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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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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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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6.19 22:23
조회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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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9쪽

05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있으니까!

DUMMY

‘사각사각.’

“······.”



글씨를 씁니다. 공부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니까요. 고3은 개뿔. 전부 핑계입니다. 그녀에게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 뿐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뭐. 열심히 공부해서 뭐. 내가 공부 잘 하게 되면 희세가 뭐가 좋은데.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아니잖아. 아아아아. 어쨌든 공부는 한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딱 1주. 나는 반성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반성은 개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고. 닥치고 공부하고 있다. 지금도 스터디 그룹, 유진이네 학원 공부방에서 모두와 함께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러니까······ 망한거죠, 오빠하고 희세? 이제 쫑 난거에요?”

“······시끄러. 공부해.”

“에에~”



천연덕스럽게 내 아픈 곳을 찌르는 미래. 그래, 차라리 이런 분위기에선 미래라도 드립을 치는 게 낫겠다, 하면서도 잠자코 태클을 건다. ‘어떻게 되었는데요~~’ 하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계속 물어보는 녀석.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희세는 없지만 스터디 그룹은 계속 한다. 물론 우리 바보 셋이서 모여 있어 봐야 떠들기밖에 더하지 않기에, 원래 같이 영입하려던 성빈이를 데리고 공부하고 있다. 성빈이, 희세만큼 성실하게 잘 알려주니까, 스터디 그룹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내가 문제가 있겠지.


희세와의 싸움 원인이 성빈이와 같이 스터디 그룹을 하고 있다니, 희세가 보면 참 좋다고 웃겠다. 뭐, 정작 스터디그룹은 오지도 않았지만. 그러기는커녕 일주일 째 냉전상태로 말 한 마디 하지 못했지만. 아예 밥조차 같이 먹는 걸 거부한 희세니까.



“어떻게······ 화해 했어?”

“······전혀. 하아.”

“미, 미안.”

“아니야, 성빈이 네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



넌지시 물어보는 성빈이. 한숨 섞인 내 대답에 어쩔 줄 몰라하며 사과한다. 같이 논 것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 성빈이는 잘못이 없지. 놀자고 한 것부터가 나니까.



“속죄까진 아니지만. 열심히, 공부라도 하려고.”

“응······ 그래야지.”



그래야지. 우리 모두 고3이니까.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대학 가고, 멋진 삶,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아직까진 그런 미래에 대한 건 전혀 실감나지 않고, 그저 한 가지 생각뿐이다.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희세와 같은 대학교를 간다. ······목표치가 너무 높은 거 아닌가 싶은데.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하자.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아니, 싸늘하긴커녕 더워 죽겠어. 이제 여름 다 돼 가니까. 밤이 되어서도, 주말 마지막임에도 쉬지 않고 열람실에 가 공부한다. 새벽 1시, 2시까지 하드하게 공부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오늘 공부한 거 한 번만 보고, 약한 수학, 영어 모의고사 한 번씩만 풀고 자야지. 그렇게 해도 2시간 가까이 될 것 같지만. 어쨌든 사각사각, 연필로 수학 문제를 푼다.



“저기······.”

“음?”



문득 꾸욱 옆을 찌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거는 누군가. 힐끔 고개를 돌리니 성빈이. 우물쭈물, 뭔가 주뼛거리며 말한다. 아무래도 뭔가 말할 게 있는 것 같은데. 한참 열심히 다들 공부하고 있는 열람실에서 떠들 순 없으니, 잠자코 성빈이와 함께 열람실 밖으로 나왔다.



“왜?”

“그······ 희세가······.”



머뭇거리며 말하는 성빈이. 희세가, 뭘 어쨌다고. 괜히 불안해지잖아. 가뜩이나 요즈음 희세랑 냉전이라 일주일 넘게 말 한 마디 못 했는데.



“······기숙사를 안 왔어.”

“엣. 에.”



그럴······리가. 기숙사를 안 오다니, 그게 무슨 말인데. 잠시동안 부지런히 머릿속이 돌아간다. 지금은 일요일 밤. 모든 기숙사생들은 무조건 돌아와야만 한다. 헌데 희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웅도 모르고 있을 거 같아서······ 희세랑 연락 못 하지?”

“어······ 그렇지.”



