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978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1.06 18:38
조회
808
추천
16
글자
22쪽

17화 - 4

DUMMY

“……나희세!”

“!!”





전야제는 강당에서 한다. 학교 강당에는 쓸데없이 조명장치가 충실하게 달려 있다. 평소에 쓸 일도 없는데. 덕분에, 연극할 때 인물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데 유용하게 사용했는데.


그 조명의 빛줄기가, 나를 비추고 있다. 다른 하나는, 허둥지둥 조명 담당 여자애의 다급한 마음을 반영하는지 관중들 사이를 이리저리 맴돌다 간신히, 한가운데 있는 희세를 비춰준다. 이제는 전부 작당했구나.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벌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리유도 그렇고, 어쩌면 전부 자기들끼리 입을 맞춰놓은 것일까. 나 모르는 사이에.



“비키세요! 비켜요~!”

“???”



어디선가 나타나는 미래와 시아. 무대 맨 앞에서 납작 엎드려 숨어 있었나보다. ‘STAFF’ 라고 적인 검은 조끼를 입은 미래와 시아. 소란스럽게 소리지르며 길을 뚫는다. 순식간에 모세의 기적이라도 일어나는 듯 가운데를 기준으로 한 사람 지나갈만한 길이 생겨난다. ……미래야 그럴만한 녀석이니 이해하겠는데 시아는 무슨 일로 도와주고 있는 게지. 미래 사단 스태프도 아닌데.



“…….”

“…….”



정말 저질러버렸네. ‘나희세!’ 하고 힘 있게 외칠 때만 해도, 이런 식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장내의 몇 백 명의 사람들이, 나와 희세를 바라보고 있다.


……저기, 나 고백해도 이런 식으로 거창하게 하려고는 안 했는데. 희세가 쪽팔려 죽기 전에 내가 먼저 바싹 말라서 죽어버릴 것 같은데. 연예인도 이렇게 고백하지는 않겠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몇 백 명 앞에서 고백이라…….


잠깐만. 5초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연됐는데. 이거, 방송사고인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건 각본에 안 써있었잖아. 희세가 이쪽으로 와야 하는 건가? 아니, 진정한 사랑을 찾아 가는 진취적인 양반의 모습이니 내 쪽에서 걸어가야 하나. 아니, 지금 희세에게 고백하는 건 연극이 아니라 내 진심이잖아! 으으, 으으!


허둥대지 말고, 정황 상 내가 걸어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천천히 걸어가, 희세 앞에 선다. ‘뭐야, 뭐?’ 하며 잘 보이지 않아 웅성대는 뒤의 관객들.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쳐다보는 주위의 방벽과도 같은 사람들. 잔뜩 은근한 표정으로 세상 누구보다 좋아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미래. 뾰로통한 표정으로 ‘흥!’ 하는 얼굴의 시아. 그런 면면들이 전부 눈 안에 들어온다.



“……미쳤어?”

“……나도 이렇게까지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미안.”



그리고, 최후에 내 눈에 들어오는 희세.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얼굴은 새빨개져서 마음에 들지 않는 눈.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가까이에 있는 나에게만 들리게 말한다. 속삭이듯 말하려는데 음, 나한테는 마이크가 연결돼 있는지라. 속삭이지만 꽤 분명하게 스피커로 내 목소리가 들린다. 우와, 쪽팔려. 이렇게 된 이상, 이렇게 된 이상!



“이런저런 구질구질한 건 다 필요 없으니까! 나희세, 좋아한다, 나랑 사귀자!”

“우우우우우~~!!”

“뭐야 뭐?”

“에엥?”



성빈이 때와 마찬가지로,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는 수백·수천·수억의 생각이 지나갔다. 그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그치만 난 널 좋아한다, 행복하게 해줄게, 좋아해, 사랑해, 창피하지만 용기내서 말해볼게, 모두 앞에서 말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해, 이성이 견딜 수 없을만큼 사랑해.


─그딴 개소리 집어 치우고, 그냥 펙트만 전달하자. 나는 좋아한다 희세를. 희망한다 희세와 사귀기를. 영어 투의 직역체가, 차라리 이럴 때엔 나은 걸까. 구질구질한 말 다 빼고, ‘좋아한다’ 가 먼저 나오니까.


