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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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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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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0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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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글자
23쪽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7.

꾸르르.

위즈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 배가 아픈 건 아니겠지만, 왠지 불안하고 기운도 없는 것 같다. 공복도가 30%미만으로 떨어져 있었다. 요컨대 꾸르륵 거리는 소리는, 캐릭터가 배고프다며 밥 달라는 소리다. 아직은 활동에 지장이 없지만, 무시하게 되면 모든 능력치가 서서히 감소한다. 그리고 결국엔 아사하게 된다.

이렇게 먹을 게 많은 곳에서 아사라니.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얼 먹을까 하고 걷다보니 자연스레 도착한 곳은, 제과점 ‘빵 굽는 고양이.’

사실 더 오션에 접속해서 음식이라고 먹어본 건, 빵과 쿠키가 전부다. 초보주제에 다른 걸 먹으면 왠지 사치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위즈는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접속하기 전에 아침을 먹었는데…….”

그게 빵이었다. 이미 배터지게 먹은 빵을 게임 속에서 또 먹자니 생각만 해도 속이 거북해진다.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금 ‘빵 굽는 고양이’에는 아침부터 손님이 많다. 그중, 눈에 띄는 세 사람 때문이다.

금발머리의 소년이 까치발을 들고 매대를 들여다보면,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소년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려준다. 그러면 소년은 꺄르륵 소리를 내며 쿠키를 고르는 것이다. 그 옆의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누가 봐도 3대가 함께 물건을 사는 훈훈한 광경이다.

하지만 단 한사람. 위즈만은 다르게 생각했다.

‘저 인간들이 여긴 왜?’

금발의 소년은 간밤에 보았던 애늙은이 왕자님을 닮았고, 소년의 아버지는 허리춤에 숏소드 두 자루를 차고 있다.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의 지팡이 끝에는 수수한 자수정 장식이 빛나고 있다.

왕자, 기사-최소한 칼잡이, 마법사. 간밤에 만난 사람들과 같은 조합이다.

위즈는 직감적으로 저들이 자신을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접속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연히 저들을 만난단 말인가. 위즈는 발길을 돌렸다. 아직 저들이 모를 때 재빨리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 스톱.

왕자의 목소리가 머리에 울린다. 위즈는 무시하고 그냥 걸었다.

- 어허. 공권력을 사용해야겠군. 어디보자 어떤 죄목이 좋을까.

“끄응.”

결국 위즈는 빵 굽는 고양이로 들어섰다. 빵을 고르던 사람들이 입구를 바라보았다. 위즈가 들어선 것만으로 가게가 꽉 차는 느낌이다. 본래 키보다 훨씬 작게 설정해두었지만, 뚱뚱한 몸은 그대로니 당연하다. 주인 아주머니는 위즈의 허리둘레를 보고 감탄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잽싸게 선반에서 수레바퀴만한 크기의 빵을 꺼냈다.

“이건 잔치 때나 만드는 건데, 맛도 좋고 보관도 오래할 수 있어 아주 좋지. 어제 만든 게 남아서 싸게 줄 수 있는데, 어때? 맘에 들면 총각이 사가는 게?”

“으으…….”

엄청난 크기의 빵.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고, 숨이 막혀오는 것 같다.

“시식해보고 사가도 좋아. 자, 얼마나 고소하고 달콤한지 몰라.”

아주머니의 굵직한 손이 빵을 한 조각 뜯더니, 위즈의 벌린 입에 턱 하고 틀어박혔다. 맛은 확실히 좋았다. 게다가 한 조각만으로 공복수치가 단숨에 100% 회복되었다. 그만큼 고급의 식재료를 사용했으리라.

‘아침을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걸 사? 그리고 이걸 어떻게 다 먹어!’

이성은 거부했으나, 이미 위즈는 은화를 꺼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인벤토리에는 타이어만한 빵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물리고 싶었지만 아주머니는 쌩하니 다른 손님에게 가버렸다. 한건 올렸다며 좋아하는 아주머니의 발걸음이 가벼웁다.

위즈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 패배자. 어쩔 수 없는 돼지 녀석.”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왕자가 쿡쿡거렸다.

“왕성한 식욕이 보기 좋네요.”

