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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802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3.11.1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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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3
추천
31
글자
21쪽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3.

- 으아악! 사, 사람 살려!

마법사로 보이는 자는 느릿하게 매직스틱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칼날이 뛰쳐나가 노상강도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마법사는 덜덜 떨고만 있는 노상강도들을 둘러보았다.

- 네 녀석들의 썩어빠진 정신 상태는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감히 바하르칼의 이름을 입에 올려?

- 저희들은 아무 말도…….

- 네 녀석들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여기 있었다. 조금 늦게 나타났더니, 멋대로 입방아를 찧더군. 주둥아리를 모조리 지져버려야 말을 들을 것인가?

- 아닙니다! 아닙니다!

- 바하…아니, ‘바’자도 꺼내지 않겠습니다!

- 흥! 두고 보겠다. 이번엔 버프 스크롤이다.

마법사는 품속에서 스크롤뭉치를 꺼내주었다. 노상강도들은 쭈뼛거리며 스크롤만 만지작거렸다.

- 지금 사용 안하지?

매직스틱을 꺼내는 마법사. 즉각 스크롤를 찢어버리는 노상강도. 누가 주도하는지는 명백했다. 죽기 싫어서라도 노상강도들은 억지로 따라야만 했다. 곧 그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 우와! 힘이 솟는다!

동료를 죽인자의 강압에 의해 스크롤을 사용했지만, 버프 효과는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들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 이방인들을 상대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도록!

- 네! 알겠습니다!

마법사는 노상강도의 우두머리 한 녀석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 특히 네 녀석은 싹수가 보이더구나. 이번일이 끝나면 날 따라와라. 그러면……음? 거기 누구냐?


<SYSTEM : 동영상재생이 끝났습니다.>


“허……바하르칼 놈들 징글징글하네. 이젠 하다하다 노상강도하고도 손잡아?”

“거봐 내말이 맞지?”

“그러게. 근데 이거 찍은 사람도 대단하다. 마법사를 도촬할 생각을 하다니.”

“은신스킬 열심히 올렸나보지. 아무튼 알게 된 이상 가만있을 순 없잖아.”

“바하르칼 놈들과 전쟁인가? 하지만 아직 한 달도 안 되었는데 가능하겠어?”

“일단 노상강도부터 치고 나서 생각해보자고.”


◇◇◇◇◇◈◇◇◇◇◇◇◈◇◇◇◇◇◇◈◇◇◇◇◇


‘레드 오션’을 계승한 ‘더 오션’이라는 게임의 높은 인기는, 올드 유저들을 끌어안음으로써 가능했다. 계승된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유저들이 활동하는 팬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양대 산맥은 마린블루와 솔티워터.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랑과 짠맛은 가장 먼저 생겨난 곳이며, 가장 많은 인원이 활동하는 사이트다. 이 두 사이트는 지금 한 가지 동영상 때문에 시끄러웠다. 들불같이 번져나가는 같은 주제의 게시물들. 그것들은 하나같이 바하르칼 용병들을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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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미운 놈은 떡이 되도록 치라 했습니다.》/《작성자 : 폭풍을 부르는 관광》

레드 오션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이놈들이 악질들이라는 것을요. 온갖 이권에 끼어들어서 돈이란 돈은 싹 긁어가려는 징글징글한 놈들. 이놈들은 이득이 된다면 마족들하고도 편먹을 겁니다. 물론 저 역시 그런 성향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노상강도와 손잡는 건 아니죠. 개발자가 밝혔듯이 마족 진영에서도 싸울 수 있다고 했으니 그건 그렇다 쳐도, 몹에 불과한 노상강도와 같은 진영이라니요? 그것도 마법사가 스크롤까지 쥐어주면서 말입니다! 이건 필드보스 키워주려고 일부러 죽는 것보다 악질입니다. 바하르칼 용병들은 전부 멍청이들입니까? 유저들이 눈치 못 챌 거라 생각하고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이미 벌어진 일이니 푸닥거리는 여기까지 하렵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입니다. 더 오션의 유저여러분들. 과거 레드 오션 때, 기억나십니까? 무턱대고 초보자 사냥터를 빠져나가 노상강도의 손에 죽던 때를. 그때 우리들은 노상강도를 우습게 본 나머지, 놈들에게 무턱대고 도전했다가 레벨만 올려주고 말았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질 수 있습니다. 레벨 50초반까지 마을에 처박혀 있던 설움을 겪으시렵니까? 저는 내일 노상강도들에게 도전하렵니다. 동참 하실 분은 성문 근처에서 관광버스를 찾아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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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르칼은 왜?》/《작성자 : 물맛생수》

바하르칼이 또 미운 짓을 하리라는 건 누구나 예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우리들이 초보자 사냥터도 못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하르칼의 용병들은 우리들보다 일찍 밖으로 활보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용병이라 초반에 퀘스트로 성장시키기 쉽다고 해도 이건 너무 빠릅니다.