주위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우우우우~’ 하며 저들끼리 소리 내며 좋아하는 애들은 우리 학교 여자애들. 전교 1등이자 외모적으로도 수준급인 희세를 모르는 애는 별로 없을 테고, 전교 유일의 남자인 내 존재감을 무시하기란 또 힘든 일일 테니. 어쨌든 나름대로 유명인사인 두 사람이, 눈앞에서 이런 좋은 구경거리를 제시해주고 있으니 즐겁겠지. 그럴 것이다, 소리 지르는 애들은.


나머지는 아마, 우리학교 애들이 아니라 타 학교 애들이겠지. 그네들 입장에서는 분명히 연극 하다가 뭔가 그럴싸한 퍼포먼스같이 하려는 듯하다가 갑자기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얼토당토않게 고백하고 있으니.



“……후우.”

“우우우우~~”

“받아 줘! 받아 줘!”

“……아아.”



희세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다른 애들이 볼 때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희세를 2년 가까이 본 나는 알 수 있다. 엄청 화났다, 지금. 나는 이제 죽었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죽을 것이다. 아, 안 돼! 돼!


그도 그럴 게, 이러면 뭐랄까,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잖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백했는데 받아주지 않으면, 천하의 나쁜년(?)이 된다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 그런 자유의지에 반하는 상황이나 분위기를 가장 싫어하는 게 희세의 강직한 성격이고. 희세 성격 잘 알면서, 왜 배려해주지는 못할망정 가장 최악의 선택을 난 하고 있는 것일까.


한숨 쉬며 말하지 않는 희세. 불편한 심기만 간접적으로 나타내는데, 주위에서 박수를 치며 ‘받아 줘! 받아 줘!’ 라거나 ‘사귀어라! 사귀어라!’ 따위의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범인은 근미래. 제가 무슨 레크레이션 강사라도 된 듯 선동질에 호응을 유도한다. 나쁠 거 없지, 군중심리의 관중들은 박수를 치며 깔깔대며 따라한다.


Aㅏ…….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하리 나는 바보가 돼버린 걸.



“……나중에, 다시 고백해.”

“어, 어?”

“이딴 식으로 하는 거, 마음에 안 드니까.”

“어, 으, 응.”



작게 속삭이는 희세. 내 마이크에 증폭돼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해서, 거의 나에게만 들릴 수준이다. 잔뜩 볼멘소리의 희세. 그래도 희망이 있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대답했다. 스피커에는 멍청한 내 목소리만 울려 퍼진다.



“그러니까, 사귄다는 거에요 만다는 거에요?!“

“우우우우~!!”

“……하, 진짜.”



옆에서 선동하는 미래. 이 녀석, 과거에 태어났으면 훌륭한 선동가가 됐을꺼야. 격동의 근현대사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지도 모르지. 미래의 말에 선동된 추종자(?)들은 격한 비명을 지르며 눈치를 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벼운 한숨을 쉬고 한 마디 말하는 희세. 분노가 극에 달한 것 같다. 우아아, 안 돼! 이러다 폭발한다, 희세는 지금 그야말로 인간 폭탄이라고!



“!”

“우와아아아아!”

“됐어? 좋아? 좋아 죽겠어?”

“……!”



갑자기 화악, 눈앞에 다가오는 크고 아름다운 무언가. 희세는 홧김에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나를 껴안는다. ……근데 그냥 껴안음이 아니라, 내 고개를 있는 힘껏 낮춰 가슴에 파묻히게 했다. 정상적인 포옹이면 내가 희세보다 키가 크니까 자세가 이렇게는 안 나오지.


대답 대신의 강렬한 포옹. 주위에서 탄성이 실러져 나온다. 나에게 허용된 정보는 오로지 청각 뿐. 시각은 희세 가슴에 파묻혀 어둠 속이고, 얼굴의 촉감은 뇌리를 향해 맹렬한 행복감을 전파할 뿐이다. 짜증스럽게 말하는 희세의 목소리가 내 마이크에 울려 스피커로 들린다.



“와와와와~~!”

“아하하…….”

“……흥.”



숨막히는 포옹이 끝이 나고, 나는 잔뜩 빨개진 얼굴로 눈이 풀려 희세를 쳐다봤다. 주위는 엄청 시끄럽고, 희세도 엄청 부끄러운 듯 빨개진 얼굴로 새침하게 ‘흥’ 하고 말한다. 뒤에서 미래가 ‘무대로 올라가요 무대로!’ 하고 소리친다. 이 말에 주위 애들 또한 금세 선동돼 ‘올라 가! 올라 가!’ 하고 외친다.



