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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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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2.0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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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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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22쪽

18화 - 2

DUMMY

“…….”



가만히, 생각해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차마 여자애들 방에 들어가는 건 부끄러워서, 화장실 좌변기 칸에 들어가 앉아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여자애들 방이다.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지켜보니 내가 나희세가 돼 있다. ……말이 돼? 아무리 이게 정말 주어진 현실이라지만,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러니까, 좀 더 명쾌하게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나와 희세가 영혼이 바뀐 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러고 보면 또 그렇다. 왜인지는 몰라도 영혼과 몸이 뒤바뀐 거라면, 그럼 희세는……?



‘달깍.’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다고 바뀌는 건 하나 없다. 어찌된 영문인지 정말 모르겠지만, 이성적으로 판단이 안 서지만, 방법은 하나 뿐. 나와 마찬가지로 몸이 바뀌었을(그러길 바라는) 희세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 보는 것. 내 IQ 50, 희세 IQ 150 도합 200의 IQ로 이 사태를 해결해야만 해! ……난 뭐 원숭이냐.



‘똑똑.’



사뿐사뿐 걸어 계단을 내려간다. 가슴 쪽에 느껴지는 미묘한 느낌. 아, 안 돼. 난 아무것도 모른다. 혹시라도 선생님께 들킬까봐 살며시 내 방문을 노크해본다. 들리지 않는 대답. 이럴 리가 없는데, 희세 부지런한데! 자취할 때에도 그 이른 아침에 학교갈 준비 다 하고 나 깨우러 와 주는 희세인데! 몸은 그대로인 건가? 수면 패턴 같은 거?!



‘끼이익.’

“저…… 저기.”



우왓. 엄청 이상해. 말하는데 희세 목소리가 나다니. 이거 진짜 이상하다. 이상할 수밖에, 18년을 남자로 살던 나였는데. 게다가 하필 바뀐 몸도 여자친구고.



“……?”

“놀라지 말고 희세야, 이거 그…… 꿈이 아니야, 현실이야. 지금 보고 있는 게 네가 아니야.”

“???”



겨우 눈을 뜨는 희세. 아니, 나. 우와, 진짜 찐따(?)처럼 생겼다. 희세는 이런 나를 보고도 사귀어준건가. 천사네 천사. 생불이야.


일어나자마자 당황할 수도 있는 희세이기에, 얼른 진정할 수 있는 말을 해 주었다. 희세 입장에선 굉장히 어이없을 거 아니야. 자다가 일어났는데, 자기 자신이 말을 꺼내고 있으니. 꿈이라고 해도 믿겠지.



“그, 거울이 음…… 여기.”

“……하? 엣? 뭐, 뭐야 이거?!”



내 방엔 거울이 없다. 그렇다고 정웅도 상태(?)인 지금의 희세를 2층 화장실로 데려가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급한대로 침대 머리맡의 내 휴대폰으로 셀카모드를 켜서 희세를 보여준다.


화들짝 놀라 소리치는 희세. 음, 내 목소리 톤으로 희세 말투라니…… 되게…… 이상하다. 죽을 것 같아. 전혀 예상 외의 내 목소리에 희세는 상당히 놀란 눈치. 휴대폰에 비친 모습과 방금 들린 목소리에 금방 상황을 알아차린듯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럼 설마…… 너……?”

“네, 접니다. 정웅도.”

“마, 마…… 말도 안 돼.”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희세. 내 느긋한 말투에 희세 목소리로 대답. 상당히 기묘한 대화다. 희세와 나의 대화라는 것은 평소와 같을 텐데도.



“아주 한창 좋을 때인 건 알겠는데. 기숙사에서 염문은 너무 과하지 않나. 그렇게 안 봤는데 나…… 뭐시기, 그 꼬꼬마 여친.”

“아, 그게 선생님 그게 아니라……”

“뭐라구요?”



뒤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낮은 톤의 건들거리는 목소리.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선생님. 그러고보니 상황이 그렇네, 굉장히 미묘해. 내 방에, 나는 누워있고, 잠옷 차림의 희세는 서서 나와 얘기하고 있는, 그런 구도. 절대 의도한 건 아닌데,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고 그런(?)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서로 다른 목소리로, 바뀐 목소리로 말하는 나와 희세. 이러니까 진짜 이상하다. 당차고 멋진 희세가 비굴하게 말하는 것 같고, 선생님하고 친한 내가 정색하고 말하는 것 같으니까.



