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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988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6.13 11:43
조회
819
추천
7
글자
18쪽

04화 - 4

DUMMY

“어······ 저······.”

“······.”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서 있는 희세. 나는 얼버무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 했다. 무거운 침묵만이 나의 마음을 잔뜩 짓누른다. 공기가 무거울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지 않을까 싶은데.



“어, 우리는 가볼게요!”

“싸, 싸우지 마, 히이랑 웅이!”

“바보야, 눈치없이 그런 말 하면 어떡해!”

“그, 그치만 싸울 것 같잖아!”

“가, 갈께요!”



눈치 없이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며 퇴장하는 리유와 미래. 과연 바보삼남매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얼굴에 전혀 웃음이 지어지질 않는다. 도리어 두렵다. 리유와 미래라도 있으면 그나마 나을 것 같은데, 그 둘마저 가고 나와 희세 단 둘이 독대하고 있다면.

아, 어떡하지. 죽을 것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희세. 그게 도리어 더욱 무섭다. 뭐라고 말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죄를 지은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기도 그렇다. 뭘 해도 변명이 될 테니.




성빈이를 데려다주고, 전화를 확인한 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마음으로, 스터디 그룹의 집결지인 유진이네 학원으로 향했다. 저녁 무렵까지는 공부하니까. 지금은 늦은 오후고. 우리가 공부하는 3층 공부방의 문을 살며시 여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희세와 리유, 미래. 내 등장에 흠칫 놀라는 리유와 미래. 리유는 어쩔 줄 몰라하고, 미래는 ‘희세 화났음!’ 하는 경고로 두 손으로 뿔을 만들어 보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나를 쳐다보는, 차갑게 식은 희세의 눈을 보았으니까.



“저기. 희세야.”

“······.”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



뭔가 굉장히 어색하지만, 이런 때엔 그저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게 맞겠지. 황금패턴이라면, ‘오빠가 잘못한 게 뭔데?’, ‘오빤 항상 그런 식이야.’, ‘나 화 안 났거든?’, ‘됐어, 나 갈래. 오빠랑 얘기 안 해.’ 같은 대답이 돌아오겠지. ······희세, 나랑 동갑인데. 오빠라고도 안 해. 게다가, 그런 대답 없이 일절 침묵이야. 그래서 더 무서워. 나 어떡해.



“······앉아.”

“넵.”



한참동안 창가의 벽에 기대에 눈을 감고 있던 희세. 눈을 뜨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얼른 마나님의 말에 절대복종하는 돌쇠의 모양새가 되어 의자에 앉았다. 나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는 희세. 특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으으, 감히 쳐다보기도 두렵다. 하지만 눈을 피할 순 없다. 잘못은 내가 했으니까.



“어디 갔다왔어.”

“그······ 놀러······.”

“누구랑.”

“······성빈이랑.”



형사처럼 심문하는 희세. 변명하지 않기 위해, 심장이 쫄리기도 해서 더듬거리며 사실만을 말한다. ‘성빈이랑’이라는 대답에 눈썹을 움찔거리는 희세. 분명하게, 심기가 불편한 그녀의 마음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아, 망했다. X됐다.



“왜?”

“어······ 그······ 음······.”



단 한 글자, ‘왜?’ 하는 희세의 물음. 한 글자지만 그 파괴력은 상당히 강력하다. 그 한 글자에, 내 멘탈은 파괴되어 가루가 되어간다. ‘왜?’



“······그냥, 그······ 음······ 미안해.”

“······.”



사과라는 건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대충 어거지로 미안하다고 하는 건 도리어 역효과.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은데 사과하는 것도 마찬가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우선 먼저 미안하다고, 밑밥을 먼저 까는 셈이다.


희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차갑고 딱딱한 표정에 내 죄악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마음을 정리했다. 솔직하게 말하기로. 잘못을 저질러놓고, 거짓부렁까지 지껄인다면 과연 나는 얼마나 쓰레기일까.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혼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그냥, 뭔가 쉬고 싶었어. 놀고 싶었어. 공부하고 싶지 않아서. 기숙사 들어와서, 제대로 게임 같은 것도 못 하고, 놀지도 못 하고. 알아, 희세 네가 나한테 얼마나 시간 뺏기고 잘해주는지, 내가 미친 놈이지, 그것도 아는데, 그······ 후우. 그래서, 그래서 놀았어. 놀고 싶어서, 놀았어.”

