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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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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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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01화 - 3

DUMMY

“근미래.”

“…….”



출석 부르는 소리와, 대답에 없는 한 사람. 선생님은 한숨을 쉬고 다음 번 녀석 이름을 부른다.


벌써 며칠 째, 미래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송준이의 장례식 이후 며칠. 정규수업은 아니고 겨울방학 보충수업이니 빠져도 그리 큰 타격은 없다지만. 어떤 일 때문에 나오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몸이 아픈 건지, 휴대폰은 종일 꺼진 상태이고, 톡도 전혀 보지 않는다. 그럴만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긴 하다만, 어쨌든 그렇다.



“오늘도 안 왔네…….”

“응.”



예상 가능한 대화패턴. 성빈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건 나. 희세도, 언짢은 표정으로 ‘밥은 먹고 있나.’ 하고 걱정. 리유도 침울한 표정이다. 다들 이렇게나 걱정하는데, 미래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집에 틀어박혀서, 이불 덮고 계속 울고 있는 건 아닐까. 희세 걱정대로, 밥도 안 먹고 영양실조 걸리는 거 아니야. 미래의 지금 그 모습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미래, 이제는 예전 모습 상상도 잘 안 가는 거 같애.”

“……그치. 누구보다 활기차고, 장난끼 많고, 뭐든 재미있는 일 있으면 좋던 싫던 물어오는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상상이 안 가네.”



리유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 중에 가장 활기차고 말 많던 미래인데, 지금은 그런 모습, 상상할 수도 없으니. 나와 리유의 말에 다들 우울한 표정.



“우리 기분 나쁘다고, 미래보고 억지로 밝아지라고 할 순 없잖아. 슬퍼할만큼 슬퍼하고, 다시 돌아와 주길 기다려야지.”

“응.”



사실은 희세의 말이 정답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옛날 말도 있지 않던가. ……뭔가 아저씨 아줌마 같은 말이긴 한데. 그 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나도 어릴 적에,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굉장히 슬펐지만,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니까. 어쩌면 모든 일의 묘약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지난 기억은 어떻게든 잊고, 망각하고, 미화하기 마련이니까.



“병문안 가야 해요!”

“아…… 시아야.”



여하간 다들 착찹한 이 순간, 교실로 들어서며 잔뜩 큰 소리로 말하는 시아. 그 패기에 우리 말고 반에 있던 다른 여자애들까지 흠칫 놀라 시아를 쳐다본다. 집중되는 시선에 살짝 얼굴이 붉어지는 시아. 말없이 뚜벅뚜벅 우리 쪽으로 걸어온다.



“이렇게 멍 때리고 며칠 있을 일이 아니에요! 미래 언니 병문안 가야해요!”

“병문안이라니.”

“분명 아파서 학교 안 나오는 거잖아요! 마음에 병이 들었으니까, 그걸 극복 못 하니까 집에 있는 거에요. 저희가 병문안 가서 풀어줘야, 마음의 병이 나을 수 있어요!”



당찬 시아의 말을, 물론 우리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들 생각은 했을 것이다. 어두운 방에, 이불 덮고 병자처럼 하루종일 누워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미래를. 그러다 갑자기, 송준이 생각 나면 또 눈물나고, 한참 울다 지쳐 잠들고, 밥맛도 없으니 밥도 안 먹고. 그렇게 점차 마르고, 정말 ‘죽어간다’는 게 실감날만큼 쇠약해져 있는 미래를.


하지만 그것도 그렇다. 이런 때엔 다들 눈치를 살피고 말을 아끼게 된다. ‘책임론’까진 아니지만, 그런 게 그런 느낌이다. 한참 예민할 미래에게, 한 마디 말 잘못 했다 순식간에 평생 척 질 수가 있으니까. 이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 그러니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껄끄럽다.’



“이따 저녁에 다같이 가요! 네? 미래언니 집은 제가 아니까! 다같이 가요!”

“음…… 뭐. 오케이. 나는 간다.”

“에─ 나도!”



대답이 없는 애들을 한 차례 둘러보고, 시아는 재촉하듯 아예 확정을 낸다. 저녁이라. 이런 때에 또, 남자인 내가 대답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혼자 가면 좀 그렇겠지만, 애들 두 세명이라도 같이 가면 그나마 말실수 하지 않겠지. 다 같이 가서 힘 주는 건데 무슨 척질 일이 있겠어.


