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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082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6.04.16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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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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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9쪽

03화 - 3

DUMMY

“유진아, 부탁이 있어.”

“불여시 같은 나희세랑 헤어지면.”

“······어우야.”

“헤헷♪”



부탁하자마자 날카롭게 눈을 뜨고 말하는 유진이.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아 굉장히 부담스럽다. 내 한숨에 유진이는 다시금 평소의 미소로 돌아온다. 유진이는 소리장도(笑裏藏刀) 했었던 예전의 전례가 있어서, 저러면 마냥 장난 같지 않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선생님과의 깊은 밤의 찐한 상담······이 아니라. 어쨌든, 선생님의 조언과 과제 덕분에 조금은,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도 애들의 꿈과 목표 물어보기는 끝내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한다. 어쨌든 공부는 하기로 했지만 내 꿈은 딱히 없으니까.



“무슨 부탁인데?”

“나의 열정을 위해, 네 꿈을 공유해 줘.”



유진이의 되물음에 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애들의 꿈을 수집하는, 나는 드림헌터. 오, 멋있는데? 멋있기는 개뿔, 내 꿈이 없는건데.



“그러니까, 지금 프로포즈 하는 거지? 희세랑 사귀고 있는데도?”

“아니아니, 무슨 소리야 그게??!”

“너의 열정을 위해, 내 꿈을 공유하는 게 반려자가 돼서 같이 나아가자는 말 아니야?”

“창의력 대장이네! 그게 어떻게 그렇게 해석되는데?! 네 꿈 좀 알려달라구!!”



괜히 뭔가 시적으로 말한 것 같아. 미래의 영향으로 프로 드리퍼(?)가 된 유진이는 이제 엉뚱한 것으로 말꼬리 잡는 것도 잘한다. 싱긋 웃으며 날 빤히 올려다보는 유진이. ······고거고거,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내 꿈은 왜?”

“이젠 요약해서 설명 안 해. 그러니까 내가, 이제 고3인데─”



유진이는 창의력 대장이 되었으니 일말의 여지를 아예 없애야겠다. 자세하게 설명하니 유진이는 ‘응응’ 하며 곰곰이 들어준다. 성빈이처럼 마냥 천사표는 아니지만, 유진이도 평소에는 나긋나긋하고 차분하니까. 본래 성격과는 다르게.



“음, 그렇네. 그럼 웅도 넌 아무 꿈도 희망도 없어?”

“뒤에 희망은 왜 붙는데. 없는 건 사실이지만.”

“아하핫, 농담 농담.”



천연덕스럽게 내 희망까지 앗아가주는 유진이. 잠자코 태클을 거니 까르르 웃는다. 만족스런 미소. 선생님이 나를 놀릴 때 보이는 반응과 비슷하나.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왜들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지. 그렇게 재미있나?!



“나는, 미대 가려구.”

“미대?!?”



이건 또 의외. 아니, 정말 의외. 예·체능 계열은 보통 아무리 늦어도 고1이나 고2때 이미 진로 결정하고 매진하는 거 아니었나? 그전까지 유진이, 딱히 미대를 갈만한 어떤 징조나 계기, 없었던 것 같은데. 공책이나 책에 곧잘 만화 캐릭터 잘 그리곤 하는 유진이이긴 하지만. 잘 그리기도 했고. 그렇지만, 그런 것 가지고 미대까지는······?



“어. 의외야?”

“어······ 응, 솔직히. 전혀 예상 못 했는데.”

“후흫.”



유진이는 뭔가 미묘한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괜히, 민감한 것 같아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다.



“꿈은, 아직 없어. 그래서 불안해. 이게 맞는지, 이 길이 옳은지. 다른 공부는 내 목표에 못 미쳐도, 호환이 되는데. 이거는 이거 말고는 모두 수포로 돌아가니까. 미대입시는. 거의 도박이지. 그래서, 잘 모르겠어, 나도 솔직히.”

“······응, 그렇지.”



말하다보니 어째 내가 유진이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들어줘야지, 상담이란 건 상호존중이니까.


