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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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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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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1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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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 (9)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3.

편승은 통로의 터치패널에 암릿을 댔다. 관리자의 정보를 전달 받은 무인 경비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동작감지센서와 CCTV로 감지한 침입자의 정보가 상세하게 나열되었다. 무장정도와 이동경로부터, 원한다면 그들이 나누는 대화까지 엿듣는 게 가능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 정도의 정보는, 지금 끼고 있는 선글라스-택티컬 바이져로도 파악할 수 있다. 그가 굳이 수동으로 접속한 이유는 근처에 설치된 트랩 때문이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L자형으로 구부러지는 통로 두 개가 겹친 곳이다. 즉, 트랩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소. 이런 곳이라면 반드시 설치했을 것이다.

잠시 후 터치패널에 disarmed 라는 문구가 뜬다.

트랩이 없다는 뜻이다.

“계속 이런 식이군.”

애초에 빌딩이 해킹 당했을 때부터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수동으로 작동시키는 것마저 막힐 줄은 몰랐다. 동작감지센서가 작동하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그 덕에 많은 적과의 싸움은 피하며 이곳까지 올 수 있었으니 그 점만은 고맙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싸우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사방이 붉은 점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택티컬 바이져에 표시된 정보에 의하면 지하 3층은 전멸인 듯하다. 간간히 뜨던 초록색 점들이 사라지고 이젠 없다. 지원을 요청했지만, 오는데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러는 동안 붉은 점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벽 너머에도, 아래층에도, 위층에도, 붉은 점이 바글거린다. 아무리 지금 들고 있는 미니건의 화력이 좋아도, 이 많은 적들을 상대하기엔 탄약이 충분치 않다. 거기에다가 무식하게 벽까지 뚫어버리는 통에, 다른 곳의 적까지 끌어오는 단점까지 있었다.

편승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 했다. 허나 때는 늦었다. 뒤쪽에서도 붉은 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야단났군.”

앞에도 뒤에도 적, 적이다. 없던 길을 만들어서라도 가고 싶은 상황.

편승은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들고 있는 미니건을 내려다보았다.

불과 몇 초전에는 무식하게 벽까지 뚫는 무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걸로 벽을 부수고 갈까 싶었다. 하지만 속에 들어찬 각종설비들을 어느 세월에 들어낼 것인가. 저들도 바보는 아닐 테니 총성이 울리는 순간 달려올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붉은 점들은 통로의 꺾이는 부분까지 다가왔다. 이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편승은 미니건을 버리고 샷건을 들었다. 도망치려면 몸이 가벼운 게 좋았다.

붉은 점들이 복도의 좌우에 자리 잡은 게 보였다. 그중 하나가 머리를 쑥 내미는 게 보였다.

탕! 탕!

편승은 연거푸 샷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허나 적은 얄밉게도 쏙 들어간 뒤였다. 편승은 한손으로 샷건을 쏘며 달렸다. 그의 반대쪽 손에는 단분자 커터가 들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만 있다면 그의 검술로 어떻게든 뚫고 갈 자신이 있었다. 저들이 전부 움츠리고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저들은 자라가 아니었다.

시퍼런 전광이 편승의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헛!”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건 펄스 라이플이다. 편승은 황급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어떻게 된 거지?”

펄스 라이플에는 lock이 걸려 있어서, 이 빌딩의 허가받은 자가 아니면 쓸 수가 없다. 무장경비나 위급 상황에서의 직원이 그렇다. 하지만 지하에 직원이 올 일이 뭐가 있겠는가. 무장경비들은 전부 다른 곳에서 교전중이라 빼도 박도 못하고 있어, 여기까지 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아군이 오인 사격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택티컬 바이저에는 붉은 점만 표시되고 있다. CCTV화면을 끌어다 보면 좋으련만, 이 근처는 파괴된 게 많았다.

주어진 상황만 놓고 보면, 결론은 하나다.

방금 펄스 라이플을 쏜 건 테러범이다.

“해킹을 했나?”

편승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펄스 라이플을 해킹 했다면, 다른 무기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무인 경비로봇들도 그리될지 모른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뚫리다니. 대체 보안요원들은 뭐하고 있던 거야!”

분노는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편승은 단분자커터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저쪽에서 거리를 좁혀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칼잡이가 총을 드니 답답했던 거야.’