내 대답에 손을 번쩍 들며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리유. 리유는 고3에 19살인데도 여전히 초등학생처럼 귀엽다. 절대동안이 세월이 흐른다고 어디 가는 건 아니지. 뒤이어 희세도 지그시 손을 들었다 내린다.



“어…… 나는 못 갈 거 같애. 겨울방학동안 독서실 끊어서, 저녁엔 꼭 가 봐야해서. 미안.”

“아,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미안, 엄마가, 이제 고3이라고, 멋대로 끊어놓으셔서.”

“어쩔 수 없지 뭐.”



당연히 갈 줄 알았던 성빈이의 의외의 대답.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사정이지. 그것도 까먹으면 안 되는 일인데, 우리 이제 예비 고3이니까. 슬슬 수능 D-XXX 숫자 셀 때가 되었지. 미래 일 때문에 정신없어서 그런 것 생각은 전혀 안 들지만.



“나도, 학원 등록해서 못갈 것 같애.”

“나, 나는, 저녁에 부모님 가게 도와드려야 해서.”

“응, 그러면 나랑, 리유랑 시아, 희세 이렇게 넷이 갔다 오는 걸로 할게.”



유진이도 별로 시원치 않은 표정으로 말한다. 못 가는 기분이 편하지는 않으리라. 그건 더듬거리며 말하는 민서 또한 마찬가지. 유진이는 무슨 학원인데? 하고 물어보고도 싶지만 묻지 않는다. 프라이버시 일 수도 있으니. 어쨌든 네 명이서 병문안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







“시아 넌 미래랑 친하던가?”

“저는 다른 언니들하고 친하면 안 되나요?”



저녁시간, 시아가 안내하고 나와 희세, 리유는 따라 걷는 길. 문득 궁금해져서 시아에게 물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시아는 딱히 나 말고는 다른 애들하고 접점이 별로 없어서.

시아는 내 질문에 힐끔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아니, 그러면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럴만한 접점을 못 봐서 물어본거지.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희세하곤 으르렁 대는 것 같아서.”

“……내가 뭐. 쟤가 쪼꼬매가지고 싸가지 없는 거지.”

“제가 뭐요?!”



내 말에 패스를 받은 희세. 뾰로통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시아는 잔뜩 치뜬 눈으로 희세를 보며 말한다. 봐, 티격태격 하잖아. 이래놓으니까 꼭 내가 싸움 붙여놓은 것 같네. 리유는 천진난만하게 ‘에헤헤, 시아 귀여워.’ 하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네가 더 귀엽거든.



“미래 언니는, 좋은 분이에요. 늘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저에게 많은 걸 알려주셨어요. ……오빠한테 막 들이댄 것도, 미래 언니 말 덕분이니까.”

“아아. 그러니까, 미래가 충동질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구나. 하여튼, 걔도 사람 여럿 버려놓는다니까.”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시아가 괜히 들이댄 게 아니구나. 근데 또, 어떻게 시아랑 미래가 만나서 그런 얘기를 언제 했는지는 의문이다. 뭐, 시아가 그렇다니까 그런 거겠지. 하긴, 들이대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긴 했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라, 미래의 조언에 따라 무작정 행동해본 부자연스런 움직임이라 그랬구나.


그런 훈훈한 이야기를, 희세는 심드렁한 말투로 부숴버린다. 뭐, 희세 말도 맞는 말이라 부정할 수는 없다. 미래 덕분에 순수한 리유까지 일정 부분 타락(?) 했고, 나 또한 미래의 탓으로 그녀의 드립에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 돼 버렸고. 지금 말하는 것도, 뭔가 일본 망가(?) 대사 인용하는 것 같은 느낌인 것도, 전부 미래 때문이지. 이게 다 미래 때문이다! 아니아니, 지금 미래 병문안 가는 주제에 어째서.



“버려놓다니요! 언니 덕분에, 제가 얼마나 용기를 내서! 언니는! 별 노력도 안 하곤 오빠랑 사귀고 있으면서!”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너라면 그 지극정성 할 수 있어?! 아침마다!? 응!!”



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짜증스럽게 희세를 보며 말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희세 가슴을 빤히 쳐다보며. ‘별 노력도 안 하고’는 그런 걸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 난 그런 것 때문에 희세와 사귀는 게 아니라고. ……이유의 상당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옛말도 있잖아.


