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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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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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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1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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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7.

『동료의 복수를 하려 모습을 드러냈는가?』

위즈는 기가 막혔다. 뒤통수치려고 따라온 사람을 한패거리로 몰다니.

“동료는 무슨! 죽은 놈은 적이야!”

『아직도 인간들은 동족과 싸우는가. 전혀 발전이 없는 자들. 사라져라!』

통로가 굽이치며 쪼그라들었다. 멀쩡하던 계단이 무너지며 통로가 끊기고, 위층과 아래층의 계단은 아무렇게나 연결되었다. 통로를 이루던 벽은 위즈를 노리며 바짝 조여들었다.

‘트랩을 얼마나 설치한 거야!’

위즈가 지나간 곳마다 통로가 좁아지며 돌가루를 흩뿌렸다. 이대로 가다간 압사당할 것이라 판단한 위즈는, 끊어진 통로로 달려가 아래층으로 뛰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35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체력 포션을 마셔 체력을 회복합니다.>


“마운틴 자이언트라는 놈이 화끈하게 싸우지 못하냐!”

『그들은 300년도 더 전에 모습을 감추었다. 난 그들이 아니다.』

뛰어내린 공간 역시 죄어오기 시작했다. 위즈는 모자손을 꼼지락거렸다. 어디를 때려도 데미지는 들어가겠지만, 기왕이면 급소를 때리는 게 좋다. 위즈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적어도 머리는 있을 게 아닌가.

“그럼 네 정체는 뭐냐?”

『나는……그렇군 헛된 미망을 좆는 어리석은 자이지.』

“있어 보이는 체 하지 말고! 어떤 종족이냔 말이다!”

『핏스톤.』

“뭐?”

『파멸의 산에서 태어나, 갈망하는 자의 부름에 응하는 존재다.』

위즈는 계단의 아래쪽으로 뛰어내리면서, 기억을 되새김질 했다.

‘핏스톤? 그런 게 있었나?’

하지만 한 가지 단서는 얻었다. 파멸의 산은 마계의 지명이었다. 즉, 핏스톤은 마계에서 온-마물이다.

‘이렇게 커다란 마물이라면 요새까지 지어서 억누른 것도 당연해.’

바하르칼에서 탐을 낸 이유도, 노상강도들이 두려워하던 이야기도 설명이 된다.

이제 위즈는 어떻게든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상대는 마물. 이정도 크기의 마물이 풀려나고도, 메인 퀘스트에 영향이 없다는 건 거짓말. 조금 전 늑대가면을 해치운 광역 스킬만 봐도 그렇다. 전장에 대고 그것을 사용한다면, 날개가 달려 있지 않은 이상 피할 도리가 없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타격을 입혀야 한다.’

위즈는 죽음을 각오하고 모자손에 스크롤을 꽉 채워 넣었다.

“마물! 모습을 드러내라!”

『그 말은 내가 숨어 있기라도 한다는 뜻인가?』

“좁아지는 통로 때문에 도망 다니고 있을 뿐, 네 녀석의 정체를 확인도 못하고 있다! 손님대접을 이따위로밖에 못하나!”

『몰래 스며들어온 개미주제에 말은 잘하는구나. 좋다. 길을 열어주겠다.』

당장이라도 위즈를 뭉개버릴 것처럼 좁혀지던 통로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 덕에 통로를 빠져나오기는 쉬워졌다. 잠시 후 이리저리 뒤얽힌 나무뿌리가 가득한 공간이 나타났다. 위즈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름부터 핏스톤이니, 당연히 거대한 바위 같은 게 뭉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크기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위즈는 통로를 돌아보았다. 이 공간에서 단단한 돌이라곤 통로와 외벽뿐이다.

“설마 아니겠지…….”

『뭐가 아니라는 건가?』

천장에서 돌조각이 떨어지고, 바닥이 흔들렸다. 목이 꺾어져라 고개를 젖힌 위즈는 거대한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조금 전보다 더 크잖아!”

통로에서 확인한 거대한 눈동자는 위즈의 머리통만 했었다. 그렇기에 위즈는 핏스톤의 크기를 다른 게임의 자이언트 수준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위즈를 내려다보는 눈은 크기를 논하는 게 우스울 정도의 사이즈다. 지름이 20m는 되어 보이는 눈동자라면 입은 얼마나 클 것이며, 주먹과 발은 얼마나 크겠는가. 키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녀석이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에켈 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미노클에 발길질이라도 하면, 성도는 그걸로 멸망.

