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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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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829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3.10.04 17:32
조회
2,227
추천
42
글자
22쪽

1. (6)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9.

Red Ocean, 2년간 꾸준히 인기순위 1위를 유지하는 가상현실게임.

이 게임은 지금 유래 없는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데이터가 물밀듯이 들어와 유저들을 강제 로그아웃시키더니, 뒤이어 서버공격이 이어졌다.

“애송이 치곤 제법이다!”

보안전문가가 호기롭게 나섰지만 그는 곧 눈만 멀뚱거려야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언어로 이루어진 코드의 홍수는 손대기 겁이 날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부장은 손날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해보였다.

“저놈 잘라버려.”

결국 서버는 3분 만에 셧 다운되고 말았다.

실업자 하나가 터덜터덜 사무실 밖으로 나간 건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


Red Ocean의 서버가 벌어준 3분.

편재와 지우는 그 3분 동안, 셸터의 컨트롤 룸과 접촉하기위해 회선의 복구를 시도했다. 다행히 몇 번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연결은 쉽게 복구되었다. 허나 이건 일시적인 것이다. 언제 다시 해킹이 들어올지 알 수 없었기에 이야기는 짧을수록 좋았다.

- 이건 비상회선입니다. 누구시죠?

“편재입니다. 지금 대화하시는 분은 총 책임자이십니까?”

- 회장님과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편승의 모습이 나타났다. 암릿을 통해 연결된 모양이었다.

- 어떻게 된 일이냐? 이건 비상회선이라던데?

“침입자에 대해 해줄 말이 있습니다.”

- 현재 진압중이다. 우리 쪽의 압승이지. 네가 신경 쓸 거 없다.

역시 바깥에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었다.

편재는 우리 쪽의 무장경비 중에서도 사상자가 생긴 사실부터 알려주었다. 보고를 받으면 자연히 알게 될 사실이지만, 이렇게 미리 알려주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누군가 정보를 가로채 조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 난 그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만, 그렇다면 누군가 방해하고 있다는 뜻이로군. 해커인가?

다행히 편승은 미련한 인물이 아니었다. 편재가 하는 말을 금세 알아들었다.

“또 있어요.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어딘가로 바삐 움직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 얼굴을 보았나?

“그들이 가는 곳마다 CCTV만 먹통입니다. 그냥 동작감지 센서의 정보만 봐서는 지하 3층 정도인 것 같아요. 대체 거기에 뭐가 있죠?”

- 거긴 무장경비로봇의 격납고가 있다.

편재는 얼굴를 굳혔다. 이럴 때 하필 영화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설마 해킹으로 제어권을 빼앗을 생각인가?”

- 쉽진 않을 거다. 독자적 AI유닛이라, 해킹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그건 다행이네요……가 아니라, 하나 더 있다. 셸터 쪽에서 컨트롤 룸으로 연락하는 회선이 죄다 커트되었어요. 어쩌면 물리적으로 연결을 차단했을 수도 있으니 사람을 보내 알아봐 주세요.”

- 내부에 스파이까지?

편승은 혀를 찼다. 턱밑까지 적이 숨어들어 오는 동안 그걸 모르고 있었으니 기가 막힐 수밖에. 너무 안이했다고 중얼대는 편승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 귀한 정보 고맙구나.

“CCTV화면은 더미 영상이니까 속지 마시고요. 방어 시설에 의존하면 늦어요. 인력으로 찾으세요. 영희 아저씨에게도 알려주시고.”

- 이쪽일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마라. 하던 일은 진척이 있느냐?

“오늘은 틀린 것 같아요. 코어들의 공격 패턴 분석도 해야 하고, 빌딩에 들어온 해커도 마음에 걸리고요.”

- 밖으로 나오겠느냐?

편재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나간다고 상황이 더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그럴 바엔 셸터 속에서 다른 걸 시도해보고 싶었다.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편재는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었다. 한가하게 안부나 물으며 시간을 죽이는 건 사치다.

이제 편재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생각이다.

동시에 여럿의 코어를 상대하면서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셸터.

이런 화력을 파이오니어 빌딩으로 돌리면?

자신의 계획을 말해주었더니 좋은 생각이라며 지우도 찬성했다.

“비상회선이 이것 하나만은 아닐 거야. 그것들을 전부 열어서, 해커의 위치를 파악하고 놈에게 한방 먹인다.”


