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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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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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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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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6.

달이 뜨자 유저들은 어김없이 광장에 모였다. 밤이면 야생동물 타입의 적들이 강해진다. 특히나 늑대계열과 멧돼지가 밤이면 극성을 부렸다. 게다가 요즈음 들어 인육만두가 계속 저지른 일 때문에, 결국 상점들이 문을 닫아버렸다. 체력회복 포션 없이는 사냥을 계속할 수 없다.

유저들은 지금이라도 더 오션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현 상황에 불만이 많았지만, 미련이 남은 것마저 모두 같았다.

더 오션을 하는 유저들은 짝사랑에 정신 못 차리는 가련한 영혼이었다.

맥 빠지는 일이다.

“어서 인육만두가 잡혀야 할 텐데…….”

“누가 그놈을 잡아준다면 난 그 사람에게 지금 번 돈을 전부 주고 싶다.”

“허, 인육만두가 여간 센 게 아니죠.”

“누가 아니래요.”

푸념을 하는 유저들의 눈앞에 운영자의 공지가 떠올랐다.


§§§§§§§§§§§§§§§§§§§§§§§§§§§§§§§§§§§§§§§§§§§§§§§§§

서버 긴급점검이 10분 뒤 이루어집니다.

안전지대를 확보하여 로그아웃 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버점검에는 1시간이 소요됩니다.

§§§§§§§§§§§§§§§§§§§§§§§§§§§§§§§§§§§§§§§§§§§§§§§§§


“허이구? 심란해 죽겠는데 마검까지 발동이냐?”

“어차피 밤이 늦어 사냥도 못할 거 잠이나 자야겠네.”

유저들은 하나둘 광장에서 사라져갔다. 두각을 드러내던 사냥터의 외로운 실력자도, 미처 광장에 들어가지 못한 도서관의 떠버리들도.

다른 도시, 다른 국가의 유저들도 모두 접속을 끊었다.

더 오션의 이방인들은 10분을 다 채우기도 전에 모두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브와 모포를 둘러쓴 자들이 곳곳에서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화톳불을 피우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떠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유저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달은 뉘엿뉘엿 넘어가 드디어 자정이 되었다.


◇◇◇◇◇◈◇◇◇◇◇◇◈◇◇◇◇◇◇◈◇◇◇◇◇


광장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빈집에는 문을 따는 불청객이 있었다.

3초. 문을 따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하지만 곧장 들어가지 않았다.

쪼르르르.

시커먼 그림자는 작은 병을 꺼내 문의 경첩에 기울였다. 매캐한 냄새가 나는 액체가 흘렀다. 기름이었다.

기름이 충분히 스며들자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기름까지 바른 문은 너무도 부드럽게 열렸다. 스슥, 바람조차 일지 않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검은 그림자가 들어섰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30초.

지나는 행인조차 없는 삭막한 거리는 곧 일어날 일을 벌써부터 외면하는 듯하다.

“그 움직임, 조심성까지. 마치 어둠 속에서 태어난 것 같군요.”

그림자가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촛불이 켜지며 들려온 말에는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말을 건 상대는 어린애다.

“함정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도망가야죠?”

그림자는 의자를 빼서 털썩 몸을 실었다. 그 거친 움직임에서 긴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도망치면 또 다른 지옥이 날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크로델 보육원.”

“…….”

“당신도 거기 출신이죠?”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굉장하구나. 꼬마야.”

그림자는 딱 달라붙는 복면을 벗었다. 거기서 드러난 얼굴은 지금 집에서 책을 읽고 있어야 할 던컨이었다.

“내가 초록의 단검인 걸 어떻게 알았지?”

“이방인들 간에 정보를 교류하는 곳이 있죠. 당신 말고도 다른 암살자의 정보도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답니다.”

“이방인의 정보력이라……무시 못 하겠군. 한 가지 더. 날 지목한 이유는?”

“그야 당신의 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요. 밤이면 특히나 울고 보채야 할 어린아이가 갑자기 철이 들 리도 없고. 당신의 딸. 납치당했죠?”

“역시 이방인들은 머리가 잘 돌아가.”