“저 그런 애 아니거든요?! 미, 미쳤다고 이런 애랑!”

“……꼬꼬마 정신 나갔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뇨 그…… 그게 그러니까요. 아 그렇게 보지 마시고 제 설명을 들으세요!”



앙칼진 낮은 톤의 내 목소리. 그 괴리감에 선생님은 굉장히 이상하다는 듯 내 몸의 희세를 보며 말씀하신다. 희세 몸의 나는 계속해서 비굴한 목소리로 말한다. 뭔가 희세 이미지 망치는 것 같은데. 여자애에게는 엄격하신 선생님. 잔뜩 눈을 부라리며 나를 보신다. 그런 눈은 처음이에요! 그렇게 보지 마요, 가뜩이나 멘탈붕괴 상태인데!!







“그러니까, 둘이 몸이 바뀌었다고.”

“네.”

“……예.”



사감실. 어찌나 놀랐는지 선생님은 아침 인원체크도 건너 뛰고 나와 희세를 앉히고 진지하게 상담이라도 하듯 말씀하신다. 체념하고 대답하는 나.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억울한 눈초리지만 어쩔 도리 없이 대답하는 희세.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보고 착찹한 표정을 지으신다.



“진짜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꼬꼬마나 얘나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벌일 리는 없고. 둘이 그만큼 안 친한 것 같고.”

“아, 안 친하다뇨?! 저, 저희 사귀거든요?”

“사귄 거랑 별개로, 안 친해 보이는 건 안 친해 보이는 건데.”



네, 잘 알아보시네요. 역시 선생님이네요, 통찰력이 대단하셔요. 랄까, 통찰력이라기보다는 타인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나와 희세. 선생님의 말에 벌컥 화를 내는 희세. 의외의 반응에 나까지 괜히 눈이 크게 뜨여진다. 그렇구나, 안 친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구나, 희세도. 하지만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에 ‘그, 그건……’ 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희세. 어색하다고 느끼긴 했구나, 희세도.



“최악이구나, 사귀고 어색한 상황인데 몸까지 바뀌다니.”

“……어색하지 않아요.”

“너 말야. 꼬꼬마 몸 하고 있다고 잘도 말하는데. 난 너 별로 안 좋아하거든?”

“…….”



씨익 웃으며 상황을 즐겁게 여기는 선생님. 저 사악한 악동 같은 미소는 분명 그런 뜻이지. 게다가 나와 희세가 어색한 사이인 것을 금방 파악하곤 말씀하신다. 희세는 끝까지 어색하지 않다고 강변하지만, 선생님의 나지막한 말에 입을 다문다. 가뜩이나 혼동스러울 텐데, 나는 옆에서 보조라도 쳐야겠다.



“크흠, 아무리 싫어도 선생님이 제자한테 대놓고 싫다고 하는 건…….”

“꼭 내 어릴 때 보는 것 같아서. 동족혐오지. 아마.”



내 말에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신다. 희세와 선생님이라. 미묘하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라던지. 힐끔 희세를 보는데 희세가 아니라 나다. 우와, 이거 진짜 적응 안 되네. 선생님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분명 말투는 꼬꼬만데, 목소리랑 얼굴이 영 아니라 이상하네.’ 하고 말씀하신다.



“어쨌든, 소문내고 그런 성격은 아니니까. 둘이 잘 해결해 봐. 세상 어디에도 몸이 뒤바뀐 적은 없는 걸로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까 싶지만. 나도 도움을 줄 만한 게 마땅히 없다.”

“넵…….”



선생님의 결론에 시무룩한 나의 대답. 뭐, 해결해준다거나 조언을 바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엉뚱한 오해는 푼 것 같다. 희세랑 아직 그런 경지(?) 근처까지도 못 갔는데. 도리어 어색하기만 엄청 어색한걸. 둘이서 터덜터덜 사감실을 나왔다.



“……학교, 가야할 거 아니야.”

“그렇지.”



세상이 뒤집어져도 학교는 가야 하는 게 대한민국 학생의 의무이자 천직이지. 학생이니까. 지금 우리 같은 상황은 또 특이한 거라, 나와 희세 둘 말고는 바뀐지 어쩐지 겉으로는 전혀 티가 안 나니까 더 문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와 희세는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니까. 잠시 서 있던 희세. 잠자코 나에게 말을 건다.