위즈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치 남의 불행을 즐기는 것 같은 면상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할 이야기가 있다면 어서 하시죠.”

“여긴 보는 눈도 많으니 다른 곳으로 가요.”


◇◇◇◇◇◈◇◇◇◇◇◇◈◇◇◇◇◇◇◈◇◇◇◇◇


세 사람을 따라 간밤의 빈집으로 간 위즈는 보란 듯이 수레바퀴만한 빵부터 꺼내놓았다.

“드시죠.”

“어?”

“함. 께. 드. 시. 죠.”

“잠깐. 난 아침을 먹고 나와서…….”

“저도 먹고 나왔습니다만? 이거 그냥 두면 상합니다. 그렇게 버려지길 원합니까?”

“그냥 불쌍한 사람에게 주는 건 어떤가?”

위즈는 왕자의 말을 잘랐다.

“가난한 이방인이 가진 돈의 절반을 털어 산 귀한 음식입니다. 꼭 함께 드셔줘야겠습니다.”

“으음…….”

왕자는 난감해하면서도 빵을 뜯어 우물거렸다.

“맛은 괜찮은데 역시 배가 불러서……. 자네들도 한입 거들게.”

이들 입장에서도 마차바퀴만한 빵은 엄청난 도전임이 틀림없다. 왕자의 부름을 받은 기사와 마법사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과식은 몸을 둔하게 만듭니다. 경호업무에 차질을 빚을 수는 없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과식은 노구에 좋지 않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위즈는 입을 헤 벌렸다. 그냥 큼직한 빵 하나 꺼내 같이 먹자고 한 것뿐이다. 그런데 삽시간에 사극세트장이 되어버렸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나는…….”

“그만.”

위즈는 빵을 도로 집어 넣어버렸다. 심술이 나서 이들을 자신 못지않은 똥배로 만들어주려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먹을 걸 줘도 마다하네. 그냥 이야기나 합시다. 그전에, 어떻게 날 찾아낸 겁니까? 그것도 이렇게 빨리?”

대놓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왕자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유 없이 켕기는 기분이, 불안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라고요! 인육만두가 처형 전에 도망을 쳐!”

“미안하게 됐네. 그게 참……면목이 없군.”

“이 애늙은이 왕자야! 그게 미안하다고 끝날 일이야! 게다가 날 노린다고?”

위즈는 왕자의 볼을 잡고 주욱 늘려주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왕자의 볼을 조물거리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위즈는 손을 내렸다.

‘이건 절대 찹쌀떡을 주무르는 쫀득한 감촉 때문에 식욕이 동해서가 아니야.’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던 위즈는 괜스레 탁자를 내리쳤다. 그리고 슬그머니 눈을 떠보았다. 기사의 쌍검이 위즈의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고,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하얀 빛기둥 서른 개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무례함은 용서치 않겠다.”

기사가 이를 사려 물었고, 마법사는 째진 눈을 들어 충고했다.

“목숨을 소중히 하게 젊은이.”

“하…….”

기가 막힌다. 뒤처리를 맡겼더니 그마저도 못해내고, 피해자가 따지고 들자 대놓고 무력행사.

“나보고 화내지 말라 이겁니까. 이게 당신의 대답입니까. 왕자님?”

왕자는 얼굴을 붉혔다.

“그만 하세요. 두 분 모두 흥분했습니다. 이번 일은 분명 우리가 잘못한 겁니다.”

기사와 마법사는 공격을 거두어들였다. 마지못해 그런다는 느낌이 확 든다. 그래도 위즈는 따지지 않았다. 대화할 사람은 왕자이지, 저 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피해를 입은 제게 보상을 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자발적으로 인육만두를 잡는데 협조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상황이 변했다고 약삭빠르게 보상 문제를 입에 올리는군요.”

“그래서 입 싹 닦겠다, 이겁니까?”

“하지만 그런 계산적인 관계라 더 신뢰가 가는군요. 간밤과 달리 제가 하대를 하지 않는 걸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전 당신의 능력을 인정한 겁니다.”

너 같은 찹쌀떡 볼따구에게 인정받아봐야 기쁘지도 않아, 라고 쏘아주려던 위즈는 기사와 마법사를 힐긋 바라보고 바람을 접었다. NPC에게 찍히는 건 피하는 게 좋다. 상대가 왕족이라면 더더욱.

