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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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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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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825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3.11.2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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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8
추천
25
글자
20쪽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2.

“크으으…….”

보통은 차원이동처럼 타의에 의한 강제적 이동을 당한 경우, 주인공이 99%의 확률로 하는 행동이 있다. ‘크으으’ 소리를 내며 부딪친 머리의 고통을 음미하고, 지나가던 유력자나 미소녀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적응하는 것. 그러나 위즈는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오줌싸개의 일기장 속에 빨려 들어간 위즈가 나타난 곳은 양초가 드문드문 켜진 마법진 위였다. 만화나 영화 속에서처럼 허공에서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는 일은 없었다. 그저 책속에 빨려들다시피 고개를 처박고는 눈을 떠보니 생소한 장소에 와있는 사실이 얼떨떨할 뿐이다. 그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자신은 그대로 서 있고, 배경만 바뀐 것처럼 느껴질 지경.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깊은 물속이나 활화산속에 처박힌 것도 아니니까.

위즈의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주변을 에워싼 환영인파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보아도 비호감인 존재였다.

“크으으으…….”

썩어 내린 살점이 덜렁대는 앙상한 손들이 위즈를 잡아채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위즈가 서 있는 마법진을 넘어오지는 못하고 있다. 일단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생각한 위즈는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핏 스톤의 주인을 찾아 왔더니, 언데드들이 득실거리는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은 언데드의 접근을 막고 있어. 세상에 이유 없이 생기는 일은 없는 법. 이건 날 위해 준비된 거야. 그렇다면 함정인가? 아니면 시험?’

어느 쪽이든 대응을 해야만 한다. 언데드들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자세히 보니 마법진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 많은 언데드들이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지게 되리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어째서 마법진이 줄어드는 거지?’

마법진을 살피던 위즈는 촛불의 개수가 줄어든 것을 깨달았다.

‘만약 촛불이 마법진을 이루는 요소라면, 안전지대가 줄어드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 그게 어째서 꺼지는 거지?’

위즈가 생각하기에 전혀 꺼질 이유가 없었다. 양초들은 아직 더 타고도 남을 정도로 길었으며, 불이 꺼질 정도로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다. 언데드들로 빽빽한 공간이라 바람이 파고들기도 힘들었다. 그때 위즈의 눈에 불을 끌만한 물질이 눈에 띄었다. 바로 언데드의 몸에서 흐르는 걸쭉한 진물. 그 액체들은 마치 독감환자의 콧물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가 바닥에 떨어지곤 했다.

‘저것이라면 충분히 불을 끄고도 남겠어.’

위즈가 지켜보는 가운데 촛불하나가 꺼져갔다. 짐작대로 진물이 원인이었다. 마법진의 크기도 줄어들었다. 마법진이 막는 건 언데드이지, 그 썩은 몸에서 흐르는 진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로 불을 붙이면?”

위즈는 모자손을 들어 올려 플레임 플라워를 사용했다. 양초 근처의 언데드를 태운 플레임 플라워는 작은 불똥을 튀기며 사라졌다. 불똥에 닿은 양초의 심지는 다시금 불길을 머금었다. 그러자 언데드들이 고통스러워하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위즈는 차분하게 다른 촛불들에도 불을 붙였다. 착각이 아니었다. 흐릿하던 바닥의 마법진이 짙게 변해갔고, 그럴수록 언데드들은 맥을 못 췄다. 위즈는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살폈다. 처음 면적만큼 넓어져 있었다.

“그런데 마법진의 바깥에까지 양초가 있는 건 어째서이지?”

그것들은 한 번도 불을 붙인 적이 없는 새것이었다. 촛농이 흘려 내린 자국도 없으며, 심지는 새하얗기까지 하다.

“이것부터가 본격적인 시험이란 건가?”

위즈는 새 양초들에 불을 붙였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그러자 바닥의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은 지금까지 보인 반응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닿자마자 후닥닥 도망쳐버린 것이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거북이들을 단숨에 토끼로 만들 정도로, 이 마법진은 언데드와 상극이었다.

