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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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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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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0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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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1. (7)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1.

“아니, 게임과 융합하려 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군.”

편재는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정32면체의 공간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아이콘으로 들어찬 벽면은 편재가 발을 내딛음으로서 바닥이 되었다.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가 된 느낌이다.

그때마다 바닥의 아이콘을 확인하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바깥에서 테러범이 설치든 말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런 건 편재에게 중요치 않았다. 오로지 폐쇄구역을 열고 그녀를 찾아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때를 물으면 지금이라고 답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열기는 금세 식어버리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셸터……거대한 기계장치. 이 시대에 구현된 애니악.”

도시하나와 맞먹는 무식한 크기의 기계장치는 이제까지 들어본 적도 없었고, 그저 SF에나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효율성에서 불합격 아닌가. 그런데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런 기계 속으로 들어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강박사님은, 이게 최소 10년은 되었을 거라 하셨지.”

만약 이곳이 지상, Zero-ground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는 콜로니다. 한층 한층이 계획적으로 지어지는 곳. 그리고 셸터는 거주지역의 아래에 있다. 그 말인즉슨, A블록을 건조할 때 셸터 역시 만들어졌다는 뜻.

현 A블록은 80년 전에 완공했다. 약 200년 전부터 짓기 시작했으니, 이 셸터는 그만큼 오래된 물건이다. 그렇다면……어째서 강박사는 적어도 10년이라는 말을 했을까.

“완성이 10년 전이라는 소리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난데없이 코어를 교체하며 가동된 ‘프로젝트 네메시스’도 그렇다. 편재는 셸터에도 core unit이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이 수상쩍은 기계에 모든 걸 맡겨야만 하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왔을 때부터 떠올린 거였지만, 실제 체험해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셸터는 고성능 단말기 정도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덩치만 컸지 그것밖에 안 되는 물건인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네메시스’ 가동 후의 모습은 아니다.

난공불락이던 폐쇄구역의 코어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했으니, 지금의 편재에게는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절실한 때,

필요한 도움을 주는 존재가,

공교롭게도 눈앞에 떠억 하니 나타났다?

편재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떠올린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이 상황은 마치 잘 짜인 연극과도 같았다. 주인공이 감당 못할 고난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호시탐탐 끼어들 틈을 노리던 ‘우연’이 감독의 지시에 따라 등장한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며 엔딩.

그 무대는 속이 울렁거리는 붉은 배경,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기계장치의 신은 ‘셸터’

지금 셸터는 다시 가면을 벗고 ‘네메시스’라는 모습으로 서 있다.

이대로 연극을 끝낼 것인가?

“네메시스는 신화 속 복수의 여신이지. 이런 피범벅 공간과 딱 어울리는군.”

하드웨어인 셸터는 아버지의 사람들이 손봤을지 몰라도 소프트웨어는 아니다.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다. 누가 이걸 만들었는지 몰라도, 이름부터 불순한 의도가 엿보이는데도 장단에 놀아나야 할까.

생각이라면 충분히 했다. 이제 결정해야 할 때.

“괴상한 약물까지 맞아가면서 여기에 들어왔다. 네 녀석이 악마든 뭐든 상관없다! 철저히 이용해주겠어!”

강렬한 기파가 편재의 몸에서 내뿜어졌다. 붉은 공간이 밀려나며 원래의 하얀색으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여성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기분 때문일까. 무기질덩어리를 연상시키던 딱딱한 어조가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key를 확인. 의지를 이어받습니다.』

『1시간 후 융합을 시작합니다. 성공률 32.8888%』

『현재 연결이 약해 실패 확률이 높습니다. 해결방법을 제시해 주십시오.』


로그아웃을 외쳐도 무반응, 메뉴를 불러와 작업하려 해도 무반응으로 일관하던 시스템이 편재의 명령을 기다렸다. 어찌된 상황인지 편재는 금세 이해했다. 조금 전 각오를 다지며 외치던 순간부터 그랬다. 네메시스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고스란히 보이고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할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 줬다는 거로군. 과연 브림캐스터의 기술다워. 생각뿐 아니라 의지도 반영한다 이거지?”

키보드와 모니터가 사라진 것도 이해가 갔다. 가상현실에 구현된 이 몸뚱이야말로 입력장치이자 출력장치였던 것이다. 벌써 네메시스는 편재의 의문에 답변을 하고 있었다.