편승은 기꺼워했다. 다가오는 적을 사로잡아 방패로 삼으면, 총에 맞을 걱정 없이 단숨에 거리를 좁힐 수 있다.

그때 편승 쪽으로 어떤 물건이 미끄러져 왔다. 소리를 들어보니 재질은 금속, 동시에 만만찮은 중량감이 느껴진다.

그것이 편승의 발끝에 와 부딪쳤다.

편승은 저들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바닥에 놓인 것은 펄스 라이플이었다.

왜 저들은 폭탄이 아닌, 펄스 라이플을 보내왔는가. 이거 들고 싸우라고?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회장님. 진압완료입니다.”

무장경비들이 테러범들의 뒤를 친 모양이다. 하지만 택티컬 바이져에는 여전히 붉은 점만이 표시되고 있다. 편승은 고개를 내밀지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만약 저들이 무장경비라면 어째서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았겠는가.

편승은 감각을 넓게 퍼뜨렸다. 다른 층에 있는 자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지만, 뒤쪽의 적들이 총소리를 듣고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지금 말을 건 자가 무장 경비라면 이들과 함께 다가오는 적들을 상대하면 된다. 그 반대라면 앞뒤의 적에게 포위섬멸 당할 것이고.

편승은 입술을 축였다.

“가까이 와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편승은 단분자 커터를 놓지 않았다. 싸우게 된다면 숫자가 적은 쪽이 훨씬 낫다.

‘빨리 와라.’

그는 초조해졌다. 상대의 조심스러운 걸음이 왜 이리 느리게만 느껴지는지 모른다. 잠시 후 시커먼 것이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편승은 상대의 어깨를 낚아채 단분자 커터를 들이밀었다.

“회장님?”

상대의 당황한 음성이 들려왔다. 겉보기에는 방호복을 입은 무장경비였다. 하지만 복장이야 바꿔 입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편승은 입을 꾹 다물고 무장경비를 방패삼아 복도 끝까지 걸었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수갑을 채운 테러범을 지키는 무장경비들이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의 면면을 훑어봤다. 지급된 정규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단지, 여기까지 오면서 고생이 많았는지 조금 피곤해 보일 뿐이다. 그리고…붉은 점의 숫자는 제압된 테러범의 숫자와 일치했다.

“후우.”

편승은 단분자 커터를 치우며 지시했다.

“내가 왔던 통로 끝에 다수의 테러범이 있다. 진압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무장경비들은 방독면을 꺼내 썼다. 편승에게도 방독면이 하나 주어졌다. 제법 영리한 방법이다. 굳이 싸울 필요도 없이 가스탄을 던져 넣는 게 싸게 먹힌다. 트랩의 초기 대응도 같은 방식이다.

정화통을 끼우고 공기가 새나 안 새나 점검까지 마친 편승은 샷건을 꺼내들었다. 안 그래도 인원이 부족한데 회장이라고 놀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윗사람이 모범을 보여야하는 법이다.

“가세.”

한 발짝 내딛은 편승은 몸을 휘청했다. 멀쩡한 바닥이 흔들린다. 혹시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났나 싶어 중심을 잡았지만, 그만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빌딩을 다 부술 셈인가?”

중얼거리며 편승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폭발의 영향에 아랑곳 않고 꼿꼿이 서 있다. 그는 지금 이 현상이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으어어…….”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혀가 꼬이며 이상한 소리만 나온다.

그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입안에 고인 침이 쉴 새 없이 흐르며 방독면 속을 가득 채웠다. 조금 전 방패로 삼았던 무장경비가 다가왔다.

“이거 월척이 걸렸군. 파이오니어의 회장님이라니.”

상대는 이죽거리며 편승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그리고 수갑을 채워 일으켜 세우려 했다.

“더럽게 무겁군.”

투덜거리며 몇 사람이 더 달라붙자 편승의 몸이 겨우 들려진다.

“야 거기 똑바로 잡아.”

식인종의 한 끼 식사꺼리처럼 볼품없는 모습으로 끌려가며 편승은 이를 갈았다. 정화통이라고 생각한 건 가스통이었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신경가스 같은 종류는 아니다. 분명한 건 이들이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 조금 전 저들이 월척이라 부른 걸 보면 인질로 삼을 생각 같았다.

