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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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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826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3.11.13 20:30
조회
1,750
추천
28
글자
21쪽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5.

지면이 가까워진다. 뾰족한 화살촉 대신 뭉툭한 쇠가 달린 화살이 위즈의 몸을 때렸다.

“크아아악!”


<블런트 화살에 맞아 뒤로 밀립니다.>

<8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로브에 걸린 스톤스킨 스킬은 반응하지 않았다. 모든 주문은 마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발현하지 않는다. 이미 위즈의 마력은 제로. 그렇지만 마력포션을 꺼낼 틈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자손에 포션도 넣어두는 건데……’

후회할 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마음속으로 되뇌어볼수록 분명해진다. 모든 건 위즈의 잘못.

일을 벌려놓고도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뒤늦게 발목을 잡은 것이다.


◇◇◇◇◇◈◇◇◇◇◇◇◈◇◇◇◇◇◇◈◇◇◇◇◇


노상강도들을 찾아가 우두머리들을 암살하고, 자신이 나눠준 스크롤을 사용하게 만드는 게 위즈의 계획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눠준 스크롤은 버프가 아니라 맹독이 들어 있었다.

스크롤을 찢는 순간 자욱하게 독 가루가 퍼지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에 맞으면 중독되어 모든 능력치가 낮아지고 만다. 말하자면 노상강도들의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중독된 노상강도들을 몰아세워 유저들에게 공급하면, 유저들은 훨씬 수월하게 사냥을 할 수 있다.

그리되면 노상강도가 새로 리젠 되더라도 걱정 없다. 이미 레벨에서 격차가 벌어진 노상강도들은 유저들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레벨업 한 방패전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방패전사들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탱킹 및 어그로에 집중한다. 결국 딜러들이 먼저 성장을 하여 다른 곳으로 가면, 방패전사들은 다른 유저들과 함께 몇 번이고 이곳에 올 것이다. 이게 반복 되면 레벨을 올린 유저들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이곳은 단순한 사냥터 그 이상의 의미를 잃는다.

‘계획대로 되었다면, 난 오늘 중으로 이곳을 떠났을 테지.’

그러지 못한 것은 변수의 개입 때문이었다.

늘 하던 것처럼 바하르칼의 괴팍한 마법사로 변신해 노상강도들에게 다가간 위즈는, 어려움 없이 우두머리들을 죽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노상강도들은 여태까지와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가락으로 위즈를 가리켰다.

“저놈입니다!”

위즈는 우두머리들 옆에 못 보던 자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위즈처럼 로브를 걸치고 있었지만 마법사는 아니었다. 그들은 녹이 슨 것처럼 보이는 투박한 칼을 들고 있었다. 딱 봐도 전사 계열이다.

“바하르칼의 이름을 사칭한 사기꾼놈이 너로구나?”

“안 그래도 기사 놈들에게 쫓기느라 열 받는데 잘 만났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그들의 머리위에는 이름이 떠올라 있다. 그것도 매우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시논, 카논.

이들은 PK였다.

‘인육만두 사건 때문에 지금 더 오션에서는 카오틱 플레이를 하기 어려워졌다. 그런데 PK가 버젓이 돌아다닌다? 더군다나 인육만두가 처형당한 미노클이 코앞인데? 가만……기사들에게 쫓긴다고 했지? 그리고 내가 바하르칼 용병인 척 한 것에 분노를 느낀다?’

인육만두 사건, 노상강도 내통사건.

둘은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세력이 주도했다면?

“죽은 인육만두는 바하르칼 용병이었던 거냐?”

“흥! 마음대로 생각해라!”

위즈가 캐묻자 이들은 얼굴을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저런 애매모호한 태도로는 동영상 추출이 힘들다.

‘어차피 대답해주기는 힘들겠지. 그보다 어째서 공격해오지 않는 거지?’

곰곰 생각해보던 위즈는 자신이 올린 동영상을 기억해냈다. 자신은 냉혹한 마법사를 연기 했었다. 사용한 주문은 단조로웠지만, 충분히 화려했으며 효과적으로 목숨을 빼앗았다. 노상강도만 위즈를 두려워 한 게 아니다. 모든 유저들은 동영상 속의 마법사를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도 노상강도들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서 활만 겨누고 있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만큼 위즈를 껄끄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싸우게 되어도 이 두 사람은 몸을 사릴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위즈는 모자손에 저장된 플레임 플라워 주문을 세 번 사용했다. 그리고 윈드커터를 뿌려 잡목을 베었다. 플레임 플라워에 닿은 잡목은 금세 불이 붙었다. 불은 주변으로 천천히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위즈는 불을 질러 저들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동시에, 조급함을 느끼도록 압박할 셈이었다.

