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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000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5.15 19:34
조회
872
추천
7
글자
20쪽

04화 - 2

DUMMY

“이건 어떻게 푸는거야?”

“아! 이건 그 공식인데! 음······ 아 그 그거에 넣어서 하면 되요!”



뭔가, 미래가 하는 말은 죄다 섹드립으로 들린다. 미래 본인이 그럴 의도가 없다 해도.



“이 구문은 왜 해석이 이렇게 되? 단어는 이건데.”

“응! 음······ 그냥 이건 원래 이렇게 해석하는 거야! 실리아가 그랬어!”

딱히 리유에게 적절한 설명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은데.

“아니, 다들 설명이 뭐 이래. 그냥 그렇다니, 그냥 그런 걸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그냥 그런 건데 어떡해요, 수학은. 오빠가 잘 넣을 줄 모르니까♡ 그러죠. 제가 알.려.주.는.데.도.”

“너 의도하고 말하는 거지 그거?!”



점잖게 지적하니 미래는 몸을 베베 꼬며 달착지근한 목소리로 섹드립을 친다. 간만의 정통 섹드립(?)에 신이 난 나는 얼른 태클을 건다.



“우웅, 그럼 웅이 이거 알려줘. 화자의 마음이 왜 이런 거야?”

“어······ 이거는, 음. 맥락상 읽어보면 그런데. 아 이거 뭐라 설명할 수가 없네.”



나와 미래의 대화에 뭔가 시무룩해진 리유의 질문. 간단한 언어문제인데 가르쳐주기가 좀 거시기하다. 언어영역은 대개 지문에 정답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수학처럼 딱 ‘이렇게 해서 이 공식으로 이게 답이다!’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정답 같은 ‘느낌’을 찾는 거니까.



“남자한테 진~짜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아 작작해! 말끝마다 드립이네?!”



미래의 드립욕은 끝이 없고, 같은 섹드립을 반복한다. 내 태클에도 눈을 찡긋 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 미래. 불과 얼마 전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우울증에 걸려 있었던 녀석이라곤 믿어지지가 않는데. 이 정도면 강철멘탈이 아니라 다이아멘탈 정도 되려나.








나, 미래, 리유 셋이서 바보 삼형제 바보 트리오 바보 의형제(?)를 맺고 스터디 그룹을 시작한 지 하루. 근본적이면서도 총체적인 난관에 부딪혔다.


굳이 모여서 같이 공부하는 것 정도는 『스터디 그룹』 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일 것도 없다. 그런 거면 우린 모두 스터디 그룹이지, 다같이 매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야자도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서로 간에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과정 속에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을 바라는 것인데. 마침 배분이 아주 적절하게, 나는 언어, 리유는 외국어, 미래는 수리 이런 식으로 중요과목 세 과목이 강점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가르쳐주며 상호관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 가능할 것이기에 여소야대의 정국이지만 국민들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서 제가 대통령입니다.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막 말이 잘 안 나오네, 워낙 어이가 없으니.




어쨌든, 문제가 뭐냐면, 우린 서로가 서로를 가르칠 능력이 안 된다는 것. 간단하게 나를 예로 들자면.


나는 언어영역만은 1등급이 나온다. 종종 운수 나쁠 때에 90점 초반이나 80점 후반이 나와 2등급으로 강등당하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94점 이상은 맞는다.


······근데, 그게 딱히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 점수를 받는 게 아닌지라. 그냥 지문을 읽으면 답이 딱 보인다. 거지같이 써놔도, 의도가 대강 읽힌다. 어떤 애들은 지문 읽을 시간조차 모자라다는데, 난 딱히 시간이 모자라진 않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닌데 근본적으로 읽는 게 느리진 않다.


음, 사족이 너무 길었는데, 나는 내가 언어영역을 90점 이상 맞는 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진 못 하겠다. 그건 그냥, ‘느낌’이 이게 답인 거니까. ‘왜 이게 답이야?’ 하면, 글쎄······. 그냥 그게 답 같으니까. 근데 왜 답인지 설명은 못 한다.


나 뿐만 아니라 리유나 미래도 마찬가지. 외국어나 수리를 자신은 잘 하지만 그걸 설명은 잘 못 한다. 이것도 결국엔 공부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일까.



