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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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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820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3.11.29 18:06
조회
1,150
추천
30
글자
21쪽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3)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3.

“이게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겁니까?”

말을 하면서도 위즈의 손은 쉬지 않고 깃털 펜을 놀렸다. 잉크가 남긴 흔적들이 알 수 없는 문자와 도형들을 이룰 때마다 무한의 서는 얇은 책을 한권씩 토해냈다. 그렇게 쌓인 책들이 균형을 잃을 때마다, 위즈는 인벤토리를 열어서 책을 쓸어 담고 재빨리 중심을 잡았다.

“요령 좋군.”

witch는 그늘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 위즈가 위태로워지면 히죽거리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지금 위즈는 서커스 곡예단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빗자루까지 타고 도착한 이곳은 witch의 근거지인 외딴 섬이었다.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위즈가 한 일은 가장 레벨이 높은 스킬을 보다 능수능란하게 닦는 것이었다.

현재 가장 높은 레벨의 스킬은 필사[Lv.10]. witch는 한 가지 훈련을 제시했다.

“왼손잡이인 사람은 쓸데없이 오른손도 단련하려고 해선 안 된다. 나중에는 양손잡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그래서는 왼손의 개발만 늦어질 뿐이다. 마찬가지로 넌 필사에 좀 더 익숙해져야만 한다. 지금부터 어느 곳에서나 필사를 할 수 있게 해라.”

그래서 책상이 주어졌는데, 여기서부터 위즈는 남은 50여분 동안 펼쳐질 고난을 예상할 수 있었다. 책상은 다리가 두 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책상 위에서 필사를 하는 건 잉크를 엎지를 위험이 크다. 그럼에도 witch는 꼭 망가진 책상이어야만 한다고 우겼다.

가장 처음 습득한 스킬이 필사이기 때문에, 이를 최우선으로 성장시켜야 잠재능력의 개발이 수월하다는 이유가 덧붙여졌다. 어쩔 수 없이 위즈는 잉크를 엎지르기 싫어서라도 온힘을 다해 책상을 지탱해야만 했다. 그렇게 책을 한권 필사해내자, witch는 책상 밑에 널빤지를 받치고는 수정구를 아래에 두었다. 한마디로 기예단 급의 균형감각을 동원하란 소리다. 위즈는 이를 악물고 두 번째 책의 필사를 완성시켰다. 그러자 witch는 수정구의 밑에 솥을 젓는 국자를 세워서 괴어 두었다. 그 덕에 위즈가 만든 세 번째 필사본은 애들 낙서로 그득한 불쏘시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3권 정도를 그렇게 필사하자, 요령이 붙었는지 그럭저럭 알아먹을 수준의 물건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녀는 매직스틱을 꺼내들어 국자를 노리고 매직 애로우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위즈는 정신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아……그런 신체능력이라면 몸 쓰는 직업 아무거나 고르지 그랬어? 그럼 검술 수련을 시켜주었을 텐데.”

그러면서 술잔을 까딱거리는 witch. 그 옆에는 매직 스틱이 저 홀로 둥둥 떠서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 하나씩 날아드는 주문은 두 개로 늘어났고, 이제는 매직 애로우가 저 혼자 빙글빙글 회전하며 몸체가 길어졌다. 곁눈질로 그것을 관찰한 위즈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변화는 무조건 경계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이 국자를 스치고 지나가자 국자가 뚝 끊어지며, 위에 얹어진 수정구와 널빤지와 책상이 한 뼘 가량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 들썩임에 잉크가 출렁거리자 위즈는 병을 막아버렸다.

“스피어 급의 주문이라 정통으로 맞지 않아도 국자는 그냥 부러지는군.”

witch는 술잔을 내려놓고는 다시 매직스틱을 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 매직 애로우가 회전하면서 길게 뽑아지며 매직 스피어로 변했다. 그러자 매직스틱의 끝이 허공에 완만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실처럼 가늘어진 매직스피어는 그 움직임에 따라 회전하고, 회전하고, 회전하면서 궤적을 겹쳐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무수한 원이 겹쳐진 그것은 완연한 구의 모습으로 탈바꿈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번쩍거리는 주문의 정체는 매직 캐논.