성빈이의 걱정스런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이 전혀 안 되는 상태니까. 몰랐지. 있을 줄 알았지. 열람실에 안 올라온 건, 컨디션 안 좋아서 안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예 기숙사에 없는 거였다니.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되는대로 톡을 보내본다. 물론 바로 답장이 오진 않는다. 숫자 1도 사라지지 않는다.



“······안 받아.”

“음······.”



당연히 전화도 받지 않는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안 받는다. 몇 번을 걸어도. 마음이 초조해진다. 연락이 안 되니까. 성빈이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아낀다.



“······내 전화는 받을까, 싶은데. 나도, 솔직히 전화하기가······ 미안해서.”

“으, 응······.”



껄끄럽지, 확실히. 나 때문에 성빈이도 희세랑 어색해 졌으려나. 여러 명 힘들게 하는구나, 내가. 일단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힘없이 열람실로 돌아와 공부를 재촉해본다. 하지만 역시, 심란해서 잘 들어오질 않는다. 아까까진 그래도 그런대로 공부 잘 됐는데. 희세,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전화라도 받지. 아니면 톡이라도 하나 보내주지. ‘ㅇㅇ’하고 두 글자라도 보내주지. 4바이트의 그 글자라도 보면, 안심이 될 것 같은데. 내 잘못이지. 내 업보지. 내 죄지. 괴로운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페이지를 넘긴다.














--













다음날의 학교에서도, 희세는 오지 않았다. 빈 희세의 책상. 착찹한 기분이 든다. 남자친구라고 있는 내가, 희세가 어째서 오지 않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다른 애들도, 대놓고 나한테 물어본다. ‘희세 오늘 학교 왜 안 왔어?’ 하고. 당연히 남자친구인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난 모른다. ······어쩌면, 이미 남자친구가 아닌지도······ 모르겠네.



“히잉······ 히이, 왜 학교 안 왔데.”

“나도 그게 알고 싶은데.”

“웅이 덕분에 힘들어 하는 거 아니야? 나도 그 때 엄청 힘들어서 학교 안 나갔었거든!”

“······그렇게 활기차게 안 좋은 기억을 꺼내는 건······ 하아.”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하는 리유. 호주에 있을 때의 안 좋은 기억을 저렇게나 웃는 얼굴로 꺼낼 수 있다니. 과연 천연계의 리유. 그리고 나는 괴롭다. 지금 희세에게 한 만행에 더해 리유에게 했던 짓까지 떠올라서. 그래, 전부 내 업보가 맞구나.



“웅이는 전화도 안 해봤어?! 히이 전화 꺼져 있어? 아니면?”

“······내 전화는 안 받아. 싸워서. 리유 네가 해볼래.”

“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헤헷☆ 히이는 내 전화 받겠지!”

“제발.”



제발 그래라. 리유는 방긋 웃으며 희고 작은 손으로 희세의 번호를 누른다. 뭔가 리유에겐 조금 커 보이는 스마트폰. 리유가 작은 거겠지,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킨다. 제발 받아라, 제발.



“아! 여보세요! 뭐해? 납치당했어? 죽었어?”

“뭐하는 질문인데?!”

“엣! 그러지 마! 세상은 아직 아름다워! 살아 있어야 웅이를 죽일 수 있잖아!”

“무, 무슨 대환데.”

“아아아아~!”



받았다. 분명 희세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활기차고 큰 리유 목소리 때문에. 게다가 엄한 말들을 하는 리유 말에 일일이 태클 거느라 못 듣기도 했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희세 목소리가 너무 작기도 했고. 결국 통화는 금세 끊어졌는지 리유는 안타까워한다.



“······위치추적은 못 했어요. 너무 시간이 짧았거든요. 삼각함수법에 따라 위치를 유추할 순 있지만······ 브룩클린 주변이에요.”

“뭔 개소리야. 희세네 집 어딘지 다 알잖아.”

“데헷☆”



CSY 과학 수사대 같은 미드에서 나올 것 같은 첨단 수사하는 경찰 같은 느낌의 세련된 드립을 치는 미래. 나 정도 되는 병X이니까 받아주지. 미래는 깔깔 좋다고 웃는다.



“뭐래? 죽고 싶데?”

“응. 자살하고 싶데.”

“무슨 천진난만한 대화인데!?”



미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본다. 마찬가지로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리유. 언냐들. 이거 나만 불편해?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황 아니야? 으아아아! 희세가 자살하고 싶데잖아! 어째서!? 내가 성빈이랑 놀아난 게 그렇게나 심각한 일이었어? 희세는 벌써,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몸(?)이 된 거였어!? 안 돼!



