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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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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890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4.01.22 19:23
조회
1,100
추천
38
글자
21쪽

4. 고통을 먹는 자 (2)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

식물원은 오늘도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본래 취지는 테라포밍 연구 성과의 발표장이지만, 콜로니 거주민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나무 구경하러 나오는 공원일 뿐이다. 때문에 곳곳에 설치된 편의시설 숫자만 3만개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벤치의 숫자만 2만개다. 그 절반은 엘리베이터와 가까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방문자의 8할에 해당하는 직장인을 위한 배려다.

이들이 이곳에 머무는 건 아주 잠깐. 이후엔 서둘러 일터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휴식에 투자하는 시간은 길어봐야 10분을 넘지 못한다. 이동에 걸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실제 식물원에서 쉬는 건 딱 5분 정도이다. 차라리 작업장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쉬는 게 나을 지경이다. 허나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식물원에 오는 것을 더 선호한다.

콜로니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색깔인 초록에 대한 그리움과, 커피 한잔을 마셔도 공기 좋은 곳에서 마시겠다는 고집 때문이다.

물론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존재한다.

“럭키! 저 아가씨 오늘은 뛰는구나.”

“아……남자친구는 좋겠다.”

나이 지긋한 중년인들의 대화다. 안보는 척 커피를 홀짝거리다가도, 젊은 여성이 지나가면 고개는 물론 허리까지 90˚이상 돌아간다. 하지만 그 동작은 스트레칭 삼아 허리를 뒤트는 동작과 미묘하게 섞여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게 있다. 바로 여자들의 시야. 남자들이 사각에서 훔쳐보고 있다고 해도, 여자에겐 감지범위 안이다. 게다가 여자의 직감까지 더해지면 범위는 더 넓어진다. 즉, 남자들 누구누구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지, 여자는 다 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는 건, 딱히 피해 입은 게 없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훔쳐보기는 하지만, 그건 서로의 활동반경이 겹치기 때문이지, 저들이 스토킹 할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편의 개그코너를 보는 기분까지 든다.

“식물원은 오늘도 북적거리는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활기차서 좋긴 하지만, 최근 들어 편재는 조용한 곳이 더 끌린다. 그래서 오늘은 더 멀리까지 뛸 생각이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건, 야외수업을 위해 이동 중인 학생의 무리 때문이다. 편재는 코스를 바꿔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덜 지치는군.”

러닝을 시작한지도 4주째에 접어들었다. 이제 한 달을 채우면, 1차 감량은 성공이다.

그동안 풍뎅이 같던 편재의 몸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일단 배와 가슴의 구분이 가능해졌다. 지금도 지방이 많이 낀 몸이지만, 더 이상 거울을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사람다운 윤곽은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실종되었던 턱 선도 살아났다. 여전히 목살과 혼연일체가 되어있지만, 예전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마저도 홀쭉해 보인다.

“하지만 팔 다리는 변화가 없어.”

물론 겉보기만 그럴 뿐, 실제로는 큰 변화가 있다. 예전에 비해 지방양이 줄어든 것이다.

이유는 근육의 발달에 있었다.

몸속에 주사된 나노머신들은, 기본적으로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지방을 태우게 돕는다. 그 결과 발생된 에너지를 운동으로 소모시키니, 자연스레 근육이 발달하는 것이다.

곤란한 것은 아드레날린이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개운함이 지나쳐, 쾌감으로까지 느껴질 수준이 되었다. 전형적인 운동중독이다.

‘하지만 그 쾌감에 홀려서 무리하면 안 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도비만이었던 몸이다. 갑자기 고강도 운동을 했다간 심장이 버티질 못해.’

이건 나노머신을 투입할 때 들은 주의사항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나노머신을 사용하는 경우, 가장 위험한 게 장기의 이상이었다.

노폐물이 혈관가득 차서 신부전으로 사망하거나, 심장이 멎도록 운동하다가 즉사하는 것.

이 두 가지만 주의하면, 나노머신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고 보니 또 휴식시간이군.”

편재는 더 달리고 싶은 다리를 억지로 멈춰 세웠다. 무아지경으로 달리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마침 식사할 때도 되었으니, 도시락이나 사올까.”

예전에 너무 늦게 간 나머지, 콩 요리만 잔뜩 먹었었다. 다행이 지금은 가게 문을 연지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엘리베이터와는 상당히 떨어진 위치에 있다.

“어서 옵쇼.”

서글서글하게 생긴 아저씨가 걸레질을 멈추며 인사를 건네 왔다. 편재는 메뉴를 둘러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 여긴 콩콩 스페셜이 없군요.”