실제 탄탄한 조직이 받쳐주지 않으면, 이렇게나 빨리 본색을 드러내는 건 곤란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그걸 실현해냈지요. 어쩌면 바하르칼 용병들은 게임 갱들보다도 더 거대한 조직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예전부터 떠돌던 루머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들은 VIP의 사조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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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반응이군.”

뜨거운 감자를 던져주자 알아서 들끓는 여론은, 편재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문제의 동영상을 찍어서 올린 건 편재였다. 사실 관계는 분명한데 증거가 없으니, 날조해서 올려버린 것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사안을 심각하게 만들어서.

“아마도 바하르칼 용병은 단순히 정보만 가져다주었을 거야.”

하지만 편재는 거기에 서비스를 더했다. 카무플라주를 쓴 위즈를 통해 스크롤까지 공급해준 것. 당연히 그 장면을 찍어서 올렸으니, 유저들의 위기감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편재가 노린 것도 그것이다. 당장 바하르칼을 치는 건 곤란하겠지만, 적어도 노상강도와의 싸움을 앞당기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공공의 적을 상대로 한번 뭉치면, 대개 그 상태로 파티가 계속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유저들이 빨리빨리 치고 나가니 좋고, 일찍 파티가 만들어지니 퀘스트도 쑥쑥 풀리고. 좋다, 좋아!”


◇◇◇◇◇◈◇◇◇◇◇◇◈◇◇◇◇◇◇◈◇◇◇◇◇


접속하자마자 위즈는 노상강도의 우두머리 하나를 찾아갔다. 일부러 다른 자들 앞에서 특별히 친한 척 해준 바로 그 녀석이다. 허수아비 단인가를 맡고 있는 놈인데, 연합을 먼저 시작한 놈이기도 하다.

“근데 나쁜 놈들 주제에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지? 이제 곧 유저들이 찾아다니기 시작할 텐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왁자지껄 소리가 난다. 정확히는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소리. 위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나무 그늘 속에 자리를 잡았다.

허수아비 단의 우두머리는 다른 우두머리에게 멱살을 잡히고 있었다.

“어떻게 알랑방귀를 뀌면 네 녀석 좋을 대로 일이 풀리냐? 엉?”

위즈는 박수를 치며 웃고 싶은 것을 참았다. 사전작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위즈가 죽인 노상강도는 셋. 그중에서 둘은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허수아비 단의 우두머리와 특히 사이가 나빴다. 그 정도라면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고, 허수아비 단의 우두머리에게 따질 생각도 안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우두머리를 죽인 다음엔, 반드시 허수아비단의 우두머리에게 관심을 가졌지.’

일부러 살갑게 대해주자, 다른 우두머리들에게서 불신이 피어났다. 뒷거래가 있었다고 생각한 우두머리들 사이에서 연대가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말이 지나치다! 내가 부추겨서 죽였다는 거냐!”

“그럼 왜 너랑 앙숙인 놈들만 죽는데?”

“너? 너라고 불렀어. 지금?”

본격적으로 드잡이를 시작하자 위즈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둘이 싸워서 한쪽이 크게 지거나, 죽어버리면 일시적이나마 갈등이 풀리게 된다. 그래선 안 되었다. 이 갈등이 계속 지속되어서 저들의 연합이 삐걱거려야 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만 한다. 그래야 속부터 곪아 들어가 고름이 찬다. 위즈는 스크롤을 찢었다. 우두머리들의 바로 옆에 플레임 플라워가 피어났다.

“헉!”

숲속에서 걸어 나오는 위즈를 본 우두머리들은 서로의 멱살을 풀고 떨어졌다. 숨어 있다가 마법부터 갈기고 튀어나온 마법사다. 아마 많이 화가 났을 거라 생각한 노상강도들은 땅만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위즈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느라 혼났다.

“애새끼들도 아니고 잘하는 짓이군. 벌써부터 이방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버, 벌써 말입니까?”

“어쩌면 내일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가장 큰 원흉이 눈앞에 있건만, 노상강도들은 싸움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위즈는 괜히 한번 이들을 건드려보았다.