“이렇게 하면 저희, 이대로 망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미래의 말에 고개를 끄덕, 분명 그렇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했는데, 세 명의 특화 과목을 서로에게 알려줘 흡사 솥발이 균형을 유지하는 삼국지의 위·촉·오처럼······ 되기는 개뿔, 다 죽게 생겼다 이놈들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오, 웅이 뭐 어떻게 하게??”



근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니 리유는 힐끔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싱긋 웃으며 자리를 뜨는 나.


야자는 아니고, 보충시간인데 보충수업 안 하고 자율학습 하는 시간인지라 어느 정도 느슨한 분위기의 자율학습 시간. 희세가 옆자리인 내 본래의 자리에 앉았다.



“······어? 뭐.”

“나 선생님. 공부가······ 하고 싶어요.”

“또 무슨 얘기야.”



희세는 이제 나를 3년 가까이 보고 있는 지라, 내 드립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힐끔 나를 보며 대수롭지 않게 묻는 희세. 괜히 겸연쩍다. 껄끄럽지만 말해야 한다. 배움의 길에 있어,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그── 공부하는 법을 알려줘. 우린 솔직히, 도저히 모르겠어, 어떻게 공부하는 지.”

“······그걸 이제 물어봐? 4월 다 지나가고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너무 늦었다. 망했어, 쓰레기야. 꿈도 희망도 없어.”

“시끄러.”



괜히 뭉클해진다. 솔직히, 창피하다. 나나 희세나 똑같이 19년 공부했는데 왜 희세는 공부를 잘 하고 나는 못 하냐. 어줍잖은 자존심 때문에 말을 못 꺼냈는데, 희세는 새침하게,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말보다 다정하게 ‘그걸 이제 물어봐?’ 하고 말한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드립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한다.








“자자! 오늘 이렇게 다들 모인 건! 특강 세미나 때문이죠! 행복전도사, 나희세 씨를 어렵게 모셨습니다!!”

“시끄러. 누가 행복전도사야.”

‘꽁.’

“아! 희세 너까지 때려?!”



이런 일이 있으면 아주 신이 나서 나대기 시작하는 미래. 행사 진행하는 MC 같은 톤으로 말하다 희세에게 꽁 하고 꿀밤을 맞는다. 억울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미래. 리유는 그런 미래를 보고 깔깔대며 웃는다.


토요일, 학교가 아닌 다른 곳. 야자 때나 혹은 도서관 같은 데에서는, 숨 죽여 공부할 순 있지만 서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여기는, 바로 유진이네 학원 강의실. 유진이네 집, 학원 하신다니까.


비어 있는 강의실을 빌려 쓰게 되었다. 유진이가 아버님께 말해서 흔쾌히 승낙을 받았단다. 공부하겠다는데 뭐, 하시면서 쿨하게. 그런데 정작 유진이는 여기에 없다. 유진이는 미술학원 다녀서. 좀 거시기 하지만 유진이 아버님과 직접 인사도 했으니, 괜찮겠지.



“우선 점수 파악부터. 저번 모의고사 몇 점 나왔어?”



나, 미래, 리유는 잠자코 앉아 있고 희세가 선생님처럼 앞에 나와 말한다. 오, 선생님 버전(?) 희세도 좋아. 기왕이면 정장 치마에 빨간테의 안경까지 써 줘! 핰핰! ······그냥, 내 취향이야.



“난 250점.”

“240점!”

“200점! 하하!”



좀 창피하지만 당당하게 성적 공개. 리유는 방긋 귀엽게 웃으며 말하고, 미래는 아주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바보들이야 너네?! 아니, 이게 아니라, 음, 미안.”

“네, 사실입니다. 저흰 바보가 맞습니다.”

“바보 삼형제거든! 난 관우야!”

“자랑이다, 에효.”



희세는 아주 간단하게 우리에게 일침을 날린다. 그러고선 경솔한 말실수를 사과한다. 뭐 그런 것에 기분 상해할 우리 바보 의형제가 아닌데. 부정할 수 없다, 바보라는 말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니 옆에서 리유도 싱긋 웃으며 말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희세.



“그럼 내신은?”

“우웅? 내시인☆? 그런 건 농어촌 애들이나 하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느 정도 되는데?”

“아, 음, 그게.”



희세의 물음에 과한 귀여운 척을 하며 대답하는 미래. 잔뜩 짜증을 낸다. 얼른 대답했다. 잠자코 듣는 희세.



