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시작
여정의 시작
천사의 기원 상권. 바르타무스와 틀어진 원인이 됐던 물건이다.
"그건 좋지 않은 물건이야. 네 손에 있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빨리 처분해 버리는 것이 좋아."
토트가 말했다.
"그걸 꼭 필요로 하는 악마에게 주는 것이 좋겠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내가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도 토트는 알고 있는 듯한 눈치다.
"여기 마지막으로 사인해야 할 서류네."
인간 수확장 지분 인도 양해 각서.
"몇 개나 되죠?"
"16개. 이것 때문에 지혜의 교단에서 난리 났어. 헬하운드도 뺏겼고 수확장 16개면 교단에서 받은 데미지가 상당할 거야."
그러고 보니 바르타무스가 연금술사에 마법사로 인간 영혼을 가공하여 악마로 만드는 대가였었다. 그러니 본인의 관리하에 있는 인간 수확장이 16개나 되는 가 보다.
"그럼 모두 파리 교단 소유물이 되는 겁니까?"
"정확히. 물론 인간 수확장 관리는 자네가 하지만 생산 물건에 대해서는 분배가 이뤄져야 해. 아무래도 전 주인인 지혜 교단에서 상당수 이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도 빨리 우리가 뺏어야겠지."
"이런 사고를 친 바르타무스는 어떻게 되는 건지 상상이 안 가네요."
"그래서 조심하라는 거다. 아마도 지혜의 교단 측에서 바르타무스에 명예 회복의 기회를 줄거야. 그래서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거지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네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테니까."
"음, 제가 소멸시켜 버리면?"
"그야 그럴 능력이 있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자네는 루시퍼로부터 1품 악마를 소멸시킬 능력을 받았으니."
이놈들 차원 에너지를 사용한 것을 루시퍼가 준 능력이라고 오해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이것도 부하를 시키면 되겠지요?"
"바르타무스와 같이 연금술에 재능이 있는 우피르면 제격일 거야."
"그렇지 않아도 맡길 녀석은 그 녀석뿐입니다."
"단, 일의 결정은 반드시 교단과 상의하도록 주지시키게."
"물론입니다."
바로 우피르 패놈을 소환했다.
"네르갈님, 토트님을 뵙습니다. 주인님에게 영광을···."
"너를 16개 인간 사육장 책임자로 임명할 거야."
"그런 명예와 영광을 주시다니 그 소명 권능이 다할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토트는 서류 한 장을 더 보여 주며 말했다.
"나머지는 잡동사니뿐이야. 어떻게 할래?"
"교단에 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교단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은 언제나 환영받는 일이지. 개개인의 사리사욕이 넘치는 곳에서 모범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어."
"물론 그런 행동은 자주 하지 않는 것이 좋아. 시기와 질투는 언제나 주변을 떠도니까."
"좋은 조언 새겨듣도록 하죠."
아직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우피르에 말했다.
"우피르, 인간 수확장 관련 인수인계가 끝나면 인간 영혼 몇 마리 찾아봐 줘야겠어."
"누구의 명이라고 허투루 하겠습니까? 최단 시간 내에 명하신 임무를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좋아, 나중에 락케를 통해 명단을 넘겨 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녀석들의 위치를 파악해 보고해줘."
토트에게 말했다.
"인간 수확장의 영혼이 모두 제 소관은 아니죠?"
토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해 넌 생산자야. 판매처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보면 돼. 넌 이윤을 남기고 생산된 물품을 판매처에 납부한다. 아주 간단한 원리지?"
"주인이라고 제품을 맘대로 사용할수 있는 건 아니군요."
"당연한 것 아니겠나. 인간의 영혼은 더없이 소중한 물건. 하나라도 빠지면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빠질 걸세. 항상 명심해. 게헤나에서는 좋은 것일수록 맹독을 품고 있으니까. 책임소재를 확실히 하라고."
"우피르에게 많은 조언이 필요하겠군요. 토트 당신에게 부탁해도 될까요?"
"개인의 부탁이 아닌 교단을 위한 일이니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네르갈의 말에 토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그럼, 바르타무스의 일은 대충 마무리 지어진 겁니까?"
"중요한 것은 다 끝이 났네. 나머지 물품은 파리 교단으로 환원될 거야."
"목록을 요청해도 될까요?"
"알겠네. 정리해서 우피르에 전해 놓겠네."
"여기가 진짜 지옥인지 정말 악마의 소굴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네요."
"후후, 공포와 죽음과 사악함만이 가득한 곳으로 느껴지지 않는 거지? 당연히 이곳은 상상도 하기 힘든 가혹한 공포가 지배하는 곳이야. 너는 그 공포를 뛰어넘는 능력을 갖췄기에 느끼지 못할 뿐이지 그러지 못한 것들은 두려움에 떨며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있어. 넌 그 과정을 겪지 않았기에, 그 공포를 전혀 느껴보지 못했기에 둔감해 진 거야."
