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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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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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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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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3.11.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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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20쪽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8.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달은 구름을 드나들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다가오는 커다란 구름의 품속에 안겼다. 도서관 밖은 그야말로 어둑어둑해져 시커먼 암실 같았다.

“내가 찾아온 이유는 짐작하겠지? W?"

"W?"

“아마도 가명이거나, 이니셜이겠지.”

인육만두는 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조금 전 뒤에서 습격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마치 한밤에 이야기나 하자고 찾아온 손님 같은 태도다. 위즈는 뒷골이 당겼다.

‘이 녀석은 내가 미끼란 걸 알고 있는 눈치다. 그러면서도 찾아왔다?’

이런 짓을 해서 인육만두가 얻을 이득은 무엇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이어지는 인육만두의 말도 위즈의 생각과 일치했다.

“긴말하지 않겠다. 난 널 죽이지 않겠다.”

“날 엿 먹이려고?”

“유저 혼자 해낸 일 치고는, 지나치게 수완이 좋았으니까. 초장부터 싹을 밟아놓는 게 좋다고 판단했지. 방법도 간단해. 이곳은 함정, 그리고 넌 미끼. 여기에 난 순순히 걸려들면 되는 거지. 그리고 함께 미노클을 뜨면 넌 한순간에 인육만두의 공모자로 낙인찍히는 거다. 후후후. 캐릭터를 지우고 다시 키우는 게 좋을 거야.”

“그게 마음대로 될까?”

“저항하시겠다? 직업조차 고르지 않은 무능력자가 무슨 수로 날 상대하겠다는 거지?”

인육만두는 단검을 꺼내 빙글빙글 돌렸다. 그 현란한 움직임에 휘말린 공기가 찢겨나가며 울부짖었다. 이건 스킬이 아닌, 실제 칼을 다뤄본 자의 솜씨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칼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즈는 침착하게 나무 몽둥이를 꺼내들었다.

“이걸로 곰도 잡아보았다. 이제 사람도 잡겠군.”

“어이쿠 무서워라. 맞는 건 아프니까 피해야겠네.”

실실 웃으면서 인육만두가 달려들었다. 위즈는 나무 몽둥이를 중단으로 곧게 세워들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인육만두의 팔이 기이하게 휘어지며 단검이 사각을 치고 들어왔다. 위즈는 무릎을 굽혀 공격을 흘리는 즉시 팔꿈치를 세워 인육만두의 아랫배를 찍어버렸다.

‘얕다.’

인육만두는 허리를 굽혀 충격을 최소화시켰을 뿐 아니라, 어정쩡한 자세에서도 단검을 던지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순수하게 손목의 탄력만 가지고 쏘아 보낸 단검이 날아들자, 위즈는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그 동작이 무안하게도 단검은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 단검은 위즈의 털끝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위즈는 슬쩍 걸음을 옮겨보았다. 눈에 보이는 공간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느낌이 든다. 나무 몽둥이를 슬쩍 내밀어보니 허공에 무언가가 턱하니 걸린다. 손으로 더듬어보니 아주 가늘디가는 실이었다. 몽둥이로 세게 내리쳐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실.

더 오션의 다양한 직업 중에서 이런 실을 이용하는 건 두 가지다. 일단 암살자는 실에 절삭력을 추가하여 공격에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이 실에는 그런 기능이 없다. 그저 질긴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인형술사?”

인육만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과연! 여기까지 알아내다니! 그보다 저 레벨의, 그것도 무능력자가 어떻게 실을 잡아낸 거지?”

“글쎄…….”

실의 정체를 알아챈 건 순전히 운에 가까웠다.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면 발견도 못했을 것이다.

‘그보다 상대가 인형술사라니.’

인형술사는 조합직업 중에서도 보기 드문 케이스다.

유랑극단을 찾아 인형술을 배우는 게 힘들어서인데, 일단 배우고 나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없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배우기 힘든 주제에 전투효율까지 낮다. 한마디로 유저들이 버린 직업이다. 그런 직업을 인육만두가 사흘 만에 얻었다?

“사흘 만에 혼자서 인형술을 터득했을 리는 없고……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겠군.”

인육만두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것도 엄청난 물량으로 말이지. 그러니 순순히 내 말대로 따르는 게 어때? 아직 사흘밖에 안 지났으니 서로 캐삭빵 하는 걸로 이번일은 묻어두자고.”