‘네메시스’ 자체에는 나쁜 의도가 없다. 그저 다른 시스템에 잠식하여 모자란 부분을 보완하려할 뿐이다. 그러기위해 융합을 하려는 것이다. 편재의 도움을 받아.

그 융합의 결과로 인한 폐쇄구역의 Unlock 가능성도 사실이었다.

소수의 인원이 해킹으로 뚫는 건 이미 시도해보았고, 녹록치 않음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헌데 만약 융합 후 ‘레드 오션’을 플레이하는 것만으로 현실세계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보다 손쉬운 방법이 또 있을까!

다수의 게임유저들이 퀘스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왜곡된 정보가 폐쇄구역으로 흘러가 보안을 약화시킨다. 레드 오션을 즐기는 유저가 1천명이라면, 폐쇄구역은 1천명을 상대해야 한다. 실제로는 50만 가량이 즐기고 있다하니, 그 물량을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성공률이 3할이다. 뒤집으면 실패 확률이 7할.

‘네메시스’의 결점 때문이 아니다. 징검다리가 되어줄 ‘레드 오션’이 문제다.

2년이나 서비스 된 게임이건만, 군데군데 [미 구현]상태의 시나리오가 많다. 관련된 오브젝트와 특수효과까지 대입하면, 사실상 구멍이 숭숭 뚫린 넝마조각이나 마찬가지다. 이것들을 만들지 않으면 게임속의 퀘스트는 발동조차 되지 않을 테니, 당연히 실패 확률이 높을 수밖에. 사실 성공률 3할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수치였다.

“팔자에도 없는 게임 제작을 하게 생겼군.”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셸터의 출력이며 능력을 고려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부족한 것은 시간과 사람의 숫자. 이 같은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편재는 구형 단말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강박사와 구경할 때 곳곳에 방치돼있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현재 셸터에는 구형 단말기 30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종류는?”


『2, 5, 6, 7세대입니다.』


“2세대는 몇 대지?”


『총 5대입니다.』


단말기의 역사는 매우 길다. 자그마치 800년 가까이 되었으며 다양한 버전이 생산되었다.

1세대 단말기의 이름은 PC. IBM을 표준으로 번성하던 이 단말기는, 1차 종말전쟁을 기점으로 사라져갔다. 이후 등장한 2세대부터는 더 이상 PC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 사유하며 창조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원래 워게임에 쓰려고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여가생활에 크게 기여했기에 지금도 버전업해서 많이들 쓴다.

실제 이 당시 2세대 단말기가 쓴 문학작품과 시나리오가 제법 많다.

“2세대는 전부 레드 오션의 스토리라인만 입력시켜. 7세대는 수동조작 할 수 있게 준비해주고. 레드오션에 Lock된 데이터는 얼마나 되지?”


『전체데이터의 70%에 해당합니다.』


“구현시키지 않았을 뿐이지, 대략 틀 정도는 잡아 놨다 이거군. 잘 됐어. 지금 해커로부터의 공격은 감지되나?”


『광범위한 탐색이 감지되었습니다. 공격당할 확률 0%』


“연결 안할 거니 상관없어. 융합 후 해킹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겠군.”


편재는 해커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지금 네메시스의 일에 매달리는 것은 시간제한 때문이지, 해커를 만만하게 봐서가 아니다. 레드 오션의 문제점은 단말기의 도움을 받으면 대충 30분이면 해결할 수 있다. 성공률이 80%가까이 올라가면, 모든 것을 네메시스에 맡기고 자신은 7세대 단말기로 해커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인간이라면 오늘 벌어지는 축제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건 편재가 파이오니어의 후예여서가 아니다. 그걸 잊은 순간 스스로 쓰레기임을 인증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침입자들은 하필이면 오늘 싸움을 걸어왔다.

구원절에 피를 보고자하는 무리들을 가만두어야겠는가.

편재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셸터와 연결된 단말기들이 일제히 기동했다.


◇◇◇◇◇◈◇◇◇◇◇◇◈◇◇◇◇◇◇◈◇◇◇◇◇


편승을 떠나보낸 강박사와 엔지니어들은 12인의 체험자들이 들어가 있는 코쿤을 살피던 중이었다. 편재의 경고대로 외부연결이 물리적으로 단락되어 있는가 살피기 위해서이다.