"그럴지도 모르죠. 제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조차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요."
"아슬아슬한 것이지 네가 봉인한 것을 세상으로 빼내려 하는 자들과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 사이에 있으니까. 지금이 딱 균형된 상태야. 하지만 그 균형도 얼마 가진 못할 테니까."
"그렇겠지요."
네르갈이 말했다.
"그건 바알님이나 루시퍼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네 몸은 너 스스로 지켜야 하고 네게 닥친 시련 또한 너 스스로가 해결해야 해. 지금처럼 누구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힘들어."
토트가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루시퍼가 어떤 능력을 사용하였기에 인간의 몸인 네가 일품 악마의 권능을 견딜 수 있는지 궁금해. 게헤나의 역사 이래 그런 능력을 보인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거든. 나 지혜를 신봉하는 토트조차도 그 비밀에 근접조차 못 했어."
이들은 내가 초월자의 유적에 들어가 포른 세포로 인해 아예 신체 구성요소가 다 바뀐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은 조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 언노운이 조율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트만 해도 진실의 눈이란 스킬을 가지고 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스킬이고 이집트 지혜의 신으로 있던 때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사용했고 더욱이 같은 신들 내면의 진실조차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스킬이다.
당연히 토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진실의 눈으로 나를 들여다봤다. 하지만 내 비밀을 읽어 내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더 강한 권능인 루시퍼의 권능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언노운이 내 몸의 구성 인자를 인간과 똑같이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림자 속에 있는 레이를 인지 하지 못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레이는 천사이면서도 천사가 아닌 묘한 존재이지만 어떻게 일품 급수를 가진 악마가 레이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
"글쎄요. 토트! 진실의 눈으로도 찾을 수 없는 답을 저에게 물으시면···."
내 말에 네르갈과 토트 둘 다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 내 이름을 듣기 전까지 내가 토트인걸 알지 못하는 눈치이던데 내 능력을 어떻게 알았고 그걸 사용한 걸 어떻게 알았지?"
"토트라는 이름을 듣고 짐작했죠. 유명한 토트 신의 능력을 모른다면 역사 공부 시간에 존 것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자네는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인간 중에서도 가장 독특해."
"그래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봉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특별하니까 루시퍼가 저를 보호하는 거고요."
"하긴, 지금은 혼란의 시대인 만큼 자네의 입지는 여느 때보다 중요해. 앞으로 어쩔 셈인가?"
"루시퍼도 바알도 그렇고 한 가지 임무 같은 것을 줬는데 저와 관계되는 것이라 그걸 파보려고요."
토트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따오기 대가리인데도 감정의 흐름을 바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이 표정처럼 전해왔기 때문이다.
"모노스 테리움 말인가?"
"토트 당신도 모노스 테리움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에는 말 못할 복잡한 사연이 있어."
"그들을 만나러 갈 건데 어디서 찾죠? 루시퍼도 바알도 저에게 모노스 테리움이 뭘 하는지 알아내라고만 했지. 흔한 힌트조차 주지 않았거든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줄 만한 정보도 없을뿐더러 게헤나에서는 도움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걸세. 여긴 기브 앤드 테이크의 룰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이니까 아무리 작은 정보라도 얻을라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해야 해."
"그 말은 정보를 아는 놈보다 내 능력이 우수하면 강제로 뺏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소리죠?"
"당연한 소리 아닌가? 하지만 주의하게 교단끼리 문제를 야기 할수도 있어. 다른 교단 소속의 악마를 건들면 그 즉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거야."
"그렇겠네요. 기브 앤드 테이크라···."
"강자라고 해도 약자를 마음대로 짓밟지는 못해. 하지만 여러 가지 방법은 많지.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를 씌우든가 약점을 이용하든가 아니면 눈치챌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누가 한 짓인지 알수 없도록 하거나. 말이야."
"그러니까 능력껏 하되 교단에 누를 끼치지는 말아라 이거군요."
"속된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하면 더 좋겠지."
네르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바르타무스의 대결을 바알님이 강하게 밀어붙인 것도 이곳에서 자네 지위를 고려해 한 것이네. 자네는 대공의 지위를 가지고 있네. 물론 반쪽이라 품계는 받지 못했지만, 대공이라는 계급에 걸맞은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였기에 하위 악마는 이제 자네에게 시비 따위는 걸어 오지 않겠지."
"그러다 만약 바르타무스에게 제가 지기라도 했다면요?"
"그럴 일은 없어. 루시퍼가 바알님에게 좋다고 했으니까."
"루시퍼가···."
"그래 루시퍼가 내린 임무, 바알님도 같은 이야기를 했지?"
"맞습니다."
"그럼 뭐겠나? 두 악마가 공동으로 생각하는 이득을 위해 손을 잡은 것뿐이야."
