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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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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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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2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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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20쪽

04화. 바보 스터디 그룹 결성!

DUMMY

“아······ 공부하기 싫다.”

“시끄러. 공부해.”



평화로운 일상. 내 신음에 이제는 만성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희세. 그런 말을 듣는 나 역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은 왜 공부를 하는 걸까. 좋은 대학 가려고? 가서 뭐할려고. 좋은 직장 구하려고? 직장 구하면 뭐. 돈 많이 버니까? 돈 많이 벌면 뭐. 맛있는 거 많이 사먹고,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겠지. 근데 그게 뭐. 설령 좋지 않은 집에서, 월세로 쪼들리면서, 돈은 적더라도,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거, 내 신념 지키면서 사는 게 더 행복한 삶 아닌 거야? 그런 느낌으로 배운 거 아니었어, 우리?


······라고 혼자 개똥철학을 생각하고 있는 나인데, 스스로도 태클을 걸 부분이 상당히 많다. 우선 어른들이 듣는다면 혀를 끌끌 차며 ‘철이 없네 애가.’ 하며 말하겠지. 그건 뭐, 쿨하게 넘길 수 있겠는데. 저런 논리를 주장하는 내가, 결정적으로 그렇게 당당하게 주장할 ‘꿈’이 없다는 게 문제지. 아핳! 하하핳! 하하하하!



‘딱!’

“아얏.”

“그만 멍 때려. 응?”

“아······ 넵.”



정해진 패턴. 희세는 이제 화 내는 것도 지쳤는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한다. 수치심이나 창피함마저 이젠 들지 않는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곤 다시금, 공부하자, 공부하자. 마음을 다잡는다.


근데 이번에 일본에서 지진 났잖아. 인도주의적 입장에선 당연히 우리가 돕는 게 맞는데, 국민감정에 따르면 여론이 썩 좋지많은 않단 말이지. 저번 동일본 지진 때에도 지원 해줬는데 볼멘소리 들렸었다고. 물론 국제관계라는게 그런 사적인 감정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고, 우리가 암만 참새처럼 떠들어봐야 아무 지장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치만,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데, 음.


······아악! 공부하라고 공부! 지금 일본이 지진이 난 게 무슨 소용인데! 나한테 중요한 건 지금 공부, 공부! 수능이라도 수능! 이러다 진짜 다 망하게 생겼다!




4월이 된 요즈음은 늘, 이런 패턴이다. 3월 한 달은 깔끔하게 미래와 목표를 탐구한다고 날려버리고. 뭐, 미래 사건 때문에도 조금 시간 뺏겼지만. 그건 금세 해결됐으니까 논외이려나. 어쨌든.


공부 해야지, 하고 앉아서 딴 생각, 딴 짓. 그리곤 다시금 희세에게 태클 먹고 정신 차리고 다시 딴 짓. ······지적 받는다 → 공부한다 이런 패턴은 없는 거냐. 그 진행단계가 잘 됐으면 정웅도가 아니지. 평생에 이렇게나 내가 무능하다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꿈도 없어, 목표도 없어, 근데 공부도 안 해. 아무리 전국의 고3들이 고민 많고 공부하기 싫어한다지만, 나만한 녀석도 또 없으리라. 이런 말 하면 전국의 실업계 애들을 비하하는 꼴이 되지만, 정말 괜히 인문계 온 것 같은 기분이다. 그냥 기술 배울걸. 시럽계 욕하지 마! 우리도 입문계보다 잘할 수 있어! ······비하하고 있잖아.




“웅이 요즈음 열심히 공부하넹!”

“······무슨 그런 심한 말을. 사과해.”

“에? 나 뭐 잘못 말했엉?”