“……적당히 좀 끝내봐, 창피해 죽겠는데!”

“아, 알았어, 잠깐만.”



군중심리라는 게, 꼭 외치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나도 희세도, 주위에서 자꾸 외쳐대니 일단은 모세의 기적을 통해 생긴 한줄기 길을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간다. 아까 전에 나를 포옹했을 때 목소리가 마이크로 울린 걸 희세도 들었는지, 지금은 또 작게 나에게만 들리게 말한다. 나도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고백을 한 건 좋은데, 희세 가슴에 파묻히는 충격적인 대답을 받은 건 좋은데, 그래 다 좋은데 이거 어떻게 마무리를 내려야 할지 모르겠어.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데, 무슨 퍼포먼스를 해야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을지. 연극도 흐지부지 끝났고, 되게 애매한 상태가 되었는데. 걱정하며 희세와 함께 무대 위로 오른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 잘 살겠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이는 딸 둘 아들 하나 셋 정도만─ 크헉!”

‘퍽!’

“미쳤어!?”

“아하하하하하!”



자연스럽게, 무대에 올라오는 희세 손을 붙잡아주며 손을 잡고 있게 되었다. 나는 감격에 찬 표정으로, 빨개진 얼굴로, 제대로 된 이성이 아닌 상태로 말을 이었다. 무슨 연예인이 결혼하고 신혼여행 가기 전에 하는 멘트처럼. 드립을 치다보니까 아이들 드립까지 치게 된다. 희세가 빠르고 신속한 펀치를 보이지도 않게 명치를 향해 내꽂는다. 그대로 허리가 ㄱ자로 꺾인다.







--







연극은 성황리에 끝났다. 뭔가 결말히 흐지부지해졌지만, 축제 역사상 가장 요란한 어떤 남자애의 고백으로 축제의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연극은 전야제 전반부 공연이었기에, 이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는 끝이 났다. 전야제 후반부는, 이제 마음 놓고 구경만 하면 된다. 마침 후반부는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춤이라던가, 밴드 공연이라던가 이런 게 많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하. 미쳤어 진짜. 아후, 아까 얼마나 창피했는데.”



그러나 그 공연을 보는 일은 없었다. 으슥한 뒷골목, 나는 일진 여자애들에게 삥 뜯기는 찌질한 남자애처럼, 여자애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무릎 꿇고 정중한 사과 한 마디. 계속되는 사죄에도, 희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성빈이, 리유, 미래, 유진이, 민서, 시아, 그리고 희세. 어째서인지 모두 모여서 이런 나약한 나를 구경하고 있다. 뭐, 전야제 후반부에 뭘 관람하던 개인의 자유지만. 시덥잖은 공연보다 나와 희세의 꼴을 보는 게 더 재미있긴 하겠지. 희세는 잔뜩 뻗대는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고, 나는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희세에게 빈다.



“그래도, 멋있었잖아 고백! 평생 못 잊을 고백이었을 거야!”

“이딴 걸 어떻게 잊어!? 성빈이 네가 이 상황이었다고 생각해 봐! 동네 애들 다 알겠다! 왜 내가 얘랑 사귀는 걸 마을 전체에 신고하고 사귀어야 하는데?!”



옆에서 성빈이가 방긋 웃는 표정으로 말한다. 악의는 없는 성빈이지만 희세는 잔뜩 뾰족한 태도로 대답한다. 지금의 희세에게는, 어떤 것이든 자극하는 말로 들리겠지만.



“아하하하! 인터넷에 올라갔을지도 몰라! 히이 페북스타네!”

“아하아…… 진짜.”

“……죄송합니다.”



마찬가지로 악의가 없기로는 첫 번째를 달리는 리유의 천진난만한 말. 희세는 전혀 생각 못 했는지 리유의 말에 머리를 짚으며 짜증을 안으로 삭힌다. 나는 얌전히, 계속해서 사과할 수밖에 없다. 백 번 내가 사과할 수밖에 없으니.



“너무 그러지 마~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솔직히, 이거 근미래 네가 꾸민 거지?”

“판사님! 소녀는 3일 전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옵니다! 그렇지 않니 민서야? 시아야? 유진아? 리유야?”