위즈는 자신이 정답을 찾아냈다고 여겼다. 언데드가 사라진 바닥에서 발견한 종이가 확신을 키워주었다.


<쪽지를 얻었습니다.>


=======================================

이걸 읽고 있다는 것은, 그대가 내 의도대로 양초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겠지. 그대의 짐작이 맞다. 이곳에는 무한히 언데드를 일으키는 주문이 설치되어 있다. 언데드는 값이 싸게 먹히는 병사들이라 전장에서 인기가 많다. 그대가 상대한 하급 언데드인 구울들도 마찬가지. 만약 그대가 구울들을 경시하여 바닥의 마법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결국 무기를 소모하고 힘이 다해 죽었을 것이다. 그런 시시한 자라면 내가 만날 이유도 없지.

하지만 그대는 최소한의 조치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아낀 시간과 노력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어찌 아니 좋을쏜가. 그대도 알겠지만 세상엔 이 같이 효율을 올리는 다양한 기술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버프와 보조스킬들이 그렇다. 이것들의 태반이 종교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

우습게도 종교인들은 이것을 효율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균형이라 표현하지.

그래서 이들은 마음속에 성스러운 궁전을 하나 짓는다.

오로지 균형을 위해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궁전.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같은 방법을 취하였지만, 이 몸은 근본이 마법사.

종교인들은 신앙심을 공고히 하여 이를 이룩한다하여……꼭 같은 길을 걸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서는 만능을 향해 걸을 수 없을 테니까.

그대가 가진 의문에 충분한 답이 되었는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면, 마법진을 조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이 지하공동은 한때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린 장소라는 것이다.

=======================================


“그냥 답을 알려줄 생각은 없는 건가.”

위즈는 쭈그리고 앉아 마법진을 이루는 술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마법사도 아닌데 봐서 무얼 알 것인가. 오히려 특별한 게 눈에 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날 시험하는 이 여자는 마법사. 그렇다면 마법사가 아닌 나는 그냥 탈락인가?’

그렇지만 쪽지의 말미에는 다른 길에 대한 언급과 함께, ‘만능’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위즈는 그것이 결과에 이르는 다양한 시도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위즈는 생각을 달리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깨어있는 생각을 하는 여자가, 쪽지를 발견한 사람이 마법사가 아닐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어. 그럼에도 힌트는 마법진이라고 적었다.’

위즈는 마법진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촛불에 모조리 불을 붙이자 마법진은 언데드를 몰아내는 힘을 내뿜었다. 그리고 이 곳은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를 일으킨 스킬이 사용되었다.

둘은 창과 방패의 관계. 위즈는 촛불에 불을 붙임으로써 방패를 보다 완벽하게 만들었다.

‘퀘스트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방패뿐 아니라 창 역시 필요하지. 이번엔 창에 해당하는 것을 강화시키라는 건가? 그렇군. 마법진이 하나밖에 없다고는 하지 않았으니, 제2의 마법진이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엔 공격을 위한 마법진이 준비되어 있는 게 틀림없어.’

위즈는 마법진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게 밖에서는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다. 뒤돌아서서 마법진을 살핀 위즈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조심해서 나온다고는 했는데, 발이 닿은 곳마다 술식이 지워져 있었다. 연결이 끊긴 마법진은 당연히 빛을 잃고 말았다.

“크어어어…….”

위즈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확인했다. 조금 전 마법진을 피해 도망친 구울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다가오는 속도가 느리지만 많은 숫자는 그런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정말 싸게 먹히면서도 적을 확실하게 압박하는군. 통상적인 수단으로 상대해봐야 소모되어 죽겠지.’

위즈는 맞상대하기를 포기하고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자신을 향해 일관되게 걸어오던 구울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다. 위즈는 짐작 가는 게 있어 스킬창을 열었다.