잘못 말했지, 심란한 사람 마음 흔든 죄. 공부 열심히 하긴 개뿔, 지금 이러고 있는데. 폴짝 다가와 방실방실 웃으며 말하는 리유에게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그나마, 고3이란 현실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녀석이 있다면, 리유겠지. 다른 애들은 다 변절(?)했어. 고3에 찌들어서, 공부에 찌들어서. 리유와 나만은, 영영 그대로 길이길이 남아서─── 역시 리유가 짱이야! 핰핰!!


한가로운 점심 시간. 밥 먹고 남는 시간은 느긋하게 쉬는 시간이다. 평소라면─정확히 말하자면 2학년 때─ 만화책을 본다거나, 낮잠을 잔다거나 하겠지만. 지금은, 고3이 된 이후론 심란해서 그런 짓도 못 하겠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니, 그만두면 안 되잖아?! 수능이라고, 대학이라고!

갑갑한 마음에 혼자 풀이 죽어 힐끔, 내 옆으로 놀러온 리유를 보며 묻는다.



“리유 너는, 어디 대학 갈지 정했어?”

“엣! 아!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는데~ 헤헷☆”

“잘 모르면 어떡해. 그렇게 안 보여도 너도 고3인데.”

“에에에에─ 그치만, 모르겠는데.”

“그렇지.”



담배가 있다면 하아─ 하고 연기를 내뿜어보고 싶다. 그만큼 속이 답답하다. 리유의 답 없는 대답을 듣고 있자니 더욱. 그렇지, 모르지. 우리는 그런 건 배우지 않았으니까.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꼭 다른 건 배운 것처럼 얘기하는데, 사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지. 그냥 앉아서 시간만 떼웠지, 12년동안.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한민국의 멋진 교육현실에 무릎을 탁! 치고 싶구먼. 장난 아니라니까, 내 일이라니까.



“아! 나 영어과 갈래! 영어는 잘 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것도 회화만이고 문법이랑은 쥐약 아니야. 영어 점수 몇 점인데.”

“83점!”

“······꽤 하네? 유학 다녀와서 그런가. 너 예전에는 30점대였잖아.”

“에헤헤헤헤─”



백치미라고 해야 할까, 리유. 귀여우니까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냥 한없이 멍청해보였을 것 같은 웃음이다. 뭐, 리유는 귀여우니까. 귀여우니까 리유는.



“조강지처는 버리고 전처랑 놀아나고 계시다니~ 정말 오빠다운 일상이네요. 이제는 미망인까지 노리시는 건가요?”

“누가 조강지처고 누가 전처고 누가 미망인이야. 그리고 그런 드립은······ 아무리 본인이 친다지만 좀······ 그렇잖아.”

“핳! 전 해도 되거든요!? 조강지처는 희세고 전처는 리유고 미망인은 저인 게 당연하잖아요?!”



슬쩍 다가와 시비를 거는 미래. 낮은 목소리로 태클을 걸어보지만 미래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맞선다. 이런 때의 미래는 건드릴 수가 없다. 무적 상태나 마찬가지. 고인드립은 어떻게 맞받아칠 수가 없다. 그보다, 제 입으로 ‘미망인’이라니······ 그거 어휘 뜻도 별로 안 좋은 뜻이라고 들었었는데. 비문학 지문에서. 성차별적인 뜻이라나.



“엣! 내가 전처야? 나랑 웅이랑 사실혼 관계도 아니었는데?”

“넌 또 어디서 그런 단어는 주워들어서······ 그냥 농담이잖아.”

“엣! 농담이었어?! 나랑 웅이랑 관계는, 그냥 장난이었어? 한낮 불장난?”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어멋♡ 한창 때의 청춘들이라 그렇고 그런 불장난을 이미······♡ 그보다, 이런 12살도 안 돼 보이는 애한테 욕정이 샘솟나요? 어쩐지······ 오빠 로리콘이죠?”

“아아아앜! 너넨 무슨 대화가 이 지경이냐?! 정상적인 대화가 안 되잖아!!”