“허허……이러니 먹통이 됐지.”

강박사는 작은 조각을 들어올렸다. 엄지손가락 하나만한 원통에서는 연료전지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부속품으로 위장한 스파이 봇이었다. 단자의 연결부위와 닮은 그것은, 사람이 다가가자 쑥 뽑혀 어디론가 도망가려고 했다. 강박사는 들고 있던 몽키 스패너를 내리쳐 박살내버렸다. 코쿤마다 붙어 있던 스파이봇을 처리하자 통신회선은 정상화되었다.

“혹시 다른 곳에도 있을지 모르니 좀 더 둘러보세.”

그들은 동력선과 냉각파이프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때 엔지니어 하나가 다급하게 강박사를 찾았다. 달려가 확인하니 전압계의 바늘이 널을 뛰고 있었다. 계획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는 증거였다.

“설마 해킹을 당했나? 아니면 냉각기의 고장?”

하지만 냉각기는 정상작동이었다. 강박사는 벽에 기대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많은 전력을 소비할 이유가 없었다.

이 거대한 셸터를 기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발전기는 4개.

최대 출력으로 움직인다면 3개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과부하나 기타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가 힘들다. 그래서 넉넉하게 4개의 발전기를 돌리고 있었는데도 전력이 부족하다. 어쩌면 조금 전 보았던 스파이 봇이 남아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 넓은 곳을 몇 사람이 다 살피긴 힘드니, 아무래도 사람들을 더 데려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긴 왜 이리 따끈해?”

문득 기댄 곳을 짚어보며 강박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셸터 보수를 위해 가져다둔 단말기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이걸 켜뒀어!”

단말기의 전원을 내리려던 강박사는 암릿이 울리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뭔가?”

- 박사님. 셸터에서 승인되지 않은 조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단말기들도 지금 제멋대로야! 누가 움직이는 거지? 외부조작인가?”

- 아닙니다. 명령은 코쿤에서 지시되고 있습니다.

지금 멀쩡히 움직이는 건 그가 알기론 한 사람 밖에 없다.

“편재군이? 으음! 알겠네.”

서둘러 통신을 끊은 강박사는 즉시 엔지니어들을 닦달하며 송전시설로 이동했다.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재가 단말기를 사용하니 꺼선 안 된다. 반드시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공급되는 전력이 부족해지면, 셸터는 정지하고 만다. 그리되면 셸터와 연결된 사람이 어떻게 될지, 강박사는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프로그램화 된 인간의 정신-그 일부가 강제로 찢겨져 셸터에 남겨지고도,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리 없다.


◇◇◇◇◇◈◇◇◇◇◇◇◈◇◇◇◇◇◇◈◇◇◇◇◇


- 오늘도 빠르고 활기차……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한 흔들림은, 안내 멘트마저 날려버렸다. 뭉클거리는 충격완화제 속을 허우적거리며 편승은 신음을 흘렸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충격이 컸다. 이 기분 나쁜 충전물이 아니었다면 진짜 죽었을지도 모른다. 편승은 암릿을 벽면에 가져다 댔다. 한시라도 이 쇳덩이를 벗어나고 싶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엘리베이터안에서 녹다만 분홍색 젤이 왈칵 쏟아졌다. 편승도 그 흐름에 휩쓸려 나와 바닥에 엎어졌다. 꼭 토사물에 낀 건더기의 꼴이었다.

편승은 들러붙은 젤 때문에 애를 먹었다. 일어서려고 해도 자꾸만 미끄러진다. 그러나 더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충격완화제는 증발되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꽃향기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이, 방향제 성분도 함유되어 있는 것 같았다.

편승은 다소 후줄근하지만 말끔한 모습으로 일어섰다. 옷에는 아직도 젤이 달라붙어 있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릴 것들이다.

고속엘리베이터에서 안전키를 뽑아들며 편승은 중얼거렸다.

“……두 번은 못 탈 물건이다.”

솔직한 그의 감상이었다. 이걸 탔던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것을 그는 알까.

“으음.”

도착 시 전해진 충격이 아직도 골을 지끈지끈 울렸지만, 편승은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강박사의 말대로 그의 장점은 튼튼한 몸이다. 이 몸을 무기삼아 이제까지 편家를 지켜오면서, 결코 편하기만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내딛는 걸음은 점차 빨라졌고, 두통이 완전히 가셨을 때는 뜀박질로 바뀌었다. 그의 코로 들어온 산소는 피하지방을 모조리 태우며 에너지를 공급했다. 근육은 터질듯 부풀며 바닥을 밀어냈다. 지하 5층에서 3층까지는 금방이었다.