“그것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손님. 그거 가스 많이 찹니다.”

“연어살 샐러드 포함된 런치로 주세요.”

이번엔 제대로 된 도시락을 구입한 편재는, 가게 밖에 설치된 간이 테라스에 앉았다. 넝쿨 식물이 기둥을 감고 올라가 지붕가득 잎을 드리우고 있어서 제법 운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앞에는 한적한 숲이 펼쳐져 있다.

“이제야 식물원에서 식사하는 분위기가 나는군.”

아마 꽃이라도 피었다면, 좀 더 기분 좋은 식사가 되었을 것이나, 지금은 푸른 잎사귀만 무성해 있다.

“이것도 괜찮겠지.”

사실 이런 풍경 속에서 식사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식물원은 항상 북적였지만, 가끔은 이렇게 한적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더 오션에서도 마찬가지. 누군가에겐 쓸쓸한 풍경이라도, 음식을 꺼내놓는 순간 운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운이 좋았다.

쏴아아, 바람이 불며 잎사귀들을 흔들어댔다. 사락사락,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그런 곳에서 먹는 음식이기 때문일까. 연어 샐러드는 삽시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젓가락을 내려놓고도 편재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때 암릿이 진동했다.

“알람이 울릴 시간은 아닌데?”

편재는 암릿으로 걸려온 전화번호를 확인해보았다. 생소한 번호였지만 편재는 망설이지 않고 받았다. 구형 단말기 데이터 해독을 위한 의뢰일수도 있고, 며칠 전 통화했던 반가운 사람일 수도 있었다.

“제퍼슨?”

- ……이봐. 여보세요라는 말이 왜 있는 것 같으냐?

“아무 뜻도 없잖아요.”

- 전화 받자마자 누군지 알아 맞춰버리니 하나도 재미없다. 끊을까?

“여보세요?”

- 등 찔러 절 받기로군. 용건만 간단히 말하마. 혹시 리암이랑 연락하고 지내냐?

편재는 요새 리암의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고 느꼈다. 오늘 새벽 찾아온 브렌에게 메모리 스틱 문제는 리암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었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제퍼슨이 리암을 찾는다. 우연이 두 번 겹치니 왠지 마음이 걸린다. 편재는 장난기를 지우고 진지해졌다.

“용병 그만두고는 만난 적이 없어요.”

- 이상하군. 분명 너와 연락은 하고 지낼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 그 괴짜 녀석이 친하게 지낸 건, 너 한사람뿐이니까.

“브렌하고도 죽이 잘 맞았잖아요.”

- 그건 다른 케이스고. 아무튼 연락할 방법이 없다 이거로군.

“무슨 일 있어요?”

- 리암 녀석의 암릿이 정지되어있더라. 뭔가 문제가 생긴 거지.

“브렌에게 물어볼까요?”

- 그 둔탱이가? 하! 바랄 걸 바래라. 리암이랑 아직도 소 닭 보듯 하고 지낼 텐데, 연락은 무슨…….

“그래도 사람이 많으면, 찾을 확률도 높아지잖아요.”

- 맘대로 해라. 아, 리암 찾으면 몸 사리라고 해라. 그 녀석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노리는 놈들이 꽤 많더라.

“저번엔 절 해치려고 하더니, 이번엔 리암이에요? 대체 누구예요, 그런 짓을 하는 게?”

- 나도 모른다. 분리주의자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더라.

“대체 그 자들 어디까지 일을 벌이려는 건지.”

- 볼일 끝났으니, 이만 끊는다.

전화걸 때와 마찬가지로, 제퍼슨은 멋대로 끊어버렸다.

“추적해봤자 이런 번호는 없다고 나오겠지.”

며칠 전, 파티장에서 벌어질 일을 경고해준 건 제퍼슨이었다.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음모를 꾸민 분리주의자들까지 잡아들일 수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편재는,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번호를 추적해보았다. 결과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무작위로 생성된 임시번호였다.

제퍼슨은 고도의 해킹 기술을 손에 넣어 운용하고 있었다.

편재가 기억하기로, 그는 현장에서 뛰는 타입의 용병이었다. 해킹이니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과거야 어쨌든, 현재 그는 훌륭한 해커다.

“못 보던 몇 년 사이에 이렇게나 성장했다면 보통 자질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날 도와준다면, 폐쇄구역을 여는 일이 더 빨라질 텐데.”