“······.”



여전히,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는 희세. 눈매가 무섭다. 공기조차 무섭다. 맜했으니, 이제 희세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하. 됐다. 됐어.”

“······어?”



포기하는 듯한 희세의 말. 나와의 대화를 포기하는 듯,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움찔,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다. 안 돼,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서는. 차라리 잔뜩 혼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끝을 내야만 해. 애들하고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순간들을 미적지근하게 애매하게 끝내서 애를 먹었는데.



“미, 미안해 희세야! 정말, 정말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있잖아. 웅도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희세를 보고, 나 또한 벌떡 일어나 꾸벅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 진심을 담은 사과가, 희세에게 통할까. 잠시동안 인기척도 없는 순간. 희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난 웅도가 말하는 것처럼 천사나 그런 거 아니야. 나 안 착해. 나도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도 짜증나고 화가 나. 지금은, 웅도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짜증나니까.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가.”

“그치만······! 내, 내가 잘못했으니까······ 차, 차라리 뭐라고 하는 편이 더 낫······”

“왜 그리 이기적인데!”



희세의 말에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나.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희세가 사과를 받아줬으면 해서 말하는 순간. 빼애액 소리를 지르는 희세. 그대로, 멈추었다.



“뭐라고 하는 편이 낫다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왜 내가 악역이 돼야 하는데! 잘못한 건 너잖아? 공부하기로 약속해놓고 약속 깨고 놀러간 것도 너, 말도 안 하고 멋대로 행동한 것도 너, 여자친구인 나 버리고 다른 여자애랑 놀아난 것도 너! 뭐 하나 지킨 것 잘한 것 하나 없으면서, 마지막까지 내가 화내서 내가 나쁜년 되길 바래?! 그래야 속이 후련하겠어? 어!!”

“······!”



나 스스로도, 방금 전까지 생각했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사과나, 받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하는 사과는 도리어 역효과라고. 지금 희세와 나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꾹꾹 눌러 참았던 여러 가지 것들이 폭발했는지 날 것 그대로의 분노를 나에게 표출하는 희세. 이 정도로 화를 내는 희세는 처음이다. 얼굴은 새빨개졌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 감정이 격앙되었음을 한눈에도 알아챌 수 있다.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대로 굳어버린 석상처럼 그저 희세만 바라본다. 뭐라 말을 더할 수 없다. 뭐라 변명할 수 없다. 일침에 일침을 받아,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돼 버렸다. 따끔따끔, 희세의 시선이 따갑다.



“하아······ 하아······ 일일이, 구구절절 안 따지려고 했는데. 놀러 가고 싶으면, 나한테 말하면 되잖아. 나랑 놀면 되잖아? 난 뭐 성녀야? 부처야? 네가 다른 여자애랑 놀면, 나는 그냥 ‘하하’ 웃고 넘어가? 난 너한테 화만 내는 엄마 같은 거고, 정작 노는 건 다른 애랑 놀아? 그것도 성빈이랑?!”

“······아, 아니, 그······.”

“눈치도 없어. 성빈이는. 아직도 너 좋아하는 거 몰라? 나랑 사귀고 있으니까 포기한 거지, 그 감정 쉽게 사라질 거 같아? 너 진짜······ 언제까지 바보일 건데. 리유도 그렇게 잃어버리고, 이젠 나야? 벌써 나 질렸어? 잔소리만 해대고, 이렇게 나쁜 소리만 하니까?!”

“아, 아니! 절대 그런 건 아니야!”

“근데 왜!!!”



희세는 어른스럽고, 늘 냉철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지금의 희세는, 어떤 때보다 본능적이고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평소 희세라면 다른 애들 생각해서 꺼내지 않을 말들까지 꺼내면서. 물론 이 공간엔 나와 희세밖에 없어서 괜찮······긴 하지만.