“어떻게 씻으려고.”

“그야, 음…… 올라가서─ 아, 그러네.”

“……우선, 교복 가지고 내려와. 여기로. 애들한테 안 들키게, 잘.”

“아, 알았어.”



희세가 씻는다면, 2층 방으로 가서, 샤워 바구니를 들고, 같은 층의 샤워실이나 세면실로 가서─ 아. 갈 수가 없잖아. 희세의 몸에 내 영혼인데. 잠깐만. 그럼 지금 이 몸으로 샤워실에 가면, 아무 죄의식 없이 여자애들의 알몸을?!?!?!!? 아니, 죄의식이고 나발이고 희세의 몸이니까! 아무 상관없잖아! 헉, 그것보다 더 대박인건……! 그럼, 희세 알몸도 볼 수 있는 거야?!



아, 안 돼!

돼!



찰나 간에 든 음탕한 생각을 읽었는지, 내 몸을 한 희세는 영 아니꼬운 표정으로 말한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계단을 오른다. ……내 얼굴인데, 내가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싶다. 씻지도 않고 교복 가지고 오라니, 좀 그런데.



“어디 갔다 왔어 희세야? 씻지도 않구.”

“푸흡─! 아, 아, 아니이!”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뿜게 되는 상황. 자기 자리에서, 성빈이가 속옷을 입고 있다. 물론 여자 기숙사니까 방에서 옷 갈아입는 것 정도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 이건 전혀 상식 밖의 일이잖아! 나도 모르게 잔뜩 높은 톤으로 대답했다. 의아한 눈초리의 성빈이.



“왜? 뭐 안 좋아?”

“아니이! 그, 생각보다 큰 거 같아서!”

“아하핫, 뭐래, 희세 네가 제일 크면서. 놀리는 거야 지금?”

“아니, 진짜로! 예전보다 커진 것 같아! 아하핫!”

“……희세 의외로 변태 같네.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성빈이의 말에 당황한 솔직한 발언. 내가 했으면 당장이라도 뺨 맞고 교무실로 끌려가 정학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말이지만, 지금은 희세 몸이니까. 성빈이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최대한 성빈이의 몸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돌리며 당황한 티를 팍팍 내며 대답했다.



“웅도랑은 어때, 요즘? 어제 되게 어색하던데.”

“어어, 뭐, 그렇지. 막상 사귀니까 어색한 거 있지! 아핳!”



이쪽을 보며 묻는 성빈이. 아이씨, 하필이면 왜 룸메이트가 성빈이냐……! 다른 여자애면 그나마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무시하고 갈 텐데, 성빈이니까 더 말을 못 하겠잖아! 대충 어제 상황을 떠올리며 희세 입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말해보려 노력한다. 그러니까 더 이상하지만.



“응? 저번에는 좋아하는데 표현을 못 하겠다고 했잖아? 근데 어색해? 희세도?”

“아니이! 그, 웅도가 나 어색해하는 것 같다─ 그 말이지! 아핫!”

“……?”



의아하다는 듯 되묻는 성빈이. 우와, 그런 말 했어!? 나는 희세가 어색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 안 맞게 돼 버렸잖아! 더욱 당황해 허둥대며 말하니 성빈이는 정말 이상하다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어디 아파?’ 하는 성빈이의 말에 ‘응, 머리 좀 아픈 것 같네! 감긴가봐!’ 하고 높은 톤으로 말한다. 약간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성빈이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살살 희세 옷장으로 접근한다. 본인 옷장에 본인이 상당히 수상하게 다가가는 게 더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은데. 얼른 배 쪽에 교복을 숨기고, 냅다 방을 나서서 1층으로 내려간다. 성빈이의 의아한 눈길이 느껴지지만 변명할 겨를도 없이 달린다.



“왔어. 그러면.”

“우와아앗?! 자, 잠깐만, 나 그런 플레이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무슨 미친 소리야! 옷 갈아입어야 할 거 아니야! 잠옷차림으로 학교 갈 거야?!”



익숙한 내 방. 마음이 놓인다. 어느새 교복으로 갈아입은 내 모습의 희세.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짜고짜 수건으로 내 눈을 가린다. 잔뜩 당황스러운 나. 잠깐만 희세야, 이런 상황에서 그런 플레이(?)는 아직! 좀 정상적인 것부터 하고 변칙을 배워야지, 첫 경험(??)에서부터 이런 걸 하면은!!