편재가 게임으로 폐쇄구역의 코어를 unlock시키는 것과 별개로, 직접적인 해킹까지 이루어진다면 작업 능률은 배가 된다. 지금은 네메시스가 독자적으로 작업 중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이럴 때 뛰어난 인재가 도와준다면 좋을 텐데. 제퍼슨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니. 쩝.”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편재는 조심스레 암릿에서 뽑아낸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두 번 톡톡 두들겼다. 이것은 네메시스와 미리 정해둔 신호다.

『네메시스다.』

“작업 진척 상황은 어때?”

네메시스에게 물을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폐쇄구역의 코어 공략.

『여전하다. 지금은 폐쇄구역의 코어들끼리 병렬 연결되어 방어중이다. 하지만 안심해라. 계속해서 과부하를 걸면, 몇몇 코어의 부품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확률은 74%.』

“부품? 그쪽 설계도까지 손에 넣은 거야?”

『G블록에 게르마니시아 연구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생체부품의 설계도를 입수했다.』

편재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만약 눈앞에 네메시스가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을 태도였다. 하지만 네메시스는 프로그램. 몸뚱이가 있을 리 없다.

“생체부품이라고 했나? 그거 설마 사람을 이용한 거야?”

『그렇다. 게르마니시아에서는 가수면 상태에 빠진 인간의 두뇌를 이용해, 연산을 처리하는 기술을 연구 했고 실제 성과를 냈다. 일부 블록의 메인 코어를 보조하는 개체가 그 증거.』

“누가 그런 짓을 했지?”

『사람이 아니다. 메인 코어의 판단으로, 자신들을 보조할 생체부품을 자체 조달해 사용했다.』

“네메시스. 즉시 공격을 멈춰라. 생체부품에 이상이 생기면 안 돼.”

『어째서인가? 편재. 폐쇄구역들을 unlock시키는 게 목적이 아닌가?』

“난 그녀를 구하고 싶을 뿐이야. 그녀는 생체부품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그만둬.”

편재는 다급히 명령했다. 어쩌면 그녀가 휘말릴 지도 모른다.

『현 시간부로 코어에 대한 해킹을 중지한다.』

“잠깐, 생체부품 중에 파괴된 게 있나?”

『현재 코어와 그 주변기기 중에 파괴된 것은 하나도 없다.』

편재는 침을 삼켰다.

“만약…만약에 내가 더 오션의 메인 퀘스트를 완수한다면, 그것 때문에 생체부품이 파괴될 수도 있나?”

『현재 생체부품이 사용되는 곳은 모두 세군데. G블록, L블록, K블록이다. 이중에서 L블록과 K블록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두 블록은 메인 코어는 곧 수명을 다할 것이다. 이때 생체부품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다.』

“두 블록과 연결된 더 오션의 땅은? 관련 퀘스트도 함께 알려줘.”

『국가명, 네뮤로시아. 관련 퀘스트는 ‘날아오르라 불사조여’다. 나머지 하나는 국가명, 파반. 관련 퀘스트는 ‘하늘에 어린 실루엣’이다.』

“이 두 퀘스트가 성공하면, 해당 블록의 생체부품에 타격이 간단 말이지?”

『그렇다.』

“일단 해킹은 시도하지 말고 대기해.”

『알았다.』

네메시스는 다시 침묵상태로 돌아갔다.

편재는 탁자에 이마를 쿵쿵 찧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억은, 불타는 저택을 배경으로 다수의 적과 맞서는 그녀의 뒷모습이었다. 불타는 저택은 게르마니시아의 비밀연구소 중 하나였으니, 사로잡혔다면 분명 실험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하위구역에서는 지금도 간간히 실종자가 나온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야.’

수년전 편재가 용병이 되어 알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묻혀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을 이야기.

게르마니시아의 비 인륜적 실험.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을 기계에 싣는다는 것은, 머신과 파일럿의 통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주종관계의 역전. 인간의 잠재력은 기계보다 뛰어나다. 그런 인간을 부속으로 쓰면, 기계는 더욱 완벽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실현되었다.

달기지의 오버테크놀로지에 대항하려던 광기의 산물.

바로 인간을 사용한 생체부품이다.

그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되었고, 편재는 그 계획단계에서 희생될 뻔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녀에게 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대신 그녀는 지금도 고통 받고 있어!”

그렇기에 하루도 그녀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공부했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용병이 되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셸터에 올랐고, 그녀와 만나기 위해 레드오션과 네메시스를 융합시켰다.

그녀를 만나는 것은 편재가 가진 하나의 소망이었고, 꿈이자 목표였다.