잔뜩 당황해서,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어떻게든 희세를 진정시키려 해보지만 뭐, 어쩔 것인가. 명분도 뭣도 아무것도 없는 내가, 뭘 어떻게 해. 우선은 희세에게 다가갔다. 눈물까지 또르르 흘리며, 숨을 고르는 희세. 이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확 안아서 토닥여줄까. ······아니, 지금 상황에선 정말 최악의 선택일 것 같다. 그럼 뭘 어떻게 해. 그냥 엉거주춤하게 서 있으면 되는 건가. 여고에 3년 있으면서, 여자애들이랑 지내면서 조금은 여자애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혼자 자뻑에 취해있었는데, 실은 전혀,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여자애에 대해. 희세에 대해.



“······후우······ 당분간은, 나한테 말 걸지 마.”

“······희세야.”

“······더 폭발하기 싫으니까. 흐읏. 이제, 내버려 둬.”

“······.”



간신히, 감정을 정리하고 나를 쳐다보는 희세.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고, 내 대답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홱 공부방을 나선다. 대답할 말도 따라갈 기력도 없는 나이지만. 희세의 뒷모습을 쳐다만 볼 뿐 따라갈 엄두가 안 난다. 그만큼 난,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흐으······.”

“······.”



정적. 고요하다. 세상이 멈춰버린 것처럼. 잠시 멍하니, 희세가 나간 뒷문을 쳐다보다 털썩, 아무 의자에 앉았다. 세상이 끝나버린 듯, 무기력하고 허탈하다. 나는,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걸까.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미묘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희세와 나······


······생각하는 것만으로 두렵지만. ······헤어지는 걸까.



“와, 무섭네. 대판 싸웠구나. 희세, 인사도 안 받고 미친년처럼 걸어가던데.”

“······.”



여유 있는 목소리. 굳이 고개를 들어 보지 않아도, 유진이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다. 스터디 그룹도 아닌 유진이가 왜 이런 곳에 왔나 하는 생각이 1차적으로 들었지만, 바보 맞네, 나란 녀석. 여기 ‘유진이네’ 학원이잖아. 그녀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쳐다도 보지 않는다. 지금은, 그냥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왜. 바람이라도 피웠어?”

“······.”

“정곡인가보네. 하긴, 웅도 좀 개념이 없긴 하니까.”

“······.”



넘겨짚는 식으로 말한 거겠지만 유진이의 말은 또다른 일침이 되어 내 가슴을 푸욱 찌른다. 그렇지. 바람 피웠지. 개념도 없지. 내가 그런 녀석이라, 희세에게 상처를 주었지. 죽어서 사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실제론 죽을 깡도 없지만. 여러모로 입만 살았구나.



“······가끔은, 싸우기도 하지. 연인끼리는.”

“······.”



그런 애교 섞인 다툼 정도가 아니잖아, 이건. 헤어질 위기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유진이는, 전체 상황과 맥락을 모르니까 적절하게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말하는 거겠지만. 더 있어봐야, 유진이에게 폐만 끼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 일 아니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줘.”

“별 일이 아닌 것 같긴 한데. 알았어. 나 그렇게 입 싼 여자 아니니까.”

“······응. 고마워.”



나와 희세의 비밀을 지켜주는 유진이라. 예전 일이 떠오를 것 같아서 피식 실소라도 지어질 법도 하건만 지금은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유진이도 사태의 심각함을 알아챘는지 묵묵히 대답한다. 영혼이 빠져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기숙사로 돌아간다. 희세랑 같은 기숙사, 같은 건물에 있지만 사과할 수도 없는, 지옥 같은 기분으로.












--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어.”



주말 기숙사는 대체로 평화롭다. 별다른 제약이 없이 제 시간에만 돌아오면 되니. 공부를 하든, 누워서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든 아무 상관없는 자유시간. 선생님도 적어도 주말만큼은 아이들을 풀어 놓는다.


그런 상황에서, 희세에게 말을 거는 성빈이. 같은 방 같은 침대를 쓰는 룸메이트인 희세와 성빈이. 아까 희세가 돌아온 이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고, 성빈이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성빈이의 말에 잠자코 일어나는 희세. 성빈이와 희세, 두 사람은 말없이 열람실 옆 옥상으로 향한다.