이제는 리유까지 고장나버린 건가, ‘사실혼’이라는 사랑과 전쟁에서나 나올 법한 어휘를 사용하며 나를 혼란케 한다. 옆에서 혼돈을 돋워주는 미래는 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구나. 가뜩이나 고3이라 심란하고 정신없는데.



“그래서요, 깔깔깔.”

“말을 말아야지.”

“그래서요, 오빠, 스타─디 그룹은 어떻게 된 거죠?”

“아······ 맞다.”



잔뜩 나를 비웃는 미래. 정색하곤, 꽤나 귀여운 표정으로 눈을 말똥말똥 뜨며 내 앞에 서선 말한다. 퍼뜩 생각이 난다. 저번에, 정체성을 찾아 애들 꿈을 모으는 드림헌터(?) 짓을 할 때, 결론이 그거였는데.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강제로 공부하자, 그런 얘기.



“study group?”

“혀 꼬지 마, 너 영어 잘하니까.”

“에헤헤헤헤헷☆”



과도한 호주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리유. 6개월 유학 갔다왔다고 외국인 다 되겠다. 내 태클에 리유는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미래는 방긋 웃으며 비어 있는 내 앞자리에 앉는다.



“아, 근데 오빠 와이프는 어디 갔나요?”

“와이프라니······ 도서관. 교실은 시끄럽다고.”

“에에~ 도서관~ 도서관은 고3들이나 가는 곳이라구~”

“아니, 일단 우리도 고3인데.”

“영웅은 공부따윈 안 한다네!”

“영웅도 아니고.”

“아 그럼 뭐요!”

“아니 왜 화를 내?!”



미래와의 실없는 대화. 원래도 그다지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더욱 잉여롭다. 옆에서 빤히 지켜보며 방긋 웃는 리유.



“가만히 생각해봤는데요. 스터디그룹을 만든다고 해도, 그럼 누구랑 해요?”

“그야······ 당연히 애들하고 다 같이 해야지?”

“어멋♡ 1처6첩이라니,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게다가 다같이 한 번에 하다니, 8P라니 듣도보도 못 했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스터디 스터디!”

“아! 그렇네요. 시아는 아직 고3 아니니까 빼야지. 그럼 7P!”

“뭔 소리야!”



미래는 확실히 맛이 간 것 같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리유는 못 알아듣고 눈을 깜빡이며 힐끔 미래와 나를 쳐다본다. 응, 못 알아들어야 해, 리유야. 너만은 못 알아들어야 해.



“스터디 그룹이면, 다같이 공부하는 거 아니야?”

“흥흥. 흐핳↗ 하하핳! 리유나 오빠나, 너무 멍청한 거 아니에요?”

“적어도 너한테 멍청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진 않은데.”

“아아아앍!! 지금 자랑하시는 거에요?!”



리유의 말에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하는 미래. 점잖은 내 태클에 눈을 치뜨고 불쾌하다는 듯 말하는 미래. 이런 때엔 얌전히 있는 게 좋다. 요즈음은 막 털려도, 그래도 내가 예전에는 미래다루기자격증 1급 소지자였는데. 그런 자격증이 있나없나 모르겠지만.



“모르는 애는 배우고, 가르쳐주는 애는 가르쳐주니까 더 공부되고, 그런 게 스터디 그룹의 미덕이죠.”

“응, 그렇지. 같이 공부하니까 좋기도 하고.”

“······는 개소리! 개수작! 개같은 소리 집어 치워요! 고3이라구요! 그딴식으로 공부해서 될 거 같아요!? 민폐라구요!!”

“갑자기 왜 이래.”



스터디 그룹의 장점을 말해주는 미래.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공부 잘 하는 애, 못 하는 애 모여서 같이 공부하면서, 모르는 애는 알려달라고 해서 쉽게 설명을 들어서 알게 되고, 잘 하는 애는 가르쳐주면서 다시금 자기도 완벽하게 배우는, 그런 게 스터디 그룹의 순기능 아닐까.