“어떻게 된 건데! 희세가 뭐래?!”

“그냥, 정말 기운 없는 목소리로 ‘······자살하고 싶어.’ 하고 말했어. 그리고 끊어버렸엉.”

“······하앗.”



어색한 성대모사로 희세를 따라하는 리유. 기분이 더욱 이상해진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살하고 싶다는 거야. 그것도 기운 없는 목소리로. 나 때문이야? 정말로?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건데······!



“후후후─ 자신 때문에 연인이 죽을 것 같은 엄청 답답한 기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빠?”

“······야, 아무리 그래도 넌 그런 거 가지고 드립 좀 치지 마라. 제발.”

“아 왜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멘탈 회복이 너무 빠르잖아! 한 10년쯤 지나고 하라고 그런 건! 시간이 치유해준다고 해도 아직 몇 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저 강철멘탈이에요! 됐어요!?”



그러니까 지금, 저거 송준이 얘기 하는 거잖아. 미래년. 미쳤네. 정신 나갔네. 돌았네. 나는 참, 어떻게 저런 걸 드립으로 승화시키는지, 그런 미래가 참 신기하다. 내 태클에 미래는 잔뜩 우겨댄다. 아아, 모르겠다. 희세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리 없어. 없을 거야. 그럴 거야.


······희세 자살하면 어떡하지?! 우와아아아앙!!









“읏······. 하아.”



희세네 집 앞. 거두절미하고 와 버렸다. 점심시간에, 점심도 안 먹고. 오전 내내 아무것도 집중되지 않았다고, 리유의 전화 이후로. 내 톡과 전화는 계속해서 상큼하게 씹고 있는 희세고. 후다닥, 희세네 집 앞으로 뛰어 왔다.


하지만 막상, 초인종을 누르려고 하니 도저히 못 하겠다. 뭐라고 하고 희세를 만나지? 무슨 면목으로?




‘어······ 너 자살할까봐 왔어! 미안해!’

‘음······ 따, 딱히 널 위해서 온 건 아니니까!’

‘헉······ 잘못했어, 내가 미안해 그러니까 죽지 마!’





뭔데 그 이상한 답변들. 어쨌든, 병X 찌질이 상X신답게도, 나는 초인종을 누르지 못 하고 있다. 혹시라도,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거나? 집이 비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 저 초인종은 분명 시큼한 초인종일 거야. 나는 아들뻘 되는 초인종한테 맞은 거야.


······아아아아! 핑계대지 말고 눌러! 어쨌든 여기까지 왔는데 희세 봐야할 거 아니야! 그치만, 그치만······! 아하아아앙.





“나는 병신이다. 망했어. 헤헿. 똥이야. 병신. 병신. 벼어어엉신. 에에~ 초인종도 못 누르는 찐따 말은 안 들리는데에~?”



혼자 자학하며 돌아가는 길. 결국 희세네 집 앞에서 내가 한 짓이라곤, 10분 가까이 끙끙대며 앓다가 희세에게 전화 세 번 해 보고 돌아오는 것. 나는 그런 것이다. 행동으로 옮길 패기 따위 없는 병신. 씁쓸하다 못해 온통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기분으로, 자학을 곱씹으며 학교로 향한다.



“어 꼬꼬마. 점심 먹었어? 타. 같이 먹자.”

“······보통 어쩌다 혼자 오고 있냐고 물어보는 게 정상 아닌가요.”

“시끄럽고. 얼른 타. 뒤에 차 오잖아.”



마악 교문 주변의 골목에서 나오는데, 익숙한 자동차. 창문이 쭉 내려가며 선생님의 시큰둥한 표정과 볼멘소리가 들린다. 애써 태클을 걸어보지만 선생님의 완강한 태도엔 어쩔 도리가 없다. 마침 점심도 안 먹고, 혼밥 하는 찐따가 되고 싶진 않으니 냉큼 자동차에 탄다. 선생님에게 상담해볼까 하는 생각도 넌지시 들었고.



“와~ 웅도랑 언니랑 이렇게 셋이 밥 먹는 그림,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아, 안녕하세요.”

“시끄러워. 재잘대지 좀 마.”

