저들끼리 떠들며 황급히 시선을 메뉴판으로 옮긴다. 자꾸만 희세의 거대한 그 부분만 보니까, 희세가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기 시작했거든. 저 눈초리, 무섭거든. 당해본 사람만 알지.



‘달깍.’

“그렇다고 거기서 바보처럼 모르는 사람들한테 시비조로 말하면 어떡해.”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으며 슬쩍 말하는 희세.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 살며시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묘한 기분좋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아메리카노 컵을 들며 대답.



“기분 나쁘잖아.”

“누가 들으면 내가 네 남자친구인 줄 알겠네. 착각도 정도껏 해야지.”

“그렇게 폭언·욕설로 말 안 해도 압니다요. 으헉, 겁내 맛없어.”

“……폭언 욕설은 안 했는데.”



새침한 희세의 가시에, 그에 대한 대처는 심드렁한 대답. 경험을 통한 대처법이지. 영국식이랄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가 더럽게 쓰고 밍밍한 맛에 얼굴을 찌푸렸다



“오, 변태 씨 눈 돌아가겠네.”

“와, 생각 외로 어울리네. 정희 씨?”



간만에 보는 정희. 큰 키와 늘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메이드복. 활달하고 털털한 정희 성격상 메이드복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2학년 들어서 꽤나 머리를 기른 정희의 차분한 모습과 생각 외로 잘 어울린다. 입만 다물고 있다면. 머리는 여자애처럼 꽤 길렀다만 입을 열면 특유의 남자애 같은 말투가 느껴지니까.



“교대시간이야, 희세. 2시까지 쉬는 타임이야.”

“어, 그럼 옷 갈아입으러─”

“아, 반장이 옷 갈아입지 말래. 카페 홍보되게, 그거 입고 놀러 다니라던데?”

“으엑.”



아마 정희는 오전시간에는 놀고 지금부터 일하는 모양. 희세는 오전반이었나. 정희는 옷을 갈아입으려는 희세를 붙들고 싱긋 웃으며 말한다. 정희가 놀 때엔 사복이었겠지.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 정희. 반면 희세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괴상한 목소리로 신음한다. 저런 목소리와 저런 반응의 희세는 처음 볼 정도.



“그런 고로, 변태 씨랑 데이트 잘 해!”

“엑. 내가 왜.”



정희는 활기찬 표정과 목소리로 말한다. 머리 길렀어도 남자애 같은 느낌은 여전하구나. 예쁘다기보단 멋있는 느낌이야. 희세는 질색을 하고 정희를 보며 대답한다. ……놀 수도 있지, 왜 나랑은 놀면 안 돼냐! 꼭, 그렇게까지, 대답해야만 했냐!



“변태 씨랑 놀 거 아니었어? 마중 나온 거 아니었남?”

“아뇨, 그냥 놀러온 건데요.”

“아 그래? 그럼 그냥 같이 놀아. 어차피 다른 애들도 없잖아?”

“…….”



희세의 정색하는 반응에 나 또한 시큰둥하게 대답. 정희는 그런 나와 희세를 보고 명쾌한 해답을 내려준다. ‘그냥’ 놀러 왔으니 그냥 같이 놀으라니. 아직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정희는 ‘자자, 이제 그만 일어나시고! 레이디가 가는데 신사가 마스코트를 해 줘야지!’ 하고 재촉한다. ‘에스코트거든.’ 하고 짧게 태클을 거는 나지만 그 이상의 저항은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새침한 표정의 희세.





--





“……어디 갈래.”

“……글쎄.”



그래서, 뭔가 반강제적으로 떠밀리듯 가게를 나서게 됐는데. 메이드복 차림의 희세와, 남학생인데 유일하게 여고 교복을 입고 있는 나. 다른 애들 시선 받기에 딱 좋은 유니크한 조합이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어디 갈 지도 정해놓지 않았는데. 이런 건 시나리오에 없었다구요.



“점심 뭐 먹으려고 했어?”