‘이들은 대체 뭐지? 분리주의자들과 한패인가?’

그 생각은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가차 없이 분리주의자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으로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제3의 세력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노리는 자들인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나저나 잔인하군.’

분리주의자들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편승은 수갑을 풀어줬어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다들 심하게 맞아서 제대로 움직이질 못했고, 몇몇은 아예 기절한 상태였다. 저 정도로 심하게 다루었으면 사실 수갑을 채울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 앞에서 보란 듯이 제압한 자들을 깔아뭉개고 있었으며, 이젠 죽이기까지 한다. 사실상 처형이나 다름없다.

더욱 섬뜩한 것은 살려둔 몇 명에게 하려는 짓거리였다.

‘역겹군.’

편승은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방독면 속에 가스가 계속 주입되고 있다. 자신의 몸이건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유다.

바지를 내리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아마도 남은 사람들은 전부 여성인 모양이다. 아무리 피 튀기며 싸우는 사이라 해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편승의 최우선 말살대상이 되었다. 손만 움직일 수 있다면 저놈들의 사타구니에 달린 것부터 뜯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뿐.

그는 분노를 터뜨렸다. 무력한 자신에게 화가 났고, 이런 꼴을 당하게 되는 여자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저런 인간쓰레기들을 손수 치우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헌데 그런 생각을 품자마자, 놈들이 멈칫거리는 것 같았다. 착각인가 싶었지만, 곧 몸이 내동댕이쳐지면서 편승은 깨달았다.

‘살기다. 놈들이 내 살기에 꼼짝 못하고 있어.’

평소 그는 회장의 직책을 내세워, 무장경비들을 괴롭혀왔다. 그래서 다들 마왕이라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걸 안다. 그도 귀가 있는데 모를 리 없다. 여기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무기는 점점 발전하는데 그걸 쓰는 인간의 정신은 여전히 미숙하다. 아니 점점 약해지고 있다. 조금만 불리해지면 무너지고 마는 나약함이란.

전투요원은 그래선 안 된다.

특히나 파이오니어 빌딩을 지키는 무장경비라면 더더욱!

그래서 틈나는 대로 구실을 만들어 살기를 퍼부어주었고, 예상대로 무장경비들은 (편승의 기준으로) 조금 쓸 만해졌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조잡한 살기에도 맥을 못 춘다.

이런 놈들이 무장경비일리 없다.

‘잘 걸렸다. 가짜 놈들! 아주 숨이 콱 막히게 해주마!’

편승은 살기를 정제해 무장경비처럼 꾸민 가짜들에게 쏟아주었다. 그의 살기를 집중적으로 받은 녀석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가까이에 있던 자들은 아예 죽어버렸다. 자신을 보며 월척이라며 좋아했던 자에게는 특별히 신경을 써주었다.

그러니까……살기를 느슨하게 풀었다 조이기를 반복해주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남자는 결국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발광했다.

“으아아악! 히익!”

그 반응을 보며 편승은 만족했다. 이렇게까지 살기를 컨트롤한 건 오랜만이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으로 일격을 가해 녀석을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것. 그때 통로의 반대쪽에서 우르르 몰려드는 자들이 있었다.

‘아차!’

분리주의자들을 잊고 있었다. 편승은 황급히 살기의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조급하게 군 탓인지, 이들은 기분 나쁘다는 표정만 지었다. 재차 살기를 쏘아 보냈지만, 이번엔 눈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가스로 인해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필이면 이런 때!’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꺼풀이 감겨왔다. 사실 지금까지 버틴 게 대단한 것이다.


◇◇◇◇◇◈◇◇◇◇◇◇◈◇◇◇◇◇◇◈◇◇◇◇◇


“……나 ……십시오.”

뭐라고?

“회장님!……일어나십시오!”

찰싹.

뺨을 때리는 손길이 참 맵다. 편승은 눈을 번쩍 떴다. 방독면은 벗겨져 있고, 잔뜩 인상을 쓴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이름이 브렌이었던가.

그가 씩 웃었다.

“너무 약해서 주먹으로 때려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나까지 여유가 생기는 것 같군. 자네가 구해주었나?”

“정확히는 우리들입지요.”

