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경감은 때묻은 코트를 입고 다닌다
“뭔가 짚이는 것은 없으십니까?”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서른 살쯤 되었을까. 조금 푸석해보이는 백금발에 짙은 녹색의 코트를 걸친 경감은 친구들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지고 이틀이 지난 오늘 아침, 나를 찾아왔다.
장례까지 마친 마당에 사정 청취를 하러 온 이유라면 아마 고향인 서튼 마을(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아마 관할서는 피므루시 경찰서였겠지만)에서 협조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짜고짜 카키 테앙 씨 루브린 경찰서 입니다! 라며 여관의 문을 두드렸을 땐 우렁찬 목소리 탓에 손님들이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아뇨. 소꿉친구이긴 하지만 보시다시피 저는 그저 여관주인이고, 서신으로 1~2달에 한 번 정도 간단한 근황만 듣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코발트와 베이지의 결혼 덕분에 4년 만에 직접 만날 예정이었습니다만...”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세 분이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있다거나, 서신에서 마음에 걸리던 것이 있었다면 뭐든지 말씀해주십시오.”
경감은 뭐라도 캐내겠다는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나로서는 전혀 짚이는 것이 없다. 설사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애초에.
“애초에 경관님도 아시겠지만 설령 그들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은 이 대륙 내에 세 손가락도 넘지 않을 겁니다. 그것도 1대1의 이야기이지 세 사람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면 사람의 힘으론 불가능할 거고요.”
세 사람은 결혼식이 치러질 예정이었던 교회 근처 숲에서 나란히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평범한 사람이 드래곤로드의 힘을 가진 용사, 마검을 지닌 마검사, 신의 축복을 받은 성녀를 죽이는 것이 가능할까?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던 마왕이 살아있다면 혹시나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왕은 이미 용사일행에 의해 죽었다.
“확실히 그렇죠.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총 같은 걸로는 상처하나 낼 수 없는 분들일 테니까요. 게다가 말씀하신 대로 그분들은 용사였으니 마왕의 잔당들이나 다른 종족들에 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혹시 짐작가는 것이 있습니까?”
경관은 아까와는 달리 조금 심드렁한 태도로 질문을 이어왔다.
“아뇨. 안타깝게도 달리 들은 바가 없습니다.”
다른 종족을 용의선상에 올리는 것은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종족 중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는 드래곤의 경우 로드의 인정을 받은 코발트를 해칠 이유가 없다. 마족의 경우도 마검의 소유자인 브론드가 억제력이 될 것이고, 성녀인 베이지야 말할 것도 없다.
경감 역시 그런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겠지. 아침에 문을 두드릴 때만해도 눈치없고 무능한 타입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법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경관은 내 대답을 듣고 나서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진짜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해왔다.
“음.., 혹시 피해자 세 분의 사이는 어땠나요?”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 경감은 꽤나 담이 큰 사람이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대륙의 영웅들인 그들에 대한 민감한 질문을 해오다니. 하지만 경관의 의심은 꽤나 합리적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나 역시 세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서신으로만 연락을 주고 받는 터라 셋의 사이가 어땠는지는 단언하지 못하겠군요. 다만 세 사람 모두 서신에서 서로를 언급하는데 거리낌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브론드가 보낸 가장 최근 서신엔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소감이 담겨있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브론드는 베이지에게 호감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역시나 코발트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거짓으로 보냈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적어도 브론드가 날 상대로 거짓을 말하진 않았으리라 믿고 있다.
...옛날 생각이 나서 다시 서글퍼졌다.
경감은 조금 의혹의 눈초리를 하고 내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꽤나 상심했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더 이상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우선 제가 물어보고 싶은 건 이 정도인 것 같군요. 사람이라면 모를까 괴물들이 얽힌 일이라면 저는 이만 손을 떼야 할테니까요. 혹시 짐작가는 것이 생기면 루브린 서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아뇨.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혹시 생각나는 일이 있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경감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빛이 매서운 것을 보아하니 소싯적에 이름 좀 날린 베테랑이겠지만, 드래곤이나 마족을 취조하는 일 따위는 일반 경찰인 경감에게는 아마도 무리일 것이다.
마족이나 몬스터들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서는 따로 담당하는 특수 경찰이 있다. 거무튀튀한 제복을 입고 다니는 그들은 전문 훈련을 받은 엘리트라고 하는데, 경감이 사건에 대해 이종족 혹은 마왕군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를 올린다면 아마도 그들이 직접 탐문을 하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그들의 소문이 사실이라면 아마 내가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서신들도 빼앗아가겠지. 그런 점에선 저 경감은 꽤나 내게 신경을 써준 편이다.
특수 경찰들에 대해선 지나친 특권이나 폭력적인 수사방식 때문에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는 모양이지만, 일반 경찰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을 다루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나라에서도 쉬쉬하는 모양이었다.
경감을 배웅한 나는 여관 앞을 청소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우리 여관은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숙박전용이기 때문에 아침에 찾아오는 손님은 드물지만, 당장 들어오지 않더라도 행인들에게 깔끔한 인상을 보여서 나쁠 것은 없다.
‘응? 웬 편지?’
청소를 하기 위해 입구 한쪽에 세워둔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가니 우편함에 서신이 한 통 들어있었다.
발신인을 확인해보니 브론드에게서 온 것이었다. 늦게 도착한 것이려나.
착잡한 심경으로 서신을 열어본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키에게. 안녕. 저번에 보낸 편지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또 보내게 되네. 앞선 편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여전히 네가 우리의 리더라고 생각해. 네가 함께 모험을 떠나는 걸 거부했던 날. 어쩌면 그때부터 모든 게 잘못된 걸지도 몰라.]
브론드는 조금 껄렁한 녀석이지만, 함께 용사단을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리더라고 부르며 존중해줬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아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나는 이어진 문장을 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나는 아마 내일 죽을 거야...]
- 작가의말
뺴빼로 데이에 소설 예약 걸고있는 내인생 에이펙스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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