“에에~ 언니 오늘은 제가 사는데에~”

“언니라고 하지 말라니까, 가뜩이나 학생 앞에선.”

“에에에엥~”



2년 전쯤 1학년 때, 이런 대화 본 것 같은데. 어른들은 생각보다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싶다. 나는, 3년동안 무얼 했을까. 무얼 위해 살고 있을까. 나는, 나는.


힘없는 내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물었다. ‘왜 죽을 상이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저것 힘들다. 희세에 대한 게 제 1고민이고, 다른 고민은 수능과 공부, 꿈과 미래. 희세와 다투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고민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웅도,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탕수육 많이 먹어! 선생님들은 여자니까, 살 빼야 돼서 이런 튀김은 치명적이거든! 남자 고등학생인 웅도가 많이 먹고 힘 내줘야지!”

“그럴거면 애초에 탕수육 세트를 시키지 않으면 되잖아.”

“에에엥! 제가 사니까 뭐라 하지 마요! 제 돈이에요! 흥흥!”

“······죽을래?!”

“으아아앙!”



평범한 중국집. 오늘은 담임 선생님의 은총으로 점심을 얻어먹는다. 늘 그렇듯 태클과 태클로 얽힌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의 먹이사슬. 좀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담임 선생님이 제대로 어그로를 끌긴 한다. 내가 선생님이어도 한 대 때리고 싶게. 나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받들어, 젓가락으로 탕수육을 들었다. 탕수육이다, 정웅도. 찍어 먹어라.



“······선생님들은, 고3때 어떠셨나요.”

“응? 고3?”

“아. 뭐, 죽어라 공부 했었겠지. 너무 예전이라 가물가물한데.”



선생님들은, 공부 잘 하셨겠지. 사대 가기 빡세잖아. 사대만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임용고시도 붙어야 선생님 하는 거잖아. 공부 잘 하셨겠지. 내 질문에 담임 선생님은 다소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이 되셨고, 사감 선생님은, 그저 그런 심드렁한 표정.



“사실, 선생님은 성적 맞춰서 아무 대학이나 갔거든. 공부는 곧잘 했는데, 별로 꿈이 없어서.”

“얼빠진 유정자 마인드 답지. 나도 할 말은 없는데. 선생 하게 될 줄은.”

“에엥~ 학생 앞 어쩌고 운운하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잖아요! 언니는 진짜.”

“희세. 연락이 안 되요.”



선생님 둘이서 티격태격 하고 계신 때, 나는 다시금 힘주어 말했다. 무슨 맥락으로 말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고3 어땠냐고 물었다가 갑자기 또 희세 얘기를 꺼내니.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냥, 희세 보고 싶다. 나한테 희세가 이만큼 큰 존재가 되었다니. 나도 몰랐다.



“······희세······ 며칠 동안, 학교 못 올 지도 몰라.”

“에.”

“음······ 나한테도, 어머님한테 전화 왔는데. 아마 며칠은, 학교 빠질 지도 모른다고, 미리 말씀해주셨거든.”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조금 잔잔한 느낌의 눈이 되신 담임 선생님. 잔잔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신다. 사감 선생님은 호쾌하게 짬뽕을 드시며 말한다. 얼떨떨해서 두 선생님을 바라본다. 두 분은 지금, 희세가 어떤 상태이신지 알고 계셨던 거야?!



“왜, 왜 말 안 해주셨어요, 두 분 다?!”

“우리가 왜 너한테 보고해야 하는데. 네가 뭐 희센지 뭔지 그 애 보호자야? 남편이야? 남자친구라고 꼴에 웃기는 짓거리 하는 것 같은데.”

“에잉, 왜요~ 좋을 때잖아요. 아~ 좋겠다~ 난 고등학생 때 그런 추억 하나 없는데~ 여고여서.”

“핑계지. 될 놈은 되. 네가 안 될 년이니까 안 된 거지.”

“이이잉~”



아, 그렇네.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이 굴었네. 죄송합니다, 제 잘못이죠. 선생님은 정작 별로 대수롭지 않게 소녀 시절 회상에 잠긴 담임 선생님을 놀려먹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그렇구나, 무슨 일이 있었구나.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모님한테 전화가 올 정도로 확실하게, 무슨 일이 있구나. 선생님께 ‘무슨 일인데요?!’ 하고 묻고 싶지만, 의기소침해진 나는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다. 얌전히 밥이나 얻어먹고 학교로 돌아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당장이라도, 수업이고 나발이고 희세네 집으로 뛰어가서 ‘희세야!’ 하고 집으로 난입해야 할까. 지금이라면, 부모님도 다 출근하셨을 테니 희세 혼자 있을 텐데. 음. 나는 그럴만한 깡이 안 되니까, 저녁시간에 가야겠다. 또, 오전처럼 오늘 하루를 싹 버리겠군. 더 신경 쓰여서.