라는 건 역시나 엉뚱한 오해. 물론 알고 드립친 거지만. 희세는 잔뜩 불쾌한 목소리로 말하며 확실하게 수건을 묶어 눈을 가린다. 그러더니 슥슥, 입고 있는 잠옷을 벗긴다.



“저기, 그냥 옷 정도는 내가 갈아입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네가 내 몸 보게 되잖아. 그럴 작정이었어? 변태야?”

“아, 아니이. 쇤내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사옵니다. 용서하여주시옵소서, 폐하.”

“시끄럽고. 만세.”



뭔가 굉장히 번거로워 말하니 희세는 잔뜩 골이 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게. 사실 알고 있었지. 알몸을 볼 기회인데. 젠장. 희세의 말에 팔을 들어 만세를 한다. 뭔가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생각해보면, 지금 희세는 자력으로 교복 입었잖아. 그 말인 즉 내 알몸 봤다는 건데. 뭔가 불공평하잖아. 뭐, 남자로 태어난 게 죄겠지.



“좋아. 이대로 학교에 가면 되는 건가.”

“그런 말투 쓰지 마. 겁내 아저씨 같애.”

“어…… 그러면, 무슨 말을…… 그냥 입을 다물까?”

“시끄러. 따라와.”



여자애 교복을 입어보는 건 난생처음인데. 치마가 상당히 적응이 안 된다. 뭔가 나풀나풀한 느낌이라. 되게 시원한 건 장점이긴 한데, 그만큼 무방비하기도 하고, 어쨌든 요상한 기분. 그런데다 희세에게 말투까지 지적받고 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한탄하는 것도 잠시, 손을 잡고 거의 달리는 것 같은 기세의 빠른 걸음으로 걷는 희세를 따라 허겁지겁 기숙사를 나선다.



“어디 가는 건데??”

“씻어야 할 거 아냐! 그 꼴로 학교 갈 거야?”

“아니, 물론 그렇긴 한데. 어디서 씻는데?”

“집.”

“아.”



학교 바깥으로 나서는 희세. 이대로 학교 가는 거 아니었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으니 희세는 잔뜩 새침한 태도로 말한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희세의 논리대로라면 나는 지금 이 눈으로 희세의 알몸을 볼 수 없는데. 그럼 씻는 것도 희세가 씻겨줘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희세의 지금 몸이 내 몸이라는 것. 그럼 웅도가 희세를 씻겨주는 모양새인데, 어머나…… 절대 안 되지. 같이 씻는 연인이라니, 되게 좋은데. 우리도, 언젠가는…… 그럴 리 없잖아! 아니다 이 변태야!






--






“어어? 학교 안 갔어? 씻지도 않았네? 왜 왔어?”

“아…… 집에 두고 온 게 있어서요.”

“어머, 지지배, 너답지 않게 왜. 엄마아빤 간다?”



혼자 희세네 집에 들어가는 길. 굉장히 긴장된다. 마침 딱 문을 열고 나오는 희세네 부모님. 어머님이 익숙하게 말을 거신다. 최대한 희세 말투를 따라해 말하니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나가시는 두 분. 출근하는 것 같다. 하긴, 모습 자체는 희세랑 똑같으니 말투 좀 이상하다고 의심하기는 그렇지.


하아. 뭔가 벌써부터 녹초가 되는 기분. 내 성격상 절대 완벽하고도 이상적인 희세의 평소 모습을 연기할 수가 없단 말이다. 내 모습을 한 희세와 같이 집에 들어가는 건 모양새가 이상하기에 우선 희세는 골목길 모퉁이에 남았고 나 혼자 집에 들어섰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희세에게 전화해 집에 들어왔음을 알렸다. ‘알았어.’ 하고 짧게 대답하곤 전화를 끊는 희세. 음…… 되게 신경질 나 있겠지. 상황이 이러니.



“그럼 우선, 눈가리개부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



눈가리개를 차고 씻을 생각을 하니 상당히 지옥 같다. 물론 씻겨주는 것 역시 희세가 하겠지만, 그게 기분이 이상하잖아. 18살이나 먹어서 남에게 씻김을 당하다니. 거기다, 아무리 지금 상황이 그렇다지만, 여자친구한테…… 씻기다니! 뭔가 야하잖아! 어쩌면 다행일지도, 지금 여자애 상태라. 남자인 상태인데 여자친구가 씻겨주면…… 우홋. 건장한 그것(?) 때문에 들켜버리잖아.