고개를 돌린 편승의 눈에 무장경비들이 경계를 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에는 초록색 점이 찍혀 있었다. 편승은 긴장을 풀었다.

“가짜들은 전부 잡아들였습니다.”

“여자들은?”

“아……뭔가 지저분한 일을 당할 분위기 같았지만, 일단 구금은 해뒀습니다. 마찬가지로 침입자니까요.”

“지하3층의 상황은?”

“현재 잔당 소탕 중입니다.”

“내가 거들어도 될까?”

“빨리 끝낼수록 좋지요. 저놈들 뒤치다꺼리만 하기엔 아까운 날이 아닙니까?”

브렌의 말이 맞았다. 적어도 오늘은 피로 얼룩져서는 안 되는 날이다.

이런 날 쳐들어온 적들을 납득 시켜야 할 이유도 도의도 없다. 이미 충분히 넘치도록 당했다.

납득하지 못한다면 쓸어버릴 뿐이다.

“가지.”

브렌은 정말 괜찮겠느냐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오늘하루 동료 경비들이 무수히 죽어나갔다. 그래서 지금 여기 모인 자들은 하나같이 복수심에 가득 차 살기등등했다.

허나 누구보다 속이 상할 사람은 편승이다.

그동안 분리주의자들에게 도전받아왔지만, 이렇게까지 당한적은 없었다. 더구나 오늘은 파이오니어 컴퍼니가 인간들을 콜로니라는 안전지대로 인도한 것을 기념한 날. 그런 날 테러 당했다.

이건 대대로 해온 일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다.

편승은 브렌이 건네주는 펄스 라이플을 거절했다.

“난 사격실력이 형편없어서 말이야.”

그러면서 집어든 것은 핸드 헬드 미니건. 탄약통까지 등에 짊어지고 일어서자. 브렌을 비롯한 무장경비들은 경악했다. 원래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인 줄 알았지만, 정말로 가뿐하게 들어 올리자 벌써부터 피바다가 펼쳐지는 기분이다.

“우리가 받은 무수한 죽음을 저들에게 돌려줄 시간일세.”

개틀링이 위잉 소리를 내며 회전했다.

그 뒤로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견디다 못한 분리주의자들은 폭탄으로 바닥을 부수고 도망쳤지만,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장 경비들에게 붙잡혔다.

가짜 경비들도 간간히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이쪽의 압도적인 화력을 보고 친근하게 굴었지만, 그럴 때마다 편승은 어김없이 살기를 뿌려주었다. 당연히 가짜들은 얼어붙었다. 잠깐 찔끔하고 마는 무장경비들과 비교가 되고도 남는다. 그 반응의 차이는 눈에 확연히 드러나 편승과 함께 한 자들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이들도 제압해야 합니까?”

질문을 하는 브렌에게서 무언가를 허가해주기를 바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무얼 원하는 건지 이해했지만, 편승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귀찮았다. 그냥 미니건의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위이이잉. 모터가 구동하면서 개틀링이 회전했다.

그 모습을 본 가짜 하나가 소리 질렀다.

“하, 항복! 항보…….”

상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무수한 빛줄기가 살아있는 과녁을 꿰뚫었다. 비명대신 바닥에 떨어지는 탄피만이 맑게 소리 내었다.

편승은 스위치에서 손을 뗐다. 잠깐사이에 가짜들은 사라지고, 먹지도 못할 쓰레기들만 바닥에 남아 있었다. 해체작업이 끝난 푸줏간처럼.

편승은 자신이 만든 무대를 거리낌 없이 걸어갔다.

꽤나 가까이에서 사격했지만 손맛이란 게 없어서일까, 눈앞의 죽음들이 자신과는 아무상관도 없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본 브렌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뇌수가 터져나가고, 부서진 살점과 내장이 곳곳에 걸려 있는 살풍경한 곳이지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역시 마왕이로군요.”

“자네는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나?”

“네. 그렇습니다.”

대놓고 마왕이라 부르는 것도 모자라, 비아냥거리기까지?

편승은 고개를 돌려 브렌을 바라보았다. 브렌이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도 못지않게 쌓인 게 많단 말입니다.”