‘역시 요새 밑의 구조물은 이 녀석의 몸뚱이였구나.’

어째서 바하르칼에서 복잡하게 일을 꾸몄는지 위즈는 알 것 같았다.

이렇게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면, 스킬을 쓰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강력한 무기다. 그저 가지고만 있어도,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

핏스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놈을 어떻게 상대하지?’

그렇게나 찾던 놈의 머리를 눈앞에 두고도 위즈는 섣불리 공격을 하지 못했다.

『조금 전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가.』

핏스톤의 거대한 얼굴이 다가왔다. 돌로 이루어진 얼굴이라 표정은 없었지만,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조금 전 보았다. 네가 가진 스크롤 묶음을. 그런 조잡한 물건으로 날 상대할 생각이었나?』

거대한 손바닥이 땅을 내리찍었다. 위즈는 카무플라주 스킬을 사용해 몸집을 줄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완전히 피한 것은 아니었다. 충격파가 위즈의 몸을 때렸다.


<소닉 웨이브를 빗겨 맞았습니다.>

<46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체력이 40 남았습니다. 빈사상태에 빠집니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축 늘어지는 몸을 움직이려 애쓰며 위즈는 용을 썼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망 패널티로 집중력을 깎였기 때문에, 빈사상태에 대한 저항력이 낮아져 있었다. 거기에다가 근성스탯에 비하면, 집중력은 그다지 저항력을 많이 올려주지는 않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위즈는 핏스톤이 재차 공격해오리라 생각했다.

“여기서 끝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가지고 있던 스크롤을 거대한 눈동자에 퍼부어버릴 걸 그랬다고 위즈는 후회했다. 하지만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다.

『인간……그 기술 어디서 익혔는가.』

“뭘 말이냐?”

『방금 모습을 바꾸지 않았나.』

“카무플라주?”

어째서 핏스톤이 카무플라주에 대해 궁금해 하는지 위즈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위즈는 시간을 벌기 위해 설명해주었다. 가만있어도 초당 1의 체력이 회복되기 때문에, 1분이면 60의 체력이 회복된다. 그렇게 되면 일단 빈사상태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약해 보이는 눈을 노릴지, 이어지는 다음 공격을 대비할지는 다음 문제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곧 소용없게 되었다. 핏스톤은 들어 올린 주먹을 거두었다.

『흥미롭군. 다르면서도 같다.』

거대한 얼굴이 멀어져갔다.

『어쩌면……내가 할 일이 있을 것도 같군. 인간! 요새를 침공하는 자들은 내가 해치운 침입자와 같은 진영인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이렇게나 요란스럽게 싸워대는데 그걸 모를 수가 있나.』

핏스톤이 웅크린 공간은 어지간한 고층빌딩 높이만큼의 공동이다. 이정도 깊이라면 지상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소음은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다. 지상에 메테오라도 떨어진다면 몰라도…….

『난 대지속성을 타고 났다. 바로 머리 위에서 벌어진 싸움을 모를 수가 없다. 게다가 저들은 대지의 힘까지 끌어다 쓰고 있군. 다시 묻겠다. 그들은 너의 적인가?』

“적이라면 어쩔 셈이지?”

핏스톤은 손을 뻗어 위즈를 움켜쥐었다.

『너는 내게 빚을 지게 되겠지.』


◇◇◇◇◇◈◇◇◇◇◇◇◈◇◇◇◇◇◇◈◇◇◇◇◇


바르메릭 백작은 날아드는 화살을 손목보호대로 간단히 쳐내버렸다.

“지루하군.”

적들은 한 치 깊이로 땅을 파서 타워실드를 세워놓고는, 그 뒤에 숨어서 화살만 날려대고 있다. 요새를 침공하려는 시도로 보기엔 지나치게 어설프다. 그렇다고 그들의 공격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다. 좋은 활을 사용하는지, 화살은 요새 내부까지 날아들고 있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휘저어버리면 끝납니다! 백작님! 저에게 100명의 기사를 주십시오.”

“기각.”

백작은 더 들을 것도 없이 부하의 의견을 묵살했다.