“말을 빙빙 돌리지 맙시다. 내게 원하는 것과, 해줄 수 있는 것. 이 두 가지면 되는 것 아닙니까?”

“간단히 말해서, 인육만두를 잡는데 당신을 미끼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물론 내 능력 한에서입니다.”

왕자가 내건 조건은 위즈도 예상했던 바이다.

간밤에 왕자와 만났을 때, 마법사는 몰래 위저드 마크를 찍어두었다. 그래서 위즈가 모습을 바꾸었음에도 단박에 찾아낸 것이다. 인육만두 역시 같은 방법을 사용할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즈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인육만두가 찾아온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럴 바엔 왕자와 손을 잡아 역습을 가하는 게 낫다.

“먼저 왕자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야 할 거 아닙니까?”

왕자는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위즈는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제법 묵직하지만 주머니가 너무 작아 기대도 안했다. 촉감도 달랑 동전 한 개다. 그런데…….

주머니를 열자마자 황금빛의-그야말로 과도한 광원효과가 눈을 찌르는 게 아닌가.


<난생처음 왕실의 황금동전을 구경했습니다.>

<집중력 스탯이 1 올랐습니다.>

<매력 스탯이 1 올랐습니다.>

<행운 스탯이 1 올랐습니다.>


위즈는 냉큼 주머니를 닫았다.

“이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겁니까?”

“아르비튼 자작의 저택 정도라면, 이거 하나로 충분히 구입가능 합니다.”

왕실금화1개 = 일반금화100개 = 은화10,000개 = 동화1,000,000개

공복감을 달래주는 빵과 쿠키는 동화 5~10개면 살 수 있고, (현재 시세로)은화 10개면 어느 상점에서나 최고의 무기를 구할 수 있다. 이제 푼돈 때문에 자질구레한 퀘스트를 할 이유가 없다.

마음 놓고 캐릭터를 키워서, 퀘스트 깨기에만 열중하면 된다.

계산은 순식간에 끝났다.

“올레!”

위즈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


왕자와의 약속은 엄밀히 말해 계약이다. 조건을 충족할 의무가 한쪽에 주어지고, 그 결과 상대방은 이득을 얻는다. 그리고 그 이득은 어떤 식으로든 나눠 가져야만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금품이나 다른 편의제공으로 대신하는 방법도 있다.

만약 여기서 이득을 얻은 상대방이 입 싹 닦으면 그게 사기다.

“그래서 구두계약은 계약이 아니지.”

위즈는 계약서를 팔랑거렸다. 더 오션의 계약서는 기본적으로 마법이 걸린 저주 스크롤이다. 이곳에 서로의 이름을 기입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기입함으로써 효과가 발생한다.

만약 위반하게 되면, 스크롤의 저주가 발동된다. 이건 신전에서 만든 것이라, 마법방어고 뭐고 소용없다. 그래서 믿고 쓰는 물건이다.

왕자와 위즈가 맺은 계약은, 서로의 신뢰를 얻고 내딛는 첫걸음인 통성명이기도 했다.

“왕가의 성이 크레센토가 아니라 미노클인가?”

계약서에는 4개의 이름이 적혀져 있다. 계약당사자인 <이방인 위즈>와 <크레센토 제3왕자-에반젤린 유린 베스퍼셰일 미노클>. 그리고 계약의 증인으로 <‘유린’ 기사단의 2인자인 메노피스크 다렌>, <궁정 차석마법사인 토크렘>의 이름이 차례대로 적혀 있다.

계약을 맺기 전에는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왕자, 이방인으로 지칭했다. 그러다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실제 부르기 더 애매해졌다.

고귀하신 왕족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도 애매했고, 나머지 두 사람도 권력의 중추들인데 함부로 입에 올리기 부담스럽다. 그건 왕자 일행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있어서 위즈는 수많은 이방인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일일이 평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처럼, 수고스럽게 위즈의 이름을 부를 리 없다. ‘물론 이번 일을 성공하신다면, 이름 정도는 기억해드리겠습니다.’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반갑진 않다.

위즈는 왕자의 속내를 파악한지 오래다.

왕자는 위즈를 의심하고 있으며, 또한 시험하려 한다.