발사체 계열의 주문이 ‘시드-니들-애로우-스피어-캐논’의 순서대로 위력이 결정되는 게 확실하다면, 저건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캐논 계열의 주문이다. 그리고 캐논은 명중하는 즉시 폭발하여 주변에 데미지를 퍼뜨린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땅에 맞아도 여파에 휩쓸리는 건 마찬가지일 거야.’

필사해야 할 책은 이제 한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저걸 맞고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위즈는 책상의 양쪽 모서리를 쥐었다. 그와 동시에 witch의 매직스틱에 매달린 구체가 폭발했다. 책상이 부서지며 위즈의 몸은 훨훨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


“결국 이정도인가?”

witch는 바닥에 앉아 다시 술잔을 들어 찰랑이는 액체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도수가 낮은 벌꿀술은 달착지근할 뿐, 목구멍을 불태우진 못했다.

솔직히 위즈라는 이름의 애송이가 카무플라주라는 스킬로 모습을 바꾸는 것을 보고 기대도 많이 했다. 타고난 재주로서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witch로서 매혹하는 자의 의지를 이을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훈련을 시켜보고는 금세 실망하고 말았다.

조금은 싹수가 보이나 했더니, 전투와 관련 없는 생산 계열의 숙련도가 가장 높았던 것이다. 그것도 책을 베끼는 필사.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으며, 또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필사를 능수능란하게 하도록 만들겠다는 핑계를 대고, 곧바로 전투훈련으로 돌입했다. 그 결과 애송이는 땅에 처박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힘 조절을 했다고는 하나, 캐논 급의 마법이었다. 그걸 멍청하게 책상을 들어 막아낸 대가다. 그녀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였다.

그녀가 보기에 위즈는 너무 평범했다. 그렇기에 별것 아닌 수단이라 해도 100% 활용하여 발악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안타까운 발버둥이 아니었다.

witch로써 그녀가 걷는 길은, 달리 말해 사람들을 매혹 시키는 자-tempter와 맞닿아 있었다. 이는 사람을 타락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정도를 벗어난 자들의 이정표로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tempter는 그저 올바른 길 위에 서서 이들을 끌어들일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빛나보여야만 한다. 하지만 저 녀석은 남을 이끄는 자의 재목이 아냐.’

witch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녀석을 깨워서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그녀는 눈을 크게 치떴다. 위즈가 나가떨어진 장소는 부서진 집기들만 널려 있었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그녀는 두리번거리며 위즈의 모습을 찾았다.

‘죽었을 리는 없다. 그러라고 쏜 매직 캐논이 아니야.’

사락사락.

바람도 불지 않는데 나무가 움직였다. witch는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두 다리로 나무를 감은 채 필사 중인 위즈가 있었다. 위즈의 얼굴은 잉크로 얼룩져 있었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탓에, 병에 든 잉크가 절반 가까이 얼굴에 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닦거나 번진 흔적이 없었다. 대신 액체가 튀었을 깨 생기는 특유의 자국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보통 얼굴에 뭐가 묻으면 털거나 닦지 않나?”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내 눈을 속였지.”

“일루젼 스크롤.”

말을 하면서도 바삐 펜을 놀리는 위즈. witch는 윈드커터를 쏘아 위즈가 매달린 나뭇가지를 잘라내었다.

“큭!”

위즈는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그건 그때뿐, 곧 몸을 편 위즈는 다시펜을 손에 쥐었다. 나뭇가지가 떨어질 때 witch는 보았다. 혹시라도 잉크가 튈까 두려워 책을 꼭 끌어안은 위즈의 행동을.

witch는 이해 할 수 없었다. 그저 베껴내는 행위를 위해, 위즈는 닥쳐오는 위험도 무시하고 있다. 그저 자신이 하던 일을 것을 묵묵히 계속할 뿐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옳고 그른지, 이후에는 어찌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단편적인 사고만으로 움직이는 자들. witch는 그런 멍청이들이 싫었다.