“그냥, 카페에서 애들이랑 김밥 먹으려고 했는데. 반장이 사온다고 했었거든.”

“간단하네.”

“너는.”

“나는 뭐, 생각해 놓은 게 없었는데.”



일하면서 친구들과 먹는 밥이라. 그것도 괜찮겠네, 같이 가게 차리고 일하고 밥 먹고.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희세의 물음에 내 대답은 무(無)의 경지.



“음. 그냥 돌아다니면서 뭐 먹을까? 꼬치라던가, 떡볶이 같은 거.”

“그런 거 먹으면 건강에 안 좋거든.”

“와, 되게 아줌마 같은 발언인 거 아세요?”

“뭐라고 했어 지금?”

“아니, 축젠데 그 정도는 괜찮잖아! 그렇게 따지면 우리 먹을 수 있는 거 없다잉?!”



우선은 걸으며 두런두런 얘기한다. 희세의 엄마 같은 건강 챙김 발언에 나는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원래 적당한 어그로는 건강에 좋은 법이니까. 이렇게 눈총 받아도, 적당히 대답하면 넘어갈 수 있지. 축제니까.



“뭐, 맘대로 해. 축제날이니까, 괜찮겠지.”

“그럼 어디. 닭꼬치 먹으러 가자. 난 닭꼬치 좋아하니까. 넌?”

“……좋아해.”

“헤헷, 내가 사줄게!”

“웬일이래, 짠돌이가.”

“누가 짠돌이야?!”

“맨날 용돈 없다고 징징대잖아.”



요즘 부쩍 인신공격이 잦아진 희세. 그냥 나를 까지 못해서 안달난 것 같기도 하고. 알면서도 넘어가준다.



“…….“

“……!”



뭐랄까, 이렇게 티격태격 얘기하면서 걸으니까, 진짜 허물없는 연인 같은 느낌이다. 꽤나 가까이, 희세와 나 사이가 가까운만큼 가깝게 걷다보니 저절로 손과 손이 닿는다. 살짝 신경쓰여 힐끔 눈만 돌려 희세를 쳐다본다. 마주친 눈빛. 황급히 돌리는 서로의 눈.


저…… 저거. 아니 이거는. 확실히, 타는 것입니다. 썸을! 나는 확신한다 이 느낌에 모든 것을. 아, 실수로 번역체가 나오네요. 이런 때엔, 이런 때엔! 남자답게 확, 손을 꼬옥 잡음으로써! 나의 남성다운 면과 결단력을 보여주고, 애매한 이런 상황을 확 좋은 분위기로 이끄는 게!



“……미쳤어?!”

“아, 어, 응, 미안.”



나는 왜 맨날 사과만 해야할까. 그렇게나 죄많은 사람일까. 아니, 그렇게 정색하고 말할 것까진 아니잖아. 손을 뿌리칠 것까진 없잖아. 굉장히, 무척 무안해지잖아. ‘희세가 나 좋아하나?’ 하는 일말의 자신감마저 사라져버리잖아.


손을 잡자마자 뿌리치는 희세. 나는 굉장히 의기소침해져서, 절로 사과를 했다. 순식간에 얼어붙는 공기. 어색하고 또 어색해서, 무슨 말도 못 꺼내겠다. 힐끔 희세를 쳐다볼 수도 없다.



“……나, 남친도 아닌데 손을 왜 잡아!”

“……그런 데에서만 의외로 보수적이구나. 리유랑도 사귀기 전에 손 잡고 그랬는데.”

“리, 리유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미, 미안.”



나는 다시금 연신 사과할 수밖에 없다. 그냥 그렇다는 건데. 남친이 아닌 이상 나는 희세의 손을 잡아선 안 되는구나. 사소한 진리를 깨닫고, 급격히 냉동된 공기를 안고 먹거리 장터로 걸어간다.



“여기.”

“응, 잘 먹을게.”