"제게 다른 조언이라도?"
토트가 코웃음을 쳤다.
"자네는 이곳 생리에 익숙해지려면 멀었어. 이곳에서 조언, 도움 따위는 사치보다 더한 사치지. 자신의 운명은 너 스스로 개척하는 거다. 이곳에서 누구의 도움 따위 기대하지 말라."
"무슨 말인지 잘 알겠네요. 그럼 이제 혼자 움직여도 되겠죠?"
"자네를 막을 악마는 이곳에 아무도 없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자네는 모두의 표적이 될 걸세. 특히 지혜의 교단은 게헤나에서 가장 영악한 교단임을 명심하게 자네 때문에 본 손실을 최대한 빨리 메꾸려 들 테니까."
네르갈의 말에 토트도 거든다.
"될 수 있는 한 안전한 장소 위주로 다니게. 우리 교단과 교차로 악마 집회소가 아니면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게."
"하, 게헤나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 아닙니까?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제가 무사하기를 기원해 주시죠."
나는 즉시 교차로 악마의 집회소로 이동했다. 그런 다음 망설임 없이 지상으로 가는 다크 로드를 통해 미대륙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지났지?'
【105일 9시간 28분 22초입니다】
'석 달 조금 넘었나? 생각보다 소비되는 시간이 빠르군.'
【이제 당신은 불사의 몸입니다. 시간에 구애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 몸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지. 한데 어떻게 내 몸의 변화를 일품 급수의 악마조차 눈치채지 못하지? 토트만 해도 지혜의 신이며 세상 진리를 다 꿰고 있다는 토착신이잖아?'
【등급이 다릅니다. 초월자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며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지식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루시퍼조차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문제일 뿐 악마들은 곧 당신이 인간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낼 것입니다】
'좋아, 나는 그렇다 치고 레이는 왜 들키지 않는 건데? 무슨 원리야?'
【레이의 구조를 분석해 본 결과 모핑 능력이 최상급입니다. 거기다 제가 포른 세포로 변형된 나노봇을 투입해 그의 외형에 특별한 보호막을 덧씌웠습니다. 그는 곧 당신과 같은 존재로 검색될 겁니다. 완벽한 모핑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만 그럼 네가 없었다면 레이는 들킬 수도 있었다는 거네?'
【가장 위험한 때가 바알과 함께 있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존재가 발각되었을 겁니다】
'저 꼬리를 계속 달고 다녀야 하나? 귀찮을 것 같은데···.'
【제가 조언하자면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알았어. 그럼 시작하자. 몸을 제어해 그려줘.'
언노운이 내 몸을 제어해 소환식을 그려 나갔다.
참고로 악마 소환은 쉽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행성 주기율과 그 악마를 지칭하는 문양부터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일치해야 소환식이 발동한다.
행성의 위치, 달의 변화, 월, 요일, 시간,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에만 악마를 소환할 수 있다. 단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악마 소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이 레메게톤의 지식으로만 악마를 소환하는 경우고 나 같이 제왕의 권능을 가진 경우는 장소를 막론하고 규정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어떤 악마라도 소환시킬 수 있다.
심지어 루시퍼조차. 물론 그럴 경우는 대상자가 응해야만 한다. 나보다 권능이 낮으면 조건 없이 응해야 하고 권능이 높다면 거부할 수도 있다.
소환진이 빛을 발하고 몇 분이나 지난 뒤에야 한 명의 노인이 소환진 위에 모습을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는 나를 힐긋거리더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랜만에 하늘을 보는구먼."
"아직 저와 거래할 것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렇네. 반쪽짜리로는 값어치가 없어."
"그럼 그때 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급했네. 자네와 더 나눌 시간이 없었어. 난 파리 교단 소속이 아니니까."
"소속 교단이 타락의 교단이죠?"
그는 도서관 서기다. 말끔히 차려입은 검은색 정장에 콧수염이 멋진 영국 중년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그때 파리 교단 소속의 건물에 있었던 거죠?"
"잊었나 팬더모니엄 665층은 내 권능을 이용해 내가 디자인한 거네."
단달리온 벨리알이 이끄는 타락 교단 소속으로 일명 지옥의 서기로 불린다.
지옥 도서관 관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실제 게헤나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서이기도 하다.
단달리온 같은 악마는 특별한 부류에 속한다.
중립.
그 어떤 악마에게 해를 주지도 반대로 해를 입지도 않는다. 그것이 지옥 도서관 관장이자 사서의 권능이다.
지옥의 사서를 건드리는 것은 지옥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옥에서 정보를 관장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직책은 없기 때문이다.
"나를 급하게 부른 것을 보니 상권을 가져온 거지?"
"물론입니다."
"알고 싶은 것이 뭔가?"
단달리온은 권능은 비밀을 훔쳐보는 자. 타인의 비밀을 먹고 사는 악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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