“아 뭐, 어쨌든 어떻게 공부하냐, 그것 때문에 온 거니까.



자꾸 대화가 삼천포로 빠져 엉망진창인 상황을 정리하는 희세. 다들 말 잘 듣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입을 다물고 희세를 쳐다본다. 그래, 우리 공부하러 왔지. 그럼, 그 전설의 공부법을 직접 보여주시죠! 오오, 어디.



“음, 우선, 나는. 사람마다 다 공부법은 다른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거든. 사람이 다 다르니까.”

“오오! 옳소! 사람들을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제품처럼 찍어내려 하는 제도권 교육에 대한 반란이야! 우리 모두 대안학교로 가자! 혁신학교!”

“고3인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었다고 하잖아요! 저흰 안 될 거에요, 아마.”

“시끄럽고.”



희세의 말에 과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공감하는 미래. 뭐, 어느 정도는 수긍하고 공감가는 말이지만 우린 너무 늦었다. 고3이잖아. 그런 생각을 고1 때 했으면 스스로의 의지로 멋지게 대안학교에 갔겠지만. 그 때의 나는 너무 어리고, 너무 나약하고, 너무 비겁했어. 현실에만 안주했지. 그런 고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하하. 안 될거야, 아마. 희세는 짜증스럽게 한 마디로 이런 잉여들을 정리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좀 무식하게 하는 타입인데.”

“무식하게?”

“천하의 나희세가 무식하게 공부한다니, 무슨 말일까요~?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지금 말할 거거든?!”



자꾸만 희세의 말을 끊어먹는 미래. 나 정도로 ‘무식하게?’ 하고 추임새 넣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미래는 자신의 드립을 위해 아예 맥락을 잘라 버리니까. 두 번이나 당하니 희세의 인내심도 바닥에 닿았는지 미래 앞으로 와 미래의 머리를 꾸욱 누른다. 미래는 ‘아야야야! 이 폭력남편! 아, 폭력 와이프인가? 오빠는 힘들겠네요!’ 하고 나와 희세 둘을 동시에 공격한다. 정말이지, 근미래 이 녀석의 주둥아리는 어떻게 당해낼 수가 없다.






“으으······ 뒤에서 채찍 들고서 ‘빨리빨리 안 풀어 이 노예들아!’ 하면 완전히 이집트 노예 관리관 아니에요 이거.”

“시끄러. 내가 나 좋으려고 이렇게 시키는 건 아니잖아. 다 너희 잘 되라고 하는─”

“우우우~ 엄청 아줌마 같애. 아, 미안, 잘못했엉, 다 우리 위하는 거지! 아핳, 농담이라니까! 아아아 제발~”



희세의 삼엄한 감시 하의 나, 리유, 미래. 미래의 불평에 희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래 뒤에 가 순식간에 간지럼으로 그녀를 제압하는 희세. 미래는 어쩔 줄 몰라하며 괴로워한다. 재미있게 노는 것 같은 기분인데, 그거 참.


희세가 알려준, 자칭 ‘무식한 공부법’은 바로 이런 것. 우선 문제를 푼다. 실제 모의고사 보는 것처럼. 그렇다고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서 완벽하게 모의고사 환경까진 아니고, 어쨌든 푼다. 그리고 체점. 결과는 시궁창. 에이 이게 뭐야, 하곤 다음 회차 문제를 풀······지 않고. 틀린 문제들을 깨알같이 적는다.



속칭 옛날 말로 하자면 ‘깜지’라고 하지. 오답노트를 적는다. 왜 틀렸는지, 이게 왜 답인지. 지문이 있으면 지문까지 다 적는다. 글씨 쓰는 걸 싫어하는 나에겐 엄청난 고문이다. 미래도 툴툴대고 리유도 낑낑댄다. 그래도 희세의 삼엄한 감시에 우린 어쩔 수 없이 그대로 행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게, 희세가 무슨 돈 받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우리 때문에 자기 시간 내서 우리 도와주는 건데.


미래한테 말한 것처럼, 좀 뭔가 어른 아줌마가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 말 그대로 다 우리 잘 되라고 하는 짓이니까. 자고로 좋은 약은 몸에 쓰다고 했다. 하기 싫지만, 이렇게까지 방법을 제시해주는데 그것마저 안 하면 사람이 아니지. 이번에는 꾸준히, 열심히 해 봐야지.



