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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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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03.2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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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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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20쪽

01화 - 4

DUMMY

“······.”



걱정스런 눈으로, 미래를 쳐다본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 미래. 그럴 수 있지, 답답한 교실에 14시간씩 가둬진 게 대한민국 학생들의 숙명이니까. 자유로운 바깥 하늘을 보며 갑갑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지, 우리나라 학생이라면. 문제가 있다면, 잠시 동안이 아니라 계속, 하루 종일, 하늘만 보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미래가 학교에만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송준이를 잃은 슬픔, 물론 쉽게 빠르게 잊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극복해나가고자, 노력하고, 또 주위에서 우리들이 도와주고, 그렇게 정상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뭐, 예전처럼 미친 듯이 쾌활하고 4차원인 미래의 모습까진 아니더라도, 그 비슷하게는.


하지만 지금의 미래는.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표현이 가장 잘 맞을 것 같다. 어떤 감정도,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멍─하니.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을 뿐이다. 꼭, 송준이가 먼저 간 하늘을 보고, ‘나도······.’ 하는 엄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그래서 걱정스럽고,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해결된 것 같지가 않다.






“이렇게 네 명을 따로 부른 건.”

“네.”

“응응! 뭔데?”



점심시간. 애들에게 특별히 핑계를 대서, 나, 희세, 리유, 시아 이렇게 넷만 모였다. 혹시 모르니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분식집에서 밥을 시키곤 모임의 주인이 된 듯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냉큼 대답하는 시아와 고개를 끄덕이며 늘 방긋방긋 리유. 희세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본다.



“미래에 대한 일인데.”

“그럼 왜, 성빈이나 채유진, 민서는 안 부른 건데?”

“아, 그건······.”



미래에 대해 얘기하려는데 전혀 다른 부문에서 태클을 거는 희세. 그건,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세 명은 이제 미래에 대해 별달리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모두 같은 압력과 같은 생각과 같은 관심을 가질 순 없다. 하지만, 그래도 미래는 우리 밥 패밀리의 일원이었고, 친구였는데. 벌써부터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건 조금 실망이긴 하다. 하지만 뭐, 어쩔 도리가 있나. 성빈이나 유진이나 민서가 나쁜 애들이라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수능’이라는 절대명령 때문에 그런 걸.


성빈이는 요즘 독서실도 다니고, 공부하느라 무척 피곤해보이고. 피곤하다기보단 압박감을 크게 받는 것 같아 감히 말을 못 걸겠고. 유진이 또한 학원 다니느라 보충수업도 많이 빠질까 어쩔까 하고 있으니. 민서도 비슷한 이유로 정신이 없는 것 같고. 해서, 그나마 관심이 있는 네 명만 우선 소집한 것이다.



“우리 네 명이 가장 한가해보여서······?”

“핳. 누군 안 바쁜 줄 아나.”

“바쁜 게 문제가 아니라, 음, 어쨌든! 지금은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온 거니까.”

“미래 언니가 왜요? 학교 잘 나오고 있지 않아요?”



희세가 태클 거는 건 십분 이해하고, 그것도 나름대로 희세 특유의 애정표현인 건 잘 알고 있지만. 지금처럼 중대한 얘기를 하는 시점에서까지 그걸 받아줄 순 없다. 대충 넘겨버리니 희세는 ‘칫’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투로 쳐다본다. 괜히 시선이 따갑네.

내 말에 대답하는 시아. 그래, 잘은 나오고 있지. 잘 나오고만 있는 게 문제지만.



“학교는 나오고 있는데. 더······ 안 좋다고 해야 하나. 그냥, 하루종일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어. 아무것도 안 하고. 그건 좋지 않다고 보는데.”

“음, 그렇네요, 확실히.”

“응응, 나도 봤어! 말 걸어도, 미래 그냥 시무룩해서 잘 웃지두 않구! 그냥, ‘응.’ 이렇게 대답만 해!”



내 걱정을 실제로 겪은 리유의 도움까지. 시아는 문제를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희세는 말없이 얘기하는 우리를 쳐다본다. 잠자코, 한숨을 쉬곤 다시금 이야기를 진행한다.