던컨은 자신의 단검을 꺼내 탁자에 올려두었다. 촛불아래 드러난 단검에는 무수히 많은 홈이 패여 있었는데, 홈마다 연갈색의 액체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이래봬도 낮에 보면 꽤 예쁜 색이야. 내 별명도 그렇게 지어졌지.”

“딸을 구하려면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살인을 저질러야 하고, 거스르면 딸이 죽는다. 전제조건만 보면 암살자인 당신이 꺼려할 일은 아니었겠죠. 헌데 귀족의 지저분한 이권싸움이 끼어들자 당신은 차라리 딸을 죽이는 게 어떨까 생각했을 거예요. 딸을 살리자고 가족 같은 사람들을 죽일 수는 없었으니까요.”

“맞다. 이제 어쩔 거지? 날 잡아들일 건가?”

“제가 무슨 능력으로요?”

던컨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무릎을 튕겨 탁자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붕 떠오른 자신의 단검을 낚아채 아이를 찔렀다.

챙!

어느새 아이의 주변에는 시커먼 갑주를 걸친 기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과연……미노클 왕도 기사단인가?”

던컨의 손에서 떨어진 단검이 탁자에 거꾸로 박혔다.

“하긴 열 명이나 죽어나갔는데 기사단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지.”

던컨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싱긋 웃었다.

“아마 집을 나오기 전에 자살약을 미리 먹었겠지만 소용없을 거예요.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궁정마법사가 해독시켜버렸거든요.”

“…약이 상할 리 없거늘 왜 오래 걸리나 했지. 이제 그만 놀라고 싶군. 꼬마야, 네 정체는 뭐지?”

“저요? 그냥 탐정놀이 중인 꼬맹인데요.”

“탐정? 그게 뭐냐?”

“에……어떤 이방인이 말하길, 명수사관이래요.”

“너, 이방인이 아니었나?”

아이는 자신의 밝은 금발을 손가락으로 배배꼬았다.

“난 어엿한 미노클 토박이라고요.”


◇◇◇◇◇◈◇◇◇◇◇◇◈◇◇◇◇◇◇◈◇◇◇◇◇


탁탁탁탁. 골목에 편향되어 울리는 발자국이 마치 쇳소리처럼 차가운 밤공기를 두들긴다.

로브를 푹 눌러쓴 자들이 허겁지겁 사냥터로 빠져나가려하고 있었다.

“망했어. 망했어! 왕실기사들이 쫙 깔렸어!”

“괜찮아. 아직 남문은 열려 있어.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곧 막히고 말거야.”

“암살자 녀석은 잡힌 거겠지?”

“그렇겠지.”

그들은 던컨의 딸을 붙잡아 억류하고 있던 유저들이었다. 예정에도 없던 서버점검에 의심을 품고, 그대로 남아 있었음에도 강제로그아웃 되지 않자 이들은 은신처를 박차고 나온 것이다. 워낙 서둘러서 흔적조차 지우질 못했고, 던컨의 딸조차 처리하질 못했다.

“마도로스 녀석들, 약은 수작을 부렸어. 가짜공지를 띄우고 NPC까지 동원하다니.”

그들은 광장 가득 깔린 사람들을 이미 보았다. 겉모습은 유저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왕국군이었다. 여차하면 우르르 몰려와 자신들을 핍박할 병력.

“아!”

멀리 남문이 보이자 이들은 로브를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남문을 통과했다. 앞으로 2주간은 야간에도 이방인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국가의 성도라 해도 문은 열려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여유 있게 인사까지 하며 이들은 남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미노클이 멀어지자 이들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안가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정확히는 일제히 나동그라진 것이지만.

“으윽. 뭐야 이거?”

발목어림을 더듬자 길게 자라난 풀을 ∧모양으로 매듭을 지은 게 느껴진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사람이나 들짐승이 걸려 넘어지게 만든 조잡한 덫. 어린애나 할법한 발상이다.

“누가 이런 장난을 쳐놓은 거야?”

“토끼 잡으려고 그런 거 같은데?”

“아, 누군지 몰라도 한심하네. 토끼 따위를 잡겠다고 이런 수고를? 나가 뒤지라고 해.”