====================================

[망자와의 친화력 : MX-LV.1] [LV.1-숙련도 Mastered]

- 멀리 떨어진 언데드가 공격을 하려고 다가오지 않습니다.

- 대화를 원하는 언데드를 만날 경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 가끔 망자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습니다.

====================================


‘이거군.’

가장 가까운 구울은 20m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이정도면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을 거리였다. 그런데도 위즈에게 다가오지 않는 건 패시브 스킬인 망자와의 친화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애매모호하다.

위즈는 스킬설명에 나오는 ‘멀리 떨어진’의 기준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일부러 가까이 접근하자, 위즈를 무시하던 선두의 몇몇이 방향을 바꾸는 게 보였다.

‘대충 10m의 거리를 두면, 구울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 이거군.’

구울과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위즈는 자신이 소환된 공간을 뒤지기 시작했다. 때때로 가려는 곳에 구울들이 넘쳐나면 일부러 꼬여내어 구석으로 유인하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수고를 했지만, 새로이 마법진 비슷한 것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아도, 같은 마법진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새로운 마법진의 존재를 찾는 게 더 확실해 보였다. 갑갑한 마음에 위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연하게도 하늘대신, 돌로 막혀진 천장이 더욱 답답한 기분이 들게 해주었다.

‘마법진. 그리고 사람들이 피까지 흘리며 다툰 이 장소. 둘은 대체 무슨 관계냐?’

구울들의 움직임을 피해 걸으며 생각을 거듭하던 위즈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그것은 구울들에게도 욕망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죽은 자를 일으키기 위한 강한 염원이- 그러니까 네크로맨서의 스킬이 구울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강한 기원이 어떤 힘을 일으킨다는 건, 현실에서도 양자물리학 같은 이론들로 증명된 지 오래. 네크로맨서의 스킬은 성직자의 힐링과 다를 게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울들은 무엇을 위해 몸부림치는가? 신선한 피와 고기? 산자에 대한 증오?’

영화나 소설 속에서의 이유와 같다면, 위즈가 가진 망자와의 친화력이란 스킬은 그 자체로 모순이 된다. 인간이 단지 먹이에 불과하다면, 증오해야 할 대상이라면 친화력 같은 게 생길 이유가 없다.

‘이들이 원하는 것, 구울이 되어서도 욕망하는 것……그래! 이 많은 구울들이 생전에 사람이었을 때, 피까지 흘리며 다툰 게 있다면?’

위즈는 부리나케 원래의 마법진으로 돌아가 바닥을 살펴보았다. 푸석거리는 바닥은 모자손의 단단한 손가락으로 살짝 후비자 간단하게 파였다. 위즈는 그곳에서 반지하나를 끄집어냈다. 남성용으로 만들어진 굵은 반지였는데, 보석은 안 박혀 있고 쇠로 만든 조각이 두껍게 양각되어 있었다.

‘이거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영주의 인장처럼 생겼는데?’

아이템 설명을 읽은 위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애크론 영지의 인장반지]

리버라이머의 최대 밀생산지-애크론의 지배자에게 대대손손 물려진 인장.

암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최상급 해독주문과 블링크 주문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 최상급 해독주문은 게임시간으로 하루에 1회 사용가능.

- 블링크는 게임 시간으로 하루에 1회 사용가능.

- 애크론 성을 보호하는 장벽을 여닫을 수 있습니다.

- 애크론 성의 비밀창고를 여는 열쇠.

====================================


‘흠…애크론은 현존하지 않는 영지야. 그렇다면 수몰 지역이겠군.’

쭈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 위즈는 지척에서 손톱을 휘둘러오는 구울과 정면에서 마주쳤다. 땅을 파는 동안 가장 가까이에 있던 구울이, 반지를 보자마자 빠르게 움직여 위즈를 덮친 것이다.

“흥!”

위즈는 긴 다리를 휘둘러 돌려차기를 먹였다. 크게 나가떨어지는 구울. 그러나 구울은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듯, 다시 몸을 일으켜 위즈를 공격해왔다. 다른 구울들도 모두 위즈를 향해 몰려들었다.