‘헌데 어째서 이 녀석에게 끌리느냔 말이다.’

딱히 잘생긴 얼굴도 아니며, 이렇다 할 언변을 가진 것도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은 책을 베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witch는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나 필사에 매달리지? 그렇게까지 해서 내 기술을 얻어내 무얼 하려고 그러지?”

위즈는 잉크를 말리며 웃었다.

“여기 시간으로 300년 뒤에는 육지의 대부분이 바다 속에 가라앉습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전 그걸 모조리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임자 없는 땅을 얻어 영주가 되고 싶나보군.”

“그런 게 아닙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이방인으로서 이 세계에서 제가 이룬 일은, 제가 살아가는 현실에도 적용됩니다. 그렇게 되면, 전 그리운 사람을 구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젠 이것밖에 없어요.”

위즈의 말을 들은 witch는 어째서 눈을 이런 멍청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는지 깨달았다.

‘이 녀석은 어둠속에 비춰진 한 가닥 빛줄기를 따라가는……어린아이처럼, 그냥 믿고 있다. 실패도 성공도 안중에 없어. 그냥 방법을 찾았으니 시도할 뿐. 그런 맹목적인 모습에 난 매혹되었다는 말인가? 아니지 이런 자야말로 빛이 바래 사라지기 쉽지. 좌절을 경험하면 쉽게 무너지고, 절망하고 마는 나약한 존재. 난 이 위태로움이 안타까웠던 거다. 좋아. 내 마지막 시험을 받아보아라. 만약 절망하지 않고 일어선다면, 그만큼의 힘을 얻어갈 것이다.’

witch는 매직스틱을 휘둘렀다.


◇◇◇◇◇◈◇◇◇◇◇◇◈◇◇◇◇◇◇◈◇◇◇◇◇


“손이 잉크 범벅이로군.”

난 잉크병의 뚜껑을 닫고 일어섰다. 시약의 제조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은 진즉 처리했고, 약초들의 고약한 냄새도 이틀간의 환기로 거의 빠져나갔다. 그래도 남아있는 군내는 어쩔 수 없어서, 부랴부랴 말린 향초를 구해와 태웠다. 연기와 섞여 퍼져나가는 향기는 지나치게 달콤해서 코가 간질거리지만 어쩔 수 없다. 마법사가 아닌 보통 인간들은, 이 냄새를 버텨내질 못한다. 더군다나 질 좋은 시약일수록 독한 재료가 필요한 법. 어쩌면 보통 사람들은 발을 들이자마자 쓰러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아직도 냄새가 가시지 않은 것도 같다.

“아무래도 향초를 더 피우는 게 좋겠어.”

가장 가까운 민가까지 단숨에 다녀오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빗자루와 바구니를 챙기는데, 한 떼의 인마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뭐지?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올 사람은 없을 텐데? 그보다 여긴 마법실험을 하는 장소라고. 설렁설렁 걸어 다닐 장소가 아니란 말이다.

“거기 당신들. 경고 팻말 박아둔거 못 봤나요?”

“나는 글 모른다.”

“그래도 해골표시는 알거 아니에요? 여긴 위험해요. 돌아들 가세요.”

“내가 원하는 거 여기 있다.”

약초라도 구하러 온 사람인가? 꼭 이런 사람이 있지. 내가 가진 거라도 들려줘서 보내버려야겠다.

“어떤 걸 찾는데요? 뼈를 붙이는 큐리안? 아니면 정력에 좋은 덱스터너스?”

“당신을 찾고 있었다.”

“저를?”

“그래. 산 아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찾는 사람이 맞는 것 같더군.”