아직 밤이 아닌지라, 열람실은 한산하다. 그래도 고3인지라 저녁부터 공부하는 몇몇 애들이 보인다. 애초에 두 사람은 열람실에 갈 것이 아니기에, 말없이 문을 열고 옥상으로 갔다.



“······.”

“······.”



옥상 난간에 선 두 사람.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고 있는 두 사람. 높은 지대의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칼을 흔든다. 성빈이는 힐끔, 희세를 바라본다. 어깨까지 오는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낀다. 허리까지 오는 성빈이의 머리카락도 성가시게 휘날려 앞을 가린다. 짜증나듯 고개를 흔들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한 성빈이.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희세를 바라본다.



“미안해.”

“······왜 네가 사과해.”

“그냥, 미안.”



성빈이는 오늘, 웅도랑 놀았다. 그리고 희세가 이렇게나 심각한 기분으로 뚱하게 있다는 건, 웅도와 대판 싸웠다는 이야기. 어린아이라도 알겠다. 죄책감에, 성빈이는 먼저 사과하기로 마음먹었다. 놀자고 한 건 웅도지만, 어쨌든 같이 논 건 본인이니까.



“정웅도 그 새X한테 원한 있지 성빈이 너한테는 별 감정 없는데.”

“별 감정 없는 사람이 그런 눈으로 날 보진 않잖아.”

“······하. 눈치는 빠르네. 누구랑 다르게.”



희세의 무심한 대답에, 성빈이는 더욱 눈을 곧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웅도를 ‘새X’라고 표현하는 시점에서 이미 희세와 웅도의 사이가 굉장히 뒤틀렸다는 걸 성빈이는 인식할 수 있었다. 한숨을 쉬며, 외면하던 시선을 성빈이에게 향하는 희세.



“솔직히, 짜증났지. 뭐, 아닌 건 알아. 그 바보가, 진짜 생각 없이 놀았겠지, 너랑 정말 바람피우려고 놀아난 건 아니겠지, 성빈이 너도, 예전 유진이처럼 여우짓 하거나 그럴 애가 아닌 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치만, 그냥 그 자체가. 짜증나잖아. 하아. 짜증나. 개짜증나. 왜 내가 나쁜년 돼야 하는데?”



희세는 차분한 목소리로, 솔직한 감정을 말한다. 성빈이는 묵묵히 듣고만 있는다. 웅도와 희세가 사귀는 것과는 별개로, 희세와 성빈이 또한 절친이니까. 예전에는 웅도를 사이에 두고 애매한 미묘한 사이였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런 것 때문에 껄끄러워질 것 같기에, 성빈이가 먼저 사과하려 희세를 부른 것이다.



“으으응, 아니야. 나쁜 건 웅도가 나쁘지.”

“······웅도가 왜 나빠. 나빠도 내가 욕해. 넌 욕하지 마.”

“뭘 어쩌라는 거야~! 뭐야, 단단히 화난 줄 알았는데!”

“하아. 바보 멍청이인 걸 어떡해. 나나, 정웅도나.”



실컷 짜증을 피우다 맥락도 없이 웅도바라기로 컨셉을 전환하는 희세. 성빈이는 괜히 걱정했다는 듯 짜증스럽게 희세의 팔을 툭 치며 말한다.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희세. 바보같다. 웅도도 바보 같고, 화내고 있는 자신도 바보 같고.



“그래도, 지금은 꼴보기 싫어. 당분간은, 얘기 안 하고 삭힐래. 더 잘잘못 따지다가 나만 옹졸한 년 되는 것 같으니까.”

”······응.”



그래도 완전히, 끝장날 만큼 틀어진 건 아니구나, 희세와 웅도의 사이. 혼잣말하듯 말하는 희세의 말을 들으며,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묘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희세는 옥상 난간에 기대 먼산을 쳐다보다 문득 고개를 돌려 성빈이를 쳐다본다.



“나 웅도랑 헤어진다고, 바로 채가진 마? 짜증나니까.”

“아, 아니야 그런 거!”

“아직 웅도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놀아난 거 아니야.”

“노, 놀아나다니! 우, 웅도가 멋대로 이상한 데 데리고 가서······!”