닭꼬치를 받는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애. 나와 희세가 같이 닭꼬치를 사러 온 걸 보고 힐끔 웃으며 건넨다. 괜히 쑥스러워지네. 꼬치는 내가 샀다. 희세에게 하나 건네니 뚱한 표정으로 받는다. 야금야금 먹으며 다시금 걷는다.



“엇, 묻었잖…… 음. 혹시, 제가 지금 볼에 뭍은 소스를 닦으려고 하는데, 불쾌하시지 않습니까? 성희롱이라고 인식하시지 않으시죠? 아니라면, 잠시 녹음을 통해 확실한 증거를─”

“미쳤어?! 그게 더 변태 같잖아! 그냥 닦아! 그 정돈 상관없잖아!”

“아하핫.”



위기를 기회로. 희세가 희세답지 않게 흰 볼에 소스를 뭍힌 것을 보고 닦아주려다 얼른 응용해서 드립을 친다. 아까 남자친구 아니면 손도 못 잡게 하는, 희세의 신여성(?) 이미지와는 차원이 다른 보수성을 돌려 까는 거지. 희세는 짜증스럽게 대답한다. 하하 웃으며 손으로 희세 얼굴에 묻은 소스를 닦는다.



“소, 손에……! 손으로 닦으면 무슨 소용인데! 나참.”

“헤헤헤. 아앙~!”

“읏…… 미쳤어!?”



한 번 어색함을 털어내니 더욱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넘쳐흐른다. 손으로 닦은 것에 태클을 거는 희세가 무방비한 틈을 타, 희세의 꼬치를 입으로 뜯어먹었다. 흠칫 놀라는 희세. 살짝 얼굴을 붉히며 주위의 시선을 살핀다. 이런 거, 명백하게 연인 같은 모습이니까.



“……아앙!”

“오우. 쌤쌤이네.”

“……흥.”



품에서 휴지를 꺼내다말고 짜증스럽게 내 닭꼬치를 한 입 베어 무는 희세. 지는 건 또 싫어해서 똑같이 하는 거다. 귀여워라. 메이드복까지 입고 있으니까 더 귀엽잖아. 잔뜩 귀여워하는 표정으로 희세를 보니 희세는 질겅질겅 꼬치를 씹어 먹으며 꺼낸 휴지로 내 손을 닦아준다.



“오우~ 완전, 닭살커플 나셨는데?”

“부, 부럽다아~”

“에, 엣?! 봐…… 봤어!?”



‘그림 좋은데~’ 하면서 시비 거는 조폭인양 어디선가 등장해서 말하는 유진이와 민서. 유진이는 싱글생글 웃으며 여유만만 놀리는 표정이고, 민서는 정말 부러운 지 ‘와아~’ 하는 부러운 표정. 희세는 잔뜩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한다. ……사실, 여기가 무슨 포장마차도 아니고, 개방된 가판대인데 못 보는 게 이상한 일이다. 알고 그런 게 아닌가, 희세도 은근 허당인가 싶다.



“아앙~ 나는 뺏어먹을 남자 없으니까 민서 것이라도 뺏어 먹어야지.”

“나, 나두, 아앙! 음, 희세만큼 귀엽게 안 되네.”

“그, 그, 그, 그런 게 아니라! 정웅도가 짜증나게 하니까! 씨, 씨!”



유진이는 싱긋 웃으며 민서가 들고 있는 츄러스를 한 입 베어물며 말한다. 그에 민서도 방실방실 웃으며 유진이의 도넛을 먹다가 한 수 더 떠서 한 마디 덧붙인다. 희세는 잔뜩 얼굴이 빨개져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절로 웃음이 나와 ‘허허’ 하고 웃으니 희세는 애꿎은 나를 팍팍 때린다.


작가의말

촛불은  가늘고 길게 잘 타다가, 불이 줄어들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장 밝고 아름답게, 화악 타오른 뒤 꺼진다고 합니다.


아뇨, 그렇다고요, 그냥,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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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3부 시작은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3 16.03.15 991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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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17화 - 4 +7 16.01.06 809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68 13 19쪽
» 17화 - 2 +8 16.01.03 942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4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1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3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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