그렇지, 예를 들자면. 성빈이는 변호사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한다. 목표치가 너무 높아 설령 법대를 못 가도, 다른 대학을 가면 된다. 열심히 한 공부, 수능 성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미대는 아니다. 예·체능 계열은 다 그렇다. 음대면 음대, 체대면 체대, 그것 외에는 쓰일 길이 마땅히 없다. 그래서 다들 몰빵하는 거지, 스텟을. 확실하게 승부 걸 게 아니면 그냥 공부나 해라, 이런 거지. 어떻게 보면 잔인한 것 같기도 하고,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고.



“뭘 할지는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 단순하게,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고, 계속 했으니까. 재능이 있는지 어떤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날같은 그거 하나 가지고 정한 진로니까, 나도 자신이 없어. 불안해. 그래.”

“······그렇구나.”



다른 어떤 애들의 말보다, 유진이의 떨리는 지금 이 말이 격하게 공감이 간다. 유진이 말마따나 거의 도박이나 마찬가지니까. 답답하고 갑갑한 유진이의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지는 것 같다.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웅도도, 잘 찾아봐. 어떻게 조언해줄 수가 없네, 나는.”

“으응, 충분히 도움 된 것 같아. 나만 방황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유진이 너도, 많이 힘들구나. 그래서.”

“응응.”



훈훈하게 끝나는 나와 유진이의 대화. 꿈을 찾지 못한, 같은 동지로서 유진이를 내려다본다. 유진이도 나를 지그시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쉬는 시간 잠깐 나온 것인지라, 대강 대화를 정리하고 우리 반으로 돌아간다.









평화로운 점심시간. 고3이라도 밥은 먹는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힘내서 공부하지. ······누가 보면 겁나 밥 먹고 공부만 하는 줄 알겠다. 공부 하나도 안 하면서.



“민서야, 잠깐만.”

“웅?”

“따로 앉자.”

“에······ 에??”



신나는 표정으로 도시락을 까다가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표정이 된 민서. ‘여자친구가 있는 웅도가 왜?’ 하는 눈치. 심지어 여자친구인 희세도 같이 밥을 먹고 있다.



“웅도 걔 요즘 꿈 찾느라 정신없거든~ 대충 말해주면 돼!”

“대충이라니! 대충 말한 거야?!”

“에헷☆”



옆에서 한 마디 거드는 유진이. 충격과 공포. 그 진지한 말이 농담이었어?! 농담이겠지. 잠깐만, 어느 게 농담인데? 피식 웃으며 미래 옆에 앉는 유진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는 성빈이도 잔잔하게 웃는다. 희세는 한숨을 푹 쉬며 ‘어쩌겠어. 저러겠다는데.’ 하며 관대한 마나님 같은 포스를 내뿜는다. 우리 마나님은 이해심도 깊으시다. 어쨌든 어리둥절해하는 민서를 데리고, 아이들과 조금 떨어진 데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봐야 한 칸 떨어진 책상이지만.



“에······ 무슨 얘기?”

“꿈.”

“꿈······?”



자꾸 같은 걸 설명하려니까 뭔가 거시기하네. 어쨌든 각잡고 설명한다. 꿈이라는 건 중요하니까. 내 설명에 민서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 웅이는······ 무슨 꿈 갖고 있어?”

“딱히, 없어서 지금 모두한테 물어보고 다니고 있어. 민서 넌?”

“나두······ 헤헷. 사실 별로, 꿈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데.”

“그렇지, 아무래도.”



딱히 꿈이 없다는 대답을 들어도, 실망한다거나 그런 건 없다. 당장 나부터도 꿈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데. 민서는 조금 민망한지 ‘헤헤’ 하고 웃는다.



“대학교는?”

“그것도 잘.”

“하긴. 나도 똑같아. 아아~ 이거 참.”



답답한 고3 두 명이 모여있다. 답답하다기 보다는 노답 두 명인 것 같은데. 답이 없다, 포기하자. 캐리어 가야겠다. 드립 치는 것도 노답이다. 아아~ 전부 노답~!



“힘내라고 고기 조공.”

“엣······ 먹어도 돼?”

“응.”

“······살찔 거 같은데.”

“에이, 살은 충분히 뺐잖아?”

“······히힛.”