인육만두 사건의 본질에 너무 빨리 다가간 때문이다.

더 오션이 시작된 지 4일이 지났다. 이곳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이방인들이 유입된 건 겨우 열흘이다. 그런데 위즈만이 진실에 다다랐다. 나머지 이방인이 호구라서가 아니라, 위즈의 반응이 너무 빨랐다. 모르는 사람이 알면 영락없이 인육만두의 패거리로 오인받기 좋았다.

거기가 왕자와의 첫 만남 역시 우연이라 보기 어려웠다.

하필이면 변장한 왕자가 자주 들락거리는 ‘빵 굽는 고양이’로 와서, 미노클의 아이들에게 인육만두 사건을 조사시켰으니까 충분히 작위적이다.

“실제 의도한 일인 건 사실이지.”

위즈는 네메시스에게 인육만두를 잡을 좋은 방법을 물었고, 네메시스는 번화가의 ‘빵 굽는 고양이’로 가서 아이들을 이용하라고 했다.

그 결과 인육만두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범죄자의 혐의가 남았다.

“이건 뭐 자업자득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위즈는 머리만 벅벅 긁었다.

아마도 왕자는 인육만두를 추적할 방법을 마련하고, 은근슬쩍 풀어 주었을 것이다. 위즈에 대한 정보도 거저 퍼주었을 게 뻔하다. 반응을 살피기 위해 도와주지도 않을 것이다. 누명은 스스로 벗어야 한다.

요컨대 위즈 혼자서 인육만두를 상대해야한다.

그래서 생긴 문제가 마땅한 전투 스킬이 없다는 것.

그 어떤 직업도 택하지 않아서, 전투 스킬은 물론 남들이 다 배우는 캠프파이어조차 쓸 줄 모른다. 지금 위즈가 가진 스킬은 단 하나.

‘카무플라주’라는 유니크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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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크 스킬]/[액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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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플라주 : MX-LV.1] [LV.1-숙련도 Mastered]

캐릭터의 모든 스탯을 반으로 깎는 대신, 캐릭터의 외형과 이름, 목소리까지 바꾸는 스킬.

범죄에 대한 악용의 소지가 있어, 여러 가지 패널티를 더한다.

(카무플라주 상태에서 범죄행위를 저지른 경우, 1분 이내에 위장이 풀리며, 3분간 경직상태 유지)

(현실시간으로 하루 3번 사용가능/사망했을 때는 초기화됩니다)

(전투상황에 한하여 카무플라주를 풀었다가 다시 재사용에 무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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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를 졸라 급조한 것으로, 사기꾼이나 쓸법한 것이다. 이는 마도로스 社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위즈가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하지만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네메시스는 발동조건을 저렇게 만들었다. 위험부담도 크다.

이 스킬이 적용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1분 이내에 원래 모습이 드러나고, 그 때부터 3분간 경직에 빠진다. 사기라도 치게 되면 3분 동안 죽을 때까지 얻어맞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전투중이라면 공격을 피하는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 이미 사냥터에서 긴급 회피의 용도로 사용해본 위즈다.

한마디로 카무플라주는 양날의 검이다.

잘 사용하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으나, 악용하면 나락으로 홀인원.

그래서 위기의 순간에나 사용할 스킬로 치부 했지만, 이번에 인육만두 사건에 휘말린 위즈는 한 가지 장점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바로 NPC들에게도 먹힌다는 것. 위즈는 인육만두 사건을 다루면서 주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다녔다. 그 결과 NPC들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위즈를 경계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위즈는 날마다 찾은 도서관의 사서에게 찾는 책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도서관 사서는 서랍을 열어 사탕을 하나 꺼내주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그런 책을 읽다니 기특하구나. 기다리렴. 내가 꺼내 오마.”

위즈는 멍해졌다. 사서가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와, 생긴 걸로 사람 차별하네. 나한테는 퉁명스레 굴더니만 애한테는 사탕까지 줘?

물론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위즈는, 사탕을 빨며 아이 좋아라 하고 웃고만 있었다. 사서는 금세 위즈가 찾는 책을 들고 오더니, 볕이 잘 드는 창가로 데려다주었다.