“광장에서 죽은 노인과 소년은, 인형술로 옮겨둔 거였나?”

“이봐?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벌써부터 그 정도 능력이라면, 정상적인 플레이로도 발군이었을 거다. 그런데 어째서?”

“인육만두는 미래를 위한 투자야. 그리고 난 훨씬 거대한 조직을 이루는 조각에 불과해. 이만 타협 하자고.”

위즈는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이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이해했다. 그런 성향을 드러내며 게임을 하는 단체는 하나뿐이다.

“갱이냐?”

“아…그런 셈이지. 그러니까 그냥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고 다른 캐릭터 키워.”

갱. 몰려다니며 폭력을 일삼는 무리.

과거엔 국가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결국엔 갱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인간의 폭력성은 게임 속에서도 발현되었다. 그 결과가 인육만두 같은 자들이다. 이들은 게임 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프라인 상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조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양자 간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면 절대 퇴치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다수 유저들은 게임 속에서 갱을 만나면, 척살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나 게임 초반이라면 더욱 그렇다. 갱들의 기반을 조금이라도 뒤흔들 수 있다면, 더욱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할 터이다. 그걸 위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유저들도 있다.

이에 대해 게임갱들은 게임에서 발생한 문제는 게임 속에서 해결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만약 자신들을 적대하는 유저들을 현실에서 괴롭히면, CP들이 매우 기뻐하며 수갑을 들고 달려들 테니까.

결과적으로 갱과 얽히는 순간 쾌적한 게임은 물 건너 간 것이다.

그렇기에 타협은 있을 수 없다.

“네놈들이 벌인 일 때문에, 내 계획이 초반부터 틀어질 뻔했다.”

위즈는 가까이에 있는 의자를 짚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지.”

낮게 미끄러진 의자가 인육만두를 향했다. 맞게 되면 정강이가 얼얼해질 정도로 걷어찬 것이라 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인육만두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즈를 비웃었다.

위즈가 날린 의자는 줄에 걸려 멈춰버렸다. 이미 인육만두 주위엔 보이지 않는 줄이 무수히 둘러쳐진 상태였다. 위즈가 달려들면 당장이라도 옭아매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줄부터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무능력자의 발상이란 빈곤하군. 하긴 스킬도 없이 싸우자니 걸리는 게 많겠지.”

하지만 그 비웃음은 곧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의자가 계속 날아들었다. 위즈는 인육만두를 중심으로 의자를 차서 날려 보내고, 책상을 이리저리 틀어놓았다. 그것은 인육만두를 중심으로 일정한 진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은 엉성하게나마 바리케이드라고 불러줄만한 것이었다.

“날 가둬둘 생각이냐!”

인육만두는 줄을 거두었다. 줄로 지탱되던 의자의 산이 삽시간에 허물어지며 길이 열렸다. 그곳으로 쇄도하는 것은 위즈가 날린 나무 몽둥이. 그것은 투창과 같은 맹렬한 기세를 담고 쏘아져왔다. 인육만두는 단검을 들어 흘려내었다. 몽둥이에 담겨 있는 힘은 그의 스탯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가슴을 노리고 들어온 탓에 궤도수정은 불가피했다. 나무로 된 표면이 깎여나가며 몽둥이는 빗나갔다. 이제 상대는 무기가 없다. 거둬들인 줄을 뿌려 상대를 옭아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렇게 판단한 인육만두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그의 눈으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크아아악!”


<15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눈을 맞아 10초 동안 거리감이 상실됩니다.>


인육만두는 다시 줄을 둘러 방어하는 한편, 무엇에 공격당했는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그의 눈에 위즈가 무언가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동작을 멈추는 게 보였다. 아니, 그보단 끊어내듯 내쳤다고 하는 게 정확했다. 이번엔 이마였다.


<8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고통을 꾹 참으며 인육만두는 무기의 정체를 확인했다.

“천 조각?”

인육만두는 이해하지 못했다. 천 조각 따위가 어떻게 데미지를 입힌단 말인가? 그 표정을 본 위즈는 인벤토리 속에서 돌을 꺼내 보여주었다.

“골리앗과 다윗의 이야기는 알고 있겠지?”

너무도 적나라한 힌트였다.

“슬링!”

“덧붙이자면, 의자는 날 보호하려는 게 아니다. 인육만두 네놈의 움직임을 제약하기 위한 장애물이지.”