어쨌든 귀한 시간 내서 내 얘기 들어주는 민서이니, 도시락에서 고기튀김 두 점을 집어 민서에게 내밀며 말한다. 민서는 뭔가 수줍어하며 되게 좋아한다. 겨우 고기튀김 두 개인데도. 가만 보면 민서, 살 진짜 많이 뺐구나. 예전 통통하돈 모습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웅도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가닥도 안 잡혀~ 음. 나는 좋아하는 게 뭐였더라. 게임은, 그 정도는 아니고. 대충 내린 결론은, 희세 좋아하니까 희세한테 취직하는 수밖에······ 좋아하는 거 하고 살아야지. 희세의 셔터남이 되는 게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가─”

“닥쳐!”

“아하하하.”



다 들리게 농담을 하니 희세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친다. 소리 내어 웃는 나. 귀엽잖아, 희세. 민서 또한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나는, 먹는 게 좋거든.”

“응. 너무 당연한 거라 당연한데.”

“엣······ 나 그런 이미지였어?”

“아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뭔가 민서에게 상처를 준 것 같은데. 내 대답에 민서는 눈이 동그래져서 흠칫 놀란다. 뚱뚱하다 → 먹을 걸 좋아할 것이다 라는 결론이 아닌데. 애초에 지금 민서는 뚱뚱하지도 않고. 살짝 뾰로통한 표정이 된 민서. 괜히 미안해진다. 어쨌든 계속 말을 잇는다.



“그래서, 요리 하는 게 재미있거든. 차라리, 요리학원 같은 데 다녀서 요리사 되볼까, 싶기도 하고.”

“오! 그거 좋네. 그럼 식품영양학과나 그런 데로 가면 되겠다. 뭐야, 꿈 있네!”

“음······ 그런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 먹는 게 좋다, 그러니까 요리사가 되겠다. 얼마나 순박하고 또 현실성 있는 얘기야. 적당하게 맞장구 쳐주며 대답하니 민서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응? 그럼 뭐야. 보통 그러면 식품영양학과 가지 않나?



“나는, 대학교 자체가 좀······ 왜 가야하는 지 모르겠어.”

“그야······.”

“내가 하고 싶은 요리 하고, 잘 살면 그만 아니야? 굳이 대학교 4년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음······.”



너무나 익숙하게, 당연하게 대학교를 가야한다고 생각해서. 민서의 말에 말문이 턱 막힌다. 그야, 우리나라에선 어지간하면 당연히 대학교는 가니까. 말이 좋아 의무교육이지. 실질적으로 대학교까지는 거의 대부분 가니까. ‘전 대학을 안 가겠습니다!’ 하면 대번에 어른들이 한 마디씩 하겠지. ‘대학도 안 나와서 뭐 하려고!’ 하는 비아냥과 툴툴거림.

굳이 어른들의 압박이 없다 해도, 나부터도 대학을 안 간다는 선택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야, 당연히 가야한다고, ‘인식’의 범위도 아니라 그냥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럼 우리가 왜 수능을 보는데.



“사실 예전부터, 엄마 가게일 조금씩 도와드렸거든. 아! 말 안 했지. 우리집 국밥집 하거든. 시내에 ○○국밥.”

“아? 거기 민서네 가게였어? 전혀 몰랐는데?!”

“딱히 말은 안 했으니까.”



갑자기 알게 된 사실. 시내에 있는 큰 국밥집이 민서네 가게였다니? 선생님이랑도 몇 번 갔었는데! 상당히 의외인 사실이다. 민서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그것 때문에 요즈음 되게 스트레스 많이 받아. 엄마아빠는 당연히, 대학교 가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한바탕 싸워서, 대학 안 간다고 했다가.”

“아······.”



내 고민은 되게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정도의 고민인데, 민서는. 나랑 개념이 아예 다르다. 나는 단순히, 별다른 꿈이 없고 가방만 덜렁덜렁 아무 대학교나 갈 잉여인간이지만, 민서는 확실하게 대학의 필요성을 저울질하고 가지 않겠다고 생각한, 어른스러운 생각이니까. 나와는 고민의 무게가 질적으로 다르다. 괜히 또 부끄러워진다.



“엄마 도와드리면서, 아르바이트 해서 돈 벌고, 내 힘으로 요리학원 다니면서 자격증 따고, 엄마 도와서 같이 하고 싶은데. 난 그게 재미있고 그게 좋은데, 엄마는 인정해주지 않아. 엄마가 해서, 엄마가 가장 잘 안다고. 너는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음······.”