편승은 웃어버렸다. 그건 피차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다음에 가짜들이 나오면, 제압해야 되느냐는 둥 쓸데없는 소리는 말게. 그냥 쏴버려. 어차피 없는 자들이니.”

무장경비들의 눈이 번들거렸다. 다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특히나 없는 자들이라는 것.

생존자를 남기지 말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다.

다들 복수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브렌은 다른 걸 질문했다.

“헌데 그 살기인가 뭣인가를 쓰는 방법은 신뢰할 수 있는 겁니까? 너무 성급한 것 같습니다만?”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회장을 바라본다. 그들 역시 ‘혹시나’ 동료들을 죽인 게 아닐까 마음 한구석으론 찜찜하던 참이다. 가짜들과 자신들의 장비는 동일하다. 그저 편승의 살기에 꼼짝도 못하는 점만 다를 뿐.

편승은 택티컬 바이져를 톡톡 두들겼다.

“자네들의 정보는 여기에 뜨네. 분리주의자들도 마찬가지. 헌데 가짜들은 그게 전혀 안 떠. 마치 공기처럼 말이네.”

“투명인간처럼…….”

“맞네. 투명인간이지. 택티컬 바이져에 정보가 뜨지 않는다는 것은, 저들이야말로 해커와 한편이라는 증거. 우리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어설프게 무장한 분리주의자 나부랭이가 아닐세.”

“봐주면서 상대하지 말라 이거로군요. 그렇다면 무장등급을 올려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자네 말이 옳아. 회장의 권한으로 무장경비들의 1종무장을 3종으로 변환하는 것을 허가하겠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장경비들이 든 펄스라이플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 트랜스 폼, 3rd 페이즈로 이행.


총신을 비롯한 위아래의 덮개가 열리며 내장된 퓨즈케이스가 대형으로 바뀌었다. 총열도 전체적으로 확장되었다. 기존의 펄스 라이플이 이쑤시개 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가지고 있다면, 변화된 모습은 주먹이 하나 들어갈 크기로 바뀌었다.

“2종도 아니고 갑자기 3종이라니. 회장님 화끈하시네.”

무장경비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제 이건 더 이상 펄스 라이플이 아니다.


- 트랜스 폼 완료. ‘펄스 캐논’을 사용하기 전 안티 에너지 실드의 전개를 꼭 확인해주세요.


편승은 가까운 통로들의 CCTV를 확인해보았다. 붉은색도 푸른색도 아닌 자들.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앞 갈래 길에 가짜들이 오고 있어. 자네들 요구대로 해주었으니 알아서들 하게.”

편승이 자리를 비켜주자 세 사람이 걸어 나와 펄스 캐논을 벽에 겨누었다. 그들이 쓰고 있는 헬멧에 다수의 열원이 떠올랐다.


- 안티 에너지 실드 전개.


통로의 일부 벽이 안티 에너지 실드로 바뀐 것을 확인한 세 사람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지잉.

옅은 빛줄기가 벽으로 쏘아졌다. 펄스 라이플 때와 다를 게 없는 소리와 함께.

벽은 멀쩡했다. 흠집조차 없이.

그러나 형체가 없는 에너지 탄은 벽을 헤집고 들어가, 그 너머의 벽마저 뚫고 나가는 중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안티 에너지 실드를 쳐야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쏜 것을 어찌 알고 막을 것인가. 게다가 가짜무리들이 있는 데만 안티 에너지 실드가 없다. 흡사 커튼을 젖혀 드러낸 바깥 풍경처럼.

가짜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느리게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고출력 에너지 탄 하나가, 그중 하나의 몸에 닿았다. 그의 몸이 벽으로 처박혔다. 그리고 풍선처럼 몸이 부풀더니 터져버렸다. 인간의 생체 조직이 한계까지 부풀며 터져나간 탓에 누구도 인육파편을 피하지 못했다. 적어도 핸드헬드 미니건은 죽은 게 사람이라고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펄스캐논에 당한 자들은 작은 조각 수준으로 ‘해체’되었다.

“뭐, 뭐야!”

“으악! 내 눈!”

“허헉!”

동료의 피를 뒤집어 쓴 채 우왕좌왕 하는 자, 눈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지르는 자, 가슴팍을 내려다보며 픽 고꾸라지는 자.