“이 녀석들 왜 갑자기 빨라졌지?”

슬로모션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비척거리던 구울들은, 지금 보통 사람에 가까운 속도로 걷고 있었다. 위즈는 일단 반지를 손에 끼려고 했다. 반지의 블링크를 사용해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때 구울의 입이 덜컥 열렸다.

“내……놔…….”

위즈는 눈을 부릅떴다. 발성기관이 썩어 없어졌을 터인 구울이 말을 하고 있다.

“패시브 스킬의 영향이군.”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금세 파악한 위즈는 반지를 높이 치켜들었다. 대화가 통한다면 싸우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해 취한 행동이었다.

“다가오지 마라! 반지는 여기에 놓고 가겠다!”

하지만 역효과였다. 구울들의 눈두덩이에서 일제히 붉은 안광이 빛났다. 게임속이지만 그들의 절절한 욕망이 끈적끈적하게 엉겨왔다.

위즈는 소름이 끼쳤다.

이미 썩어서 없어진 눈구멍에서 타오르는 건 욕망의 불길이다.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미망이었다.

이것들은 이지가 없는 마물.

대화를 시도한 것부터가 난센스였다.

“나, 나의……나의…….”

“영, 영주…가 돼……거야.”

“보물……귀…족….”

“만테코른의 유령사서는 품위라도 있었지! 네놈들은 죽어서도 추하게 썩어가는구나! 죽어서까지 간절히 원하는 것이 고작 이따위 반지였더냐!”

위즈는 모자손에 정령강화를 걸었다. 바람의 정령이 깃든 모자손이 푸르게 빛났다. 위즈는 가지고 있던 포션의 빈병을 꾹 쥐어 으스러뜨리며 으르렁거렸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망령 놈들아! 너희들이 그렇게나 원하는 인장반지가 이렇게 가루가 되어버리는 수가 있어!”

구울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하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이 자식들이!”

모자손에 힘을 주어 위협하려는데, 칼칼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시험은 끝났다. 망자들이여 들어가 쉬어라.”

여인의 말이 끝나자 구울들의 몸뚱이가 잘게 바스러지며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이리저리 피하고 용쓰던 게 무색해질 정도로 어이없는 결말이었다. 그렇게 지하공동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

“큭!”


<둔기에 맞아 8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2초간 스턴에 빠집니다.>


위즈는 사람 몸뚱이만한 책에 얻어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챙이 넓은 고깔모자를 푹 눌러쓴 호리호리한 여자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들며 투덜거렸다.

“52분이다.”

“네?”

“애송이가 문제를 푸느라 걸린 시간. 그게 맞은 이유다.”

스턴이 풀리자 위즈는 벌떡 일어나 여자에게 항변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기 온지 2시간이 지나면, 넌 강제로 300년 뒤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이 마법의 한계지. 너는 귀한 시간을 날려먹었어. 그런 주제에 감히 효율을 논하려 하는가?”

“햇병아리에게 뭘 바라는 겁니까?”

“후우…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지나간다. 따라와라.”

위즈가 우두커니 서 있자, 여자는 매직스틱을 꺼내어 천장을 겨누었다. 갑자기 뿜어진 밝은 빛이 천장을 집어삼켰고, 새로이 파란색의 배경이 드러났다. 그리고 바닥의 흙먼지를 말아 올리며 훅 불어오는 바람. 지하 공동위에 무엇이 있었는지 간에, 그건 지금 먼지가 되어 나부끼고 있다. 지금 위즈가 보는 건 바깥의 풍경이었다.

“캐스팅 없이… 그것도 하, 한방에?”

“시간 없으니 날아서 가자.”

여자가 휘파람을 불자 흙먼지를 뚫고 무언가 날아왔다.

그것은 청소를 할 때 손에 쥐는 익숙한 도구.

빗자루였다.

“설마 witch입니까?”