희세는 잔뜩 얼굴을 붉히며 소리 지른다. 확실히, 지극정성이긴 했지. 우렁각시도 그렇게는 못 했을 거야, 아침마다 와서 깨워주고, 밥 차려주고, 같이 등교하고. 좋았지, 그 때가. 지금 안 좋은 건 아닌데.



“……그래서 나랑 헤어졌어, 웅이는?”

“아니라니까?! 그런 게 아니라, 난 지금도 리유 너 좋아해!”

“……아직도 리유 좋아해?”

“아하하, 지금 뭔가 큰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좋아한다’ 가 그 ‘좋아한다’ 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것이~ 아하하. 데헷☆”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하는 리유. 3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유아체형을 보며 기가 죽는다. 리유야, 너의 그 몸매는 분명히 수요(?)가 있단다. 나는 아니지만. 달래주느라 ‘좋아해’ 라고 말하니 이번에는 희세가 도끼눈이 돼 내 쪽으로 타겟을 옮긴다. 아, 괜히 중간에 끼어서 이게 뭐야. 입 다물고 있을 걸. 조상님들 말 틀린 게 하나 없다니까, 침묵이 금이여.


분명 미래 병문안 가는 거였고, 기분이 우울할 법도 한데 모처럼만에 시끌시끌 재미있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 그래, 이 정도만 돼도 참 좋을 텐데. 이제는, 조용하고 우울해야 할 차례. 미래네 집 앞.



‘딩동.’

『……누구세요?』

“아, 네, 미래 친구인데요. 미래 혹시 집에 있나요?”

‘달깍.’



초인종을 누르고, 들리는 힘없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아마 미래 어머니시겠지. 다들 머뭇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기에 얼른 말했다. 이윽고 잠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들어와요. 미래 지금, 방에 틀어박혀 있는데…….”

“네, 네.”



의외로 선하게 생긴 보통의 아주머니. 미래에게 저번에 들었던 정보로 추측한 어머니는, 되게 깐깐하고 성깔 있고 그렇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파마머리에 힘들어 보이는 보통의 아주머니 같아 보인다. 힘없는 아주머니의 말에 다들 엄격·진지한 표정이 돼 미래네 집에 들어갔다.



“남자친구 장례식 이후로,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후우. 밥도 잘 안 먹고, 하루종일 방에만 있는데. 뭘 하지도 않고, 그냥 앉아 있다 누워 있다…… 뭐라고 해도 들리지도 않고, 이제는 그냥 멍~하니. 이러다 사람 한 명 더 잡겠다, 싶기도 하고…….”

“…….”



어머니의 푸념에 우리는 묵묵히 서서 그 말을 듣는다. 아주머니의 말에서, 며칠 간의 미래 행동이 느껴지는 것 같다. 분명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겠지. 나중엔 윽박지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좋게 말하기도 하고, 어쨌든 갖은 수를 다 쓰셨겠지만. 지금까지도, 미래는 그런 상태라는 말.



“친구들 왔으면 미래도 조금 달라질 수 있으니까, 얼른 들어가봐요. 아마 지금은 안 자고 앉아 있을 테니까.”

“넵.”



어머님은 기어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다. 굳건한 마음으로 대답. 사명감을 가지고, 긴장한 마음으로 미래 방문을 열어 재낀다.






어두운 방. 낮인데도 커튼을 쳐서 불을 켜지 않으면 잘 안 보이는 어둑어둑한 방이다. 그 방에, 의자에 앉아 있는 미래. 컴퓨터 하고 있나? 하고 보니 모니터는 꺼져 있다. 본체에도 불이 들어와 있지 않은 걸 보면 컴퓨터는 애초에 꺼져 있었다. 휴대폰을 하고 있나 싶어도 휴대폰은 땅바닥에 버려져 있다. 액정이 깨져 있는 채. 아, 휴대폰이 꺼져 있는 게 아니라 부서진 거구나.



“미래……야?”

“…….”

“언니, 저희 왔어요! 병문안 왔어요, 언니!”

“……쉿.”



머뭇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시아가 잔뜩 높은 톤으로 미래 옆으로 가 말한다. 희세가 눈을 치뜨고 ‘쉿!’ 하고 말한다. 분위기가 아무래도 그럴 분위기가 아니니까. 그러나 저러나 시아는 아랑곳 않고 말한다.



‘탁!’

“……아! 미안, 불 끌까?”