◇◇◇◇◇◈◇◇◇◇◇◇◈◇◇◇◇◇◇◈◇◇◇◇◇


컨트롤 룸에 정적이 감돌았다. 헤드셋을 낀 사람들은 모든 기계의 조작을 멈추고 팔짱을 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깨를 감싸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강박사와 편승도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

이미 편재의 경고를 들은 뒤다. 비상회선을 통한 목소리는 이 컨트롤 룸의 스피커를 통해 여과 없이 송출되었다.

파이오니어 빌딩의 침입자문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귀찮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격벽을 내려 각 구역을 영원히 폐쇄시켜버리면 되니까. 1년 뒤 열면 아마 잘 말라비틀어진 미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중요한 건, 누군가 셸터에 물리적인 조작을 가했다는 것이다.

“결국 셸터를 노린 침입이로군.”

편승은 낮게 으르렁거렸다. 강박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편승의 눈빛이 자신을 비롯한 모두를 훑었다. 그 눈빛이 일깨우고 있다. 자신들이 피식자의 입장이라는 것을.

“내가 편家의 피를 이은 사실을 망각한 사람이 있는 것 같군.”

방안의 모든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는 살기가 편승의 전신에서 뿜어졌다.

오퍼레이터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살에 파고들어 피가 나는 사람도 있었다. 거리가 가까운 그들로써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버티는 것이다. 정비를 마친 엔지니어들은 비교적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 역시 살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 무술의 정점에 선 강자 중 하나가 편승이었다. 그의 강함은 스스로의 기감을 날카롭게 벼려 주변에 퍼트릴 정도의 이능(異能)의 수준으로 승화되었다. 이정도 되면 단순한 살기가 아니다. 정신공격이었다.

반면 이 같은 고문을 당하는 이들 대부분은 일반인들이었다. 이들은 직장상사에게 위협받는 것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급기야 바닥에 쓰러져 구역질을 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여기저기 토사물로 바닥이 어지럽혀지는 것을 본 편승의 입매가 비틀려졌다. 약자에게 한없이 잔인하게 변할 수도 있는 그의 인성은 지금 저들에게 더한 고통을 내리라 명하고 있었다.

때론 말로 하지 않았는데도 충분히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편승의 미소를 본 사람들이 그러했다. 가끔 경비단이 회장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아도 과장이 심하겠거니 했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들었던 것은 실제의 1/10도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을. 세상엔 말로도 표현 못할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魔王 편승. 그들의 회장은 마왕이었다.

강박사는 초인적인 절제력으로 덜덜 떨리는 입을 열었다. 다행이도 목소리는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자네는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셈인가?”

“내 새끼가 위험해지게 생겼는데 그러지 못할 건 또 뭡니까. 인권 따위 개나 줘버리십쇼.”

“이 많은 인원이 죽어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거네. 그래도 좋은가?”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편승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강박사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강박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편승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이만큼이나 반항하는 강박사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그 역시 편승의 멱살을 마주 잡았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숙원을 가지고 있지. 이들이 하던 일을 전부 때려치우고 모인 이유를 벌써 까먹었나? 한 다리 건너면 이들은 전부 파이오니어의 후예들이네. 이런 대접을 받자고 여기 온 게 아니란 말이야!”

“이이…….”

이를 갈아붙이며 편승이 노려보아도 강박사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며 마주 노려보았다. 어쩌다보니 눈싸움으로 변해버린 상황. 승자는 뜻밖에도 강박사였다.

편승이 눈을 피해버린 것이다. 그는 강박사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에서 태양을 보았다. 평소 아이처럼 구는 괴짜라고만 생각했는데, 달리 생각해보면 그만큼 열정적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한 없이 어두운 그림자인 자신 따위는 녹아 없어져버릴 것 같은 열정은 꾸민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더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었다.

엔지니어들, 저명한 공학박사들과 의료진들…….

자신이 내뿜는 살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원망 한 점 깃들어 있지 않은 눈.

이들은 모두 자원자들이었다. 각기 맡은 분야에서 충분히 실력을 인정받는 고급인력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도움을 구하자, 하던 일도 그만두고 모였다. 이 사람들 중에 배신자가 있다고?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길까봐 가리고 가려 뽑았지만, 전부 받아들였어도 문제는 없었을 사람들이다. 강박사의 말대로 이들은 숙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공통된 숙원을. 그 숙원은 편승이 가진 것과도 일치했다.