“다시 미래 기운을 되찾아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러다간 예전이랑 똑같아지니까.”

“······나, 좀 이상한 기분 드는데, 그 얘기 들으니까.”

“응?”



아까부터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던 희세. 내 말이 끝나고 잠자코, 말을 꺼낸다. 시아와 리유는 둘 다 동시에 귀여운 눈을 하곤 희세를 쳐다본다. 시선이 집중되니 잠시 자세를 고쳐 바로 앉는 희세.



“미래를, 우리가 어떻게 고치자고. 강제로? 지금, 최대한 노력해서 학교 나오는 것도 대단한 건데. 솔직히,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뭐라 할 게 못 되는 애인데. 다시 예전처럼, 이상한 농담 하고, 활기차게 이야기하고, 그렇게 바뀌라고? 남자친구 잃은 지 한 달도 안 된 애한테? 그것도 또 다른 폭력 아니야?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그걸 강요한다면.”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하자는 게 아니라, 그.”



희세의 말에 말문이 턱 막힌 나.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미래, 학교에 나와서 멍하니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많이 노력하고 있는 거지. 비록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학교에서 애들의 분위기에 동화되려고, 시끌시끌한 학교 분위기에 송준이를 잊으려고, 갖은 애를 쓰며 노력하고 있는 거겠지.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또 시끌시끌하게 강제로 하는 것도 또 그렇다.



“완전히 복귀해야만 미래 언니가 제대로 나은 거에요. 지금은, 아직 반 정도밖에 회복하지 못한 거구요. 그걸 우리가 도와주자는 건데, 그게 잘못된 거에요? 폭력이라고 부를 만큼?”

“그러니까, 계속 말하잖아. 시간이 필요하다고. 뭣 때문에 그렇게 미래를 다그치려고 하는데. 힘들고 괴로울 거 아냐, 말로 표현은 안 해도. 뭘 하고 싶겠어, 지금 미래가. 죽고 싶을 거 아냐. 솔직히.”



강경파와 온건파의 첨예한 대립. 그러니까 지금, 양이(洋夷)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말아야 한다 다투고 있는 거지? 아니, 농담이고. 희세의 말에 시아는 강경하게 말한다. 희세는 저번처럼 꾸짖는 투로 말한다. ‘죽고 싶을 거 아냐’ 하는 말에, 리유는 움찔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본다. 생각은 했지만 입밖으로는 내밀지 못하는 말이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밀어 붙이자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 못 하게, 얼른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폭력이든 뭐든 상관없어요! 시간 준다고, 잊으라고 그랬다가 미래 언니가 극단적인 선택 하면! 그 땐 어떻게 해요!? 전 제가 XX년이 돼도, 언니만 원래대로 될 수 있으면! 그러니까!”

”······하아.”



결론은 한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이러다간 시아까지 이상해질 것 같은 기분. 시아는, 어째서인지 병적으로 미래에 대한 열망으로 집착하는 것 같다. 이 정도까지였나, 싶은데. 미래가 정상이 아니니까 그 영향으로 시아까지 이런 모양이 된 것 같다. 리유는 모두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다.


침묵하는 사이 밥이 나왔고, 말없이 서로 밥만 먹는다. 더럽게 맛도 없다. 밥알이 모래 씹는 것처럼 깔깔하다. 이 집 밥 참 맛없네.



“어쨌든, 그렇게 할 거에요.”

“뭘 그렇게 해.”

“미래 언니 활기차게 만들기. 다들 방법 생각해주세요. 너무 강제로 억지로 하는 건 안 되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래.”



시아는 선언하듯 말한다. 희세도, ‘내가 졌다’는 투로 대답. 뭐가 어찌됐던 분위기는 영 안 좋구나. 묵묵히 밥만 먹는다.