“음?”

편승은 벽면에 뚫린 구멍을 보고 멈춰 섰다. 강한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테두리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꼈다.

“침입해 들어온 곳인가?”

이미 Code-Green, 2세대 인형병기 스캐럽의 침입을 보고받았다. 대인전의 전문가인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모습을 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관절을 부수고 머리를 공격하면 인형병기들은 총 쏘고 폭탄 뿌리며 저항하다가 아군에게 벌집이 되었다.

편승은 근육을 긴장시켰다. 신경가스를 살포하는 개조형이니 맨몸으로 상대하기엔 까다로웠다. 거기다 아군이 근처에 없으면 마무리도 힘들 것이다.

조명마저 나가버려 시커먼 구멍 속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 적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공간은 쉽게 발을 내밀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편승은 아무 거리낌 없이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행동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벽을 더듬어 작은 틈을 발견한 편승은 암릿을 갖다 댔다. 적외선 센서가 암릿을 훑었고, 벽의 일부가 소리 없이 열렸다. 편승은 조명 막대를 구부려 높게 쳐들었다. 형광물질이 든 앰풀이 깨지며 막대는 파르스름하게 빛났다.

드러난 공간은 여벌의 강화복과 무기가 들어차 있었다.

아무리 강해도 편승 역시 인간이다. 총에 맞으면 죽고, 신경가스를 마시면 심장이 멎는 건 똑같다. 전투역시 마찬가지. 뛰어난 무술실력은 전투에 유리한 요소지만, 총과 폭탄은 그걸 한 순간에 뒤엎을 위력을 가지고 있다. 편승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맨몸으로 기계와 싸우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 무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찾은 게 벽에 숨겨진 무기다.

종류별로 진열된 무기 하나하나는 위력이 확인된 것들이다. 정비도 잘되어 있어 즉시 들고 나가도 손색이 없다. 그는 총 같은 건 본체만체하고 큼직한 바디벙커를 집어 들었다. 근육으로 뒤덮인 몸을 충분히 가릴 만큼 크고 무거웠다.

“괜찮군.”

편승의 소매에서 작은 고무공 같은 게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한차례 통통 튀던 그것에서 하얀 섬광이 터져 나왔다.

“크악!”

투투투투. 어둠속에서 불꽃이 혀를 날름거렸다. 섬광탄의 빛을 직시한 적들은 그저 편승이 서 있는 방향으로 총을 난사할 뿐이었다. 그랬으니 제대로 맞을 리 없다. 그나마 날아드는 총알은 모조리 바디벙커에 막혔다.

편승은 바디벙커를 앞세워 가운데 서 있는 적을 들이받았다. 달려드는 코뿔소에 치인 것처럼, 상대의 몸은 벽까지 날려가 푹 박히더니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편승은 바닥의 AK소총을 차올려 쥐었다.

‘하필이면 총신을……’

아직까지 뜨끈뜨끈한 총신이었지만 바꾸어 쥘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편승은 오른쪽 남자의 손목을 후려갈겼다. 접이식 개머리판이 휘어졌고, 남자의 손목은 뚜둑 소리를 내며 덜렁거렸다.

“으아아악!”

손에 쥔 것을 다시 휘둘러 남자의 비명을 잠재운 편승은 바디벙커를 세우며 몸을 빙글 돌렸다.

으직. 뜨끈한 액체가 얼굴에 튀었다. 편승은 소매로 얼굴을 닦아냈다.

모든 것이 불과 3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편승은 첫 공격으로 날려버린 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뇌진탕으로 맛이 가 있었다. 호흡이 불규칙하고 눈도 풀려 있는데 출혈은 없다. 두부출혈이 있다면 장애가 남을 수 있겠지만, 그건 편승이 알바 아니다. 그저 의료진에게 보내면 알아서 고쳐낼 거라고만 생각했다. 편승은 남자를 둘러메며 팔을 부러뜨린 남자를 살폈다. 뒤척이는 걸 보니, 뇌진탕은 아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처리한 남자는 확인할 필요도 없다. 무릎을 꿇은 사내는 머리가 없었다.