옷을 털며 일어서는 데 여기저기서 작은 빛들이 깨어난다. 한 쌍씩 짝을 지어 다가오는 빛과 함께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도 난다.

크르르르.

늑대였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니다.

“이거 두 개 무리는 되겠는데?”

“쫄지 마. 일격필살만 아껴 쓰면 어떻게든 될 거야.”

“암살자가 이따위 들짐승에게 죽을 순 없지.”

늑대들은 멀리서부터 세 사람을 에워싸며 빙빙 돌았다.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이들이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들지 않은 사실이 금방 드러났다. 심지어 횃불조차 들고 있지 않았다. 늑대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무방비한 먹잇감이었다. 우위에 서 있다고 판단한 늑대들은 곧 흉성을 드러냈다. 한 사람당 세 마리씩의 늑대가 달려들었다. 그것도 시간차를 두며 제법 체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어디서 멍멍이 따위가 덤벼!”

스킬발동의 이펙트가 번쩍이자 늑대들은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세 사람은 이미 손발을 맞춰본 듯, 이리저리 피하고 협공하며 늑대들의 공격에 대처해나갔다. 그러나 워낙이 늑대들의 숫자가 많아 상처가 나는 것을 피하진 못했다. 스무 마리 정도 죽였을 때, 나머지 늑대들이 겁을 먹고 도망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세 사람 중 하나는 죽었을 것이다.

“제길! 늑대에게 체력이 절반이나 까이다니. 이게 말이 되냐?”

“어쩔 수 없잖아. 우린 처음부터 다시 키우는 거라고.”

“아 짜증나. 이 재수 없는 곳에 더 있기 싫어. 가자.”

그러나 세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어떤 존재를 발견한 때문이다.

두두두두.

“멧돼지다!”

“염병! 지랄도 풍년이다!”

세 사람은 왔던 길로 돌아갔다. 분명 풀을 엮어서 만든 조잡한 올무가 자신들을 구해줄 거라 여겼다. 숫자가 많아 멧돼지가 걸릴 확률도 높았다. 이들의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멧돼지는 올무에 걸려 넘어졌다. 그러나 곧 자세를 잡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 짧은 틈을 노리고 멧돼지의 미간에 일격필살이 쏘아졌다.

뇌까지 파고든 공격은 멧돼지를 그 자리에 주저앉혀버렸다.

“야, 가자.”

“잠깐.”

“왜?”

“이것들…아무래도 우릴 노리는 거 같다.”

세 사람은 로브를 꺼내 입고 은신술을 펼쳤다. 물론 수준이 낮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찾아낼 수 있지만, 밤에는 인센티브가 주어져 이들의 은신이 Lv.2로 효과가 오른 상태다. 누구든지 가까이 다가오면 해치울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이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우어어엉.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멀리 퍼져나가진 않지만, 굵고 힘이 느껴지는 소리가 밤공기를 밀어냈다. 멧돼지보다도 더 커다란, 바위만한 덩치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그리고 멈춰선 곳에서 와드득하고 뼈가 씹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름 끼치는 소리를 들은 세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파티채팅을 켰다.

- 이번엔 곰.

- 무슨 비스트 마스터라도 뜬 거냐? 토끼 빼곤 다 뛰쳐나오잖아!

- 이대로 남문까지 후퇴한다. 저것들은 어그로 끌지 않는 한, 거기까진 쫓아오지 않을 거다.

- 야, 그냥 여기서 로그아웃 하자.

- 미쳤냐? 이미 우린 찍혔어. 다음에 로그인 할 땐, 미노클의 기사들에게 에워싸여 있을 거다. 게다가 사냥터 한가운데에서 로그아웃? 이미 Lv.11이라 죽으면 사망 패널티로 스탯 깎이는 걸 잊었냐?

- 하지만 지금쯤은 남문에 기사들이 와있을 테고…….

- 남문 근처에서 로그아웃하는 거다. 거긴 완전 토끼 밭이니까 괜찮을 거야.

의견의 일치를 본 세 사람은 천천히 남문으로 움직였다. 그때 멀리서 딱 하는 소리가 울렸다. 나무막대기끼리 부딪치는 소리.