“그럼. 보시겠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갑갑하니까.”

“으우웅…… 언니?”

“!?!?!??”



뭔가 가볍게 말다툼처럼 돌아가는 양상. 괜히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다. 벌써 8시가 넘은 시간. 어쩔 수 없지, 그냥 내가 포기하고 눈가리개를 차야지─ 하는 순간 들리는 졸린 목소리. 희나가, 토끼무늬 잠옷을 입고 눈을 비비며 이쪽으로 걸어 나온다. 나나 희세나, 식겁을 하고 놀랐다.



“어! 희나! 오래간만이네!”

“응? 저번 주말에 봤잖아.”

“아아!”

“우리 희나, 오늘도 귀엽네? 학교 쉬는 날이야?”

“……응? 어어. 오빠 이상하네 오늘은?”



당황해서 잔뜩 활기찬 높은 톤으로 말하는 나. 어린아이의 눈은 꽤나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지 대번에 이상함을 느낀 희나. 볼멘소리로 대답해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다. 동생덕후인 희세는 쪼그리고 앉아 희나의 머리를 매만지고 양 손으로 희나 볼을 꾸욱 만지며 말한다.


……내 몸으로 저러고 있으니까, 정웅도가 굉장한 페도/로리콘으로 보인다. 기분 탓이겠지. 훈훈한 오빠 같은 느낌은 절대 안 드는구나. 희나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볼이 잔뜩 눌린 귀여운 모습으로 말한다.



“언니랑 오빠는 학교 안 가?”

“응, 가야지. 뭐 좀 놓고 와서 가지러 온 거야. 학교 안 가면 오늘 뭐해, 희나?”

“응…… 친구랑 놀기루 했는데. 오빠 오늘 진짜 이상하네? 꼭 언니같애. 언니는 이상하고.”

“내, 내가 뭐~?! 아하핫!”



희나는 희세가 대답해주길 바라고 물어본 것인가보다. 대답은 웅도 몸을 한 희세에게서. 어린아이의 솔직함은 상당히 무섭다. 어째 더욱 티를 팍팍 내게 된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희세가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응, 그럼 언니랑 오빠는 금방 학교 갈게?’ 하고 말한다. 저기요, 남자애인 내 몸으로 ‘언니’ 나 ‘오빠’ 라는 어휘에 그렇게 다정한 여성적인 말투로 말하면. 희나가 더욱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잖아요. 뭐, 나나 희세나 어쩔 도리는 없다. 바뀐 지 한 시간도 안 됐으니.



“아. 이상해.”

“시끄러. 희나한테 들키면 어떡하려고.”

“그러면 네가 말 꺼내면 안 되지 않나. 네가 내 목소리니까.”

“……시끄러.”



옆구리가 간질. 샤워볼의 거품이 닿는다. 암흑의 상태에서 몸을 누군가에게 만짐을 당하는 건 상당히 이상한 기분이다. 이래서 야동에 눈 가리고 하는 장르가 있구나. 고등학생인 내가 당당하게 그걸 아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지. 잠깐만, 그럼 제3자의 입장에서 지금 희세 모습을 보면……? 기획물(?)!!


나도 모르게 야릇한 목소리로 말하니 희세는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내 목소리니까 더욱 낮은 톤으로 느껴지는데. 아직도 잘 적응이 안 되는, 내 목소리의 희세와의 대화. 내 말에 희세는 더 작게 말한다. 혹시라도 희나에게 들키면 그 때는 끝장이니까.



“음. 좋네. 몸매 좋아.”

“……지금 자기 몸 보고 그런 말 하시는 거에요?”

“아니이. 거울로 보는 거랑 또 틀리니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잖아.”

“와, 그럼 나도 내 몸 볼래~”

‘퍽!’

“죽을래.”

“아앜! 야 이거 네 몸이다?!”



점점 정신줄이 놓아지는 것 같은 나. 희세의 자신감 있는 말에 잔뜩 나대다 명치를 맞았다. 잠깐만, 내 명치를 때리는 건 상관없지만, 지금 이 몸은 희세 몸이라고! 자기가 자기 때리는 거잖아! 게다가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정웅도가 쓰레기 남자친구가 되는 거잖아! 여친 배 때리는!