“놈들은 정규병이 아니다.”

“그러니 100명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저들이 궁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머리로 날아드는 화살들을 검으로 쳐내버린 백작은,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들어올렸다. 살을 이루고 있는 대가 휘어져있는 하품(下品)중에서도 하품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땅에 떨어지지 않고 요새까지 닿았다. 적들의 궁술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증거였다.

“그런 궁수만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운용하는 건, 분명 비효율의 극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이런 싸구려 화살이 두려워 우리들은 둥지에 웅크리고 있어야만 하지 않은가.”

“전 두렵지 않습니다!”

백작은 화살을 쳐내던 검을 내렸다. 그리고 부하의 멱살을 잡아 방패대신 앞에 세웠다.

“으, 으아아악!”

버둥거리던 부하가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백작은 부하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어떤가? 화살에 맞은 기분이?”

“미, 미쳤습니까!”

백작은 다시 느릿하게 검을 놀리며 화살을 걷어내는 한편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수천의 화살이 분산되어 날아드니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겠지. 그래. 자네말대로 중장갑을 입은 기사100명이라면 저놈들을 쫓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요새 밖으로 나가는 순간, 100명은 요새보다도 우선순위에 드는 표적이 된다. 수천 개의 화살을 100명이 받아내야 하지. 난 그럴 자신이 없다. 나도 감히 못하는 일을 자네가 하겠다는 건가?”

바르메릭 백작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한 부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루간의 근신을 명하겠다. 나는 수백만의 적보다도, 너 같은 멍청한 부하가 더 두렵다. 내 검이 네 목을 치기 전에 사라져라!”

부하는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쓸만 한 놈이 없어. 쓸만 한 놈이.”

백작은 투덜거렸다. 에켈 요새는 이름만 요새이지 실제로는 한 번도 침입을 받은 적이 없는 곳이다. 수도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치안이 어지럽지도 않았고, 이 세계에서 최고로 강한 나라가 크레센토이니 외세와 싸운 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은 편하면서, 경력을 올려주는 이곳에 들어오려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대게가 중앙 귀족의 자제들로서, 겉멋만 든 자들이다.

조금 전 내보낸 부하는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많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사도를 앞세우며 장렬하게 죽기를 원하는 멍청이일 줄은 몰랐다.

“저 녀석은 전출 조치해야겠군.”

바르메르 백작은 잠시 기둥으로 몸을 숨기며 검을 쥔 손을 역수로 쥐었다. 화살의 발사간격이 늘어지고 있었다. 궁수도 사람. 10분 가까이 쉴 새 없이 활을 쏘아댔으니, 팔이 아플 때도 되었다. 잠시 심호흡을 한 백작은 기둥에서 튀어나오며 역수로 쥔 검을 크게 휘둘렀다.

“흐압! 소드 웨이브!”

검에서 뻗어나간 반월형의 빛이 넓게 퍼지며 화살의 비를 뚫었다. 그에 호응하여 요새 곳곳에서 소드 웨이브가 튀어나왔다. 그것의 하나하나는 개인이 쏘아낸 스킬에 불과했고, 당장 날아드는 화살을 갈라내는 수준의 위력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새의 모든 기사들이 일제히 같은 스킬을 사용한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백작은 다시 소드 웨이브를 내쏘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쏘아낸 부하들의 소드 웨이브와 합쳐져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해질 무렵, 석양을 받아 빛나는 강물처럼 일렁이는 빛의 덩어리들이 궁수들을 덮쳐갔다.

콰앙! 폭격을 맞은 것처럼 흙먼지가 솟구쳤다.

바르메르 백작은 이 집단 공격기의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 일단 요새를 날리는 화살세례가 멈추었고, 적의 숫자 역시 꽤 줄어들었을 것으로 여겼다.

그때 백작은 흙먼지를 뚫고 무언가 자신에게 날아드는 것을 보았다. 작고 반짝거리는 것.

“마법인가!”

백작은 어렵지 않게 날아든 매직애로우를 쳐내버렸다. 그의 검은 왕에게 하사받은 마법검이었으며, 그의 실력은 이런 발사체 마법 정도는 우습게 처낼 정도라 크게 위협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다르다. 백작은 목소리를 높였다.

“대 마법전 준비!”

“복차앙! 대 마법전 준비이!”