그러자 늑대를 씹던 곰들이 움찔거리더니 자신들 쪽으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둔하게 생긴 몸집에서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나오는 건지. 멧돼지가 포탄이라면, 곰은 구르는 바위였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박력 때문에, 세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은신상태가 풀려버렸다. 그들의 눈에는 잔뜩 성난 곰들이 자신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위해 달려오는 걸로 보였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매듭지어진 풀에 걸려 넘어진 한 사람이 달려오는 곰에 깔려 사망했다. 회색 먼지가 풀썩 피어오르며 시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머지 둘은 그나마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달리면서 눈을 마주친 둘은 한쪽 손을 뒤로 돌리며 손목에 숨겨진 작은 단검을 발사했다. 그것은 정확히 곰의 눈과 미간에 명중했다. 곰의 머리가 푹 꺾였다. 그대로 사망.

육중한 몸뚱이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몇 번 구르더니 멈춰 섰다. 그리고 다른 곰은 동족이 죽어 자빠지자 놀라서 도망쳐버렸다.

두 사람은 멈춰서 숨을 골랐다.

“대체 뭐야? 진짜 비스트 마스터야?”

“아냐. 저건 조련이 아니라, 그냥 내몰린 거다.”

“내몰렸다고?”

“저 곰들. 누군가에게 쫓겨서 온 거다. 길들인 게 아냐.”

“그럼 늑대와 멧돼지도?”

“시간만 충분하면 우리들도 가능한 일이잖아.”

딱. 딱. 딱.

나무를 두들기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이젠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이들이 가진 포션의 개수는 제한되어 있고, 모습조차 내비치지 않은 상대는 자신들을 궁지에 몰았다.

“카논. 별 수 없다. 여기서라도 로그아웃 해야만 해. 안 그러면, 인육만두 녀석처럼 되어버려.”

“분하지만……네 말이 맞아.”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잠시 후 그 자리에 나타난 위즈는 바닥에 뒹구는 아이템 하나를 주워들고 한숨을 쉬었다.

캐릭터를 생성할 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먹을거리. 호밀빵.

“이놈 순 거지 아냐?”

딱딱한 빵을 씹으며 위즈는 남문으로 걸어갔다.


◇◇◇◇◇◈◇◇◇◇◇◇◈◇◇◇◇◇◇◈◇◇◇◇◇


“궁금한 게 많지만 꾹 참고, 당신의 장단에 놀아나 주었습니다. 이제 대답할 차례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을 전부 말해주어야겠습니다.”

위즈를 본 금발머리의 꼬마는 머리카락을 꼬며 오만하게 굴었다. 주변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와, 수염을 기른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서 있다.

‘일부러 위세를 드러내는데 한번쯤은 꺾여주는 것도 좋겠지.’

허리를 숙이며 바깥으로 뻗은 손을 가볍게 심장으로 가져오는 간단한 동작이 이루어졌다.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나, 무례하지 않을 정도의 인사.

“먼저 무릎을 꿇지 않는 무례를 용서하시길.”

꼬마는 자세를 바로 했다.

“내가 누군지 아는 눈치로군?”

“뭐, 왕족 아니겠습니까. 왕자님이라거나.”

“정답.”

“하지만 무릎은 못 꿇겠습니다. 저의 왕이 아니시니.”

“왕족인데도?”

“한 국가의 수장정도의 위치시라면, 그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가능은 하지만 그냥 왕족이라면 곤란합니다. 게다가 그런 행위만으로도 크레센토의 국민임을 자인하는 게 되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보군.”

“저는 이방인입니다. 국적을 정해버리면, 활동에 지장을 줍니다. 이방인은 모험을 해야 합니다.”

“이해한다.”

“그럼. 이번 사건, ‘인육만두’ 사건의 전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즈는 먼저 피해자들과 초록 단검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은 모두 크로델 보육원과 관련이 있었다.