뭔가 참 씁쓸한 현실이다. 부모님 직업을 자식이 이어서 하고 싶다는데 그걸 말리다니.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런 게 아닐까. 곧 죽어도 대학, 곧 죽어도 사무직.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말로만 그렇게 하고 실질적으론 아주 세밀하게 차등화 시켜놓고 있으니까. 서로의 인식 속에서. 심지어는 본인들조차. 뭐라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좀 그래. 정말 억지로 대학을 가야 하나, 아니면 꿋꿋이 내 생각대로 해야 하나.”

“······나는 솔직히, 그렇게까지 어른스럽게 생각 안 해봐서. 되게 부끄러워지네.”

“아니아니, 어른스럽긴. 철없는 거잖아, 어른들 말 안 듣는 건데.”

“아니, 그게 어른스러운 것 같아.”



내 치켜세움에 민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래도 꿋꿋이 민서를 칭찬해준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섣불리 조언은 못 하겠지만, 민서가 자기 뜻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보다는, 민서의 주관대로 가는 게 훨씬 좋은 선택일 테니까.







여러 애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엇인가 발전된 생각을 하기보다는 도리어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정작 내 꿈은, 내 목표는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정말로, 나란 놈은 대체 무얼 하고 싶은 것일까.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에 생각에 꼬리를 물고, 맹렬하게 무엇인가 생각하지만 그건 털실이 잔뜩 엉키는 것처럼 아무 결론도 영양가 있는 무언가도 하지 못하고 생각들이 자꾸 꼬인다. 머리가 컴퓨터라면, 과부화 걸려서 ‘치이익’ 하고 연기가 날 것만 같다.



‘몰캉.’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실까요~♪”

“으하아아악!”

“어머, 그렇게 좋았어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생각하고 있던 나. 문득 머리에서 느껴지는 몰캉하고 부드러운 느낌에 기겁을 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느낌은 분명히, 가슴······?! 이어지는, 착 가라앉은 미래의 목소리. 내 반응에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는다. 절로 표정이 찡그려진다. 뭐야 얘.



“뭐, 뭐하는 거야 미친년아!?”

“에, 여자친구도 있는 분이 뭘 그렇게 놀라요? 평소에 안 만져요?”

“안 만져! 내가 미쳤냐?! 넌 또 왜 그래! 정신 나갔어?!”



나와 희세는 결코 그런 음란한(?) 사이가 아니다. 무척이나 건전하고, 학생으로서의 선을 지키는 교과서 같은 이성교제 사이라고! ······크윽, 음란해지고 싶다······ 선 넘기고 싶다······ 아니, 안 돼. 우리 고3이잖아. 적어도 지금은, 안 돼. 천연덕스런 미래의 대답에 정색하곤 소리친다.



“뭐 어때요, 남자친구도 없는데, 이젠.”

“······야. 그건, 드립치기에는 좀······ 그렇잖아.”

“아 왜요! 제가 괜찮다는데 왜 오빠가 정색해요?”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미래. 방금 전까지 굉장히 격앙된 기분이었는데, 미래의 그 말에 순식간에 숙연해지는 나. 아······ 그렇지······ 미래 이제······ 남자친구······ 없지······ 그걸 그렇게 드립으로 치면 쓰나. 아무리 본인이 괜찮다고 해도, 침착맨 얘기만 나오면 되게 우울해진단 말야. 정작 미래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너~무 멍 때리고 있으니까, 정신 좀 차리라고 해 봤어요~ 헤헷.”

“······정신이 너무 번쩍 드는데. 다시는 그러지 마. 암만 그래도.”

“에헷☆ 아무리 작아도 저도 영혼까지 끌어 모으면 만족시킬 만큼은 되니까요♪”

“만족시키지 마! 좀 소중히 여겨! 여자애가 못하는 짓이 없어!”

“에에~ 조선시대 할아버지도 아니고.”



뭔가 이런 미래, 적응하기 힘들다. 아무리 극복했다고 해도, 갑자기 단기간에 이렇게 되다니. 오히려 예전보다 드립의 수위가 더 올라갔잖아. 정말 정신이 어떻게 돼 버린 걸까. 나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미래 마음 속은 만신창이가 된 채 방치돼 있던······ 그런 거. 왈칵 소리치니 미래는 헤실헤실 웃으며 나를 놀려댄다.