“원래는 아저씨에게 책을 반납해야 하지만, 이 책은 네가 들기엔 무거우니까 그냥 놔 두거라. 아저씨가 알아서 치우마.”

“불공평해…….”

“으응? 뭐라고?”

“아뇨. 사탕이랑 책 고마워요. 삼촌.”

사서의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역시나 립 서비스는 돈도 안 들면서 효과만점. 어디에서나 통하는 진리다. 사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로 돌아갔고 위즈는 차분히 앉아서 책을 펼쳤다. 카무플라주를 유지하기 위해 마력이나 체력 따위가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것도 아니니 이대로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죽일 생각이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은 위즈의 집중력은 어느덧 32에 이르렀다. 다른 유저들에 비하면 매우 느린 속도다. 검술이나 마법을 배웠다면 적어도 초반 50 수준까지는 빠르게 올렸겠지만, 위즈가 바라는 수준은 100. 그것도 스킬 없이 무직업으로 올리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그것을 가능케 해준다. 그러니 느리다고 불평해선 안 된다.

위즈는 1세대 구형단말기 작업을 하는 기분으로, 세세하게 책을 훑었다. 잠깐 사이에 2포인트의 집중력 스탯이 올랐다.

“꼬마야 정말 열심히 읽는구나.”

돌아보니 사서가 고개를 빼고 위즈를 바라보고 있다.

“네. 좀 더 집중해서 읽어야 책의 내용이 더 오래 남는 법이거든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오래 앉아서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쉽단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잠깐 쉬는 거지. 휴식 없이는 능률도 없고, 성취도 없단다.”

“저는 쉬는 시간도 아까운걸요?”

“그럼 다른 방법도 있단다.”

“그게 뭐죠?”

“손으로 써서 책을 베끼는 거란다.”

맞는 말이다. 현실에서도 손으로 쓰면서 외우고 공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한권 통째로 베끼기라니 그건 해선 안 될 일 같았다. 더군다나 위즈는 집중력 스탯을 100 채울 때까지 그 짓을 반복해야 한다. 그걸 사서가 지켜만 보고 있겠는가. 위즈는 넌지시 사서를 떠보았다.

“한두 장 메모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통째로 베끼는 건 위법 아닌가요?”

“위법이지. 하지만 나라에서 허가해주는 경우는 가능하단다. 마침 네가 읽고 있는 책이 그렇구나. 이방인들에게 이 세계에 대한 교육을 하는데 좋은 책이라, 필사를 해서 비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단다. 듣자하니 밤이면 이방인들이 도서관에 자주 드나든다더구나.”

‘걔들은 전부 놀러온 거예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위즈는 필사에 대한 걸 물었다.

“필사라면 책을 그대로 베끼는 거죠? 저도 할 수 있을까요?”

사서는 난색을 표했다.

“물론 네가 해도 문제는 없다만, 필사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란다. 오탈자가 절대 없어야 하고, 글씨도 정성들여 써야만 한단다. 무엇보다 어린애에게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진 않구나.”

“아뇨, 해볼 게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위즈가 졸라대자 사서는 어쩔 수 없이 빈 책과 필기구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필사의 기본은 같은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필사본에서도 원본과 똑같은 배움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완전 똑같이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인쇄본을 따라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사서는 원본과 비슷하게 문장의 간격을 맞추는 법부터, 글씨 크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비법. 그리고 잉크를 빨리 마르게 하는 아이템의 사용법까지 알려주고 일어섰다.

사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위즈는 시험 삼아 첫 장을 베껴보았다.

“이거 별로 어렵진 않은 걸?”

위즈는 잉크를 재빨리 말리고 다음 장도 베껴보았다. 잠시 일을 보고 온 사서가 돌아와서 위즈가 해놓은 걸 보더니 깜짝 놀랐다.

“세상에!”

사서는 원본과 위즈의 글씨를 대조해보더니 감탄했다.

“훌륭한 필사본이다. 비록 인쇄본에 비해 글씨가 이지러지긴 했지만, 또박또박 예쁘게 잘 썼구나. 처음 해본 게 이 정도라니, 나중이 기대되는구나.”

그때 북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위즈의 시야 한구석에 읽지 않은 메시지하나가 나타났다.

위즈는 머리를 긁는 척 하면서 메시지를 펼쳤다.