일찍이 던컨은 크로델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성년이 되자마자 암흑가로 들어가 암살자로 활동했다. 특히 독을 다루는 실력이 뛰어나 초록 단검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그의 활동무대는 이웃나라인 알페이로트. 여기서 그는 주로 귀족들의 정적 암살을 맡았다. 그러다가 어떤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은퇴를 결심. 암흑가의 사람들도 은퇴를 말리지 않았다.

“보통은 규칙 같은 걸 내세워서 해코지 할 것 같은데?”

“암흑가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아무튼, 던컨은 행복하게 잘 살다가……딸이 생기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출산 후 아내가 몸이 약해져 요양을 가야 했던 겁니다. 그래서 던컨은 홀로 이곳에 남아 아이를 양육해야 했습니다. 그때 신탁과 함께 이방인이 유입되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방인-유저들의 일부는 던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퀘스트를 주는 NPC에 불과했다. 그런데 인육만두를 비롯한 세 사람은, 던컨을 이용해 자신들의 캐릭터를 육성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기회를 보아 던컨의 딸을 납치했고, 이를 미끼로 사람을 죽이도록 시켰다. 그리고 죽인 사람이 ‘인육만두’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실제 죽인 사람이 누구던 간에, 악명은 인육만두가 가져갔다.

소문의 맹점을 이용한 플레이였다.

인육만두는 밖에 돌아다니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사람이 죽고, 악명이 쌓이는데 뭣 하러 돌아다니겠는가?

“여기까지가 이방인들의 사정입니다.”

“마치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예. 저도 알아내느라 고생했습니다.”

크로델 보육원.

여느 보육원과 마찬가지로, 원장과 몇몇 직원이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보육원 건물이 들어선 부지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버렸다.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돈을 빌린 게 문제였다. 결국 보육원의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밖으로 내쫓겨야 했다. 원장은 더 이상 아이들을 키울 수 없었다. 그는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 아이들부터 취업시키는 것으로 원장의 소임을 다했다.

그리고 빈털터리가 된 원장은, 보육원 해체에 발단이 된-돈을 빌려준 사람을 찾아가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원장에게 돈을 빌려준 건 아르비튼 자작이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네. 나도 귀는 달려 있거든?”

금발의 꼬마왕자는 귀를 긁었다.

“그렇다면 아르비튼 자작이 악덕대부업자라는 추문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도 아시겠군요.”

“추문이 아니라 사실이지. 다른 귀족들도 그런 식으로 돈놀이를 하고 있고.”

“하지만 아르비튼 자작처럼 보육원을 날려버리는 짓은 안할 겁니다. 적어도 그들은 앞뒤 분간은 할 줄 압니다.”

안타깝게도 아르비튼 자작은 그러질 못했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궁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기한 내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않자 압류절차를 밟았다. 거지가 된 원장이 저택 앞에 거적을 깔고 드러누울 때까지만 해도 아르비튼 자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헌데 미노클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르비튼 자작의 몸에는 피 대신 황금이 흐른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다. 보육원 밑에 엄청난 양의 금괴가 있어서 저지른 일이라는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이야기가 퍼져 나왔다.

자고 일어나니 저택을 두른 담벼락은 이 같은 내용의 악성비방으로 가득했다. 아르비튼 자작은 경비병을 늘리고, 자신을 모함하는 자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렸다. 그리고 다음날 적발된 자들을 매질하여 대문에 매달아두었다.

이는 여론의 급격한 악화로 이어졌다.

같은 귀족들마저도 아르비튼 자작을 비난했다.

그날 오후, 휘하의 하인과 경비병들 대다수가 위약금을 물어도 좋으니 그만 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르비튼 자작은 누구 맘대로 그만 두느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하인들이 야반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르비튼 자작의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말았다.

“그때 인육만두가 나타나 아르비튼 자작을 꼬인 겁니다. 단식투쟁 중인 노인만 사라진다면, 사람들은 곧 잊게 될 거라고. 아르비튼은 던컨을 소환했고, 귀족의 부름이라 던컨은 어쩔 수 없이 따랐겠죠. 던컨은 자연스레 딸과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무능력자인 저라도 조금만 머리를 쓰면 어린 딸을 납치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아르비튼 자작이 초록 단검에게 의뢰를 한 거로군?”

