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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보관소

마왕은 용사를 죽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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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4dh
작품등록일 :
2019.11.10 06:44
최근연재일 :
2020.05.11 18: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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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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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
글자수 :
280,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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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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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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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화 - 비밀과 거짓말은 존중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DUMMY

로쿤 대륙에서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 낸 사건은 크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30년 전, 로쿤 대륙을 동서로 갈라버린 마왕의 등장.

왕정 철폐와 산업화를 주장하다 실패한 르티오르 내란.

4년 전 용사 일행이 사투 끝에 마왕을 무찌른 마왕 토벌.

그리고 마왕 토벌 이후 되찾은 서쪽 평원을 기반으로 이뤄진 공학 혁명이다.


서쪽 평원에서 발견된 ‘매개’라는 물질들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철마나, 매직 미사일에 버금가는 위력을 자랑하는 소총 같은 발명품을 만들어 내었고, 매개를 연구하는 학문은 과학과 구분하여 '공학'이라고 칭했다.


나름대로 고급여관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큰마음을 먹고 장만한 전화도 바로 그 공학의 산물이다. 통신마법을 사용할 수 없이도 멀리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전화는 마을의 가장 부자들이나 관공서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비싸다.


나 역시 단골손님으로부터 ‘이 여관에 전화를 놓아준다면 비용의 절반을 내주겠다’라는 파격적인 제안이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까.


"루브린 경찰서 부탁드립니다."


편지의 내용을 읽자마자 경감을 찾았지만, 그새 멀리 가버린 것인지 찾을 수 없었다. 루브린 경찰서는 시내 한복판에 있으니 외곽 쪽에 있는 우리 여관에선 꽤 거리가 멀다. 여관을 비워둘 수 없었던 나는 청소를 비롯한 영업준비를 마치고 경찰서에 연락을 하기로 했다.


전화의 사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수화기를 들고 조금 기다리면 교신국이라는 곳에 연결된다. 그 뒤 원하는 곳을 말하면 교신국에서 원하는 곳으로 전화를 이어준다. 통신 마법의 경우엔 당사자가 직접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닌 이상 중개자가 대화 내용을 엿들을 수 있는데, 전화는 교신국에서 연결이 되면 대화 내용을 엿들을 수 없다고 한다.


"네. 루브린 경찰서 교신담당 버크입니다."


사용법만 어깨너머로 배웠을 뿐,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라 머리가 잠깐 새하얗게 됐지만, 금새 고개를 흔들고 조금 전에 만났던 경감을 찾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이름도 모르는군.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특수경찰에게 바로 연락을 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어..조금 전에 루브린 서 소속 경감님에게 탐문을 받았던 사람인데요. 혹시 그 경감님과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카키. 카키 테앙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오늘 카키 테앙이라는 사람 만났던 경감님 계십니까~"라는 큰 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숨을 헐떡이는 경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짚히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무리 몇 시간 전에 만났다고는 하지만 인사도 하지 않다니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만큼 열심히 조사 중이라는 거겠지.


"브론드로부터 편지가 한 통 와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며칠 전에 보낸 게 이제야 도착한 것 같은데... 읽어드릴까요?"


경감은 고민중인 것인지 한참 대답이 없더니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제가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직접 찾아오는 건가. 전화로 해결할 수 있다면 되도록 전화로 해결하고 싶은데...


"음.. 저기 혹시 여관 문을 닫아야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영업을 방해할 수는 없죠. 손님으로 방문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예의가 없다기보다 그냥 경황이 없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아까 만났던 경감의 인상을 생각하면 이 쪽이 본래 모습과 더 가깝게 느껴진다.


"네. 그럼 예약을 잡아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테이트. 테이트 모런입니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얼굴만 보면 알 수 있는데, 일부러 이름까지 알려줄 필요가 있나?

뭐 확실한 편이 나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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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경감이 카키의 여관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여관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나름 카운터도 있고, 깔끔한 편이었다.

북적거린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손님이 끊이지는 않는 것인지 카운터에 있는 열쇠함들 대부분에 ‘입실’이라는 표시가 되어있었다.


‘하기야 서쪽 평원으로 가는 관문에 있는 마을. 그것도 가장 평원에 가까운 곳이니, 용병들이나 공무원들이 많이 올만 하지.’


루브린은 마왕 토벌 이후 가장 먼저 개간된 서쪽 지역으로, 공학혁명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토벌의 여파로 황폐해졌던 루브린은 제국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진격의 의지를 확고히 하라는 황제의 명령으로 군대와 모험가 길드가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마왕의 잔당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른다는 인식 때문에 여관이나 음식점 같은 시설은 물론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이례적으로 이주민에 대한 혜택. 특히나 편의시설을 운영하려는 이주민들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줬고, 그 결과 루브린은 수도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번영한 마을이 되었다. 소작농이었던 카키가 마을을 떠나 루브린에 자신의 여관을 차린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아! 경감님. 오셨네요. 일단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테이트 경감은 손님이 적지 않은 여관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에 조금 감탄했다. 황제의 명령 이후 루브린에 여러 음식점이나 여관이 들어왔지만,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의 주인들도 지원금을 위해 계획없이 이주해 온 경우가 많고, 조금 거친 모험가들이나 군인들이 주 고객인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에비해 카키의 여관은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곤 하지만 내부는 깔끔했고, 루브린 서에도 2대 뿐인 전화가 구비되어 있는 등 수도인 테비르의 고급 여관들보다 시설이나 서비스가 좋았다. 테이트 경감이 안내 받은 방도 크진 않았지만,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그럼 편하게 쉬십시오. 저는 가게 정리만 좀 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카키는 카운터로 내려갔고, 테이트 경감은 빳빳하게 각이 잡혀있는 이불 위에 걸터앉았다.