마력연장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군마법사들은 마력 퓨즈를 끼우며 무릎앉아자세를 취했다.

“대기!”

“대기!”

“마력연장포 42문, 대기 완료!”

백작은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궁수들의 진형이 드러났다. 땅에 박아놓은 타워실드에서 스파크가 방출되고 있었다. 조금 전 기사들과 함께 날려 보낸 집단공격기를 막아낸 건 방패에 걸린 방어 주문이었다. 방패에 새겨진 주문으로는 고출력의 마력 연장포를 감당해내지 못한다는 게 전장의 상식. 백작은 검을 힘차게 내리그었다.

“salvo!"

종군마법사는 퓨즈에 마력을 쏟아 부었다. 1초의 시간차도 없이 동시 발사된 마력탄들은 서로 뒤얽히며 태양보다 뜨거운 열기를 쏟아냈다. 잡초들은 말라비틀어지며 불이 붙었고, 바위에 달라붙은 이끼는 잘게 바스러졌다. 이글거리는 공기가 먼저 궁수들을 덮쳐갔다. 그리고 뒤이어 마력탄끼리 발생된 간섭현상으로 인해 생겨난 마나번이 넓게 퍼져나갔다.

“이번에는 전멸이군.”

바르메릭 백작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지랑이 속을 살핀 백작은 인상을 구겨야 했다. 살아있는 생물체라면 단번에 익어버릴 열기 속에서도 궁수들은 활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열기는 그렇다 쳐도 마나 번까지 막아내다니, 저 방패들 보통 물건이 아니로다.”

궁수들은 다시 화살을 날려댔다. 다시 조금 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백작은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저들이 요새에 설치된 마력 연장연장포를 막아낸 건 우연이 아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짐작이 맞았군.”

하필이면 요새를 보수하는 날 쳐들어 온 게 마음에 걸리던 백작이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저들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그때 그의 부관 발젠틴이 달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통로가 열렸는가!”

“그렇습니다. 결계를 보수하던 마법사님과 제자 분은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응급조치만 한 뒤, 두 사람을 강제 워프 시켜라.”

“이미 그렇게 해두었습니다.”

발젠틴이 목함을 내밀었다. 백작은 그 속에서 열쇠를 꺼내어들었다. 자수정을 깎아 만든 열쇠는 힘주어 쥐기만 해도 부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실제로도 열쇠구멍에 끼워서 돌리라고 만든 게 아니었다.

요새에 마력을 공급하는 화염과 냉기의 엘리멘탈 스톤.

그것을 합쳐서 폭주시키는 장치를 가동하는 마력파장이 담긴 인식표였다.

바르메릭 백작은 열쇠를 성벽에 가져다대었다.

상극의 엘리멘탈 스톤이 합쳐져 일으키는 폭발력이라면, 요새의 지하에 잠들어 있는 마물은 물론 에켈산을 통째로 날릴 수 있다. 백작씩이나 되는 인물이 수도 근처의 요새에 파견된 것은 이만한 권한을 행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발젠틴……미안하구나.”

“그동안 누리던 따분한 평화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성벽에 닿은 자수정 키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조각났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웃었다. 침략자들은 마물을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몇 초 뒤 일어날 섬광을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1초가 지나고, 2초가 지나고……바르메릭 백작은 다시 눈을 떴다. 마음속으로 열을 헤아릴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 것이다.

“허……끝장이로군.”

땅이 진동하며 요새를 이루는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백작의 생각에 그것은 폭발의 전조가 아니었다. 그의 생각처럼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거대한 암반이 불쑥 솟아오르며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위로 드리워졌다.

“백작님, 저것이?”

“그런 것 같군.”

그 모습은 요새 옆에 산 하나가 솟아오른 것 같았다.

백작은 저것이 그냥 산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릴 리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요새의 지하에 봉인된 마물은 마운틴 자이언트로 알려져 있었다. 300년 전의 항마전쟁에 등장한 파괴의 화신.

거대한 손이 요새를 향해 내려왔다.

백작은 검을 뽑아 거인을 겨누었다.

‘그 애송이를 욕할 수도 없겠구먼.’

성문을 열고 돌격을 주장했던 부하의 얼굴을 떠올리며 바르메릭 백작은 쓰게 웃었다. 이래서야 싸구려 영웅서사시 연극에 나오는 어릿광대 같지 않은가.