“있잖아요! 오빠랑 희세는 했어요?”

“푸흡─! 뭐, 뭐, 뭘?!”

“어멋♡ 또 무슨 오해를 하셨을까요~ 설마, 깊고♂어두운♂판타지♂이려나요? 아하핫!”

“뭐! 왜! 어?!”



늘 이상한 말을 먼저 꺼내는 것은 근미래의 소행이다. 밑도 끝도 없이 ‘했냐’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공부하던 중에, 분위기 다 깨지게. 과연, 희세는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문제지에서 시선을 떼고 나와 미래를 쳐다본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잡담을 하고 있을뿐더러, 그 잡담이란 게 자기하고도 관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미래는 희세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나 놀려먹는 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하긴 뭘 해!”

“뭘 했냐는 거야 미래야? 웅이랑 히이랑 뭐 했어?”

“아아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순진한 리유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 같은 순간. 리유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눈으로 의아하다는 듯 나와 미래를 번갈아 쳐다보며 묻는다. 잔뜩 당황해선 얼른 얼버무리려 했다. 아니 그보다 지금 공부하고 있었잖아?! 벌건 대낮에 이게 무슨 섹드립인데! 그렇다고 밤엔 괜찮다는 건 또 아니고! 어쨌든!



“에이, 고3인데~! 할 수도 있지! 고3이면 다 컸잖아요? 학업 스트레스에 휘말린 두 사람은, 스트레스와 욕망에 못 이겨서~~~ 우후훗♡ 안 그래요?”

“안 그래! 작작 하고 공부해! 쫌!”



이런 상황에는 좀 희세가 개입해줬으면 좋겠는데, 막상 희세는 개입을 안 해준다. 잔뜩 언짢은 표정이지만 그저 쳐다만 볼 뿐. 나도 괜히 창피해져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했다고! 됐냐! 물론 입밖으론 내지 않지만. 미래는 잔뜩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계속 말을 잇는다. 이러나저러나 나 놀려먹는 맛에 사는 미래니까.



“아. 아~ 섹X 얘기 하는 거야?”

“······!”



뭐······라고?! 리유의 순수력이······ 사라졌다······?! 으아아아! 나의 리유는 이러지 않아! 캐릭터 붕괴되었잖아! 이런 건······ 이런 건 리유답지 않아! 나 다운 게 뭔데?! 내가 아는 리유는, 좀 더 상냥하고, 유순하고, 순수하고, 그런 착한 아이였어! 우와아아앙?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리유······야? 너 리유 아니지! 리유의 탈을 쓴 다른 애라거나?!”

“왜에. 나는 X스 알면 안 되는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귀여운 얼굴로 깨는 말 하니까······ 아니 그보다

이상하잖아! 너는 순수한 도화지 같아서 내가 더럽히는 맛이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이상하잖아!”



나만 멘탈이 붕괴된 건 아닌 모양이다. 미래는 얼떨떨한 표정에서 극도의 분노를 표하며 리유의 양 어깨를 잡고 흔든다. 공부에 대한 것은 이미 저 멀리에 간 지 오래다.



“안 했어, 안 했으니까. 시끄럽고 공부 해. 됐어?”

“아~ 안 했구나. 했을 줄 알았는뎅.”

“······리유 너.”

“응?”

“······아니다.”



때 아닌 XX 논쟁은 희세의 개입으로 싱겁게 끝난다. 희세가 얼굴을 붉히며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해서 리유와 미래를 납득시켜서. 고개를 끄덕이며 ‘했을 줄 알았는데’ 라고 말하는 리유를 쳐다보니 뭔가 상당한 위화감과 괴리감이 느껴진다. 계속 반복해 말하는 것 같지만, 나의 리유는 이러지 않는데.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입을 다물었다.


뭐, 말은 로리콘이네 어쩌네 해도, 리유, 명백하게 우리랑 동갑이니까. 고3이면 19살, 충분히 알 만한 나이지. ······알 만한 나이 정도가 아니라 미래 말마따나 할 수도(?) 있는 나이지. 막말로 당장 1년, 아니 10개월 정도만 지나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을걸? 그런 애매한 선상에 놓인 우리니까. 리유라고, 마냥 순수하고 어린 그런 상태로 남아있는 건 아니지.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랑 사귈 때엔 그런 분위기도 전혀 안 났는데. 내가 색기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그때 웅이가 너무 어렸나?”