“둘이군.”

편승은 되도록이면 죽이지 않고 끝내려 했다. 나중에 이들의 배후를 캐내려면 생존자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건 뒤처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허나 이건 윗사람의 고충일 뿐 아랫사람들이 이해해줄까. 동료를 잃은 빌딩의 무장경비들은 아마 이들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편승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생존자를 남기려는 것이다.

팔을 부러뜨린 자에게 다가간 편승은 그 팔에 발을 얹고 지그시 밟아주었다.

“으아아!”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 남자는,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덜렁거리는 팔 때문에 눈물을 쏟았다.

“으흐흐허허엉.”

애간장이 끓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편승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신이 꼭 나쁜 놈이 된 것 같았다. 곧 남자는 자신의 부러진 팔을 허벅지에 걸쳐놓고 심호흡을 했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나름 진정하려 애쓰는 모습에 편승은 심술이 났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AK소총을 걷어찬 건 그래서일 것이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남자는 구부러진 총신을 밟은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고개가 위로 젖혀졌다.

“아, 아아.”

남자는 몸을 떨며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이제 상황파악 되시나?”

편승은 메고 있던 반시체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뇌진탕인 상태라 살살 다뤄야 했으나, 그는 가차 없었다. 그동안 목 없는 시체까지 봤는지, 남자는 부러진 팔로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 입에선 의미모를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편승은 혀를 찼다. 살기를 흘리지도 않았는데 저런 반응이라면 고문도 무의미하다.

어떻게 된 게 용병이라는 작자가 이렇게나 망가질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편승은 구속 장치를 가져와 반시체부터 채워주었다. 팔다리에 끼운 고리는 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다. 키워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기어서 도망가려는 남자도 어렵지 않게 구속시켰다. 이쪽은 혀를 깨물 것 같아 친절하게 턱뼈도 뽑아주었다.

“으으어어!”

편승은 버둥대는 남자의 야간투시경을 벗겼다. 파이오니어 컴퍼니의 글자가 선명하다.

“구닥다리 장비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네.”

선글라스의 테를 가볍게 두드리자, 편승의 시야에서 붉은 점이 사라져갔다.

그의 선글라스는 꽤나 정밀한 전자장비였다. 이것엔 택티컬 바이져라는 그럴 듯한 이름이 있었는데, 보안 시스템과 연결되어 현장상황을 모니터링 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어둠 속에 숨은 적의 위치 파악 정도는 손쉬운 일이었다.

그가 구멍 속으로 거리낌 없이 들어온 시점에서, 세 명의 테러리스트는 죽은 목숨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곳곳에 설치된 무장을 원격 유도할 수도 있어서, 파이오니어 빌딩 안에서만큼은 무적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곳의 천장에 20㎜밸컨이 있었다면, 저들은 순식간에 찢겨나갔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무기가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아들의 경고대로라면 이 일에 해커가 끼어있으니, 택티컬 바이져에 의존하는 건 좋지 않다.

일단 그는 강화복부터 걸쳐보았다. 가장 큰 사이즈였지만 꽉 끼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벌의 목숨을 포기할 순 없다. 강화복을 느슨하게 풀어 입는 정도로 타협한 편승은 무기를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기계를 상대로는 역시 펄스라이플이 좋았다. 하지만 펄스라이플은 조금 전의 싸움으로 박살나버렸다.

결국 편승은 구식 화약 무기로 눈을 돌렸다. 이쪽은 멀쩡한 게 많았다.

잠시 그것들을 둘러보던 편승은 두 가지를 골랐다.

하나는 흔히 줄여서 미니건이라고도 부르는 투박한 물건.

20㎜밸컨포를 소형화 시킨 물건으로, 사람이 들고 쏘는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특정 위치에 거치해놓고 쓰는 것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일인 무적을 자랑하는 무기였다. 하지만 현실에도 그런 인간은 존재했다. 편승은 한손으로 가뿐하게 들어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장탄수는 많아 보이는군.”

백팩 탄통을 하나 더 챙긴 편승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샷건도 하나 챙겼다. 산탄의 위력이 기계에도 먹힐지 어떨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고른 것들은 한 가지 장점밖에 없었다.

넓게 탄막을 형성하여 ‘어떻게든 맞춘다’는 것.