“도망갈 생각은 마라.”

그러자 시논과 카논은 활짝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뭐라는 거래?”

“누가 도망을 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누가 숨어 있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라미즈가 열어준 수련장의 지하관문에서 암살자를 상대한 뒤부터 위즈는 기감이 발달한 것을 실감했다. 누가 은신을 하고서 노린다면, 뒤통수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오는 수준. 물론 은신스킬이 낮은 경우에 한해서다. 그런 위즈가 감지하질 못했다면, 상대의 은신수준이 높거나 다른 위험이 도사린다는 뜻.

“둔하구먼. 그러고도 마법사라니. 좀 더 자세히 봐라.”

위즈는 제자리에 꿈쩍도 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주의 깊게 살피자 허공에 매달려 있는 낙엽이 보였다.

“거미줄?”

쿼터스태프를 들어 낙엽을 짚자, 발밑에서 무언가 북 찢어지며 보랏빛 가루가 흩날렸다.

“큭!”


<중독되셨습니다.>

<10초당 1의 체력, 1의 마력, 1의 스테미너가 감소합니다.>

<1분 동안 모든 스탯이 1 감소합니다.>


위즈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왼쪽과 오른쪽에서 독가루가 솟았다.


<독성이 중첩 됩니다>

<10초당 3의 체력, 3의 마력, 3의 스테미너가 감소합니다.>

<3분 동안 모든 스탯이 3 감소합니다.>


“꽤나 재미있는 생각을 한 것 같더라? 그래서 보답으로 깜짝 파티를 준비했는데, 어때? 자기가 만든 장난감에 당한 기분이?”

시논과 카논은 노상강도에게 마지막으로 건네준 스크롤이 덫이란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위즈의 스크롤을 일괄수거한 후, 위즈가 나타날 장소에 역으로 트랩을 꾸며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노상강도들은 날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독가루를 피하기 위해 멀리 물러난 것이었어.’

그것도 모르고 위즈는 이들의 태도를 오해해, 함정에 걸리고 말았다. PK들의 존재를 확인한 즉시 몸을 내뺐다면, 적어도 포위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핍박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는 않으니 길을 열어주겠다. 정확히 5분 뒤, 널 뒤쫓겠다.”

카논이 검을 높게 들어 내리긋자, 검에서 튀어나간 충격파가 불길을 뚫고 지나갔다. 위즈가 지른 불은 간단히 뚫리고 말았다.

“물론 거절해도 상관없다. 여기서 죽고 싶다면 말이지.”

위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어준 길로 향했다. 분명 저쪽으로 가면, 트랩이 여기저기 널려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지 않을 수 없다.

‘이놈들은 지금 화풀이 대상이 필요한 거다. 날 가지고 놀려는 거야. 그 장단에 놀아나는 한 당장 죽진 않는다.’

숲속에 들어가자마자 보라색 가루가 솟았다.


<독성이 중첩 됩니다>

<10초당 4의 체력, 4의 마력, 4의 스테미너가 감소합니다.>

<4분 동안 모든 스탯이 4 감소합니다.>


위즈는 뒤를 돌아보았다. 카논과 시논이 낄낄거리고 있다.

“짐작하고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발밑을 잘 보라고.”

“5분 동안 너희들은 뭘 하고 있을 거냐?”

“음? 농담 따먹기나 조금 하고 있을까? 왜? 지금 싸우자고? 그럼 마력이 떨어지기 전에 쓸 수 있는 주문은 다 사용해 보는 건 어때?”

위즈는 그들의 도발에 말려들지 않았다. 위즈가 많은 스크롤을 사용해 노상강도를 흔들었듯이, 시논과 카논 역시 많은 걸 준비 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위즈가 뿌린 스크롤을 이용해 만든 트랩이다.

“아, 참고로……5분을 트랩 설치에 낭비하지 않길 바라. 단검 뿌리기 스킬로도 충분히 망가뜨릴 수 있으니까.”

비웃음을 들으며 위즈는 숲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깨달았다. 어째서 저들이 5분의 시간을 주었는지를. 바닥에는 검은 가루가 마구 뿌려져 있었는데, 위즈가 발을 딛자마자 바람이 불어 닥치며 마법진이 드러났다. 그리고 위즈는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높은 산악지대.


<고산병에 걸렸습니다.>

<움직임이 느려집니다.>

<생소한 환경에 직면하여 집중력 스탯 -10이 적용됩니다.>


“허억, 허억!”

시간이 지나 중독이 풀렸지만, 그건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잠시 후 시논과 카논, 그리고 노상강도들이 도착한 것이다.