“아니야. 그냥…… 이미 늦었지.”

“…….”



이런 와중에 갑자기 확 켜지는 불. 미래는 흠칫 놀라 고개를 팍 숙인다. 어두운 상태에서 갑자기 불이 켜지니 놀랄 수밖에. 아, 그래도 방금 전 움찔거림을 보고 미래가 살아 있는 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을 켠 건 리유. 희세, 나, 시아 세 명의 눈이 전부 리유에게 향하니 리유는 다시금 스위치에 손을 올려놓으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이미 불 켠 건 어쩔 도리가 없으니.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미래는 미동도 없다.



“……아. 왔어.”

“와, 미래가 깨어났어! 미래 괜찮아?!”

“쉿!”

“미, 미안…….”



겨우, 고개를 들고 퀭한 눈을 들어 모두를 쳐다보는 미래. 그나마 고개도 다 안 들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와 시아 정도만 쳐다보는 것이지만. 리유가 들뜬 목소리로 좋아라 말하는 걸 희세가 제재한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사과하는 리유. 우선은 모두 바닥에 앉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총기 없는 눈. 눈에 띄게 마른 볼. 미래는 키도 작고 아담한 편이지만 기본적으론 어느 정도 볼살이 있는 귀여운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홀쭉하게 말라버렸다. 며칠 만에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팔도 다리도 마른 것처럼 보인다. 잔뜩 튼 입술과, 파삭해 보이는 피부를 보면 무슨 병이라도 걸린 사람 같다.



“……괜찮아? 많이 아픈 것 같아서. 학교 안 나오고.”

“……응. 그냥, 기운도 없고, 입맛도 없어서.”

“…….”



정적이 오가는 사이에, 먼저 말의 포문을 연 건 나. 국가와 국가 간 외교전처럼, 논란의 여지가 생길만한 말은 최대한 피해서 신중하게 말을 건다. 어디까지나 ‘병문안’ 온 우리니까. 아프지도 않은 애를, ‘병문안’와서 아픈 걸 확정시키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미래의 이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아파 보이고 병문안 온 게 맞는 것 같다.

미래는 나나 다른 애들을 쳐다보지 않고 허공을 보며 말한다. 뭔가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섭다.



“밥은 먹어야지. 기운 차려야지. 이러다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되게 말랐는데, 며칠 만에.”

“……응, 그래야지. 그래야 되는데.”



뭔가 아줌마스러운 말을 하는 희세. ‘이런 때일수록 네가 기운 차려야지’ 하고 말하는,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나마 미래는 대답한다. 여전히 기운 없는 영혼 없는 모습이지만.



“언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이만 잊어요. 이러다 언니도 큰일 나겠어요!”

“!”

“…….”



단도직입도 정도가 있지. 너무 막 들어오는 거 아니냐. 다들 머뭇머뭇 주뼛주뼛 하는 이유가 뭐였는데. 시아의 당찬 말에 희세조차 흠칫 놀라 제재를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본다. 미래는 전혀 미동도 없이,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다.



“잊혀지지 않는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으면 정말 잊혀지지 않아요! 오빠, 정말 안 된 일이지만…… 그건 사고였잖아요! 이만 힘들어 하세요! 언니 잘못도 아니고, 언니까지 이러고 있으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하늘에 있는 오빠도, 웁.”

“아아, 시아가, 좀 너무 흥분해서, 그러니까 이게, 좋게 말하자면─”

“……후우. 잊어야지.”

“……!”



제발, ‘하늘나라에 있는 송준 오빠도 이런 걸 바라진 않을 거에요!’ 같은 상투적이면서 사람 속 뒤집어 놓는 대사는 치지 마라……!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아는 그런 말을 하려고 한다. 간신히, 억센 손으로 시아의 입을 틀어막고 억지로 웃으며 둘러대려는 찰나.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미래. 다들 흠칫 놀라 미래를 쳐다본다. 설마, 미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잊어야지, 잊어야지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눈을 감아도 생각나고, 눈을 떠도 생각나고. 그런 거 있잖아. 막 현실부정 하는 거. 후우.”

“…….”



미래의 갈라진 힘없는 목소리를, 우리 넷은 잠자코 듣기만 한다. 그런 생각 하고 있었구나. 그래도, 이렇게라도 말하는 미래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희망 같은 게 생겨나는 것 같다.