편승은 스스로의 사격실력에 자신이 없었다. 겨우 반타작 하는 실력을 믿고 까불다가는, 목숨이 간당간당 할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우악스러운 무기들만 택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주력으로 쓸 무기도 필요하다.

그의 장기는 검. 정확히는 무술에 사용되는 모든 무기다.

단분자 커터를 고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리만 좁힐 수 있다면 이 한 자루로도 다 해먹을 수 있을 것이다. 괜히 무술가들의 정점이 아니다.

다른 콜로니로 놀러 가면, 지금도 제자 삼아달라며 매달리는 자가 발에 차인다.

“그럼 가 볼까.”

이런저런 장비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편승은 반대편 구멍으로 사라졌다.


◇◇◇◇◇◈◇◇◇◇◇◇◈◇◇◇◇◇◇◈◇◇◇◇◇


“허억허억.”

목에서 피리소리 나도록 움직여본 게 얼마만일까. 초짜 용병 시절에나 그랬을 거다. 의족을 달고 나서부터는 입에서 단내 나도록 움직여도 절대 헐떡이지 않았다. 다리를 잃은 뒤로 무지하게 단련한 때문이다. 의족 덕에 전투는 수월해졌지만 어디 내 다리보다 좋을까. 매일매일 쉬지 않고 트레이닝 룸에서 땀을 빼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 덕에 먹는 양도 늘어서 아침엔 핫도그를 허겁지겁 먹어댔다. 그래도 허기진다.

브렌은 에너지 바를 입에 물었다. 맵고 짠 음식이 그리워졌다. 꿀을 굳혀 설탕 옷을 입히고 다시 초콜릿에 빠뜨린 물건은 그의 미각에 심각한 데미지를 주었다. 하지만 어쩌랴. 당장 기운 차릴 물건이라곤 이런 것밖에 없다. 그것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브렌은 펄스라이플을 정비했다.

결과는 상태 양호. 싸우는 동안 밟히거나 총에 맞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이 꼴로 만들고 사라진 녀석을 떠올리니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리암…….”

서로 다른 편으로 갈려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은 브렌도 싫었다. 하지만 용병의 세계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라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전력으로 녀석에게 덤벼든 것도 잡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반면 리암은 피하기만 했다. 박살난 줄 알았던 스캐럽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리암은 죽었을 것이다.

“물러터진 녀석.”

시작부터 리암은 브렌을 제압하려고만 했다. 그건 결코 말뿐이 아니었다. 녀석이 데려온 스캐럽만 봐도 그렇다.

파이오니어 빌딩이 무장 빌딩이라는 건 굳이 용병이 아니더라도 다 아는 사실. 그런데 스캐럽의 기본 무장을 떼어내고, 신경가스와 촉수를 우겨 넣었다.

다수는 가스로, 소수는 촉수로 상대한다.

신경가스와 촉수는 일견 좋은 조합으로 보인다.

허나 신경가스는 항독청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화학전 전용 풀셋을 갖추면 아예 무용지물이 된다. 거기에다 가스의 살상력마저 약했다. 브렌은 두 번째 가스 공격을 받았을 때, 팔이 움직여지던 것을 기억해냈다. 제대로 된 신경가스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촉수의 성능은 더욱 엉망이다. 목을 감아 질식시키거나 부러뜨리는 게 전부다. 결정타를 내기 힘든 것이다. 더구나 단분자 커터로도 쉽게 잘리는 재질이다.

이건 개조가 아니다. 멀쩡한 스캐럽을 깡통으로 만든 것이다.

“나와 싸울 걸 예상하고 다운 그레이드를?”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에 와야만 했을까, 녀석은.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최저로 치달았다.

이럴수록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몸을 움직여주는 게 좋다. 브렌은 세차게 뺨을 두들겼다.

“나는 파이오니어 빌딩의 경비다.”

펄스라이플도 챙겨들었다. 퓨즈도 새로 갈아 끼워 만전의 상태.

브렌은 스캐럽이 남긴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바닥에 난 스크래치가 그를 리암에게로 데려다 줄 것이다.


작가의말

편승이 고른 무기의 외형은

영화 프레데터스에 나오는 핸드헬드 미니건 에서 차용했습니다.

물론 픽션이니까 가능한겁니다.

이걸로 편승은 무쌍을 찍고, 테러범들 죄다 씹어먹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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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주지사님의 시연 모습.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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