‘매스 텔레포트? 게임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런 능력자가 있다고?’

시논이 키득거렸다.

“저놈 얼굴 좀 봐.”

“이제 시작이니 놀라지 말라고.”

카논이 휘파람을 불자, 주변의 바위며 숲속에서 노상강도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애초에 위즈가 알고 있던 숫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정상에도 그림자를 드리웠고, 건너편의 작은 봉우리에도 새까맣게 몰려와 있다. 수백, 아니 족히 3천명은 되어 보였다.

“여기가 어딘지 아나? 뒤를 봐라.”

카논의 말대로 고개를 돌린 위즈는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돼……여긴 에켈 산이잖아!’

낭떠러지 아래로 보이는 건, 작게 보이는 미노클 성도.

위즈가 서 있는 에켈산은 미노클 주변의 유일한 산. 이곳에는 북방의 다른 나라들과 교역로를 보호하기 위한 요새가 있었다.

문득 위즈는 이 많은 숫자의 노상강도들이 통일된 무장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가벼운 경장갑과 철궁. 하지만 거기에 더해 타워실드까지.

노상강도들이 방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몸을 노출시킬 정도로 무리해야 한다는 뜻.

“요새를 함락시킬 셈이냐!”

시논과 카논은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이 놈 눈치가 빠른데?”

요새의 함락은 단순히 교역로가 끊기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크레센토의 북쪽 땅과 미노클이 격리된다는 뜻도 된다. 그동안 이들이 무슨 일을 꾸밀 것인가. 위즈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시작한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일국의 요새를 건드리다니…….’

위즈는 팬사이트에 올라왔던 어떤 유저의 게시물을 떠올렸다. 바하르칼 용병들은 평범한 게임갱이 아니라, VIP의 사조직이 틀림없다는 주장.

‘그 말이 맞을 지도 몰라. 이 많은 노상강도들을 무장시킬 장비를 게임 오픈 열흘 만에 조달할 정도라면 보통 녀석들이 아냐.’

이런 녀석들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위즈는 벌써부터 패배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어 있진 말라고, 한창 사냥중인 유저들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시시한 놈들을 상대로 낭비할 화살 따윈 없으니까.”

“이 많은 병력들이 모일 때까지,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 있지?”

“그야 지금 유저들이 신나게 잡아대고 있는 노상강도 덕분이지. 유저들이 몸을 사린다고해서, 그놈들이 놀고 있었을 것 같나? 여기저기 상인들을 습격하는 통에, 수도기사단의 절반과 요새를 지키는 병력들이 출장 나간 상태야. 그만큼 감시가 허술해졌으니 병력을 이만큼이나 모을 수 있었던 거고.”

“결국 너희들은 요새 습격을 위해, 노상강도들에게 이방인의 소식을 전해주며 연합을 부추긴 거로군.”

“맞았어. 우리들은 노상강도 놈들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길 원했어. 하지만 대다수 유저들은 레드 오션 때부터 게임을 계속해온 자들. 바보가 아닌 이상 섣불리 덤벼들 리 없지. 그래서 약간의 장비와 유저들의 동향을 알려준 거다. 그것만으로도 이놈들은 큰일 났다며 연합하기 시작하더군.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는데, 너는 불까지 붙여주었다. 바하르칼 용병 행세를 한 건 쪼금 열 받지만, 그 덕에 일정을 하루 앞당길 수 있었어.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네 목숨이 붙어있는 거야.”

그 말을 하면서 카논은 롱소드를 뽑았다. 이제 목숨을 거두겠다는 의미이리라.

포위되어 도망갈 곳은 없다. 모자손에 저장된 주문만으로 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위즈는 절벽을 내려다보았다. 급경사로 이루어진 절벽은 잘만하면 타고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멈출 자신이 없다. 그러다 나무나 바위에 박아버리면, 그대로 사망할 것 같다. 스톤 스킨으로 막을 수 있는 데미지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나마 살길이 있는 곳은 여기뿐.’

위즈는 절벽으로 뛰었다. 그 모습을 본 카논은 굳이 달려들어 베지 않았다. 저 아래에도 노상강도들이 깔려 있으니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게다가 이정도의 급경사를 달려 내려가다 보면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을 거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일직선으로 달려 내려가는 위즈를 노리고 화살들이 날아왔다. 화살들은 로브에 걸린 스톤스킨을 뚫지 못했다. 그렇다고 위즈는 안심하지 않았다. 차라리 영화에서처럼 일제사격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저들은 자유사격을 하고 있다. 순차적으로 날아드는 화살에 야금야금 깎이는 마나. 달리는 중이라, 인벤토리를 열어 마력포션을 마시기도 벅차다.