<< 프리스킬, “필사” 획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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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 MX-LV.100] [LV.2-숙련도 31.00/100%]

말 그대로 필사본을 만들 수 있는 스킬.

처음엔 책만 가능하지만, 스킬의 레벨이 오르면 다양한 것을 필사할 수 있게 됩니다.

(책을 필사할 수 있습니다.)

(완성된 필사본의 품질에 따라 집중력 스탯이 0~2포인트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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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더욱 정진하거라. 꼬마야.”

사서는 위즈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자리를 떠났다.

뜻하지 않게 스킬을 하나 얻자 위즈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만약 스킬북을 필사할 수 있다면? 그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네메시스가 확인해주었다.


◇◇◇◇◇◈◇◇◇◇◇◇◈◇◇◇◇◇◇◈◇◇◇◇◇


『가능합니다.』

잠시 게임 밖으로 나온 편재는 네메시스의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그럼 그 사본으로 배운 스킬의 수준은 어떻지?”

『사본의 품질이 관건입니다. 만약 필사 스킬이 마스터 된 상태에서 제작된 사본을 이용하면 Lv.10의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Lv.100이 아니라?”

『필사 스킬의 악용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조정되어 있습니다.』

“하긴……스킬북을 마구 찍어 뿌릴 수 있게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겠네.”

모든 유저들의 강성화를 꿈꾸는 편재의 꿈은 이렇게 1분 만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필사 스킬을 Lv.100까지 올리지 않으면 네메시스가 말한 수준도 힘들다.

“그럼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어디까지 가능하지?”

『현 상태로 제작된 사본은 스킬 획득밖에 할 수 없습니다.』

편재는 곰곰 생각했다. 획득만으로도 감지덕지할만한, 그런 스킬이 ‘더 오션’에 있을까?

『있습니다.』

“그게 뭐지?”

『공통스킬.』

네메시스의 대답에 편재는 과거 ‘레드 오션’때의 기록을 떠올렸다.

당시 게임 초반, 소재가 알려진 하나의 스킬이 있었다. 그것은 스킬북의 형태로 곳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유저들 간의 경쟁을 촉발시킨 첫 번째 싸움과도 연관이 있었다.

독점하려는 자들끼리 피를 흘리고, 흘리고, 또 흘렸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스킬에 대한 유혹은 엄청난 것이었다.

“공통스킬, 아직 하나도 발굴 안 된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됐어.”


◇◇◇◇◇◈◇◇◇◇◇◇◈◇◇◇◇◇◇◈◇◇◇◇◇


다시 접속한 위즈는 그 사이 사서들이 퇴근하고 없는 걸 확인했다. 밖을 보니 달이 구름 사이에 걸려있다.

“벌써 밤인가.”

오늘은 도서관에서 노는 유저들이 한명도 없었다. 인육만두 사건이 일단락되면서, NPC들은 상점운영을 재개했고 유저들은 활발한 사냥을 시작했다. 이젠 대부분의 유저들이 무리를 지어 늑대를 잡기 시작하고, 가끔 곰과 멧돼지에 도전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위즈가 바라던 대로다.

‘한 가지 걸리는 건, 인육만두가 이런 때를 놓칠까 하는 거야.’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어깨위로 날카로운 바람이 날아들었다. 카무플라주 스킬로 키를 줄여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위즈는 자신을 공격한 유저를 바라보았다. 붉게 타오르는 이름이 너무도 섬뜩하다.

“인육만두.”

드디어 올게 왔다.


작가의말

일주일에 3번 올리기는 일단 성공...

하지만, 욕심을 내서 내일이나 모레중에 한편 더 올릴까 합니다.

왠지 조금 무리하면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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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4) +2 13.11.30 1,022 23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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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 +3 13.11.28 1,048 25 20쪽
3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 +4 13.11.23 1,521 20 19쪽
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7 22 15쪽
2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8) +1 13.11.19 1,216 24 34쪽
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3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5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0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2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4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1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1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8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0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3 23 20쪽
»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3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0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2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5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4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8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0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1 42 23쪽
9 1. (8) 13.10.14 1,702 29 23쪽
8 1. (7) +1 13.10.05 3,285 60 25쪽
7 1. (6) 13.10.04 2,227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8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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