이 모든 게 단 한발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었다. 잘게 부서진 ‘인간이었던’ 파편 중에는 뼛조각도 있었는데, 그것들이 방사상으로 퍼져나가며 가짜들의 몸을 헤집은 것이다.

몇 초 차이로 날아든 두발의 에너지 탄이 명중했고, 그걸로 가짜 무리들은 완전히 정리되었다.

편승은 삐죽 솟아오른 머리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 펄스 캐논은 다 좋은데 근처에 막대한 양의 정전기를 발생시키는 게 좀 그렇다. 몸은 따끔거리지, 머리카락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고. 특히나 그는 올백으로 넘긴 머리카락이기 때문에, 정전기를 만나면 사자갈기처럼 빳빳하게 서버린다.

“가짜들은 지하 3층에 몰려 있는 것 같네. 자네들이 얼마나 잘해주느냐에 따라 가짜들의 생존 시간이 단축되겠지. 일단 브렌에게 일부 권한을 넘길 테니, 자네들끼리 잘 해보게.”

“회장님은 어딜 가시려고요?”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고, 따로 할 일도 있네.”

“그러고 보니 왜 회장님이 여기 계신 겁니까?”

브렌의 말에는 아무리 목숨 줄이 질겨도, 명색이 회장인데 위험한 곳에 왔느냐는 질책이 담겨 있었다. 결국 적에게 사로잡히기도 했고, 이래저래 민폐만 끼쳤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찾아온 게 아니던가.

“해커가 지하 3층에 있을 거라고 해서 왔네.”

“그것도 중요하군요. 짐작 가는 곳이 있으십니까?”

“무인 경비로봇이 든 창고네.”

“설마 로봇을 해킹하려고?”

“아니, 그럴 확률은 낮네. 거기는 이것저것 회선이 몰려 있는 곳이라 해커가 일을 벌이기에 좋을 뿐이야.”

“이제 독 안에 든 쥐로군요. 위층부터 아래층까지 무장경비들이 깔려 있으니.”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지. 어쩌면 남은 해커하나가 모두의 목숨줄을 쥐고 있을지 모르네.”

“할 일이라는 게 해커를 잡는 거라면, 다 함께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인력낭비네.”

“해커가 혼자 있겠습니까? 분명 가짜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CCTV에는 몇 명이나 있습니까?”

“그곳만 CCTV가 먹통이네. 하지만 동작감지센서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딱 두 사람이 있더군.”

“두 사람?”

“그렇네. 두 사람. 그러니 많이 몰려갈 필요가 없지. 나 혼자 가겠네.”

“조금 전 가짜들에게 사로잡힌 걸 벌써 잊으셨습니까?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여기는 카우보이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어이, 그래도 되겠지?”

“맡겨만 주십시오.”

모두들 브렌이 따라가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데야, 편승도 이 이상 고집피우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브렌이 앞장서고 편승이 뒤를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작가의말

1. 회장님, 미니건을 쥐어 줬는데 무쌍을 찍질 못하니......


2. 이제 두편 정도 올리면 기반 다지기는 끝날 것 같습니다.(응???)

   챕터 하나마다 필요하다면 5만자 미만의 현실 세계이야기를 다루게 됩니다.

   물론 게임쪽 이야기의 비중이 얼마나 될 지는 두고보시길.


3. 어......

   어떤 분이 새로 리메이크 하면 한다고 쪽지로 알려줬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게 참......

   예전 글 읽던 분들이, 지금의 글을 보면 좋아할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일단 분량도 얼마 안 되고,

   게임 소설이라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않았습니다.

   전체적인 성향도 [ 현실 > 게임 ]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고요.

   예전글에서도 이거 싫어하신 분들이 제법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좀 써보고 전체 쪽지를 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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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4) +2 13.11.30 1,022 23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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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 +3 13.11.28 1,048 25 20쪽
3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 +4 13.11.23 1,521 20 19쪽
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7 22 15쪽
2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8) +1 13.11.19 1,216 24 34쪽
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3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5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0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2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4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1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1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8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0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2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2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0 3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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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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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 +1 13.10.16 1,911 42 23쪽
9 1. (8) 13.10.14 1,702 29 23쪽
8 1. (7) +1 13.10.05 3,285 60 25쪽
7 1. (6) 13.10.04 2,227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8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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