강박사가 옳았다. 이들은 배신할 리 없다.

편승은 시선을 떨어뜨렸다. 한순간이라도 저들을 의심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대체 어떤 얼굴로 저들을 봐야할까.

삽시간이 살기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멱살이 풀리며 엉덩방아를 찧은 강박사는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편승은 강박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러분께 제가……윽!”

강박사는 편승의 정강이를 차버렸다.

“지금 간질거리는 소리나 주워섬길 땐가? 우릴 물 먹인 놈들에게 주먹이나 쓰고 와!”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엔지니어 몇을 불렀다.

“너. 너. 너. 나 따라와. 나머진 비상 모듈 열어 두고 있어.”

팔팔한 모습만 보면 강박사는 언제 멱살을 잡혔나 싶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하지도 않고 공구를 챙겨드는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하다.

“아직도 안가고 있어?”

멀뚱히 서 있는 편승을 보며 강박사는 혀를 찼다.

“설마 사과 몇 마디로 때울 생각이었나? 그런 싸구려 립 서비스를 바라는 사람은 없으니까, 놈들 때려잡으면서 잘 생각해봐. 우리가 뭘 원할지. 뭐하고 섰어? 빨리 튀어나오지 않고!”

기백이랄까 중년의 능글맞음이랄까, 그런 것에 휩쓸려 편승은 밖으로 나왔다. 등 뒤에서는 왁자지껄한 외침이 등을 밀어주었다.

“사과대신 보너스나 주시죠?”

“휴가도 좋고.”

문을 닫고 돌아서자 강박사가 키를 건네주었다. 열쇠고리에 E2-11 이라 적혀 있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5구획을 가면 비상엘리베이터가 있네. 지하 5층으로 가는 것이지. 여기 일은 우리들에게 맡기고 자네는 훼방꾼이나 정리하게.”

“조금 전 일은…….”

“하, 거참 끈질기네. 지금 비상사태라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또 뭔가?”

“그곳은 콜로니의 공조기가 있는 곳이라 엘리베이터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당연히 없지. 도면에도 안 나와 있어.”

“그럼?”

“물어서 뭐하나. 당연히 고속엘리베이터지.”

“으음…….”

“앓는 소리 말게. 자네 몸 단단한 거 아니까.”

“5구획이면 뛰어서도 1시간은 넘게 걸릴 거리인데, 좀 더 가까운 곳은 없습니까?”

“가는 거야 금방이지. 마침 저기 오는군.”

강박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엔지니어들이 작은 카트를 몰고 있었다. 혼합 디젤을 사용하는 카트는 작업현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물건이다. 그런데 카트를 보는 편승의 얼굴이 가관이었다. 마치 시한폭탄이라도 안은 표정으로 신음을 흘리는 것이다.

“저는 운전할 줄 모릅니다만.”

“그냥 시동 켜고, 핸들 쥐고 밟아. 연료도 빵빵하게 채웠으니 막 굴리라고. 아주 재미있을 걸?”

싫어하는 편승을 억지로 끌어 카트에 태운 강박사는 시동을 걸고 전진-후진기어와, 엑셀, 브레이크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해보라며 팔짱을 끼자 편승은 머뭇거리며 이것저것 만져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전진. 어어?”

카트가 덜덜거리며 뒤로 가자 당황한 편승이 브레이크를 콱 밟았다. 그러자 카트는 속도를 높여 후방의 안전펜스를 받아버렸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어째서…….”

편승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강박사는 지금 밟고 있는 페달부터 확인해보았다.

“이 답답한 사람아. 이게 엑셀이고 저기 넓적한 게 브레이크라니까! 그리고 후진기어잖아! R이라고, reverse! 간단한 거잖아! 영어 몰라?”

이후로도 강박사한테 여러 번 등짝을 얻어맞고서야 편승은 떠날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망아지를 탄 골리앗처럼 우스꽝스러웠던지라 엔지니어들은 키득거렸다.

“세상은 공평한가보네요. 저런 분이 기계치일 줄이야.”

“신께서 측은해 하신게지. 바보니까 몸이라도 튼튼해야 할 거 아닌가.”