미래는, 나와, 우리와 만나기 전에는 사실, 반에서 외톨이였다. 워낙 4차원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화하는 방식이나 말하는 주제가 너무 다른 애들과 동떨어져 있어서, 또 나를 제외하곤 어째서인지 제대로 태도를 갖추고 얘기하지 않고 바보가 돼 버려서. 그래서, 친구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랑 만나고, 포텐이 터지기 시작했다. 1학년 때엔 우리랑만 놀았지만, 2학년 되어선 점차 우리 외에 반 다른 애들하고도 얘기하고 친해졌다. 나한테는 잔뜩 드립만 치지만, 성빈이나 희세, 리유와 어울리면서 점차 ‘일반인’ 애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지. 2학년 말쯤 되어선 어엿하게 다른 애들과 잘 얘기하고 침착맨이라는 남자친구까지 생긴, 그야말로 리얼충의 표본이 된 미래였다. 적당히 활기차고, 적당히 4차원에 또라이 같으면서도 재미있는, 그런 애.


하지만 지금의 미래는, 다시 예전 모습으로, 아니 도리어 그 전보다 더욱 폐쇄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럴만한 일이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외톨이가 된 건 사실이니까. 그게 너무 안타깝고, 그게 너무 신경 쓰인다. 난 오지랖이 넓으니까, 그런 꼴은 못 본다.


희세 방식대로 ‘미래에겐 시간이 필요하지’ 하고 미래를 내버려두는 식으로 방치한다면. 이대로 1년, 미래는 계속해서 외톨이인 상태가 지속될 것이고, 그대로, 미래의 학창시절은 고 1시절로 원상복귀하게 된다. 아니, 그 때보다 더 안 좋아. 이젠 모든 애들하고 이야기를 안 하니까. 얘기만 안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어떤 감정 표현도, 공감도, 기능도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굳이 얘기를 하자면 나는 희세 쪽 의견보단 시아 쪽 의견에 가깝다. 어떻게든, 미래를 정상궤도로 복귀시키고 싶다. 예전처럼 개드립에 섹드립에 미친 소리 하고 그런 것까진 안 바라도, 적어도 정상적으로 얘기하고 정상적으로 밥 먹고, 그런 미래까지는. 우리가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미래는?”

“어······ 화장실 간 것 같은데.”



교실로 돌아온 우리들. 시아는 학년이 다르니 다른 교실이지만 우선 ‘미래 기 살리기 프로젝트’를 위해 같이 들어온 모양. 헌데 교실에 미래가 없다. 힐끔 성빈이를 보며 물어보는 희세. 성빈이는 문제집을 푸느라 정신이 없다 희세의 물음에 퍼뜩 고개를 들어 대답한다.



“같이 점심 안 먹었어?”

“미래 점심 생각 없다고 해서······ 미안.”

“아니, 네가 미안할 건 아닌데. 알았어.”



희세의 질문에 성빈이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희세가 있었다면 강제로 챙겨서 먹였을 텐데, 자기는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단 얘기. 희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위를 살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희세도, 시아도, 리유도. 넷 전부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희세는 얼른 교실을 나선다. 나머지 세 명도 희세를 따른다.



“······없어.”

“······!”



화장실에 들어간 희세와 리유, 시아. 여자화장실이라 나는 감히 들어갈 수 없기에, 잠시 입구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나와 말하는 희세. 다들 더욱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물론 학교에 화장실이 여기밖에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화장실이 텅텅 비어 있는데 다른 층 화장실을 갈 이유가 없잖아. 아까 전에, 분식집에서의 대담 때 희세의 말 한 마디 때문에 다들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점점, 그 불안한 예상이 들어맞는 것 같다 더욱 마음을 옥죄어 오는 것 같다.



‘후다다닥.’

”!”



잽싸게 작은 몸을 빠르게 날리는 시아.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계단 쪽을 향해 달려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아를 따라 달린다. 시아가 향하는 곳은 옥상. ‘혹시’, ‘설마’, ‘그럴 리가’ 하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모두가 생각한, 말하지 않았는데도 공통적으로 떠올린 건 옥상이다. 그러니까, 미래가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봐.



‘철컹!’

“!”



옥상은 원래 잠겨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열려있다. 황급히 철문을 여는 시아. 문이 열리고, 광활한 대지와도 같은 옥상 위의 시멘트 바닥. 옥상은 난간이 있고, 그 난간 위에 펜스 같은 게 설치돼 있다. 워낙 학생들이 옥상 위에서 자살을 하네 어쩌네 흉흉하니까 예전에 설치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자살을 결심한 학생은 그 펜스 위까지 기어올라 떨어지겠지만.