“그런데 하마터면 내손으로 그녀를 죽일 뻔하다니!”

네메시스가 계속해서 해킹을 걸었다면, 분명 생체부품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편재는 주먹을 들어 탁자를 쾅 내리쳤다. 뜨끈한 액체가 튀었다. 손을 들어보니 피였다. 편재는 주먹을 폈다. 손톱에 찢겨져 손아귀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고통이고 뭐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를 잃은 뒤로 편재는 자극에 둔감해졌다. 즉, 역치가 높아진 탓이다.

그 결과 어지간한 고통에는 반응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맞아도 아프지 않고, 칼에 찔려도 무섭지 않다. 의사들은 정신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온갖 치료법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호전되진 않았다. 10여년이 지나도록 편재는 그런 몸으로 살아야 했다.

“이런 몸으로도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그녀가 준 목숨이다. 그녀가 내려준 몸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한심한 꼴로 있을 거냐. 편재! 선조에게 받은 이름이 아깝다!”

자신의 뺨을 거세게 두들긴 편재는 집으로 돌아갔다. 운동중독 상태의 육체가 아드레날린을 뿜으며 유혹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이미 네메시스와 레드 오션은 융합했어. 그 결과물이 지금의 더 오션. 게임인 이상, 퀘스트는 언젠가 깨지게 되어 있어. 그 전에 L블록과 K블록의 생체 부품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해. 일단은 네뮤로시아와 파반, 두 나라의 땅을 바다 위로 끄집어내지 못하게 하는 것부터 생각하자.’


◇◇◇◇◇◈◇◇◇◇◇◇◈◇◇◇◇◇◇◈◇◇◇◇◇


편재는 더 오션의 팬사이트인 솔티 워터와 마린 블루를 오가며 조사를 거듭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실마리는 레드 오션 시절의 자료에 있었다.

해킹 사건 이후로 더 오션이란 이름으로 바꿔서 게임을 서비스 하지만, 레드 오션 때와 비교해보면 바뀐 게 거의 없다. 각종 직업과 아이템, 퀘스트, 지형을 비롯한 모든 게.

거기엔 게임을 하는 유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력 간의 친목과 동맹, 그리고 대립이 지속되는 건 당연했다.

“레드 오션 시절, 바하르칼이 관련된 큰 전쟁의 횟수는 무려 9건. 그중 절반이 크레센토 왕국의 북부에서 일어났다.”

이 게임의 세계는 세 개의 커다란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레센토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있는 대륙이 가장 컸고, 바하르칼이 홀로 차지한 대륙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 약소국가들의 연합체인 베르딩이 있는 대륙이 세 번째였다.

그중 베르딩을 제외한 나머지 두 대륙은 원래 하나로 이어져 있었던 땅이다. 그랬던 것이, 마족 볼가가 네뮤로시아와 파반왕국을 가라앉히면서 둘로 갈려진 것이다.

외부와 격리된 틈을 타서 바하르칼은 주변 국가를 복속시켰고, 바하르칼은 거대한 용병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칭기즈칸이나 오도아케르 같은 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침략국가인 셈이다.

따라서 원래 게임 스토리상으로도, 다른 왕국들과 전쟁을 벌이는 이벤트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바하르칼과 벌인 전쟁은 그런 이벤트와는 무관했다.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바하르칼을 쓸어버리고자 하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뒷공작을 벌인 탓이다. 레미라를 없애 바하르칼 용병단의 마법사만 강해지게 만든 것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우와. 암살자 길드의 마스터가 NPC들을 모조리 이끌고, 바하르칼로 투항? 그들을 이용해 건조 중인 대형 선박을 파괴하기까지? 테이머 계열 상위직업 퀘스트도 독점해서, 사막의 와이번까지 싹쓸이? 와이번 라이더로 제공권까지 확보…얄미운 짓거리만 했네.”

배를 잃고 제공권마저 넘겨주게 되었지만 유저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여 바하르칼을 대륙과 연결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병력의 숫자는 이쪽이 더 많다. 두 대륙이 원래대로 이어지면, 육로를 통해 몰려드는 안티 바하르칼을 막을 방법은 없다.

바하르칼 측에서는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저들이 메인 퀘스트를 하는 걸 끈질기게 방해했다. 퀘스트 아이템을 먼저 찾아 파괴하기도 하고, 관련 NPC를 암살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편재는 비로소 바하르칼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에켈 요새를 침공한 것도, 유저들이 북부로 관심을 돌리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어.”