“이러는 거 너답지 않다고! 아아아아앙!”

“에, 왜!?”



엄한 소리를 해서 겨우 다시 잡은 공부 분위기를 멋대로 망쳐주는 리유. 역시, 세상은 그런 법이지. 미래처럼 시도 때도 없이 섹드립을 치면 익숙해져서 별다른 타격이 없는레, 리유처럼 갑자기 예상도 못 했는데 쑥 치고 들어오면 너무 당황스럽잖아. 현실부정도 하게 되고, 인지부조화도 겪게 되고. 어쨌든 그렇다.









--








“새하얗게······ 불태웠어······.”

”뭐, 보람차잖아.”



저녁 늦게, 학원에서 나오는 우리들. 미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손을 바들바들 떨며 말한다. 나나 미래나 리유나, 셋 다 틀린 문제가 워낙 많아야지. 문제 푼 것보다 오답노트 적은 게 더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뿌듯하긴 하다. 뭔가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고3 들어서 이런 짓을 하기엔 좀 늦은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보다야 이렇게 더디게라도 천천히 나아가는 게 좋겠지 싶다.



“잘 했어. 하루종일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으으으······ 이러는 거, 희세답지 않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희세의 정다운 표정과 말에 미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희세는 ‘뭐! 그럼 나답게 말하는 게 뭔데?!’ 하고 발끈 화를 내고, 리유는 옆에서 ‘돈가스! 돈가스!’ 하며 시끄럽게 말한다. 저녁도 안 먹고 열심히 공부한 우리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럼 분식집 갈까? 떡순튀 인정?’ 하고 악마처럼 웃으며 말하는 나. 리유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아앙! 돈가스! 돈가스!’ 하고 아이처럼 생때를 부린다. ······이런 애가 아까는 왜 섹X 이런 단어 입에 올리고 그러는데.





“열심히 했네?”

“뭐, 뭘!? 따 딱히 이상한 상상 하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공부! 너까지 왜 그래?!”

“아아, 공부지 공부 어어어. 열심히 했지! 응!”



저녁 먹고, 리유와 미래는 집으로 가고 나와 희세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아까 전 X스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나도 모르게 ‘했네?’ 라는 말을 듣고 엉뚱깽뚱한 대답을 했다. 희세는 주먹을 불끈 쥐며 부들부들 떨며 말한다. 이게 다 정리유 때문이다. 순박한 나는 잘못이 없어.



“열심히 해야지, 고3인데.”

“그렇지, 응. 맞는 말입니다.”

“네 얘기거든?!”

“아 오늘은 열심히 했잖아요. 내일도 열심히 할 거구.”

“에휴우.”



뻔뻔한 내 태도에 한숨을 깊이 쉬는 희세. 뭔가 잔소리 하는 엄마 같기도 하고, 여친의 영역은 이미 뛰어 넘은 것 같은 걱정이다. 나는 철없는 아들 포지션인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다.



“열심히 공부해야, 나랑 같은 대학 갈 거 아니야.”

“······! 그, 그렇지.”

“대학교 가면 나랑 헤어질 거야?”

“아, 아니! 응, 열심히 할 동기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흫.”



넌지시 꺼내는 희세의 말에 흠칫 놀란 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그렇네.

고3이 끝나고, 모두와 헤어질 거라 상정하고 있었는데. 아니, 아니! 공부 X내 열심히 해서, 희세랑 같은 대학 가면 되잖아! 우워어어어! 마침 희세 지망도 유아교육과이기도 하고! 아, 전국의 유아교육과를 비하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런 얘기가 아니라, 희세가 법대나 의대 같은 너무너무 높은 과를 고르면, 나로서는 아예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지만, 유아교육과라면,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생긴 거잖아. 그걸 상정하고 말하고 있는 거고, 희세도.


내 대답에 희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나에게서 돌린다. 그러면서도 내 대답에 마음에 드는지 슬며시 미소를 띈다. 핳. 츤데레의 정석이네. 오늘도 희세 보는 맛에 산다.