‘위이이이이잉~’

“여자애들은, 겁내 귀찮네. 이것저것. 머리 말리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고.”

“남자애들은 편하겠네. 드라이도 안 했는데 머리 다 마르고.”

“아하하. 그게 좋지.”



옆에서 미용사처럼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는 희세. 본인 몸이니까 그러겠지. 내가 암흑 속에 있는 동안 희세도 우선은 머리 감고 세수 정도는 한 모양. 짜증스런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말리며 말한다. 희세, 꽤 머리가 긴 편이니. 10분 이상 말리고 있는데도 잘 안 마른다. 이제는 헤어드라이기 열 때문에 살짝 더울 것도 같다. 가을인데도.



“지각이네.”

“명백이 지각이지.”

“어차피 늦은 거, 천천히 갑시다. 또 알아? 선생님이니까 봐줄지.”

“……글쎄.”



이럭저럭 씻고 개운한 모습으로 학교에 가려니 시간이 훌쩍 8시 40분. 희세네 집에서 학교까지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니, 완연하게 늦었다. 정규 수업시간은 9시 10분이지만, 아침 보충은 8시 20분부터니. 그치만 선생님은 날 좋아하시고, 사정도 알고 계시니까. 봐주지 않을까? 오늘 아침 보충이 선생님 맞던가? 오, 맞다. 그럼 뭐, 느긋하게 가도 되겠네!





“……선생님이니까 괜찮다고 한 게 누구.”

“미안. 이렇게 엄격·근엄하실 줄은 몰랐네.”



복도에서. 엎드려 있는 희세와 무릎 꿇고 손들고 있는 나. 부들부들 몸을 떠는 희세의 말에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 지각해서 들어가니 ‘커플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커플은 우리의 적이다.’ 라는 괴상한 말로 애들을 한바탕 웃게 만든 선생님. 엄격·근엄·진지한 표정으로 나와 희세를 복도로 몰아 세웠다. 한 20분 정도, 벌 서면 되려나.



“힘들어?”

“……벌 서는 건 너무 오래간만이라.”

“하긴, 여자애들은 잘 안 걸리지. 내가 대신 할까?”

“……시끄러. 어차피 지금 껍데기는 내가 너니까.”



남자애들은 엎드리는 것, 여자애들은 무릎 꿇고 손드는 게 정형화 돼 있지. 랄까, 여자애들은 체벌하기도 애매하니까. 나야, 남중 때 워낙 깝쳐서 벌 서는 게 익숙한데. 이를 악 물고 팔을 부들부들 떠는 희세를 보니 안쓰럽다. 혹시나 해서 말해보지만 자존심 강한 희세는 얼굴을 찡그리고 대답한다. 마냥 자존심 부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내가 대신 서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희세 몸이니.




아아, 진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냐.


작가의말

요즈음 일이 바빠서...... ㅠ

느리게라도 나가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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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04화 - 3 +1 16.05.29 766 7 20쪽
245 04화 - 2 +2 16.05.15 872 7 20쪽
244 04화. 바보 스터디 그룹 결성! +4 16.04.20 1,023 7 20쪽
243 03화 - 3 +1 16.04.16 892 7 19쪽
242 03화 - 2 +5 16.04.10 894 11 24쪽
241 03화. 꿈도 희망도 없어, 내 앞날은. +3 16.04.04 744 11 20쪽
240 02화 - 4 +3 16.04.03 873 9 18쪽
239 02화 - 3 +3 16.04.02 847 7 21쪽
238 02화 - 2 +1 16.03.30 821 8 19쪽
237 02화. 이제 그만, 안녕, 하고 말하고 싶어도. +1 16.03.29 961 8 16쪽
236 01화 - 4 +1 16.03.25 906 9 20쪽
235 01화 - 3 +3 16.03.23 1,047 10 20쪽
234 01화 - 2 +7 16.03.20 903 9 23쪽
233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6 11 20쪽
232 3부 시작은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3 16.03.15 990 10 15쪽
231 18화 - 5 +7 16.02.23 1,062 12 17쪽
230 18화 - 4 +1 16.02.22 828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7 10 19쪽
» 18화 - 2 +8 16.02.01 906 10 22쪽
227 18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7 16.01.26 877 12 16쪽
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6 17 7쪽
225 17화 - 4 +7 16.01.06 809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68 13 19쪽
223 17화 - 2 +8 16.01.03 941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4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0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3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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