사람들과 교류는 있지만, 친분이라 부를 관계는 맺지 않는데 이상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처럼 건장한 사내들과는 안면이 전혀 없다.

“혹시 누구의 부탁을 받고 오셨나요?”

“부탁? 아, 부탁이랄 수도 있겠군. 먼저 이 종이를 보겠나?”

그가 내미는 종이를 보니 귀퉁이가 찢어진 포고문이었다. 맨 하단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고, 상단에는 사람의 얼굴이 거친 펜 터치로 그려져 있었다. 이 사람들 바운티 헌터인가?

“현상수배전단이로군요. 설마하니 제가 범죄자를 숨기고 있다고 말할 참인가요?”

“자세히 보게.”

그 말을 따라 살펴보니, 왠지 수배전단에 실린 얼굴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정말 내 얼굴 맞는데? 세상에 이렇게 똑같은 얼굴도 다 있구나. 이러니 이 사람들이 착각할 만도 하다.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전 아니거든요?”

“마법사 맞지 않나?”

“맞아요.”

“퍼플 학파이고?”

“맞아요.”

“그럼 우리가 찾는 사람이 맞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가끔 소란스러운 일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거야 무뢰배들 상대로 한 일이지 않은가. 설마 그걸 가지고 현상수배전단씩이나 붙다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요. 무기는 내려놓으세요. 순순히 따라갈 테니.”

“고맙군.”

그는 마력을 억제하는 수갑을 던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래도 이들을 안심시키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겠지. 손목에 수갑을 차고 살짝 흔들어보이자, 이들은 날 에워쌌다. 그냥 말에 태워주면 참 좋아? 그때 뒤통수가 간질간질 거리는 게 느껴졌다. 수갑을 채운 걸로도 모자라 무기까지 겨누는 건가.

퍼엉!

“크아악!”

뒤쪽에 붙어 있던 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뒤를 돌아보니 타고 있던 말은 완전히 통구이가 되어 있고, 말에 탄 남자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눈을 까뒤집었다.

“죽었어.”

동료의 죽음을 확인하자 이들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분명 수갑을 채웠는데 어째서?”

“무슨 짓을 한 거냐?”

바보들 같으니라고, 필요이상으로 칼날을 밀어 넣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냐!

“마법사는 자신의 장비에 주문을 걸어둘 수 있어요. 지금 입고 있는 옷에는 모든 공격을 반사시키는 주문이 프로텍트가 걸려 있어요. 그러니까…….”

잠깐, 튕겨진 칼에 당했는데 왜 통구이가 되어있는 건데? 거기다가 지금 둥둥 떠다니는 것들, 희미하지만 술식화된 마력의 파편이다. 그렇다는 건?

“죽은 사람이 마법사였던 거예요? 진짜 날 공격한 거?”

매직스틱이 일제히 날 향했다. 뭐야, 이거? 현상금 사냥꾼이 아니었어? 어째서 같은 마법사가 날 공격하는 거지? 말릴 틈도 없이 이들은 퀵 캐스팅으로 완성된 주문을 날렸고, 튕겨져 나온 마법이 주변을 휩쓸었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이들은 자신들이 날린 마법에 얻어맞아 전원 사망했다.

“아, 곧 손님이 올 텐데 이걸 어쩌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땅을 뒤집어엎어 시체들부터 묻었다. 향초를 구하러 마을에 내려가는 건 포기해야지. 이곳에 남겨진 마력의 잔여물을 치우는 것만도 벅차다. 그때 숲속에서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설마 또?

“여어.”

꿩을 들어 올리며 갈색머리 떡대가 히죽 웃었다. 난 경계를 풀었다. 이 녀석은 내 손님이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오는 길에 꿩을 잡았어. 이걸로 스튜 만들어줘.”

“웬일로 두 마리나 잡았대?”

“멍청하게 둘이 붙어 있더라고. 그래서 화살 하나로 꿰어버렸지.”

“좋아. 요리는 만들어주겠어. 하지만 맛은 기대하지 마.”