위즈는 돌을 재운 천조각을 정확히 한 바퀴 반 회전시킨 다음 뿌려냈다. 돌멩이는 인육만두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빨리 빠져나오지 않으면, 돌에 맞아 죽게 될 거야.”

위즈는 부지런히 돌을 재어 쏘아댔다.

“이익!”

인육만두는 단검을 들어 날아드는 돌을 이리저리 쳐내기 바빴다. 확실히 궁지에 몰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실 궁지에 몰린 건 위즈였다. 제대로 된 스킬도 없이 싸움이 가능할 리 없었다.

‘이 상태로는 방어밖에 하지 못해.’

나무 몽둥이를 버리고 슬링을 선택한 것도 그래서였다. 돌은 더 오션 곳곳에 널려 있다. 이렇게 편한 무기를 위즈가 마다할 리 없다. 하지만 슬링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슬링은 잘만 사용하면 곰도 한방에 잡을 무기지만, 그 본질은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 던지는 것에 불과하다. 즉, 큰 데미지를 주진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야금야금 체력을 깎아먹고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겠군.’

치명타가 터지면 좋으련만, 처음 눈과 이마를 맞춘 뒤로는 급소다운 곳은 맞추지도 못했다. 위즈는 처음 세운 계획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돌이 바닥난 척을 하며 도서관 밖으로 나온 것이 계획의 시작이었다. 잔뜩 열 받은 인육만두가 뒤를 쫒았다. 확 트인 바깥은 움직임을 제약하는 요소가 없다. 그것은 위즈에게도 마찬가지.

날이 흐린데도 도서관 밖은 어둡지 않았다. 그사이 점등인이 지나갔는지, 가로등에 불이 켜져 있다.

“어때? 무능력자의 발버둥을 겪어본 소감이?”

“확실히……내가 너무 우습게 본 건 인정한다. 장난은 끝이다. 지금부터는 스킬을 사용하겠다.”

위즈는 천 조각을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이렇게 확 트인 공간이라면, 인육만두가 돌을 피하고도 남았다. 그래도 손이 허전해서 일단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난 골리앗처럼 멍청하지 않다. 그리고 넌 다윗이 아니지.”

인육만두의 손에서 빛 무리가 어른거린다. 전투스킬과 보조스킬은 레벨이 낮을수록 강한 이펙트가 나타난다. 이것은 어느 직업을 막론하고 공통된 현상이다.

‘확실히 인육만두의 스킬은 미숙하다. 그렇지만 난 미숙한 스킬조차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들은 모두 비전투 스킬들 뿐. 게다가 카무플라주의 영향으로 있던 스텟마저 반 토막이다. 그런 상태로도 인육만두를 도발했으니, 나름 분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위즈는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만든 지 사흘 밖에 안 된 캐릭터에 애정이 생겨서 그러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저들의 레벨은 높아질 것이고, 그때는 갱들의 방해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세지겠지. 이런 싸움, 익숙해지는 게 좋아.’

위즈는 후회 없는 싸움을 원했다. 자신의 플레이는 단순한 방구석 폐인의 그것과 같아서는 안 되었다. 이 싸움은 네메시스로 연결된 폐쇄구역을 unlock시키려는 도전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 중 하나일 뿐이다.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

“실뽑기!”

번쩍이는 선들이 위즈의 주변에 얽히고설키며 드리워지더니 사라져갔다. 그 위치를 기억해둔 위즈는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하나 꺼내 마셨다.

인육만두는 코웃음 치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미리 뿌려둔 줄이 위즈를 중심으로 좁혀지더니 미라처럼 몸을 휘감아버렸다.

“꼼짝없이 잡혔구나. W! 이제 사이좋게 미노클을 나가자. 그러면 의심 많은 왕자님은 반짝반짝 닦아놓은 처형대를 쓰게 되었다며 좋아하겠지.”

“이겼다고 착각하지마라.”

“허세부리기는.”

인육만두는 위즈의 몸에 줄을 연결했다. 그러자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인다.

‘마리오네트의 기분이 이런 건가.’

위즈의 불쾌한 속내를 눈치 챈 인육만두가 어깨를 두드렸다.

“그냥 빠져나가면 재미없으니까, 지나가는 놈 아무나 공격하는 건 어때?”

그러면서 단검까지 쥐어주었다. 확실하게 공범으로 찍히라고 이러는 건 알지만, 제압된 적에게 무기를 주는 건 역시 바보짓으로밖에 안 보인다.