미래는 다시금 흥분한 모습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한다. 미래는 이제 정말 정상이 아니게 된 것 같아. 막 감정기복이 왔다갔다하네.



“상생은 없어요! 전국민을 서열화해서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처럼 높이 더 높이, 경쟁해서 대학교 들어가는 건데! 누굴 도와주고 누가 같이 가요! 막말로, 공부 도와줬다가 걔가 나보다 잘해서 내 등급 떨어지면? 내 백분위 떨어지면! 죽 쒀서 개 준 꼴이죠! 아니, 개 준 꼴이 아니라 병X짓 한 거지! 알겠나요? 수능은, 정부에서 국민들을 서로 찢어놓고 분열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계략이라는 것을! 교육을 교육이 아닌 통제의 수단으로 만들어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고 1번좀비로 만들기 위한! 읍읍!”

“시끄러, 다른 애들 공부하잖아. 민폐는 너잖아.”



듣다 듣다 거친 손으로 미래의 입을 틀어막았다. 점점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해버리니까. 뭔가 말도 안 되는 위험한 말 하는 것 같고. 저는 대한민국 정부와 그 정책을 지지합니다. 애초에 고3이 정치에 무슨 관심이 있겠냐만. 뭔지도 모르고. 리유는 ‘아? 그런 거야? 정부의 음모야?’ 하고 여과없이 스펀지처럼 미래의 말을 흡수한다. 이래서 선동이 위험한 건데.



“어쨌든, 제 말은 그거에요. 저희처럼 공부 못 하는 병X들이랑 같이 공부했다가, 다른 애들한테 민폐라구요. 저희 가르쳐주다가 정작 자기 공부 못 하고 시간 뺏길 수도 있잖아요.”

“그래, 그렇게 말하면 되는데 왜 얼토당토않은 음모론을 펼쳐서 복잡하게.”

“아뇨! 음모론이 아니라 사실인걸요! 교원평가제나 전교조 구속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오빠는 무슨, 고등학생이 그래요! 4·19 정신을 계승하세요, 그 때엔 학생들이!”

“시끄러워, 목소리 좀 낮춰.”



입을 틀어막은 손을 풀고,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금 자리에 앉은 미래. 얌전하게 자기 뜻을 밝힌다. 그렇게 말하면 되는 것을, 하고 생각하니 다시금 흥분해선 큰 소리로 말한다. 이 녀석은 도대체 정부에 무슨 원을 졌길래 이렇게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일까.



“그보다, 나는 그렇게 공부 못 하는 병X이 아닌데.”

“엣. 마치 ‘나 이 정도면 잘 생긴 거 아니야?’ 라고 말하는 남자들의 흔한 착각 같은 발언! 그렇다면 여기서! 세 명의 모의고사 점수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해볼까요.”

“아······.”

“엣······.”



내 말에 싱긋, 악마의 미소를 짓는 미래. 이어지는 그녀의 한 마디에 나도 리유도 순간 멈칫 했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시간. 미래는 ‘아하하핫♪’ 하고 즐거운 듯 웃는다. 음, 이런 때엔. 남자인 내가 먼저, 말해야만 부담을 덜 수 있겠지. 여고 3년 다니니까 대충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기보단 미래는 내가 말하기 전에 말 안 할 거고, 리유도 그런 성격이니까.



“250점······ 정도.”

“에! 웅이 바보!”

“시끄러! 넌 몇 점인데!”



일말의 배려도 없는 리유의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대답. 그렇기에 더욱 상처가 된다. 악의 없는 해맑은 리유의 말이기에. 어쨌든 창피한 건 창피한 것이기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리유에게 바톤을 넘긴다.



“나? 나는 240점 정도.”

“너도 바보잖아?!”

“에, 그치만, 웅이는 공부 그런대로 하는 줄 알았는데. 나랑 같은 수준인 줄 몰랐단말야.”