강박사도 엔지니어들이 왜 웃는지 안다. 탈것에 비해 큰 몸이 대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어린애처럼 굴지마라. 코찔찔이. 우린 어른이 되었고, 넌 독불장군이 아냐.’

세르반테스가 만든 영웅은 망령든 노인이며 허풍쟁이였다. 하지만 풍차가 아닌 진짜 거인을 상대했다면, 모두가 우러러봤을 것이다. 낡은 창을 꼬나 쥐고 달려들 용기만큼은 진짜였으니까.

‘돈키호테는 적당한 상대를 찾지 못해 허풍쟁이로 남았다. 하지만 자네의 적은 이렇듯 명확하지. 편家의 힘이 쓰이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난 모르겠군.’




10.

편재는 지우가 보내준 프로그램 덕에 별도의 암호화를 거치지 않고도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헌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우의 반응이 느려졌다. 지우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런가보다 생각했었는데, 드문드문 보내오는 메시지를 보면 그게 아니었다.

- 과…부하……강제…웃….

- 지우씨?

- 속지……더미…가상현실…마…

- 지우씨 대체 무슨 일이에요?

- ……막…야…sfdg¢☞蟲탫짓

그리고는 연락이 끊겼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편재에게 알리려고 했지만, 그게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아예 깨진 상태로 전송되었다. 해독해도 뜻이 안 맞는 마구잡이 글자였다. 정말로 깨진 데이터인 것이다.

“강제로그아웃 당한 건가?”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에 지우가 리타이어 되었다는 내용은 아직 없다. 그렇다면 이건 다른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해커가 셸터를 건드리기 시작한 것일지도 몰라.”

편재는 열어둔 비상회선의 수를 줄였다.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이 상황에서는 신중할수록 좋다. 그때 압축된 데이터박스가 전송되어왔다.

“응? 외부에서 나한테?”

지우와의 연락이 끊긴 직후 들어온 것이라 편재는 의심이 앞섰다.

컨트롤 룸에서 들어온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것 자체가 트로이 목마가 되어 셸터를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편재는 삭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떠오르는 시스템메시지.


- 데이터박스 ‘jiwoo'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지우라고? 설마 우회해서?”

비상회선을 통해 연락을 취하는 것도 가능은 하다. 그래도 너무 대범한 방법 아닌가.

일단 편재는 별도의 격리공간을 만들어 데이터를 열기로 했다. 문제가 생기면 격리공간채로 삭제시켜버리면 그만이니까.

내용은 별것 없었다. 가상현실 게임-레드 오션의 데이터와 메시지.

편재는 메시지부터 확인해보았다. 사람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백업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마도로스 社의 서버데이터를 복구 해준다면,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선에서 문제를 마무리 지을 수도 있다. 이미 의논된 내용이었다.

“확실히 지우가 보낸 게 맞는 것 같군.”

편재는 데이터를 저장해두었다. 그런데 저장을 마친 후 새로운 내용의 데이터가 역출력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레드 오션의 데이터의 일부였다. 그것들이 조합되어 전혀 다른 프로그램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내용들은 편재가 띄워든 모든 화면을 좀먹고 있었다.


『프로젝트 네메시스 가동.』


억양 없는 여성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울리며 편재가 띄워둔 모든 시스템 창이 닫혀버렸다. 다중 키보드가 사라지고 Virtual screen마저 모습을 감췄다. 하얗기만 하던 세상은 피로 물든 듯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적합성 판단 결과, 해당카테고리의 프로그램 발견.』

『심층기저유닛이 교체됩니다.』

『제어권이 M2유닛으로 넘어갑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편재는 목이 터져라 로그아웃을 외쳤다. 그러나 시스템은 아예 반응하지 않는다. 자기 할 일만 하는 시스템은 편재를 대놓고 무시했다.

편재는 공포에 질렸다. 불현듯 셸터에 사용된 테크닉이 브림캐스터의 것이라는 게 떠올랐다. 명령도 안 먹히고, 어떠한 데이터도 입력할 수 없다.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가상현실로 구현된 이 몸뚱이도 이제 쓸모가 없다.

어쩌면 여기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마구 고동쳤다. 이렇게나 스트레스 받고 있음에도 경고 문구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편재가 머무르는 공간에 변화가 생겨났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이질감이었다.