“그래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거잖아. 뭐하고 놀았어? 본처는 뻐들쳐놓고 뭐하고 재미있게 노셨나. 응?”

“우으······.”



얘기하다보니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성빈이를 골려주는 희세. 성빈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대답하지 못한다. 어쨌든 데이트 한 건 사실이니까, 희세에게 죄의식이 있는 성빈이이기에. 정작 희세 본인은 성빈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악감정이 없는 것 같지만.









“뭐야, 꼬꼬마. 다 죽어가는 표정이야 왜.”

“······담배 있으세요.”

“죽을래. 무슨 담배는.”

“······하아.”



기숙사로 돌아온 나. 때 좋게 밖에서 휴식하고 계시던 선생님. 특유의 시비조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나는 드립을 받을 상태가 아니기에, 드립을 친다. 담배가 있으면 정말 담배를 피우고 싶다. 술이 있다면 정말 마셔보고 싶다. 그걸로 이 괴로운 마음이 잊혀질 수 있다면.



“왜, 차이기라도 했어. 여자친구한테?”

“······하아.”

“어머. 진짜? 내가 눈치가 없었구나. 미안하다.”

“······하아.”



선생님의 말에 내 대답은 계속되는 한숨.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내 잘못이 뼈저리게 느껴지고 고통이 배가되기만 한다. 내가 미쳤지, 내가 잘못했지. 당장 올라가서 사과할까. 아니, 더 역겹게 생각하지 않을까. 감히 함부로 마주할 수도 없게 돼 버렸다, 지금 내 심정은. 선생님은 내 죽을상에 흠칫 놀란 표정.



“뭐, 힘 내라. 세상 반이 여잔데. 너 좋다는 여자애 널리고 널렸잖아?”

“······혼자 있게 해주세요.”



선생님의 위로도, 지금의 나에겐 별다른 도움이 되질 않는다. 터벅터벅, 힘없이 내 방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털썩, 침대에 눕는다. 이대로,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영원한 잠에 빠져서, 영원히. 영원히. 아무도 보지 못한 채로 그대로.


······그건 싫은데. 희세 보고 싶은데. 앙.


작가의말

요즈음은 과제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여유가 나도 신작 쓰느라 모든 시간을 소비해서 우학변을 쓸 엄두가 안 나네요 ㅠㅠ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 작성자
    Lv.42 지키미삼
    작성일
    16.06.14 10:35
    No. 1

    연중은 하지 마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6.06.14 23:16
    No. 2

    연중은 안 합니다, 연중은! 이제 방학이니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가루눈
    작성일
    16.06.16 23:43
    No. 3

    우와 웅도 나쁜 놈... 멀쩡한 애인 놔두고 다른 여자랑 놀아난건 이해 못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용서받고 싶은건 이해 되네요
    내가 왜 나쁜 년이 되야하냐는 희세 말도 어어엄청 공감가고...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들어본 얘기라서 그럴까요 ㅠ.ㅠ
    저도 역시 찌질이라(?) 쿨하게 그러든가 말든가 둘 수 없어서 그냥 빌었고......
    고등학생들이 중심임에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저렇게 주변에 여자가 많다는 것만 빼면요 ㅎㅎㅎ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6.06.19 22:19
    No. 4

    아, 감사합니다! 이런 오래된 작품에 아직까지 봐 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헤헷. 감사합니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6.11.14 19:10
    No. 5

    어휴~ 희세는 츤츤대서 그렇지 완전 살아있는 성불이여~
    보통 저런 상황에서 평범한 보통 여자들은 그냥 아작을 내놓지 저렇게 안 넘기지~
    성빈이고 웅도고 둘다 아주 죽는거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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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01화 - 3 +3 16.03.23 1,047 10 20쪽
234 01화 - 2 +7 16.03.20 903 9 23쪽
233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6 11 20쪽
232 3부 시작은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3 16.03.15 990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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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18화 - 4 +1 16.02.22 828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7 10 19쪽
228 18화 - 2 +8 16.02.01 906 10 22쪽
227 18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7 16.01.26 877 12 16쪽
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6 17 7쪽
225 17화 - 4 +7 16.01.06 809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68 13 19쪽
223 17화 - 2 +8 16.01.03 941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4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1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3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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