그 난간을 기대고, 여자애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무릎을 모으고 그 무릎에 얼굴을 묻고 팔로 얼굴을 가리고, 그런 상태인지라 팬티가 보일 것도 같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그 여자애가, 미래니까.



“미래야!”

“······!”



황급히 큰 소리로 미래를 부르니, 흠칫 놀라 고개를 드는 미래. 꽤 거리가 있어 잘 안 보이지만 한눈에도, 펑펑 울고 있던 흔적이 보인다. 혹시라도, 우리 때문에 또 충동적으로 무슨 짓을 할까봐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미래 부르지 말고 얼른, 미래에게 접근한 뒤에 신변을 확보한 후에 부를걸. ······무슨 경찰이냐. 아니, 지금 이거 경찰 부를 만큼 무시무시한 상황이거든?!



“······할 수 없어.”

“······뭐가.”



훌쩍, 숨을 헐떡이고 한 마디 하는 미래.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나는 천천히 미래 쪽으로 다가가며 대답했다. 시아도 리유도,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 희세도 진지한 표정으로 미래를 쳐다본다.



“······어떻게 해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아무것도 어떤 것도, 더 이상 예전 같지가 않아. 자살? 후훟······ 차라리 그게 됐으면 좋겠어.”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나, 나는! 미래 네가 대단해! 그렇게나 힘든데도, 학교 억지로 나와서 있는 것만으로! 모두에게 희망이고, 용기라고 생각해!”

“어차피 남 일이잖아!”

“!”



천천히, 천천히 미래에게 다가가며 말한다. 괜히 긴장해서 목소리까지 떨린다. 미래 입에서 ‘자살’이란 말이 나오니 더욱 마음이 떨린다. 최대한 미래를 진정시키고자 말하지만 미래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 지른다. 고였던 눈물 두 방울이 또르르 흐른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고······ 네가 무슨 그 애 와이프냐고······ 남 아니냐고······ 남? 남이지, 남이니까, 남이라서! 근데 왜 남인데 이렇게 안 잊혀져? 다른 사람 일인데, 왜, 왜······?”

“······다른 사람 아니니까! 우리만 해도, 아직도 그래, 침착맨 죽은 거! 미래 너는 오죽하겠어! 그러니까, 남 일 아니니까!”



누구한테 그런 말 들은 걸까. 다른 애들과는 일절 어떤 얘기도 하지 않는 미래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님밖에 없겠지. 예전에도 그 비슷한 맥락의 가혹한 말 했었으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하는 미래가, 너무 애처로워 나도 마주 소리 지르며 미래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 싫어······ 전부 다······ 근데, 죽는 것도 못 해······ 후후후흫흐ㅎ······ 무서워서······ 못 뛰어 내리겠어······ 그만큼 안 슬픈가봐······ 내 목숨 바칠만큼은······.”

“잘 했어, 잘 했어, 괜찮다니까.”

“······흑! 후으, 흣······!”



미래 옆으로 가, 몸을 숙여 미래를 붙든다. 미래는 온통 눈물범벅이 돼 나를 보며 더듬거리며 말한다. 무조건 잘했다. 무조건 괜찮다. 어쨌든 다행이다. 반대쪽 옆에는 시아가 말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미래를 보고 있다. 미래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붙들고 울었다.







--








“후으.”



기숙사생은 종종 집에 가곤 한다. 2주에 한 번은, 기숙사도 아주 쉬는 날이 있으니까. 선생님도 사람인데, 쉬어야 할 거 아니야. 자취할 때엔 집에 잘 안 갔지만, 기숙사 들어가고는 2주에 한 번씩 집에 간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괜히 한숨을 푹 쉬게 된다. 옥상에서의 그 사단이 바로 어제 일.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에, 집에 가는 것도 그렇게 즐겁거나 하진 않는다. 혹시라도 미래가 잘못 마음 먹을까봐.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고. 시간이 약이라는데, 그 시간 가는 게 너무나도 힘겨운 시간들이겠지, 미래에겐.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이렇게 깝깝하고 힘든데.