“알지 알아. 스튜는 꼬박 하루가 걸리는 요리라는 걸. 그냥 대충 만들어줘. 나 배고파.”

.

.

.

녀석은 별것 아닌 스튜를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정말 복스럽게도 먹네. 보는 것만 해도 배부를 정도야.

“참. 이번에 외교사절들이 방문했다며? 이제 인정받은 거야?”

“어? 그, 그래.”

“어떤 문건을 가지고 왔을지 알아 맞춰볼까. 결혼이지?”

“푸흡!”

에이. 지저분하게 먹던 걸 뿜어내면 어떡해?

“맞긴 맞나보네?”

“족집게네. 족집게.”

“뻔한 이야기 아닌가? 불과 10년 사이에 생겨난 신생국이, 망하기는커녕 계속 번영하는데. 싸워서 견제하기엔 너무 커버렸고, 가만 놔두자니 그것도 안 되겠고. 그러면 동맹을 맺는 편이 나아. 결론은 정략결혼이지?”

“응…….”

“내 시누이 될 사람은 누구야?”

“저기 누나…….”

“응?”

“내 부탁 들어줄 수 없을까?”

“콜! 결혼식 지참금에 지금 하는 부탁까지 얹어주지. 말해봐.”

“고대 유적을 발견했는데……그게 아무래도 누나가 찾던 악의 성소 같아서 말이야.”

악의 성소. 먼 옛날 마왕을 불러냈다고 불리어지는 마굴. 그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 땅에는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 몬스터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악의 성소를 완전히 붕괴시켜버리면, 이 땅에는 몬스터 같은 부정한 생물 따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당연히 내가 맡아야지.”

“미안…….”

“넌 결혼 준비에나 신경 써. 남매는 일심동체. 나 혼자 싸우더라도, 결국은 둘이 함께 싸우는 거야.”

.

.

.

이것 참. 동생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사실 허탕이었다고 말해야 하나? 면목 없네그려. 그보다 이 지저분한 몰골 좀 보라지.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 써 엉망진창이다. 이대로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건 역시 안 되겠지? 시누이 될 사람도 손가락질할 거야. 어쩔 수 없네. 마력이 밑바닥이니 로브에 걸어둔 주문을 해제시켜서, 마력으로 환원하자. 그리고 깔끔하게 메이크업해서 짜잔 등장하는 거야.

“후움. 하나, 둘, 셋.”

난 은신을 풀어서 동생의 맞은편에 나타났다. 그러자 동생은 눈을 크게 뜨더니 내 쪽으로 달려 왔다.

오오냐. 그렇지 않아도 내가 금괴만 가득 채워 두 상자나 들고 왔단다.

깨물어 봐도 좋다. 거기에 네 녀석의 위엄을 돋보여줄 레드 크리스털까지 들고 왔다. 왕관이나 홀에 박아 자자손손 물려주려무나.

“누님!”

그래그래. 네 마음 다 안다.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나타났으니 야속했겠지. 그래서 바리바리 챙겨온 게 아니더냐. 이 선물 받고 기분 풀…….

스슥. 뭔가 서늘한 게 뱃속에 파고들었다. 차가운 고드름에 찔리면 이런 기분일까? 하지만 지금은 여름이잖아? 고드름이 어디서 나오겠어? 이윽고 찔린 곳이 뜨거워졌다. 나 찔렸는데 이렇게 태평해도 되는 거야? 배에 꽂힌 검의 주인을 올려보았다.

손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암죽을 먹여 키운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째…서…….”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왜 돌아왔어! 왜! 바보야?”

“아…….”

순간 동생이 악의 성소라며 알려준 장소가 떠올랐다. 그곳은 다양한 몬스터 전시장과도 같았다. 학자인 나조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 가득했는데, 역시 악의 성소라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몬스터들에는 인위적인 흔적들이 있었다. 그게 전부 날 노리고 이루어진 것이라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문득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누이가 될 사람……. 그녀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왕이면 왕답게 행동하세요! 약조를 잊으신 건 아니겠죠!”