“근데요. 왜 제 미래는 안 물어봐요?”

“······이러는데 물어 보겠어. 실은 생각하느라. 하아. 애들 얘기 들으니까 더 복잡해져서, 머릿속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돼 버렷♡”

“······나 지금 진지하거든?!”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드립 삼천포로 빠지니 제대로 얘기를 꺼낼 수가 있나. 뭐, 미래하고는 진지하게 미래에 대한 얘기는 못 하겠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으니까. 미래의 미래라. 뭔가 아재개그가 샘솟을 것 같은 느낌인데.



“저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겠지.”

“······그를 잃고나서부턴, 더 이상 어떤 생각도 안 들어요.”

“······야 그거 반칙이잖아. 드립이지?”

“에헷♪ 어떻게 알아요? 젠장. 안 속네.”

“미래 너를 몇 년을 봤는데.”



그래도, 계속 우울에 빠져있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어느 정도 내가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드립이니까. ······머리에 가슴을 올려놓는 건, 상상도 못한 짓이지만.



“잘은 모르겠으니까, 공부나 할까요.”

“그러니까 그 공부가 잘 안 된다니까. 목표점이 없으니까. 배가 있는데, 목표로 정한 항구도 없이 그냥 바다에 나온거야. 가긴 가야겠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로.”

“그러면, 음.”



미래의 결론에 간단한 반박. 이제는 내가 들어도 핑계 같아서 절로 실소가 머금어진다. 이 얘기, 어른들이 들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핑계 대지 말고 공부나 해.’, ‘우선 공부 하라니까? 공부하기 싫어서 그 X랄인 거지?’, ‘내가 너만할 때엔······’ 뭐, 그런 얘기들이려나. 내가 생각해도, 핑계같긴 하니까.


미래는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검지를 번쩍 들며 말한다.



“스터디 그룹 만들죠! 「잉여들 고3 수능 공부」 스터디 그룹!”

“뭐······ 라고!?”

“강제로 스터디 그룹 만들면 강제로 공부하지 않을까요? 뭐가 어찌됐던, 열심히 해야 하니까. 계기란 건 그런 거 아니에요? 덤으로 친구들 시간도 좀 뺏고, 미래도 뺏고. 어차피 오빠만 잘 되면 되니까, 다른 애들 희생시키고 발판으로 삼는 거죠! 인간관계라는 건 다 그런 거니까. 아, 물론 전 오빠 발판이 돼 줄 수 없어요. 오빠보다 공부를 못 하기 때문이죠. 오빠보다도 더 생각이 없기 때문이죠. 전 그냥 잉여인간이에요. 발톱에 때만도 못한.”

“좋은 거 말하다가 갑자기 왜 자기비하로 떨어지는데. 음, 스터디 그룹이라.”



갑자기 한없는 부정의 늪으로 빠지는 미래. 내가 다 민망해서 태클을 건다. 지금 미래가 이런 식으로 자기비하하면 뭔가 무섭단 말이지. 또 우울의 늪에 빠질까봐.

미래가 생각한 것이지만 확실히, 괜찮은 것 같긴 하다. 스터디 그룹.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그보다, 스터디 그룹은 뭐 하는 거야? 대학생들이 하는 거 아니야? 정확히 뭐 하는 건데?



“잘은 모르겠고, 공부하는 거요! 이제 그만 방황하고, 공부, 공부 공부!! 고3이니까 공부하라구요!”

“알았는데 너한테는 듣고 싶지 않은데.”

“에에에엑~ 그치만, 전, 얼마전에 미망인이 돼서······ 상처가 크답니다.”

“······그 핑계는 반칙이라니까?!”



미래는 대체 얼마나 멘탈이 단단한 거야. 얼마나 됐다고 제 스스로 침착맨을 드립을 치는데. 흑인이 자기 입으로 ‘니거 니거’ 하고 본인디스하면 뭐라고 할 수 없듯, 그치만 그걸 구경하는 백인이 ‘요 니거~’ 했다간 큰일나는 것처럼, 나도 미래의 드립을 받아칠 수가 없다. 그저 태클 거는 것 밖에는.


작가의말

......연재의 상태도, 3화 제목처럼 “꿈도 희망도 없어, 내 미래는” 이 되고 있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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