작가의말

25일만에 연재하는 우학변 지리구요 오지구요 연중각 인정? 어 인정? 이게 연재인지 연중인지 모르겠는 부분이구요 실제론 연중상태인 팩트 ㅇㅈ? ㅇㄱㄹㅇㅂㅂㅂㄱ? (지나가는 정웅도 : 인정합니다.) 엌ㅋㅋㅋㅋㅋ 정웅도도 인정했구요 지리구요 오지구요 앙 우학띠~


────────────

아하하, 드립입니다.

안녕하세요, 굉장히 오래간만이네요. 글 쓰는 사람 김태신입니다.

주저리 주저리 쓸 말이 많지만, 첫번부터 말하자면 연중은 아닙니다!

고1은 왕따, 고2는 연애뽕빨, 그러니까 고3은 말 그대로 고3, 고3의 현실을 보여주자. 공부에 지치고, 아무것도 못 하고, 뭘 할지는 모르겠는데 수능에 대학에, 답답하고 갑갑한 그 시기 학생들의 마음을 보여주자, 그런 좋은 취지로 시작했는데요.

......학창시절, 고3 때. 재미있으셨나요? 전 솔직히 진짜 재미없었는데요.

제 역량부족이긴 하지만, 소재 자체가 그렇게 재미있게 끌어나갈 마땅한 어떤 그런 게~~ 아아. 망했어요. 앞부분 미래 파트 끝나고는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충동적으로 시작한 신작 덕분에 우학변은 out of 안중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쓰긴 쓰렵니다. 이번 2016년 수능까지 얘네들 수능 보는 걸 쓸 수 있을까요. 아핳. 웅도와 아이들의 공부법은, 실제로 제가 공부를 못 했기 때문에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들입니다. 만약에 읽는 분들중에 고3이 있으시면 안 되겠지만 어쨌든 학생분이 있으시다면, 따라하지 마세요! 걍 EBS랑 인강 들으세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었답니다.




3줄 요약

· 너무 오래간만에 연재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 연재는 계속 하지만, 매우 느린 패턴으로 연재할 것 같습니다 ( 1~2주에 1화 정도)

· 신작 보러 와 주세요! (굽신굽신)

 

신작제목은 너와 나의 섹슈얼리티 표류기에요! 아핳! , 딱히 홍보하는 건 아니니까! 홍보하는 거 맞지요. 조회수 낮으니까 쓸 의욕도 안 생기더라구요, 하하핫.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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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화 - 2 +2 16.05.15 873 7 20쪽
244 04화. 바보 스터디 그룹 결성! +4 16.04.20 1,023 7 20쪽
243 03화 - 3 +1 16.04.16 892 7 19쪽
242 03화 - 2 +5 16.04.10 894 11 24쪽
241 03화. 꿈도 희망도 없어, 내 앞날은. +3 16.04.04 744 11 20쪽
240 02화 - 4 +3 16.04.03 873 9 18쪽
239 02화 - 3 +3 16.04.02 847 7 21쪽
238 02화 - 2 +1 16.03.30 822 8 19쪽
237 02화. 이제 그만, 안녕, 하고 말하고 싶어도. +1 16.03.29 961 8 16쪽
236 01화 - 4 +1 16.03.25 907 9 20쪽
235 01화 - 3 +3 16.03.23 1,047 10 20쪽
234 01화 - 2 +7 16.03.20 903 9 23쪽
233 01화. 힘든 일은 언제나 예고 없이. +4 16.03.17 896 11 20쪽
232 3부 시작은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3 16.03.15 991 10 15쪽
231 18화 - 5 +7 16.02.23 1,062 12 17쪽
230 18화 - 4 +1 16.02.22 829 9 15쪽
229 18화 - 3 +8 16.02.21 938 10 19쪽
228 18화 - 2 +8 16.02.01 906 10 22쪽
227 18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7 16.01.26 878 12 16쪽
226 촬영은 이제 더는 없는 건가요- +10 16.01.06 1,037 17 7쪽
225 17화 - 4 +7 16.01.06 809 16 22쪽
224 17화 - 3 +8 16.01.05 968 13 19쪽
223 17화 - 2 +8 16.01.03 941 14 19쪽
222 17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5 16.01.03 954 20 20쪽
221 16화 - 4 +5 16.01.02 791 11 14쪽
220 16화 - 3 +6 16.01.01 913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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