“기운 내야지. 응. 더는, 이렇게 살았다간. 준이도, 슬퍼할 테니까. 준이도, 이런 걸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언니, 이제부턴 학교도 나오고, 밥도 먹고! 네? 네?!”

“응, 그럴게.”



차마 시아가 입 밖으로 못 낸 말을 스스로 꺼내는 미래. 시아는 잔뜩 기뻐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미래. 뭔가 애잔하다. 슬프다. 그러면서도, 이만 슬퍼하고 앞으로 나갈 결의를 다지는 미래를 보고 있자니 나까지 좀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 이래야 미래답지.






“밥 꼭 챙겨먹고, 응?”

“응, 고마워.”

“내일 학교에서 보는 거다?”

“……네, 오빠.”



뭔가, 의외로 너무 선선하게 빨리 풀어지는 미래라 도리어 우리 쪽이 당혹스러울 정도다. 뭐, 좋은 게 좋은 것인가. 미래네 집을 떠나며, 밥 챙겨 먹을 것을 당부하는 희세. 희세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 미래 꼴을 보면 누구든 그런 말을 하고 싶을 것도 같다. 볼살 통통해서 귀여웠던 미래인데, 지금은 완전 폐인이니까. 내 말에도, 싱긋 웃으며 ‘오빠’ 라고 하는 미래. 아, 얼마만인가 이게. 미래, 살아 있네? 완전히 돌아 왔네. 미래가 나한테 ‘오빠’ 라고 하는 건, 드립이 살아 있다는 얘기니까.



“잘 됐네요! 언니, 저희가 가서 기운 차렸나봐요!”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에?”

“음…… 확실히.”



돌아가는 길. 시아는 기쁜 듯이 말한다. 확실히, 우리가 가서 미래, 기운 차린 것 같으니까. 하지만 희세는 조금, 언짢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의아한 표정의 시아. 나 또한, 조금 껄끄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나라면, 지금 웅이랑 안 사귀어도, 웅이 교통사고 나서 죽으면 너무너무 슬퍼서, 지금 미래처럼 툴툴 털고 못 일어날 것 같애. 정말로.”

“아니, 멋대로 사람 죽이지 말고! 그런 말은 함부로 막 하지 말고 돌려 말해야지, 죽는 것에 대한 건!”



리유마저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나보다. 확실히, 그렇게 빨리 털고 일어날 리가 없다. 며칠 동안 앓다가 개운하게 낫는 열병 같은 게 아니잖아, 미래가 지금 겪고 있는 건. 시간이 약이라지만, 겨우 몇 일 가지고 잊고 어쩌고 할 시간이 아닌데. 너무 짧은 기간이니까.



“그럼, 얼마나 오래 그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요! 언니가 현명한 거죠, 빨리 털고 일어나는 게! 어쨌든 준이 오빠는 돌아가셨으니까, 슬퍼한다고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안타까운 일이니까, 그만 마음에서 보내주고, 기리고, 그럼 되잖아요!”

“……그 말 미래 앞에서도 해보지 그랬어. 왜 안 그랬어? 너도 껄끄러운 거잖아.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쿨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왜 그런 걸로 폐인 되고 울고불고 질질 짜겠어. 다른 사람이 없어지는 걸,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물며,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이면.”

“그…… 그래도!”



작은 언쟁이 오가는 시아와 희세. 조금 끔찍할 것 같은데, 희세 말대로 시아가 저 말 미래 앞에서 했다면. 시아의 관점, 너무 냉정하니까. 나는 희세 말 쪽에 가깝다.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고, 그 기간만큼은 슬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기는 나니까. 다만, 미래가 털고 일어나지 못할까봐, 그게 걱정되는 거지.







어쨌든, 뭔가 껄끄럽다. 표면 상으로는 완연하게 해결된 것 같지만, 뒤를 안 닦은 듯 무엇인가 찝찝하다. 어째서일까. 아직 우리조차도, 송준이, 침착맨이 하늘나라 갔다는 게 껄끄럽고 좀 그런데, 미래가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일까.


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내일, 미래가 학교 와 보면 알겠지. 어쨌든 오늘 병문안은, 잘 다녀온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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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18화 - 2 +8 16.02.01 905 10 22쪽
227 18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7 16.01.26 877 12 16쪽
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6 17 7쪽
225 17화 - 4 +7 16.01.06 808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67 13 19쪽
223 17화 - 2 +8 16.01.03 941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4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0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3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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