은근한 표정으로 팔꿈치로 희세를 툭툭 치며 말하는 미래. 희세는 잔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으로, 게슴츠레하게 희세를 보며 말한다. 그래도 통찰력의 희세인지라 무작정 나를 탓하지 않고 진실을 꿰뚫어 보는구나. 오해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미래는 특유의 재수 없는 놀리는 투로 애들을 보며 말한다.



“에에~ 무, 무슨 말 하는 지 모르겠는데, 에헤헤? 그치 유진아?”

“응. 미래 아무래도 좀 맛이 간 거 같아. 원래도 좀 이상한 애였는데.”

“……짜증나니까 말 걸지 마요.”

“우와아아아! 사람을 이렇게 버리네?! 단물 다 빠지니까 껌처럼 뱉어?!”



딴청을 피우는 민서. 유진이에게 동의를 구한다. 연극은 끝났지만 아직까지 연기력을 발휘하는 유진이. 정말 이상한 사람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미래를 보며 말한다. 시아는 잔뜩 뾰로통해선 맥락에 안 맞는 말 한 마디. 호의적이지 않은 대답에 미래는 아저씨처럼 큰 소리로 화를 낸다.



“어쨌든. 그딴 고백은 안 받아줘, 무효야 무효.”

“에? 에에. 그렇게나 창피한 와중에 열심히 그랬는데.”

“미쳤어!? 그딴 농담 하는데 그게 고백이야!? 애 셋 낳고 어쩌고 하는데!”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같은 집→ 같은↗ 방에서↘ 같이 자고 깨며~”

“시끄러! 그거 하지 말라니까?!”



희세의 단호한 말에 나는 드립으로 무마하려 열심히 노래까지 부른다. 희세는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친다. ‘아이’드립에 약한 모양이다, 희세는. 사실 그런 건 드립으로 치기엔 좀 민감한 소재이긴 한데.



“그럼, 다시 고백하면 되겠네! 얼른 해!”

“아…… 여기서?”



방긋 웃으며 단순하게 말을 꺼내는 리유. 고백을 안 받고 무효로 칠 테니 지금 여기서 다시 하라는, 정말 좋은 제안. 괜히 살짝 껄끄럽다. 모두가 보고 있는데. 아까처럼 몇 백 명이 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보고 있는 애들이 전부…… 나랑 관계 있었던 애들이잖아.



“그럼 어디서 하려구요? 어머어머, 저희 안 보는 데서 무슨 짓을 하려구~ 오빠, 이런 나이에 안에 하는 건 안 돼요~?”

“무, 무슨 개소린데?!”



이런 와중에 엄한 섹드립을 잇는 미래. 미래는 어디에 내놔도 미래구나 싶다.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꽤 오래 무릎꿇고 있어서 다리가 저리지만,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엄격·근엄·진지한 표정으로 묵묵히 눈을 들었다.


애들을 하나 하나 쳐다본다.


리유, 내 첫사랑. 아까 그 고백 사태의 주 원인. 밉다거나 하지 않다. 자기 때문에 고백 못 하는 줄 알고 그렇게까지 해준 배려에, 도리어 고맙다.


성빈이, 천사 같은 나만의 치유계 미소녀. 뭐든 부정적인 나에게, 늘 긍정적으로 대답해주고, 보듬어주고, 많은 치유를 해줬지. 그 자체로 좋은 친구이자, 음. 거기까지.


미래. 매일 개차반 같은 대우를 하지만, 실은 누구보다 친한 녀석. 친하니까 그렇게 막 대하고 드립 쳐대지. 4차원 중의 4차원이지만, 지금 우리 중에는 제일 멀쩡하게 남자친구 사귀고 있는, 승리자 포지션이랄까.


유진이, 솔직히 1학기 때 그 아침 드라마 같은 계략이 아직도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그냥 솔직하게, 나랑 어느 정도 호감 쌓여 있을 때 고백했다면, 음…… 그것 또한 무시무시한 일인데.


민서, 학기 초의 통통함을 잃고, 이제는 완연히 예쁘고 발랄한 소녀의 모습. 뭐, 통통한 모습도 동글동글 귀여웠지만. 순박하고, 호기심 많은 면이 좋았지. ……좀 그 쪽(?) 계통 호기심은 자제했으면 좋겠는데. 미래한테 이상한 바람 안 들었으면 좋겠고.