이제까지의 하얀 공간은 가상현실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생생함을 전해주었다. 편재는 흰색으로 페인트칠을 한 정도의 공간으로 인식했다. 헌데 지금은 너무도 조잡한, 픽셀단위의 얼룩이 비쳐 보이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아이콘들이 촘촘히 깔려 있었으니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아이콘은 바닥뿐 아니라 천장이며 벽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구(球)의 형태에 가까운 공간이었으니, 위아래의 구분은 의미 없었다.


『융합에 앞서 경로를 트레이스 합니다.』


무뚝뚝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울리자, 아이콘들 사이로 각양각색의 선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구슬목걸이처럼 하나로 연결되기도 하고, 다른 것과 연결되기도, 갈라지기도 했다. 전체적임 모습은 카발라에서나 볼법한 생명의 나무 같았다. 하지만 그 모습도 곧 사라져버렸다. 연결이 너무 복잡해서, 편재는 어떤 규칙성도 찾지 못했다.

“대체 뭐하자는 수작이야.”

편재는 무심코 선 하나를 손으로 짚어보았다. 그러자 연결된 아이콘들이 황금빛으로 깜박이며 부각되었다. 편재는 그 흐름을 따라 손을 짚어갔다. 그 끝에 찾은 것은 어떤 지도였는데, 밑에 겹쳐진 동그란 번호는 분명'core unit-F'

“코어?”

편재의 입이 벌어졌다.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없었다. 폐쇄구역 중에는 F도 있다. 물론 세상에서 코어라고 불리는 게 이것 말고도 많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셸터를 통해 하던 일이 폐쇄구역의 코어 공략이었다. 그러니 전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조금 전에는 잘못되어 개죽음 당할 게 두려워 그랬다면, 지금은 기대와 설렘 때문이다.

아이콘으로 손을 뻗은 건 당연한 일이다. 만져서 이렇게 되었으니 아마 뭔가 변하지 않겠는가. 과연 편재의 손이 닿자 아이콘이 깨지며 여러 장의 문서가 넓게 펼쳐졌다.

“코어를 보호하는 프로텍트 중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 토륨발전기를 셧다운 시킨 뒤 출력이 떨어진 틈을 타……다량의 데이터를 전송? 과부하에 걸린 일부 시스템이 재부팅되고……어? 코어 유닛에 물리적 접근도 가능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편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멋대로 굴던 셸터가, 풀지 못한 문제의 답을 내주었다. 손을 떼자 문서는 사라지고 깨졌던 아이콘이 복구되었다. 이번엔 선의 흐름을 역으로 타고 가보았다. 분명 시작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만 찾으면 폐쇄구역쯤 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꼬불거리는 선을 찾아 움직인 지 몇 분이 지났다.

시작부분을 발견한 편재는 기쁨과 황당함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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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unit-F'/ unlock = 수몰된 유피테르의 부상]

조건 1 : 관련된 10종의 연결 퀘스트 완료. [2개의 퀘스트 구현 후 적용 중]

조건 2 : 히든 직업 ‘블러드 서커’의 2차 전직퀘스트 완료. [미 구현]

조건 3 : 준비 중입니다. [미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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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블러드 서커? 히든 직업?”

세상과 동떨어진 내용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편재는 대 혼란에 빠졌다. 이럴 리 없다고 중얼거리며 편재는 다른 선을 짚었다. 이번에는 끝도 보지 않고 곧바로 시작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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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 unit-L'의 제너레이터/ shutdown = 중급마족 ‘검은휘장-에텔 겔러바움’ 격퇴]

조건 1 : 관련된 3종의 연결 퀘스트 완료. [미 구현]

조건 2 : 성기사의 상위 직업 ‘치천사’의 출현.

조건 3 : 대장장이가 파티에 포함.

조건 4 : 유저의 성 비율이 5:5일 것.

조건 5 : 준비 중입니다. [미 구현]

조건 6 : 준비 중입니다. [미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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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그러니까 진짜 게임이네?”

몇 번을 살펴도 마찬가지다. 이건 게임의 데이터다.

셸터는 게임과 융합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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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2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2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8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1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3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3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1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3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6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5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9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1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1 42 23쪽
9 1. (8) 13.10.14 1,703 29 23쪽
8 1. (7) +1 13.10.05 3,286 60 25쪽
» 1. (6) 13.10.04 2,228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9 4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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