리유는 별로 창피하지 않은 듯 싱긋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렇게 말하니까 또 할 말이 없다. 리유는, 나 공부 잘 하는 줄 알았구나. ······뭔가 부끄러운데. 뭘 하던 어화둥둥 우리 웅이 이런 느낌인가.



“핳핳하! 다들 가소롭군요. 제 모의고사력은 200점입니다.”

“······자랑 아니다. 네 인생이다. 망했다. 답 없다.”

“으하하하항······ 미래가······! 미래가 없어······! 그 이가 떠난 뒤로, 내 미래는······!”

“아 그런 드립 치지 말라니까.”

“에헷☆”



최종보스의 풍모를 마음껏 풍기며, 지그시 나를 올려다보며 말하는 미래.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주문을 걸어주니 미래는 좌절하며 책상에 엎드린다. 버르적거리며 갑자기 훌쩍거리는 미래. 연기라고 하기엔 정말 슬픔이 느껴져서 얼른 태클을 건다. 미래는 눈물이 고인 얼굴로 웃는다. 몰라 뭐야 얘 무서워······ 이제는 드립과 현실이 어우러져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건가······.



“어쨌든, 셋 다 바보병X구제불능잉여새끼들 이네요.”

“······부정할 수 없네.”

“에엥.”



뭐, 그 중에 제일은 나라고 할 수 있지. 리유는 귀여우니까 어떻게든 괜찮고, 미래는 이렇게 생겼어도 꾸미면 괜찮게 예쁘고 나름대로 귀엽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까. 거기에 남자애고. 아─ 진짜 희세 말대로, 군대 가서 말뚝 박을까. 그건, 그건 진짜 싫은데.



“아니, 모의고사 점수 순으로 매기는 건 불가하고. 여기선 인덕 순으로 하고 싶구려. 가장 많은 여자를 꿰고 다니는, 정 형이 맏형이 되는 게.”

“갑자기 뭔 소리야.”



갑자기 걸걸한 목소리를 내는 미래. 어차피 여자애라 미래가 의도한 어떤 목소리는 전혀 나지 않고 정체불명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리지만. 어쨌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싱긋 웃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볼펜을 들어 하늘 높이 뻗는다.



“우리 정웅도, 정리유, 근미래 3인은 한 날 한 시에 지잡대에 가기로, 맹세한다!”

“와! 바보 의형제야! 그럼 내가 관우야?”

“그런 거 싫거든!?”

“허허허헣, 왜 그러슈 유 형.”

“나 정씨야!!”



삼국지를 좋아하는 리유는 금세 알아듣고는 좋아하며 볼펜을 꺼내 미래의 볼펜과 맞댄다. 꼭 삼국지에서 칼 맞대는 것처럼. 나는 정색하고 부정하려 몸부림치지만, 미래는 이미 상황극에 푹 빠져 자꾸 나에게 볼펜을 권한다. 마지못해 볼펜을 들어, 3인의 볼펜이 허공에 맞닿았다. 이게 뭐야. 스터디 그룹을 이렇게 거창하게 세워햐 해.



“자자, 상황극은 여기까지 하구요.”

“에에, 재미있는데.”



한 순간에 정색하곤 상황을 정리하는 미래. 미래는 예능 MC 같은 거 하면 잘 할 것 같아. 제멋대로 상황을 가지고 놀잖아? 시무룩해하는 리유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얘기를 진행한다.



“저희 스터디 그룹은 목표점이 있습니다. 모의고사력 300!”

“······감당할 수 있겠어, 그 점수? 넌 100점을 올려야 하는데?”

“핳! 천하의 정웅도가 뭐 이리 혓바닥이 길어······ 후달리세요?”

“후달려? 하하하하하. 오냐, 그 제안, 받아 들이마.”



수작질이 뻔히 보이는 도발이지만, 이것만큼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적어도, 미래에겐 공부로 딸리고 싶진 않다. 리유 또한 옆에서 ‘나도 웅이보단 잘 할 수 있을 거 같애!’ 하고 말한다. 어쭈, 얘 좀 봐라.