“바르메릭 백작!”

감상에 젖은 백작을 현실로 끌어올린 건 거인의 목소리였다. 처음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마물이라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 리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불리는 이름은 분명 자신의 이름이다.

“바르메릭 백작!”

자세히 보니 마물의 손에 사람이 있었다.

“그대는 누군가!”

흙투성이 로브를 걸친 뚱보가 마물의 손에서 뛰어내렸다.

“이방인 위즈입니다! 모두 엎드려요”

“무슨…….”

백작은 수상한 인물의 말을 곧이들을 생각이 없었지만, 마물의 손에서 나타난 엘리멘탈 스톤을 보고 목청을 돋웠다.

“대 마법 방어 진형!”

백작이 보고 있는 가운데 마물은 양손에 쥔 엘리멘탈 스톤을 꿍 소리가 나게 합쳤다. 보랏빛 전광이 구형으로 번져나가며 눈이 멀 듯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마물이 몸으로 가로막고 있어 요새에는 하나도 미치지 않았다.

반면 요새를 습격한 쪽에는 행운이 깃들지 못했다. 마나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에너지가 궁수들을 휩쓸었다. 방패도 쓸모가 없었다. 궁수들의 육체는 먼지크기로 바스러져 한데 섞여버렸다. 뒤이어 귀가 먹먹해지는 폭발음이 메아리쳤다.

땅은 드드드 소리를 내며 널을 뛰었다. 세상이 끝난다면 이렇게 끝나지 않을까 싶은 아수라장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엎드린 사람들은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밝은 섬광으로 인해 시력이 회복되지 않아 깜깜한 어둠을 보고 있었으며, 너무도 큰 소음에 노출된 후유증으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진동이 멈췄음에도 덜덜 떨리는 몸에는 힘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강단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바르메릭 백작을 비롯한 고위층은 폭발의 중심지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그들과 대치하고 있던 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크레이터만이 남았다.

압도적인 파괴의 현장을 목격한 몇몇은 다시 주저앉아버리기도 했으나, 백작은 그들의 심약함을 탓하지 않았다. 놀라움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 그 역시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잠시 후 마물의 몸에 균열이 가더니 허리부터 똑 부러져 넘어갔다. 지상에 추락한 마물의 상체는 잘게 부서지며 돌먼지를 뿌려댔다. 마물이 튀어나온 자리는 부서진 자갈들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지하의 비밀 공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마물의 죽음을 지켜보던 바르메릭은 정신을 차렸다. 일단 위즈라는 이방인부터 구속해야 했다.

“수상한 자다. 체포하라.”

“동작 그만.”

그의 명령을 뒤에서 튀어나온 앳된 목소리가 제지했다. 뒤를 돌아본 백작은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찍으며 무릎을 꿇었다.

“3왕자 전하를 뵙나이다.”

바르메릭 백작의 외치자 병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워프로 날아온 왕자는 부서진 요새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예를 거두라. 지금은 긴급 상황이다. 바르메릭 백작, 요새를 공격한 잔악한 자들이 아직 남아 있으니 그대는 인근에 숨어 있는 잔당을 멸하도록 하라.”

“명을 받잡습니다. 유린이시여.”

“그리고 저 이방인의 신원은 내가 보장할 터이니, 행동을 제약하지 마라. 이 정도면 되겠지. 위즈?”

“감사합니다. 왕자님.”

위즈는 주먹을 꾹 쥐었다. 모자손을 이루는 철판이 까드득 소리를 내며 긁혔다.


◇◇◇◇◇◈◇◇◇◇◇◇◈◇◇◇◇◇◇◈◇◇◇◇◇


누구보다 먼저 이변을 눈치 챈 것은 마법사들이었다.

뭔가 거대한 에너지가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서 마법사들은 전선을 이탈했다.

마력포의 집중사격도 막아내는 그들이 그렇게나 몸을 사리는 것은 시논도 카논도 처음 보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윽박질러 붙들 수도 없었다.

이번일은 어디까지나 마법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했다. 그리고 게임 초반, 마법사는 중요한 인력자원이다.

이들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다음 일을 돌이킬 수 없다.

결국 시논과 카논은 마법사들과 함께 후퇴를 결정했다.