“겁나냐? 겁나면 지금 당장 도망쳐도 좋다.”

“아닙니다! 우리들은 숫자도 많고 충분히 강합니다!”

“이방인 따위 깔아뭉개버리겠습니다!”

“좋은 패기다.”

이미 한몫 크게 챙길 욕심에 눈이 먼 이들은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제 이것만 주면 다 끝나는군.’

위즈는 마지막 스크롤을 풀었다.


◇◇◇◇◇◈◇◇◇◇◇◇◈◇◇◇◇◇◇◈◇◇◇◇◇


미노클로 돌아온 위즈는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유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누가 자기들을 사칭했다며 억울하다고 하더라.”

“역시 잡아떼는군.”

위즈는 곳곳에 붙여진 바하르칼 용병단의 포고문을 확인했다.

“뭐라고 하는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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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르칼 용병단은 노상강도와 관련이 없습니다!]


해당 동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하르칼과는 그 어떤 인연도 맺지 않은 자입니다. 그자의 주장처럼 그 어떤 정보도 팔지 않았으며, 스크롤 공급을 비롯한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압니다.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동영상 속의 사기꾼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숨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은 자를 찾아 무엇 하겠습니까. 대신 그 자가 남긴 유일한 흔적인, 스크롤을 찾으려 합니다. 만약 그것을 찾아오신다면 금화 100개를 드리겠습니다. 스크롤이 사기꾼의 것이라는 증거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 그동안 수집한 노상강도의 정보를 첨부합니다. 또한 노상강도의 요격이 성공할 때까지, 모든 바하르칼 지부는 문을 닫겠습니다. 용병들 역시 거주지를 이탈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지하 감옥으로 자진 투옥될 것입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유감입니다.

『바하르칼 용병단장 : 스컬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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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를 증명하겠다면서, 자기들은 손 놓고 계시겠다?”

하지만 너무도 영리한 판단이라 위즈는 픽 웃고 말았다. 바하르칼 용병단은 철저히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증거를 찾아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상태라는 것. 그리고 그 증거 찾기를 유저들에게 맡기고 있다. 어차피 바하르칼 용병이 찾아봐야, 증거 훼손을 이유로 유저들이 믿지 않을 테니 ‘니들끼리 알아서 찾아라’ 하는 것이다.

“설사 못 찾는다 해도, 그저 이미지만 나빠졌을 뿐이지.”

어차피 바하르칼은 어떤 이유에서건 유저들과 적대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자들이 이미지 따위 신경 쓸 리 없다. 그럼에도 이런 포고문까지 붙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직 바하르칼 용병의 존재를 드러내기에는 시기상조이기에, 유저들의 공적이 되면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겉치레나마 해명을 한 것이다. 거기에 자신들을 물 먹인 사기꾼의 존재를 찾아 단죄하려는 의지도 있다.

‘지금 모습은 카무플라주로 만든 것이니 진짜 날 찾는 건 힘들 거야. 게다가 다이어트가 성공하면 아무리 뚱땡이만 찾아봐야 소용이 없지.’

운동으로만 빼면 수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지금 편재는 신진대사 촉진 약물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노폐물이나 활성산소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지만, 의료용 나노로봇으로 처리하면 그만.’

그래서 잡은 기간은 딱 한 달이었다. 한 달만 어떻게든 조심조심 버티면, 이번일로 꼬리를 잡힐 위험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그나저나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뭉쳐 있네.”

광장이 아닌 곳에서도 십여 명씩 모여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하지만 100단위로 모인 파티는 없었다. 위즈는 그들에게 접근해 물어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수련할 동안, 노상강도들도 놀고만 있었겠어요?”

“그래봐야 몹 아닙니까?”

“이 게임 처음 하시나보네요. 노상강도들을 다른 게임의 산적 나부랭이처럼 생각하면 큰일 나요. 대부분이 사냥꾼 출신이라, 활을 기가 막히게 잘 다루거든요? 거기서 더 잘 쏜다고 생각해봐요.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아마 유저들 대부분은 화살에 맞아 죽을 거예요.”

“방패를 이용해 집단 대형을 갖추면 어떻겠습니까?”

“가격이 비싼데 꿈이나 꾸겠어요. 어차피 기사도 아닌 이상, 사야할 필요도 못 느끼겠고요. 그렇다고 인해전술로 밀어붙이자니, 하나라도 살아서 도망가면 레벨업해서 괴물이 될 테고…….”