시아. 아직도 뾰로통한 상태. 솔직히 뭐, 접점은 별로 없었지만. 그 접점도 없는 뜬금없는 고백으로 모두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지. 그냥, 귀여운 후배, 동생 정도라면 괜찮을까.



“모두, 고마워.”

“……지금 나한테 고백하는 거 아니야?!”

“아니,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한 차례, 애들을 쳐다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희세를 쳐다본다. 첫 마디의 ‘고마워’ 라는 말에 희세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불퉁하게 대답한다. 그래도 나는 확고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이 먼저일 것 같아서.



“우우~ 벌써부터 2차 바람기 예정인가요? 이번엔 누구랑? 성빈이랑? 의외로 유진이? 헉, 민서? 시아까지!”

“닥쳐.”

“에에에~ 바람 피워도 저는 빼줘요~ 남친 있는 몸이니까!”

“……크흠.”



미래의 저 깐족거림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가끔 보면 침착맨도 피곤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헛기침을 하고, 다시금 고개를 돌려 희세를 쳐다본다.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고백의 진행에 희세는 뾰로통한 표정이다.



“좋아해, 희세야. 많이.”

“……그게 끝?”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희세를 포함한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지라 그리 크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꼭 마이크를 쓴 것처럼 크게 들리는 것 같다. 강당 뒤편 으슥한 공간이라 그런지도.


그 뒤로, 별다른 말이 없으니 희세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한다. 싱긋 웃으며 묵언의 대답. 사실은 이 뒤에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고 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잔뜩 좋아하는 표정의 미래와 방실방실 웃고 있는 리유, 마찬가지로 기대하는 표정의 성빈이 등. 다른 애들의 압박감 때문에 제대로 고백을 못 하겠다.



“입학식 때 처음 만났을 때, 그 땐 솔직히 희세 외모만 보고 ‘예쁘다’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같이 지내면서, 이런 저런 일 겪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 이렇게 개소리 안 하려고 깔끔하게 하려고 했는데. 그런저런 일 겪어서, 지금은 많이 좋아해. 사귀자.”

“……흥. 마음에 안 들어.”



주저리 주저리 찌질하게 길게 이야기하는 나. 이쯤 태클을 걸어줘야 하는 게 희세와 나의 대화 패턴인데. 고백하는 중인지라, 희세는 오디션 심사의원처럼 팔짱을 끼고 도도하게 대답한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게. 나, 가진 건 부랄 두 쪽밖에 없지만, 사나이 정웅도, 희세 너는 고생시키지 않고 우리 아이들, 앜!”

‘퍽!’

“그러니까 그 아저씨 같은 농담은 그만 하라니까?!”



다시금 이어지는 아저씨 같은 드립. 정확하게 말하면, 저 말은 여자애 본인이 아니라 장모님한테 해야 하는 말인데. ‘장모님! 제가 다른 건 못 해도 희세 고생은 안 시킬게요!’ 하는 말. 다시금 빠르고 신속한 희세의 주먹에 응징 당한다.



“나희세로, 3행시를 지어볼게.”

“아 하지마 하지마 미친! 그런 거 하지 말라니까?!”

“아하하! 좋아요 그런 거! 운 띄워 줄게요! 자자, 모두~?”



무엇인가 번뜩, 재치가 떠오른다. 한 마디 말하니 희세는 질색하며 손을 내젓는다. 이런 걸 좋아하는 미래는 와하하 웃으며 또다시 선동질에 몰입한다. 성빈이도, 리유도 싱긋 웃으며 같이 ‘나~’ 하고 운을 띄운다.



“나 말야…….”

“우우우우~ 느끼해~!”



지구의 아재(?)들아…… 나에게 힘을 빌려줘!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나를 도와줄 거야. 이 한방에 모든 것을 걸겠다!



“희!”

“희세 너를…….”

“우우우우우~~ 뭔지 예상돼!”



계속되는 삼행시. 희세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애들은 좋아 죽겠다는 듯 계속 신이 나서 운을 띄워주고. 나도 나대로 창피하기도 하지만 나름 분위기를 타서 말을 잇는다.



“세!”

“……세상 누구보다, 널 사랑해. 희세야!”

“아아아아아앍~!!”