“이래봐야 더 안 좋은 일만 생길 뿐이다.”

“처형되기 전에 도망친 놈이 잡혀봐야 처형당하기 밖에 더해?”

제대로 주제파악을 하는 놈치고, 인육만두는 지나치게 텐션이 업 되어 있다. 그의 말은 아침 메뉴가 비빔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너무 즐기는 것 같군. 버림 말의 역할이 그렇게도 좋은가?”

“기왕 버리는 거, 이렇게 화끈하게 쓰고 버리는 게 좋잖아.”

인육만두는 스킬을 해제하여 위즈를 속박한 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위즈의 몸은 흐느적거리며 인육만두에게 안겼다.

“역시 유저를 조종하는 건 힘들군.”

인육만두는 위즈가 바로 일어서게 만들려 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갑자기 위즈의 몸이 배 가까이 커져버린 탓이었다. 도서관 안에서 위즈가 키를 줄여 공격을 피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인육만두는 새삼스레 놀라진 않았다. 하지만 위즈와 너무 붙어 있는 건 충분히 문제가 된다.

“으윽!”

기대오는 위즈의 몸은 축 늘어져 있어 그렇지 않아도 미숙한 인형술로 조종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커져버린 키 때문에, 매달아둔 줄의 위치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정교함을 요하는 인형술은 그 같은 오차에도 실패를 낳았다.

위즈는 인형술의 영향에서 벗어나버린 것이다.

인육만두는 단검을 꺼내 찔러 들어갔다. 적어도 부상정도는 입혀서 다시 인형술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위즈는 칼을 맞고도 경직되기는커녕, 더욱 미쳐 날뛰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흐느적거리는 팔다리를 휘두르며 밀어붙이는 위즈의 모습은 언뜻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다. 인육만두는 위즈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는 여러 번의 살인을 저지른 PK이기 때문에, 파티를 맺지 않아도 위즈의 체력 게이지가 뚜렷이 보인다. 붉은 색이어야 할 막대그래프가 초록색으로 물들며, 천천히 깎여나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중독 상태였다. 그는 조금 전 위즈가 마신 포션을 떠올렸다.

“어떤 독은 몸이 제멋대로 날뛰게 만든다지?”

“서, 설마? 암살자의 의지?”

“빙고!”

위즈가 마신 독의 이름은 인육만두의 말대로 ‘암살자의 의지’.

제압당하거나, 죽음을 앞두고도 암살을 하도록 만들어진 약물이었다. 위즈는 초록의 단검-던컨에게 의논한 결과, 암살자의 의지를 한 병 구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인육만두와는 레벨부터 역량까지 차이가 난다. 그런 적을 상대로 싸우다간 금세 전투불능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미리 마셔둔 건데, 절묘한 상황에서 약발이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미 인육만두는 전투를 포기하고 떨어지려 하고 있다.

“그렇겐 안 돼지!”

위즈는 인육만두를 껴안고 엎어져버렸다. 미처 철거하지 못한 줄에 걸린 두 사람은 허공에 걸린 채 버르적거렸다. 그 모습이 거미줄에 걸린 벌레들 같다.

“놔!”

“네가 준 선물이 아까워서라도 사용은 해야지?”

위즈는 단검을 든 손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절제 없이 움직이던 팔이 인육만두를 향해 움직였다.

“이 미친놈아!”

인육만두도 단검을 꺼내 일격필살을 시전 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자세 때문인지 위력의 절반도 나오질 않는다. 위즈도 더욱 집중해 단검을 움직였다.

“크헉!”

“얻어 걸리는구나!”

가까스로 옆구리에 쑤셔 박은 단검이 팔의 경련에 따라 마구 휘어졌다. 인육만두의 몸이 펄떡거렸다.


<적에게 2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난도질을 깨달았습니다.>

<잔인한 공격으로 적에게 추가 데미지 50을 입혔습니다.>

<연속공격 보너스!>

<적에게 추가 데미지 30을 입혔습니다.>

<체력이 20 남았습니다. 빈사상태에 빠집니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시야가 붉어지며 몸이 축 늘어진다. 위즈는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이를 갈았다.

‘조금만 더하면 죽일 수 있었는데.’

안타까웠다. 인육만두는 아직도 숨이 붙어있다. 핏발선 눈을 들어 노려보는 폼이 지옥의 악귀 같다.

“너 이 자식! 모략이고 뭐고 죽여버리겠다!”