위즈는 스텝이 꼬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모자손을 내밀었다. 모자손에 저장된 건 오직 스크롤뿐, 5번의 윈드커터와 1번의 플레임 플라워를 쓸 수 있었다. 다른 손에는 쿼터스태프를 들었다. 하지만 쿼터스태프를 쥔 손을 엉거주춤하게 뒤를 향했다. 어디까지나 중심잡기 용도였으니까.


<마력이 떨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절벽이 끝나고, 길이 나타났다. 여기엔 이미 노상강도들이 자리를 잡고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위즈는 가장 가까운 노상강도에게 윈드커터를 갈겼다. 허리가 양분되며 쓰러지는 노상강도. 그 몸을 밟았다간, 스텝이 엉켜버릴 것이다. 위즈는 쿼터스태프를 바닥에 찍으며 몸을 뉘었다. 드드득 땅이 깔려나가면서 쿼터스태프가 뚝 부러져버렸다.

“젠장!”

이젠 길이가 짧아진 몽둥이 꼴이 되었지만 버릴 수 없었다. 이것 때문에 속도가 줄어든 탓이다. 위즈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플레임 플라워와 윈드커터가 연달아 쏟아지며 화살이 주춤했다.

‘이 정도 속도면 포션도 마실 수 있겠어!’

위즈는 체력과 마력 스테미너까지 모두 회복시킨 후, 인벤토리에서 스크롤을 두 장 꺼내어 이로 물고 찢었다.

그러자 전면에서 활을 겨누는 노상강도들이 쓰러졌다. 위즈는 그들을 지나치며, 보조무장으로 보이는 칼을 뽑아 쥐었다. 위즈에게 무기를 강탈당한 노상강도는, 칼이 뽑히는 관성에 휘말려 빙글빙글 몸이 돌았다.


<노상강도를 죽였습니다.>

<28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노상강도를 죽였습니다.>

<28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대충 만든 사벨을 갈취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LV.10에 도달합니다. 이제부터 사망 패널티가 주어집니다.>


놈들을 잡을 때마다 경험치가 쌓였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다. 방금 뜬 레벨 업 메시지 때문이다.

‘여기서 죽으면 스탯이 깎인다.’

남들과는 달리,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베끼며 스탯을 올린 위즈다. 집중력 101은 그렇게 고생해서 얻은 것, 이게 깎이면 억울해서 잠도 안 올 것이다.

위즈는 사벨을 역수로 쥐었다. 다행히 힘 스탯 요구치가 낮아서 위즈도 들 수 있었다. 당연히 자체적인 공격력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단점을 보완해줄 무술이 위즈에겐 있었다.

둥둥.


<관성을 담은 참격을 구사하셨습니다.>

<질주스킬에 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노상강도들을 그대로 주욱 그어버리면서 비탈길에 몸을 던질 때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다.

‘질주? 그건 10분이나 달려야 발동되는 거잖아?’

절벽에서 뛰어내려온 지 3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가 뜨자 위즈는 의아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비탈이 끝나고 길이 나타나자, 어김없이 노상강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즈는 그들을 베고 지나갔다. 대부분 방패로 몸을 가릿 탓인지 이번엔 상처하나 입히지 못했다.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위즈는 보았다. 저들이 나무를 깎아 창을 만들고 있는 것을.

‘어차피 난 최단거리로 여길 주파할 수밖에 없다. 그걸 알고 놈들은 집단으로 창을 세워들어 날 멈춰 세울 생각이야.’

저들이 활까지 버리고 타워실드까지 사용하면, 그야말로 백병전의 교과서에나 나올 모습이 된다. 이에 대처할 방법은 하나. 위즈는 인벤토리에서 스크롤만 스무 장 가까이 꺼내들어 이로 물었다. 비탈길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길. 그곳에 창을 곧추세우고 방패를 눕힌 채 기다리는 노상강도들이 보였다. 위즈는 근처의 큼직한 고목을 노리고 스크롤을 찢었다. 윈드커터와 플레임 플라워가 뒤섞여 날아가자 고목은 불이 붙은 채 쓰러져 굴렀다. 위즈는 즉시 고목으로 달려가 꽝하고 몸으로 받아버렸다.

“크윽!”


<50의 화염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스톤 스킨으로 해소하지 못한 충격 때문에 320의 데미지를 입습니다.>


“저, 저거!”