‘묘하군.’


테이트 경감은 아침에 봤을 때만 해도 친구들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태연하다고 해야 할지 평온한 모습의 카키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마검사 브론드로부터 받은 편지에 무언가 적혀있었던 건가.’


마검사 브론드는 마왕이 처음으로 만든 의지를 지닌 검. 에고소드에게 선택받은 용사다. 마왕토벌을 위한 진군 당시 엄청난 전과를 올린 것은 물론 일반 병사들과 허물없이 지냈던 모양인지 국장 당시 그의 관을 부여잡고 많은 병사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마검사는 머리가 좋은 타입은 아니었다고 들었는데, 중요한 단서라면 좋겠군’


로쿤 대륙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용사일행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테이트는 그들의 업적이나 공이 얼마나 높았든 간에 골치아픈 사건을 남기고 간 것만이 중요했다. 게다가 이 사건은 테이트로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기 때문에 카키에게 왔다는 그 편지의 내용은 그로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죄송해요. 카운터랑 주변을 조금 정리하느라.“


테이트 경감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키는 여관의 문을 닫고 테이트 경감의 방으로 올라왔다. 루브린 시의 다른 여관들은 꽤나 늦게까지 운영을 하는 모양이지만, 카키는 달리 사용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관의 규모가 큰 것도 아니기 때문에 꽤 일찍 문을 닫는다.


”아뇨.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래서 그 편지 말입니다만...“


”그전에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테이트 경감은 카키가 풍겨오는 분위기에 잠시 흠칫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경감님은 어째서 이 사건에 열정적이신건가요?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특수경찰쪽으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카키는 아침 일찍 문을 두드려가며 카키를 찾아온 점이나, 전화를 받을 때 경감의 태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단순히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일부러 외곽에 있는 여관에 와서 사정청취를 두 번이나 할리 없으니까. 대부분의 형사라면 전화로 편지의 내용을 듣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출장을 오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게다가 사건의 진상이 명확하진 않지만 용사일행을 죽인 것이 인외의 소행일 확률이 높은 이상 이 사건은 분명 특수경찰에게 넘어갈 것이다. 죽쒀서 개주는 꼴이 될 확률이 높은 사건에 대해 이렇게 열정적으로 수사할 가치가 있을까?


물론 용사일행 살인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인 큰 사건이니 해결하면 승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카키는 매서운 눈빛의 경감이 출세욕에 눈이 멀어 보이진 않았다.


”뭐...사명감이랄까요? 이래뵈도 월급을 받는 처지니까요.“


어꺠를 으쓱하며 말을 마친 테이트 경감은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라고 말하면 편지는 볼 수 없는 겁니까?“


”아뇨. 경찰에게 협력하는게 시민의 도리니까요. 다만 편지의 내용은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개인적인 내용도 꽤 쓰여있어서요.“


”좋습니다. 비밀이나 거짓말도 존중의 일환이 될 수 있으니.“


”그럼 읽어드리겠습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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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은 용사를 죽이지 않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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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화 - 서장은 부하에게 취조당한다 +1 20.05.06 47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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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화 -대장장이는 뜻밖의 손님을 맞이한다 20.04.30 56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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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마공작은 동료의 패퇴에 미소짓는다 +1 20.04.20 53 2 6쪽
82 82화 - 여관주인은 잠을 설친다 20.04.18 60 1 8쪽
81 81화 - 공작은 마공작의 안위를 걱정한다 20.04.16 34 2 7쪽
80 80화 - 용병은 뒤늦게 알아차린다 20.04.14 44 1 7쪽
79 79화 - 마족의 기준은 조금 다르다 20.04.13 42 2 7쪽
78 78화 - 가명은 대개 유치한 것들이 많다 +1 20.04.11 46 2 6쪽
77 77화 - 경찰은 수사자료를 넘긴다 20.04.08 52 2 5쪽
76 76화 - 그는 나지막이 말한다 +1 20.04.07 68 1 8쪽
75 75화 - 대장장이는 버릇처럼 수사한다 20.03.31 69 2 7쪽
74 74화 -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있다 20.03.30 60 2 7쪽
73 73화 - 그들은 역 앞에서 우연히 만난다 20.03.27 63 1 7쪽
72 72화 - 용병은 마왕을 떠올리며 전율한다 +1 20.03.24 62 2 7쪽
71 71화 - 철마는 어둠을 뚫고 달린다 20.03.23 125 2 7쪽
70 70화 - 공학자는 간단한 사실에 감탄한다 20.03.20 60 2 8쪽
69 69화 - 용병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1 20.03.18 77 2 6쪽
68 68화 - 용의자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20.03.17 74 3 7쪽
67 67화 - 마족은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다 20.03.16 68 5 7쪽
66 66화 - 여관주인의 방 문은 거칠게 열린다 +1 20.03.13 86 2 8쪽
65 65화 - 배신자는 애써 외면했다 20.03.12 160 3 7쪽
64 64화 - 용병단의 아지트는 2층 가정집이다 20.03.11 64 3 8쪽
63 63화 - 여관주인은 옛 지인과 조우한다 +1 20.03.09 101 4 8쪽
62 62화 - 마녀는 인간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2 20.03.06 84 3 8쪽
61 61화 - 소식지는 대개 진실과 거짓이 적당히 섞여있다 20.03.05 85 3 8쪽
60 60화 - 범죄자는 최신 기술에 감탄한다 +1 20.03.03 80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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