위즈는 유저들의 딜레마를 이해했다. 노상강도를 잡아야 할 당위성은 충분했지만, 피해를 줄일 방법이 없었다. 레벨이 높아지면 피통과 다양한 스킬로 커버하겠지만, 지금은 초보 중에서도 생 초보.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누군가 앞장서야 한다는 거로군.’

성문 밖으로 나온 위즈는 미니맵을 펼쳤다. 허수아비 단과 사이가 나쁜 곳이 딱 하나 남아 있었다.

“흠……검은 도끼단이 좋겠어.”

위즈는 반쯤 찢어놓은 스크롤만 10장을 모자손에 저장해두었다. 전부 윈드 커터. 그리고 숲속에 들어가 제일먼저 맞닥뜨린 짐승을 향해 윈드커터를 내쏘았다. 위즈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피하려던 멧돼지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위즈는 아직까지 살아서 버둥거리는 멧돼지의 정수리에 일격을 가했다.


◇◇◇◇◇◈◇◇◇◇◇◇◈◇◇◇◇◇◇◈◇◇◇◇◇


“크흑! 흐악! 흐헉!”

숲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자가 엎어지고 뛰다가 엎어지길 반복했다. 그의 눈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하나같이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사냥꾼 같아 보인다. 상대들도 피투성이 남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 살려주시오!”

피투성이 남자는 구르듯이 달려들었다. 바짓단을 잡힌 사냥꾼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은 의외로 흔히 있는 일이다. 야생동물에게 습격 받은 자들은, 쉬고 있는 사냥꾼을 발견하면 구해줄 거라 믿고 달려온다. 하지만 사냥꾼도 사람이다. 짐승의 숫자도 모르고,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사냥을 하겠는가. 그래서 무턱대고 짐승들을 끌고 오는 멍청이들은 사냥꾼들에게 결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으슥한 곳이라면 그냥 해치워버리는 일도 다반사. 더군다나 이들은 노상강도질을 하려고, 사냥꾼 일을 잠시 쉬는 자들이다.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끌고 와!”

사냥꾼은 남자를 뻥 차버리고 사냥칼을 꺼내들었다. 그제야 남자는 이들의 분위기가 단순한 사냥꾼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나리들.”

“누가 그러더라. 삶은 고해라고. 그러니 미련은 버리고 이만 죽어라!”

“잠깐.”

“왜?”

동료의 저지에 멈칫한 노상강도가 되물었다.

“저놈이 무엇에 쫓겨 왔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

“그건 그렇군. 어이 너!”

무엇에 쫓겨 왔는지는 몰라도, 그게 이 남자를 따라 움직였다면 분명 이 근처에 있을 터. 남자는 그게 무엇인지 물으려 했다.

“선불 맞은 멧돼지라면 참 좋을 텐데.”

벌써부터 동료들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돼지고기냄새를 떠올리며 군침을 삼키고 있다. 그때 쿵하는 소리가 숲속을 울렸다. 땅이 크게 울릴 정도로 큰 소리에 놀란 새들이 일제히 숲에서 날아올랐다. 노상강도들은 얼어붙었다. 평범한 짐승이 낼 소리가 아니다.

“저게 뭐지?”

피투성이 남자가 떨며 소리 질렀다.

“괴물! 괴물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봐!”

“몸을 숨기고 다가왔다가, 사람을 찢어버립니다!”

“무기를 가지고 있더냐? 아니면 손톱을 길게 길렀나?”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 손이 여러 개입니다. 손가락을 까딱하면 목이 날아가는데, 제 친구는 그걸 혼자 다 맞아서 몸이 가루가 되어버렸습니다.”

노상강도들은 눈을 마주쳤다. 이 자의 말이 맞다면, 자신들이 상대할 존재가 아니다.

“어이. 너. 그냥 보내줄 테니까. 우리 따라오지 마라.”

그들은 남자가 튀어나온 반대방향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와야만 했다.

“제, 젠장! 뭐야 그거!”

여섯이 들어갔는데, 돌아온 건 다섯이다. 한명이 죽은 것이다.

“나도 모르겠어. 너무 순식간이라…….”

그 모습을 본 피투성이의 남자는 자신이 왔던 길로 도망쳤다. 이제 막 사람이 죽은 곳을 피해 도망치는 행위는, 얼핏 봐도 현명한 선택으로 보였다. 거기에 미끼를 뒤에 놔두고 도망간다면 생존률은 더욱 높아진다.