단검이 위즈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왔다.

‘분하다.’

위즈는 눈을 감았다. 이제 더 오션의 악명 높은 첫 죽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낮은 울림과 함께 붉은 색의 막이 단검을 감쌌다.

그리고 위즈의 옆구리를 찌른 단검은 바스러져버렸다. 인육만두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손잡이만 남은 단검을 내려다보았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린 인육만두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도서관 주변은 기사들로 포위되어 있었다. 낯익은 얼굴도 보인다. 왕자는 천연덕스럽게 박수를 치고 있다.

“세상을 구하려 찾아온 이방인의 의지. 잘 보았습니다. 설마 그런 상태로도 포기하지 않다니. 감탄했습니다.”

왕자가 눈짓을 하자 성직자가 다가와 위즈의 상처를 치료하고, 독까지 해독해주었다. 위즈는 쓴 웃음을 지었다.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나타난 왕자가 얄미웠지만, 예상했던 일 아닌가.

“그래서 결과는?”

“합격. 이제 물러서셔도 좋습니다. 이제부턴 저희들이 처리하겠습니다.”

시험은 끝났다. 왕자의 미소에도 악의는 없어 보인다. 위즈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일국의 왕족에게 인정받는 대가로 이정도 고생이면 싸게 먹히는 거다.

“누구 맘대로! 로그아웃!”

인육만두는 어떻게든 자리를 빠져나가려했지만 그의 눈앞에는 야속한 메시지만 떠올랐다.


<체포된 범죄자는 처벌받기 전엔 로그아웃이 불가능 합니다.>


“실뿌리기!”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 어린 빛 무리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위즈와 왕자를 노렸다. 그러나 그것은 허공의 한 점으로 빨려들어 가버렸다. 왕자는 조소했다.

“이 자리에는 마법사도 있다네.”

궁정차석 마법사인 토크렘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바닥에서 덩굴식물이 자라나 인육만두의 팔다리를 꽁꽁 묶었다.

“다렌!”

왕자의 부름에 그의 충직한 기사는 큼직한 도끼를 들고 나섰다. 인육만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렌이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라. 단, 욕설과 저주는 용납하지 않는다.”

“필요 없다. 이게 끝이 아니니까.”

도끼가 휘둘러지고 인육만두의 몸은 붉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처형된 자는 두 번 다시 부활할 수 없다. 캐릭터 인육만두의 데이터는 그렇게 소멸했다.


◇◇◇◇◇◈◇◇◇◇◇◇◈◇◇◇◇◇◇◈◇◇◇◇◇


인육만두가 처형되고 이행될 계약만이 남았다. 왕자는 위즈에게 왕실금화를 건네주었다. 위즈는 받자마자 던컨에게 넘겨버렸다.

“어째서 그걸 저자에게 주는 거죠?”

“암살자의 의지는 꽤나 귀한 약물이더군요.”

어떤 상태이상이라도 무시하고 움직일 수 있는 약물이기 때문인지, 암살자의 의지는 가격이 매우 비쌌다. 이미 제조법이 실전되어 세상에 몇 안남아 부르는 게 값이었다.

“전혀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던컨씨가 크로델 보육원을 다시 세운다니 좋은 일 하는 셈 치렵니다.”

위즈는 발길을 돌렸다.

“이제부터 무얼 할 건가요?”

왕자의 물음에 위즈는 도서관을 가리켰다.

“한동안은 책에 파묻혀 살 겁니다.”

인육만두를 상대하며 위즈는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았다. 적에게 달려들어 개싸움을 걸고도 깨졌다. 스킬의 부재는 정말 큰 문제다.

‘하지만 집중력 스탯 100에 도달하면……’

비록 쿠소캐릭일지언정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작가의말

일주일에 4편, 무사히 끝마쳤습니다.

이 다음엔 변변찮은 스킬도 없이, 약물도핑으로 고생한 위즈를 위해

기연아닌 기연을 선물해 줄 생각입니다.

물론 집중력 스탯도 100까지 채워야죠.



인육만두(謹弔) 삽화 있습니다.

http://blog.munpia.com/gazha/category/28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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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1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1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8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0 31 22쪽
»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3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2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0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2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5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4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8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0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1 42 23쪽
9 1. (8) 13.10.14 1,702 29 23쪽
8 1. (7) +1 13.10.05 3,285 60 25쪽
7 1. (6) 13.10.04 2,227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8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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