“아, 잠깐 궁금한 점! 자기 공부하는 것중에 제일 잘 나오는 점수 말해보기! 오빤 뭐가 제일 잘 나와요? 몇 점?”

“언어, 92점.”

“히익! 이 기만자! 무슨 점수가 그리 높아요!?”

“대신 다른 건 깔끔하게 병X이니까. 수리랑 외국어 합쳐도 언어보다 20점 낮으니.”

“데헷☆ 오빠도 참 특이한 병X이네요.”

“······그래.”



미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한다. 언어 92점인데, 나머지 수리랑 외국어가 33점, 41점이니. 두 개를 합쳐도 74점, 언어보다 18점 낮다. 하하. 망했어. 언외수가 중요한데, 망했다구.



“리유는?”

“난 외국어! 83점!”

“오, 개높아! 뭐야 너?!”

“영어 쉬워! 6개월 배우니까 금방 할 수 있겠던데?”

“아······ 유학빨이구먼. 이 금수저!”

“응?”



좀 납득이 안 가는 건, 유학은 그래도 1년은 다녀야 말문 트이는 거 아닌가 싶은데. 겨우 6개월 가지고 무슨 영어 실력이 늘었나 싶은데 리유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전혀 의외인 경우로, 언어의 천재 같은 거 아니야, 리유?



“그럼 미래 넌.”

“저는 수리. 81점이요.”

“야, 다들 뭔가 이상하게 하나씩만 잘하네.”

“그러네요.”

“에헤헤.”



의외로 또 높다. 미래, 내가 알기로 이과인데. 병X 병X 하지만 다들 잘하는 분야 하나씩은 있잖아.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인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것을 잘 봐야하는 사회니까. 하핳. 망했어. 내 인생도, 내 대학도.



“오빠의 언어와, 리유의 외국어와, 제 수리를 합치면! 와, 지거국 정도는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세 명의 머리를 합쳐도 희세 한 명만 못 하네. 아니, 성빈이 정도도 못 되겠는데.”

“와, 희세랑 성빈이 진~짜 공부 잘 하는구나.”

“그러니까 기업들이 그런 인재를 뽑죠! 저희는 도태되고 낙오자가 되는 겁니다! win or loose! 자본주의라고, 니코!”

“뭐라는 거야.”



새삼 깨닫는 현실의 점수와, 미래의 시덥잖은 개소리. 리유의 감탄. 그러니까 말입니다. 우리 셋을 합쳐도 희세도 못 따라가니. 희세, 저번 모의고사 언외수 합쳐서 297점 이었지, 아마? ······사람이냐. 3점짜리 하나 틀린 거잖아. 진짜 사람이냐고, 나희세.



“어쨌든, 저희 『300 스터디 그룹』 프로젝트는 개시되었어요! 다음 모의고사까지, 열심히 서로 매진해서 300점을 넘어야 해요! 못 넘은 사람은······.”

“못 넘으면?”

“환상의 똥꼬쇼☆ 무엇인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보여주지 마! ······뭘까 상당히 기대되긴 하지만.”

“에헤헤헷☆”



다른 애들에게 민폐일 것 같으니까, 나, 미래, 리유 셋이서 결성한 스터디 그룹. 뭔가 불안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 나아갈 시기이다. 공부, 제대로 해 봐야지. 셋이서 하면 할 수 있을 거야. 어쨌든, 할 수 있을 거야.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말

......저 고3일 때랑 지금이랑은 실정이 맞지 않겠지요.

비슷하리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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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18화 - 4 +1 16.02.22 828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7 10 19쪽
228 18화 - 2 +8 16.02.01 905 10 22쪽
227 18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7 16.01.26 877 12 16쪽
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6 17 7쪽
225 17화 - 4 +7 16.01.06 809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67 13 19쪽
223 17화 - 2 +8 16.01.03 941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4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0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3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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