“미친!! X나 미쳤나봐! 지가 순정만화 주인공인줄 알아!”

“와, 웅이 아저씨 다 됐어!”

“……내가 아는 웅도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뭐! 왜! 뭐!”



‘세’의 운을 받아, 다시금 고백을 이으니 애들은 자기들이 더 호들갑을 떨며 난리를 피운다. 미래만 그러는 게 아니라 성빈이도, 민서도. 유진이는 시큰둥하게 말하질 않나, 리유도 태클을 걸지 않나. 얘네 왜 이래! 난 나름대로 괜찮은 고백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응, 알았어.”

“어……?”

“알았어, 사귀자고! 나도 너 좋아해, 그거 이제 알았어!? 예전부터, 엄청 좋아했는데! 이 눈치도 없는 바보 변태 새끼야!”

“……응.”



어수선한 장내를 정리하는, 희세의 한 마디. ‘에, 뭐라고?’ 하는 투로 어? 하고 물으니 희세는 짜증스럽게 얼굴이 빨개져서 앙탈 부리듯 나에게 말한다. 평소에 듣던 폭언이지만, 오늘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좋아해.


나도 좋아해.


그것만으로, 너무 행복해서.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요. 나, 너무 행복해서, 이 순간이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와, 사망플래그 막 나온다! 오빠 이제 죽는 거에요!?”

“미쳤냐!?”



물론 이건 미래가 드립을 받아줄 줄 알고 한 말이지만. 싱긋 웃는 미래. 나도 마주 웃는다. 희세는 왜인지 모르게 살짝 울먹이는 것 같은 표정이다. 이제야, 고백하고 사귀는 것에 감격한 것일까. 뭔가, 나도 너무 오래 끈 것 같네. 희세 처음 만나서, 호감 느꼈던 게 1학년 1학기 때였는데, 지금은 2학년 2학기 중간이니. 1년, 하고도 반 만일까.


천천히 희세에게 다가가, 희세를 꼬옥 안아준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내 품에 안기는 희세. 작게, ‘고마워, 사귀어줘서.’ 하고 말한다. 희세는 ‘바보야, 사귀는데 고마운 게 뭐야. 멍청이야.’ 하고 틱틱대며 말한다. 그런 틱틱대는 것조차, 너무 귀여워 더욱 꼬옥 껴안는다. 주위에서 애들이 환호하며 축하해주는 소리가 들린다.


























내 이름은 정웅도. 수컷 웅(雄)에 길 도(道)를 쓰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 정웅도. 그리고, 우리 학교 유일의 남자애이자, 우리 학교의 변태.



이제는, 희세만을 위한 변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9 05화 - 2 +3 16.06.26 959 7 19쪽
248 05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있으니까! +1 16.06.19 811 7 19쪽
247 04화 - 4 +5 16.06.13 819 7 18쪽
246 04화 - 3 +1 16.05.29 766 7 20쪽
245 04화 - 2 +2 16.05.15 872 7 20쪽
244 04화. 바보 스터디 그룹 결성! +4 16.04.20 1,022 7 20쪽
243 03화 - 3 +1 16.04.16 892 7 19쪽
242 03화 - 2 +5 16.04.10 893 11 24쪽
241 03화. 꿈도 희망도 없어, 내 앞날은. +3 16.04.04 744 11 20쪽
240 02화 - 4 +3 16.04.03 873 9 18쪽
239 02화 - 3 +3 16.04.02 847 7 21쪽
238 02화 - 2 +1 16.03.30 821 8 19쪽
237 02화. 이제 그만, 안녕, 하고 말하고 싶어도. +1 16.03.29 961 8 16쪽
236 01화 - 4 +1 16.03.25 906 9 20쪽
235 01화 - 3 +3 16.03.23 1,047 10 20쪽
234 01화 - 2 +7 16.03.20 903 9 23쪽
233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6 11 20쪽
232 3부 시작은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3 16.03.15 990 10 15쪽
231 18화 - 5 +7 16.02.23 1,061 12 17쪽
230 18화 - 4 +1 16.02.22 828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7 10 19쪽
228 18화 - 2 +8 16.02.01 905 10 22쪽
227 18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7 16.01.26 877 12 16쪽
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6 17 7쪽
» 17화 - 4 +7 16.01.06 809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67 13 19쪽
223 17화 - 2 +8 16.01.03 941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4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0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3 16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