“헤헤헤! 난 살아남을 거다. 미끼들아!”

기세 좋게 숲속의 그늘로 숨어든 남자는 무엇을 보았는지 다급히 뛰쳐나왔다.

“괴, 괴물ㅇ…….”

휙휙 공기 찢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모습이 갈라졌다. 그 모습은 순식간에 잘게 잘려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그 여파로 근처의 나무들은 나무 파편을 뿌리며 속살을 드러냈고, 사방에 붉은 액체가 마구 뿌려졌다. 노상강도들은 넋이 나갔다. 얼굴에 뒤집어 쓴 피를 닦을 생각도 못했다.

“하나가 아니었어?”

이내 숲속은 잠잠해졌지만 아무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동료가 한명 죽었고, 뭣 모르던 사내도 눈앞에서 당했다.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리는 피 묻은 천 조각처럼, 그들의 마음도 깊숙이 가라앉았다.


◇◇◇◇◇◈◇◇◇◇◇◇◈◇◇◇◇◇◇◈◇◇◇◇◇


“크하하하하! 바보, 머저리들!”

곰이 리젠되는 지역까지 온 위즈는 곰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키득거렸다. 노상강도들은 괴물에 쫓겨온 남자가 죽은 줄로 알겠지만 버젓이 살아 있다.

‘왜냐하면 그게 나거든, 큭큭큭큭.’

노상강도들은 유저들이 튀어나올만한 길목에 너덧 명씩 선발대를 심어두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적당히 유저들을 꼬이며, 유격전을 펼치도록 유도하는 것. 위즈가 나눠준 버프스크롤을 믿고 있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위즈는 그런 선발대들이 제 기능을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가공의 괴물을 만들어냈다.

보이지 않으며, 손이 여러 개고, 순식간에 사람을 찢어놓는 괴물.

그런 괴물이 이유도 없이 사람을 공격해온다면?

‘물론 믿는 놈이 미친놈이지.’

보이지도 않고, 생긴 것도 두루뭉술한 존재를 어찌 믿을까. 그래서 거짓말이 아니라고, 사실이라고 믿도록 적절한 연출이 필요하다. 라미즈는 연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위즈는 괴물의 존재를 증명할 두 가지 장치를 준비했다.

하나는 괴물의 힘에 대해 알려줄 큰 소리.

‘바위나 커다란 통나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제법 큰 소리가 나지.’

위즈는 곰을 한 마리 잡아서 놈에게 강제노역을 부여했다. 곰은 또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며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같은 개체인지는 위즈도 몰랐다.

그 다음으로는 괴물의 공격.

이를 위해 위즈는 200개의 윈드커터 스크롤을 소비해야만 했다.

위즈가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스크롤은 윈드 커터였다. 모자손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스킬 중에서 공격적이면서, 길게 베어 들어가는 터라 애로우 계열의 마법보다 범위도 넓다. 그것을 동시에 100개씩 겹쳐서 사용하니, 노상강도들은 설마 그게 윈드커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스크롤의 위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물량으로 쏟아 부으니 되잖아?’

거기에다 산짐승을 죽여 곳곳에 묻혀놓은 피와, 틈틈이 모아둔 초보자 복장을 이용해 살해된 현장을 꾸미면 완성. 위즈는 피묻은 남자를 연기하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숲으로 도망가 죽어주었다.

물론, 도망가는 장소는 언제나 그늘져 컴컴한 곳이었으며, 그곳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위즈는 언제나 일루전이었다. 숲속에서 위즈는 피가 들어 있는 가죽주머니를 던지며, 모자손에 저장된 윈드 커터를 쏟아 붓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윈드 커터는 가죽주머니를 가르고 피까지 함께 사방에 날려주었다. 이로써 보이지 않는 살인괴물과 그 피해자들이 완성된다.

“적어도 오늘 저녁까지는 붙들어둘 수 있겠지.”

미노클로 돌아온 위즈는 상점에서 스테미너포션 20개, 마력포션 20개를 샀다. 그리고 광장에 나와 크게 소리 질렀다.

“어그로 끕니다! 어그로 끌어요! 노상강도 어그로 끕니다! 강도 놈들 속곳까지 벗기실 분은 이리로 모이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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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4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1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1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8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0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2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2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0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2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5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4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8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0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0 42 23쪽
9 1. (8) 13.10.14 1,702 29 23쪽
8 1. (7) +1 13.10.05 3,285 60 25쪽
7 1. (6) 13.10.04 2,227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8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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