--













정웅도, 바삐 오다! 다시금 희세네 집 앞. 시간은 저녁시간. 이게 뭐하는 짓인지, 하루종일 글자 한 자 들여다보질 못 했다. 훌륭한 고3 생활의 표본이군. 아니야, 지금에야말로 확실하게, 희세네 집에 들어가서 사과하고, 싹싹 털고 다시 일어나 공부를 하면 되는 거야! 지금 이런 미적지근한 상황에서는, 뭘 해도 안 되겠어! 나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그치만 초인종을 못 누르겠어! 으앙! 난 진짜 병신이야! 죽어버려! 자살해! 으아아앙!



“웅도 오빠?”

“엇······ 앗······ 안녕, 희나야!”

“웅.”



우물쭈물, 바보처럼 또 점심시간 때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거는 꼬마 숙녀. 가방을 매고 있는, 귀여운 희나. 와, 되게 오래간만에 보는 거 같은데? 희나, 이제 꼬맹이가 아니라 어엿한 숙녀가 되었구나! 어이구, 이리온. 귀여워 죽겠네. 히잌 페도!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희나에게 인사했다.



“뭐하고 있어?”

“응, 오빠가 희세한테 그······ 큰 잘못을 저질러서, 사과하려고 왔는데. 들어가기가······ 하핫. 뻘쭘해서.”

“에. 오빤 바보네.”

“그렇지.”



오빠는 혼밥하는 찐따인데다 거짓말까지 치는구나? 그런 느낌이라 도리어 마음이 놓인다. 희세 여동생 어디 가겠어. 희세보다 훨씬 귀여운 느낌이지만, 아직 어려서. 그래도 희나에게 털어놓으니 한순간 기분이 놓이는 기분이다.



“언니, 지금 학교도 못 가. 엄마 때문에.”

“에? 왜?”

“음······ 언니, 지금 오빠 보기 싫을 텐데.”

“그, 그렇지, 아무래도.”

“볼 거야?”

“응, 그러고 싶은데, 기왕이면. 사과도 하고.”



어린아이식 대화를 구사하는 희나. 주제가 확확 바뀐다. 어쨌든 지금 희세, 나 따위, 보고 싶지 않겠지. 어쨌든 희나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찌됐던, 난 희세에게 사과하고 싶다. 꼭. 억지로 사과하는 건 희세가 딱 질색으로 여기지만, 그렇다고 난 사죄하는 걸 그만둘 순 없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조금은 나에 대한 미움이 희석되지 않았을까.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내일 또 와서 사과해야지.



‘띵동.’

『······.』

“언니, 나 왔어!”

‘철컥.’



언제 봐도 정겨운 옛날 단독주택식 초인종과 문. 희세는 어지간히 저기압인지 말도 하지 않는다. 희나도 익숙한지 바로 자기 왔다고 깨금발을 짚고 초인종에 대고 말한다. 열리는 문.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희세네 집으로 들어간다.



“언니 언니! 웅도 오빠 왔어.”

“뭣······!”

“희세야, 미안ㅎ······ 에에엑!?”

“바,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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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03화 - 2 +5 16.04.10 894 11 24쪽
241 03화. 꿈도 희망도 없어, 내 앞날은. +3 16.04.04 744 11 20쪽
240 02화 - 4 +3 16.04.03 873 9 18쪽
239 02화 - 3 +3 16.04.02 847 7 21쪽
238 02화 - 2 +1 16.03.30 821 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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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01화 - 3 +3 16.03.23 1,047 10 20쪽
234 01화 - 2 +7 16.03.20 903 9 23쪽
233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6 11 20쪽
232 3부 시작은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3 16.03.15 990 10 15쪽
231 18화 - 5 +7 16.02.23 1,062 12 17쪽
230 18화 - 4 +1 16.02.22 829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7 10 19쪽
228 18화 - 2 +8 16.02.01 906 1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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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6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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