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 가명은 대개 유치한 것들이 많다
클린트를 라스베트에 남겨두고, 대장간으로 향하는 레드럼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아직 그 녀석은 날 알아보지 못한 것 같지만, 언제까지고 옆에 있는 건 위험하겠지. 거기에 제국의 감시가 붙어 있다면 더욱 말이야.'
걸음을 재촉해 대장간에 도착한 레드럼은 대장간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여관에서 챙겨 온 가방에서 작은 총을 꺼내 들었다. 총을 든 레드럼이 대장간에 들어서자 대장간 한쪽에 기대어 앉은 짙은 청색 머리에 제복 차림의 남자가 양 손을 올린 채 말을 걸어왔다.
"접니다. 며칠 전에 대장간에 오셨을 때도 감시가 있는 건 대충 짐작하고 계셨으면서 총은 또 왜 꺼내십니까?"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멀리서 지켜보는 거면 몰라도 가택침입을 허락할 만큼 성격이 좋지 않아서 말이야."
"여기는 클린트 대장님의 집인데요."
"그 영감이 여기서 지낼 수 있게 된 게 내 덕분이니까 내 집이기도 해! 그나저나 시스 네 놈도 영감의 감시를 맡았을 줄은 몰랐군."
레드럼이 총을 거두자 시스라고 불린 사내는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스와 레드럼은 클린트가 루브린에 들어와 대장장이가 되기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 탓에 레드럼이 자취를 감춰 교류가 끊겼고, 레드럼이 공학자로 유명세를 탄 이후에도 소식만 전해 들을 뿐 직접 만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몇 년동안 만나지 않은 사이임에도 어색한 기색 없이 편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저도 딱히 대장님을 귀찮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스쿠아 녀석이 상태를 봐달라고 해서 말이죠."
레드럼은 스쿠아라는 이름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영감쟁이라면 라스베트에 있다. 어차피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이 대장간에 다른 볼 일이라도 있는 거냐?"
레드럼의 말에 시스는 잠시 우울한 표정이 됐다.
"대장님과 직접 마주치면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아서요. 복귀하시는 것만 확인하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예전부터 대장님께 흥미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공학자 레드럼 로렙므는 대장장이 클린트와 아는 사이인가 보군요?
설마 하니 대장님이 불사자도 죽일 무기를 만들 만큼 대단한 실력의 대장장이는 아닐 텐데 말이죠."
"남이사. 그래서 언제까지 여기 있을 셈이냐? 남의 집 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와서 주인이 오기라도 기다릴 셈이냐?"
레드럼이 빈정거리자 시스는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전ㅎ... 아니 레드럼 씨도 종종 그러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시스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는지 레드럼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크흠. 그러니까 여기는 내 소유라고 봐도 무방하다니까. 뭐 알아서 해라. 그 영감한테 쓸데없이 내 이야기는 하지 말고. 스쿠아 놈과는 달리 네놈은 그래도 사람 구실은 하는 놈이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겠지?"
레드럼의 말에 시스는 쓰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뭐, 유능한 걸로 치면 스쿠아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시안 그 녀석. 잘하고 있습니까?"
시스의 질문에 레드럼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시안? 그게 누구냐?"
"음? 대장님과 함께 있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대장님을 따라다니는 특경이 하나 있었을 텐데요."
시스의 설명을 듣고 시안의 얼굴을 떠올린 레드럼은 시스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
"아~ 그 애송이인가? 공개 조직이 된 뒤로 특경이 얼마나 무능한 조직이 됐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참고 자료였다. 현역 때의 네놈들에 비해 한참 떨어져. "
"하하. 그 녀석이 그래 보여도 제법... 누군가 오는군요. 혹시 일행이 있으십니까?"
상쾌하게 웃으며 말하던 시스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나지막이 말했다. 레드럼은 그런 시스를 보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높은 확률로 네놈 부하나 동료겠지. 라스베트에서 죽은 노인도 사실은 너희가 보낸 것 아니냐?"
레드럼의 질문에 이번엔 시스의 얼굴에 의아함이 피어났다.
"노인 말인가요? 음... 짚이는 것이 없군요. 뭐, 저야 그 사건 이후로 정식 대원이 아니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레드럼은 시스의 이야기를 듣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놈들이 아니라면 제국의 시내에서 마물을 풀 만한 세력이 있겠냐? 나는 영감쟁이가 올 때까지 조금이라도 잘 생각이니 시끄러워질 것 같은 일이면 멀리 나가서 해결하도록."
그렇게 말한 레드럼은 대장간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시스는 그 모습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제멋대로구만. 머리도 빨간색으로 물들이시고. 하긴 그러고 보면 지금 쓰고 있는 이름부터 엉망진창이지. 레드럼 로렘므(redrum rorepme)라니. 애도 아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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