“네. 그리고 초록 단검은 의뢰를 거절했습니다.”

“어째서이지?”

“죽여야 할 사람이 같은 보육원 출신이니까요.”

“이해할 수 없군. 같은 소속의 집단이라 해치지 않는다? 보육원의 소속감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소속감이 아닙니다. 애정이지요.”

“애정?”

“네. 그들은 실제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크로델 보육원에서 거두어들인 고아들은 그만큼 서로를 의지하고 있고, 성인되어 독립한 후에도 그 끈은 이어져 있습니다. 이번에 보육원이 해체된 후 고아들이 취업한 곳을 살펴보니, 크로델 보육원 출신의 고용주가 압도적으로 많더군요.”

“그만큼 크고 넓은…하나의 단일 세력이라 봐도 무방하다는 건가?”

“세력이라…….”

일개 보육원의 작은 ‘회’를 세력으로 표현하는 왕자의 눈빛이 싸늘하다. 마치 미래의 반역 도당처럼 대하고 있질 않은가. 정치와 무관한 사건임에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위즈는 어이가 없는 한편, 왕족이란 족속의 특징이라고 이해했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걸로 따지면 군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배자라면 충성을 얻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탓해야지, 힘을 가진 집단을 경계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새겨듣지. 헌데, 자네 말대로라면 초록 단검은 의뢰를 거절했다. 그런데 어째서 크로델 보육원 출신들이 줄줄이 죽어나간 건가?”

“그건 그들이 던컨의 딸을 구출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뭣이? 무슨 수로?”

“그들은 성도 미노클의 하층민이지만,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자신들만의 연락체계로 정보를 모았고, 인육만두의 위치도 파악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경비대를 불러야지!”

“그게 가능했다면 던컨이 직접 구하러 갔을 겁니다. 던컨은 그러질 못했지요. 이들은 던컨의 딸이 위험해질 거라 판단했던 겁니다. 확실히 그 판단은 틀리지 않습니다. 상대들은 암살의 경험이 있습니다. 본보기로 경비대원을 죽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그들은 은신의 기능이 있는 아티팩트를 구했고, 그것을 이용해 던컨의 딸을 구하려는 자들을 족족 잡아 죽였습니다. 네. 던컨의 딸은 미끼입니다. 그들은 한밤중 날아오르는 불나방에 불과했습니다. 자신이 타죽을 줄도 모르고 불속으로 달려드는 불나방말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왕자는 분노했다.

“가족 간의……사랑을 이용한, 추악한 범죄군.”

옆에 서 있던 기사단장과 노인 역시 얼굴을 씰룩거렸다. 그 모습을 본 위즈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관련자를 가만 놔두면 안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이방인을 적대시 할 겁니다. 그건 이방인들의 대거 이탈로 이어집니다. 곤란하지요.”

“무슨 소리인지 알겠네. 대의를 위해 우리끼리 해결하자는 건가?”

“그 반대입니다.”

위즈는 어깨를 폈다.

“날이 밝으면 포고문을 작성하고, 인육만두를 비롯한 나머지 두 사람에 대한 추살령을 내려 주십시오.”

왕자는 곤혹스러워했다. 이방인에 대한 추문을 막기 위해서도, 입단속을 시켜야 정상인데 오히려 화끈하게 터뜨려버리자니?

“어째서이지? 자네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아.”

“이번일은 구역질나도록 역겨우실 겁니다. 지금 저도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다른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는군요.”

위즈는 왕자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이번일은 저희들에게도 확실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만큼 경종을 울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겁니다.”

정확히는…무리한 플레이를 지양하고, 몸을 사리게끔 압박하겠지.

여론은 그렇게 몰아갈 것이다.


작가의말

시논, 카논......이때부터 털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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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 +4 13.11.23 1,521 20 19쪽
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7 22 15쪽
2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8) +1 13.11.19 1,216 24 34쪽
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3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6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0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2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4 3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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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2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8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0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3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3 32 23쪽
»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1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3 2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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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0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1 4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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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 (7) +1 13.10.05 3,285 60 25쪽
7 1. (6) 13.10.04 2,227 4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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