만일 편재가 위즈를 통해 에켈 요새를 구해내지 않았다면, 크레센토 왕국은 위기에 처했을 것이고, 그리되면 ‘왕국을 구하라’ 같은 돌발 퀘스트가 생겨났을 것이다.

내부의 혼란을 일으키면, 그만큼 유저들은 메인 퀘스트로부터 관심이 멀어진다.

“큭!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놔두는 건데.”

이제와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L블록과 K블록과 연결된 네뮤로시아와 파반 왕국을 떠올리려는 유저는 반드시 나타난다. 바하르칼에 악감정을 가진 유저는 많으니까, 그 만큼 많은 이들이 시도하게 될 거야. 그걸 일일이 막을 수는 없어. 그렇다면……나도 바하르칼처럼 일반 유저들을 적대해야만하나?”

하지만 생각해볼 것도 없는 일이다.

네뮤로시아와 파반왕국을 제외한 나머지 땅들은 모두 메인 퀘스트를 깨야 한다. 그 일은 유저들이 해야 할 일이며, 위즈가 바라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유저들과 반목해서는 안 된다.

그럼 결국 방법은 하나.

네뮤로시아, 파반 왕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메인 퀘스트를 발동시키는 것.

그리되면 유저들의 관심은 자연히 분산된다. 왜냐하면 일단 바다 속에서 떠올린 땅은, 이웃한 땅을 끌어올릴 단서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래. 네뮤로시아와 파반왕국의 땅을 끌어 올리는 건, 바하르칼이 방해할 테니까. 난 이 방법을 써야겠어.”

편재는 네메시스를 불러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고, 이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 결과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마법왕국 레미라가 선택되었다.

만약 레미라를 떠올리게 되면, 유저들의 활동무대는 대륙을 떠나 바다로 집중된다. 그리되면 대륙과 가까운 네뮤로시아와 파반의 땅을 들쑤실 유저는 거의 없으리라. 일단 생체 부품이 파괴되는 상황만은 막는 것이다.

그리고 편재는 이제까지처럼 게임을 통해 폐쇄구역을 unlock시킬 수 있다.

마침 위즈가 향하는 최종 목적지도 레미라다.

마법사가 되려면 반드시 찾아야 되는, 학자군 직업의 성지.

하지만 레드 오션에서는 게임 시작 1개월 만에 레미라가 사라졌다.

바하르칼의 선제공격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반 유저 중에 중급마법사를 찾기 힘든 지경이 되었었다. 반면, 바하르칼의 마법사들은 중급을 넘어 고급 마법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레미라를 약탈해 얻은 마법서 덕분이었다. 바하르칼이 다수의 유저들에 대항해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유일하게’ 제대로 된 마법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들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은 강해진다.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이번에도 그리되면, 레미라를 떠올리는 일은 힘들어지겠지. 반드시 막는다. 뜻대로 되도록 놔두지 않겠어.”

중요한 전력인 마법사가 약화되면, 레드오션에서처럼 바하르칼의 눈치나 보면서 게임을 해야 한다. 대다수 유저들은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게임 데이터가 초기화되어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새로 역사를 써보자는 패기 넘치는 내용의 주장도 있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이상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건가?”

팬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뜻있는 유저들은 이미 레미라로 집결 중이었다.

“나도 질 수 없지.”


작가의말

리메 전에...편재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서 생긴 오해.

이번편에서 약간이나마 풀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숨기기만 하면, 잠깐 신비로울 뿐......스토리가 꼬입니다.


정리하자면,

1.

어릴 때 편재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단에게 ‘실험재료' 로 소모될 뻔했다.

2.

그걸 ‘그녀’가 구해주고, 대신 잡혀갔다.

3.

그때의 충격으로 편재는 역치가 높아졌다.(감각을 느끼시 시작하는 자극의 강도)

그러니까... 보통 사람이 꼬집는 정도로 아픔을 느낀다면,

편재는 칼로 쑤셔야 꼬집는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 이겁니다.

당연히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있고, 안전사고라도 나면 크게 다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몸으로 용병생활을 잘도 했군요. [무서운 집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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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5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7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3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5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5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4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3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40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2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5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4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2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4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7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6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20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8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3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2 42 23쪽
9 1. (8) 13.10.14 1,704 29 23쪽
8 1. (7) +1 13.10.05 3,286 60 25쪽
7 1. (6) 13.10.04 2,229 42 22쪽
6 1. (5) 13.10.02 2,267 39 17쪽
5 1. (4) 13.09.29 2,360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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