방패로 몸을 가리고 있던 노상강도들이 움찔거렸다. 적당히 경사를 이루었다면, 굴러 내려오는 통나무 공격 따위는 흘려버렸겠지만 이들은 정규병이 아니다. 그리고 약간의 흐트러짐은, 나무의 무게를 충분히 분산시키지 못했다.

콰직!

노상강도의 절반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고목을 들이받은 충격으로 속도가 줄어든 위즈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는 노상강도들을 덮쳤다.

“더블 래리어트!”

네 활개를 치며 날아든 위즈의 몸뚱이는 그 자체로 흉기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남아 있던 관성을 이기지 못한 노강상도들은 모두 목뼈가 부러져 즉사했다.


<관성을 담은 박투를 구사하셨습니다.>

<질주스킬에 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체력이 20 남았습니다. 빈사상태에 빠집니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끄응.”

위즈는 부들거리며 몸에 힘을 주었다.


<집중력 스탯으로 빈사상태를 극복해냅니다.>


위즈는 느릿한 동작으로 포션을 꺼내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고생하며 내려왔는데도, 아직 에켈산의 1/3도 못 벗어났다.

“쓸데없이 스케일만 커가지고서는…….”

남은 포션을 확인해보니 모두 다섯 개씩 남았다. 조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강행 돌파하는 건 무리다. 혼자서 3천명의 포위를 뚫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그냥 로그아웃할까?”

그러나 떠오른 메시지를 본 위즈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로그아웃할 수 없습니다.>

<교전지역을 벗어나 다시 시도해주세요.>


“결국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건가?”

이 많은 숫자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한단 말인가. 위즈는 막막했다.

“이럴 때 유저들이 달려와 준다면 좋을 텐데. 아니야. 유저들로는 못 막아. 차라리 왕국군을 부른다면? 아! 맞다!”

위즈는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에 끼워진 거무튀튀한 반지. 이것은 크레센토의 제3왕자가 준 ‘호출반지’다.


------------------------------------

[호출반지][내구도 없음][사용횟수 : 3회]

크레센토의 제3왕자와 연락할 수 있는 반지. 만날 장소정도만 간단히 전할 수 있다.

사용하려면 반지를 문지르며「유린 멋쟁이♡」라고 말해야 한다.

------------------------------------


‘쪽팔림은 잠시고, 승리의 기쁨은 영원하다.’

위즈는 반지를 문질렀다.

“유, 유린 멋쟁이…….”


<호출에 실패했습니다.>

<남은 사용횟수 2회>


“이런 염병…….”

위즈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왕자는 단순히 자신을 곯리려 장난을 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사용법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기억을 더듬던 위즈는 왕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 아니, 멋쟁이라니…뒤에 하트는 또 뭡니까? 새로운 발음기호입니까?

- 콧소리를 넣어 달라는 표현입니다.


“그, 그러니까 콧소리까지 넣어서 아양을 떨어야 한다고?”

반지를 빼서 내팽개치려던 위즈는, 산 아래쪽에 바글거리는 노상강도의 물결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저 숫자가 몰려가면, 방비가 허술해진 요새는 그대로 끝장이다. 그렇게 되면 크레센토에서 시작한 유저들은, 바하르칼 용병의 등쌀에 못 이겨 게임을 접을지도 모른다.

“그래…모든 건, 폐쇄구역을 열기 위해서.”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리오.

위즈는 온몸의 근육을 경직시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유린 멋쟁이♡”

평소의 중저음과 극명히 대비되는 간드러진 음성이 반지에 닿자, 반지에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울렸다.

“용건은?”

“에켈 요새로 3천 침공.”


◇◇◇◇◇◈◇◇◇◇◇◇◈◇◇◇◇◇◇◈◇◇◇◇◇


이게 불과 10분전의 일이다. 그리고 이때 지체한 잠깐의 시간은, 노상강도들의 포위를 견고하게 만들어주었다. 결국 위즈는 제 손으로 목을 조이게 된 셈이었다.

놈들은 위즈가 화살을 튕겨 내버리는 모습을 보고 블런트 화살을 쓰고, 미리 깎아둔 뾰족한 나무를 땅에 박아 진지를 구축했다. 포션을 아끼기 위해 위즈는, 미리 챙겨둔 타워실드를 들었다.

‘내가 유리한 건 놈들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뿐이군.’

위즈의 서글픈 몸짓은 곧 노상강도들에게 에워싸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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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4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6 28 23쪽
»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1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3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4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2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2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8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0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3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3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1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3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6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5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9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1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1 42 23쪽
9 1. (8) 13.10.14 1,703 29 23쪽
8 1. (7) +1 13.10.05 3,286 60 25쪽
7 1. (6) 13.10.04 2,227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9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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