“다녀왔습니다.”

“응~ 아들, 오랜만에 왔네?”

“네네.”



그래도 집이라고, 들어오자마자 마음이 편해진다. 자유부인 엄마의 따뜻한 인사도. 모로 누워서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 엄마.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는다. 으음─ 푹 쉬어야지.



“아들, 요즘 학교에선 어떻게 지내?”

“······친구 한 명 때문에, 골치 아프죠.”

“아, 그 여자친구? 눈매 사납게 생긴 그 애?”

“희세는 착해서 안 그래요.”

“에에~ 결혼하면 아주 며느리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게 생겼네, 우리 아들.”



저녁시간의 훈훈한 대화. 엄마와 나 둘만의 식사이니 뭐. 예~전에도 말했지만, 아빠는 먼 외국에서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를 위해 잠시 묵념. 엄마는 혼자 이러고 계시기에, 그래서 내가 오면 더 즐거우실 것이다.



“아들, 그건 그렇고, 요즘 공부는 해? 공부 잘 안하잖아. 이제 고3인데.”

“네네, 뭐······ 말하려던 그것 때문에 신경 팔려서, 영 공부가 안 되니까요.”

“무슨 일인데?”

“그러니까······ 그게······.”



엄마의 물음에 찬찬히, 미래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어쩌면 엄마는 어른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현명한 것일지 답변을 해주실지도 모르니까.



“그건, 어쩔 수 없네. 시간이 약이잖아? 내버려 둬야지.”

“······그렇긴 한데, 후우. 진짜 그러다 자살하면 어쩌나, 싶어서.”

“쓸데없는 오지랖 부리지 말고 공부나 하세요? 이제 두 달 뒤면 고3인데. 남 신경 쓸 겨를이 없지 않을까요, 아드님?”

“······.”



엄마의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순식간에 기분이 다운된다. 입맛까지 싹 달아난다. 엄마라면, 제대로 된 진솔한 대답을 해줄 줄 알았는데. 우리 엄마마저, 누구네 엄마와 비슷한 맥락의 말을 할 줄이라고는.


내가 고3인 건 사실이다. 고3이 공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그게, 친구가 남자친구 잃어서 자살징후 보이고 우울증 심하게 앓는 걸 걱정하는 것을 무시할 만큼 절대적인 거야? 남 걱정하는 게 모조리 오지랖이라면, 엄마는 어째서 다른 사람들 장례식장도 가고, 다른 아주머니랑 다른 아줌마 험담하고 그래?


생각만 하고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그냥 우적우적 밥만 먹는다. 그렇게 반항기가 가득한 사춘기 청소년은 아니니까, 나란 녀석은. 더 말을 꺼내지 않으니 엄마도 슬쩍 내 눈치를 살핀다. 그래봐야 삐친 거겠지, 하고 생각하시겠지.





밥을 다 먹고, 방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도저히 답답한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냥 싫다. ‘오지랖’이라고 말한 엄마가 싫다. 계속 있어 봐야, 공부만 강요할 것 같아 더욱 싫다. 가방을 메고 충동적으로, 집을 나섰다.






‘띵동.’

‘달깍.’

『누구세요?』

“······희세야. 나 웅도.”

『에, 엣?! 뭐야, 이런 시간에?!』

“······나, 집 나왔는데. 재워줄 수 있어.”

『엣?!』



다시금, 학교로 돌아왔지만 기숙사는 굳게 잠겨 있다. 기숙사 쉬는 날이니까. 어쩔 도리 없이, 희세네 집으로 가 초인종을 누른다. 흠칫 놀라는 희세. 금세 문이 열리고, 당혹스러운 표정의 평상복 차림 희세가 보인다.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미래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정말 옳은 게 무엇이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6.11.12 13:49
    No. 1

    저런 상황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한들 다들 남의 말 하는걸로 밖에 들리지 않겠죠~
    일단 남인게 맞는거니까~
    100%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것은 거짓말인게 확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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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6 1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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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4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1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3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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