물론 소모품이나 마찬가지인 노상강도들에게 사실을 알리진 않았다. 그저 요새를 요격할 주문을 준비하겠다는 그럴 듯한 핑계를 댔을 뿐이다. 그리고 헐떡이며 숲을 달린지 3분 정도 지났을 때, 엄청난 소리와 빛이 쏟아졌다.

그것이 마법사들이 염려한 일과 관련 있다는 건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숲이 흔들리고 땅이 갈라져나갔다. 하늘에서는 주먹만 한 돌조각들이 무수히 낙하했다.

“서둘러라!”

다행이도 탈출을 위해 준비된 텔레포트 마법진은 건재했다. 일단 마법사들부터 전송시킨 시논과 카논은, 산의 아래쪽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감지했다. 요새와 떨어진 아래쪽에는, 싸움에 참가하지 않은 예비 병력들이 있었다. 그들이 싸울 상대라면 뻔하다.

“국왕군이겠군.”

“이정도로 신나게 날뛰었으니 당연하겠지. 그래도 너무 빨라.”

“누가 연락을 한 것 같다.”

두 사람은 텔레포트를 내려다보았다.

“마력공급 장치는 5분 뒤 저절로 박살난다고 했지?”

“어.”

“싸우는 소리가 가까워지는 걸로 짐작하건데, 5분도 전에 놈들이 들이닥칠 것 같다만?”

“내 생각도 같아. 별수 없네.”

“고생길 열렸군.”

둘은 텔레포트에서 마력 공급장치를 떼어내어 파괴하고,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에 검술스킬을 날려서 뭉개버렸다.

“최대한 난전을 유도해서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들이 지금까지 기사들의 추적을 따돌린 데에는 이 같은 방법이 주효했다. 한데 뒤엉켜 싸우는 아수라장 속에서는 기사단장급의 NPC라도 순간적인 상황판단이 흐려진다. 그 틈에 내빼는 것이다.

“한 가지 걱정이라면 유저들이지.”

PK라는 개념은 유저들에게나 통하는 것. 따라서 유저만이 PK를 알아볼 수 있다.

이들의 머리 위에 떠오른 붉은 이름은 같은 유저를 살해한 자에게 주어지는 낙인.

그 색이 특히나 검붉은 이들은 위험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를 잡으면 여러 가지 짭짤한 보상이 주어진다. 얼마 전 인육만두 사건으로 특히 PK를 미워하는 유저가 늘어났으니, 그만큼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될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괜한 걱정이다. 에켈 산에 유저라곤 우리 둘 뿐일 걸.”

“하긴…여기는 사냥터도 아니고, 퀘스트 받으러 오기에는 너무 이르지.”

시논과 카논은 싸움이 벌어진 곳으로 뛰어들었다.

노상강도의 우두머리들은 왕국군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장비에서 밀리고 있었지만, 숫자에서는 압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군. 하지만 왕국군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은데?”

“급히 출발한 게 이들일 거다. 조금 전의 폭발 때문에 더 몰려오겠지.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공격을 한 곳에 집중해서 포위를 뚫어야 해!”

시논과 카논은 우두머리들에게 지시하여, 포위망의 한곳에 집중사격을 하게했다.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는 왕국군.

그 틈에 시논과 카논은 검술 스킬을 난사하며 달렸고, 그 뒤를 노상강도들이 따랐다.

고작 500여명으로 두 배의 적을 감당해내는 건 무리.

결국 노상강도들은 산비탈을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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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퀘스트/ 왕국군의 포위를 뚫고 도주]


난이도: B+ / 레벨제한: 없음.

임무: 반드시 살아남으십시오.

보상: 보너스 스탯 50

§§§§§§§§§§§§§§§§§§§§§§§§§§§§§§§§§§§§§§§§§§§§§§§§§


“난이도 B? 그것도 플러스(+)가 붙어서?”

“그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뜻이겠지.”

뿌우우우.

요새에서 나팔이 울렸다. 이제 요새에서도 추격이 시작된 것이다.


작가의말

주말에 더 보충 하겠습니다. 일단 제목에을 붙여듭니다.

(가족모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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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 +4 13.11.23 1,521 20 19쪽
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7 22 15쪽
2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8) +1 13.11.19 1,216 24 34쪽
»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4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6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0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2 2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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