“유린아…저게 무슨……소리…크흑!”

배에 박힌 검이 비틀리며 뽑혀져 나오고 있었다. 깊숙이 박혀서 그냥 뽑아도 치명상인데, 이렇게 뽑아버리면 상처가 헤집어져 내장을 상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니 의도를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어째서? 우린 남매잖아?

마주한 동생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해답은 그곳에 있었다.

“그때 잡아간 꿩 기억나? 둘이 암수 한 쌍이었어. 멍청하게 암놈을 지키려고 나서다 함께 죽어버린 거지.”

“……그런 뜻이 있었구나.”

“누나는…무서운 사람이야…….”

“그렇구나……넌 이제 10만의 생명을 보살필 왕이 되었구나.”

난 동생의 몸을 가볍게 밀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텔레포트를 열었다. 좌표는 무작위. 운이 좋으면 땅속에 처박혀 고통 없이 죽게 되겠지. 아……손에 묻은 잉크 지워야 하는데…….


◇◇◇◇◇◈◇◇◇◇◇◇◈◇◇◇◇◇◇◈◇◇◇◇◇


“위즈? 위즈?”

누군가 자꾸 이름을 불렀다. 그게 자신을 가리킴을 깨달은 위즈는 눈을 떴다. 금발머리 파란 눈의 꼬마왕자님이 어깨를 흔들고 있다.

“어째서…왕자님이 제 앞에?”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3왕자는 산책 중에 분수대에 처박힌 위즈를 보고 달려왔다고 한다.

“비밀 도서관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밖에 나온 겁니까?”

“1시간은 지났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겨우 10분입니다. 10분!”

“허허…….”

위즈는 어이가 없어 실실 웃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구울과 witch에게 괴롭힘 당했었는데, 왕자는 겨우 10분이 지났다고 말한다. 실제 퀘스트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10분밖에 경과되지 않았다.

‘퀘스트에는 완료가 뜨지 않았어. 그 말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뜻? 뭘 어쩌라는 거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즈는 다른 사람의 일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남동생을 가진 여인의 삶.

그녀는 결국 동생에게 배신당해, 절망에 몸부림쳤다.

기억을 되짚어보던 위즈는 3왕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왕자님의 이름에 들어 있는 유린이란 이름…스펠링이 urine 맞습니까?”

“맞아요. 그런데 어째서?”

“그 뜻은 오줌싸개에서 유래했겠군요.”

“네. 크레센토를 세우신 분의 성을 땄습니다. 미노클의 분수대에 오줌싸개 소년의 장식이 많은 것도 그것 때문이지요.”

“가죠.”

“어디를요?”

“폐하를 다시 만나 뵈어야겠습니다.”


작가의말

중세배경 국가인데....아무리 작아도 인구수 10만은 너무 작으려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37 작전명테러
    작성일
    13.11.29 22:36
    No. 1

    위치... 그녀는 결국 그레센토 왕국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 인물이였구나... 그래서 왕국 자체적으로 은폐시키고 그런건가? 대체 무슨 비밀이 있기에... 혹, 마녀이기에 배척당한 것인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6 솔릴로퀴
    작성일
    14.06.10 08:47
    No. 2

    그런데, 누나가 신부입장으로 볼 때 시누이가 되는거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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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3) +2 13.11.29 1,151 30 21쪽
32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 +3 13.11.28 1,048 25 20쪽
3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 +4 13.11.23 1,521 20 19쪽
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7 22 15쪽
2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8) +1 13.11.19 1,216 24 34쪽
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4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6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0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3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4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2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2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8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0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3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3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1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3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6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5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8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0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1 42 23쪽
9 1. (8) 13.10.14 1,703 29 23쪽
8 1. (7) +1 13.10.05 3,286 60 25쪽
7 1. (6) 13.10.04 2,227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9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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