“잘 알고 있구나. 애송이. 내 이름은 ####. 아무리 말해도 너에겐 들리진 않을 거다. 역사에서 내 이름은 지워질 테니까. 내가 대단한 존재라서 말이지. 그런 내가 심심해서 널 불러들였을 리 없겠지?”

대도 레이슬릭이 극찬한 마법사 중의 마법사의 정체는 witch였다. 하지만 마법사의 한 갈래일 뿐인 존재가 그렇게나 대단한 건지 위즈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위즈는 심드렁해졌다.

“뭣 때문입니까?”

“가장 큰 목적은 300년 뒤 이루어질 마족들의 재침공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내 후계자를 양성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어받게 하는 건 무리겠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넌 그 어떤 직업도 선택하지 않은 듯 해보이니까.”

“그럼 불합격입니까?”

“이제 와서 뭘 어쩌겠나? 다른 녀석을 데려올 수도 없는 것이고. 네가 마법사라면 배우기 쉽다는 것뿐, 그 이상의 메리트는 없으니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뭔가 착각하나본데, 널 witch로 만들려고 데려온 게 아니다. 내 능력의 일부를 네게 전하려는 것뿐이다. 직업과는 상관없이 말이야. 자, 일단 빗자루부터 타지.”

위즈는 엉거주춤 빗자루에 걸터앉았다. 그 모습을 본 witch는 혀를 쯧쯧 찼다.

“이봐. 그렇게 타다간 떨어져 죽을 거야. 그냥 가랑이 사이로 밀어 넣고는 무릎으로 바싹 조여.”

“하지만 중요한 곳이…….”

“witch라고 여자만 있는 줄 아나? 당연히 남자도 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자세로 빗자루를 타지. 둔하게 생겨서가지고 섬세함 챙기지 마라.”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에 대한 기록을 떠올린 위즈는 witch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마녀’라고 해석된 것뿐이지, 사실은 남자 중에서도 ‘마녀’로 몰려 죽은 이가 많았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시간 없다. 딱 하나만 해라.”

“witch가 되면 이 세계에서 배척당합니까?”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지?”

“조금 전 당신은 스스로를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배척하는 자들을 용서합니까?”

“당연하지 않나? 약한 놈들 괴롭히면 뭐가 좋아?”

“하지만 배척당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물건도 팔지 않고, 도움이 필요할 때에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가는 걸 받아들인 겁니까?”

witch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바보냐? 그 많은 사람들이 내 얼굴을 어떻게 알고서 날 피해?”

빛이 번쩍하더니 수영복과 구분이 안가는 노출도의 의상을 입은 여자가 위즈의 팔에 몸을 매달려왔다. 뭉클거리는 가슴이 비벼지며 야릇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흐응~”

“헉?”

“마녀는 모두를 매혹시킬 수 있는 재주를 한가지씩은 타고나야 한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다양한 인종의 모습을 취해 세상의 모두를…….”

다시 빛이 번쩍이며 털이 숭숭 돋은 거친 손이 위즈의 뺨을 톡톡 쳤다. 이번엔 털북숭이 남자다.

“……속이는 게 가능하지.”

“이런 것 말입니까?”

위즈는 카무플라주 스킬을 이용해 키와 외모를 바꾸었다. 금세 험상궂은 대머리 청년 하나가 생겨났다. 하지만 뚱보체형만은 여전했다. 그 모습을 본 털북숭이는 기꺼워하였다.

“호오? 이거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군. 잘됐어. 그가 사람하나는 제대로 골라 보냈어.”

털북숭이가 활짝 웃었다.

“남은 58분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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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 +4 13.11.23 1,521 20 19쪽
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7 22 15쪽
2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8) +1 13.11.19 1,217 24 34쪽
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4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6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0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3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4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2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2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8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0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3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3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1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3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6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5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9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1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1 42 23쪽
9 1. (8) 13.10.14 1,703 29 23쪽
8 1. (7) +1 13.10.05 3,286 60 25쪽
7 1. (6) 13.10.04 2,227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9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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