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용병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결국 순수한 실력으로 모두 죽였다고 하기엔 나한테 너무 허무하게 죽었고, 환각 마법을 사용했다기엔 그 정도 역량이 안되기 때문에 저 녀석은 범인이 아니라는 거군. 그럼 저 녀석은 왜 자기가 한 일인 것처럼 거들먹거린 거지?"
그리니언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시체에서 손을 털고 그리니언에게 말했다.
"이 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 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오. 특경 측에는 이미 협조를 요청해뒀으니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수사를 시작하겠소."
그리니언은 상현이 소문만큼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놈도 꽤 유능했지만, 이 녀석은 더 하군. 그러고 보면 왜 경찰은 무능한 집단이라고 손가락질받고 특경이 엘리트 취급을 받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잠시 테이트와 시안을 떠올리던 그리니언은 상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상현에게 말했다.
"흐음... 그럼 내가 여기서 더 해야 하는 일은 없는 거 아닌가?"
그리니언이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상현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그리니언에게 말했다.
"아! 한 가지만 물어보겠소. 이 마을엔 왜 오셨소?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들렀다고 하기엔 폐쇄적인 마을이고, 아까 지나가는 말로 저 자가 그리니언 공이 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뭔가 목적을 띠고 방문하신 것 아니오?"
그리니언은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는 상현의 질문에 심드렁한 태도로 대답했다.
"의뢰를 받았거든. 이 마을 촌장에게 확인할 게 좀 있어서 말이야. 뭐, 마을 인명부를 확인해보니 시체들 중엔 없었던 모양이지만.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를 안 했군. 나도 참. 정신이 없다니까."
그리니언의 말을 들은 상현은 눈을 빛내며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촌장의 시체만 없단 말이오? 그 인명부라는 걸 좀 보여주시겠소?"
상현의 말을 들은 그리니언은 교회를 떠날 때 제자리에 돌려놓았던 인명부를 들고 와 상현에게 건넸다. 상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인명부를 살펴본 후,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그리니언에게 말했다.
"확실히 시골이라 노인들이 많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군... 음... 어려운 부탁이라는 건 알지만 혹시 어떤 의뢰였는지 알려줄 수 있겠소? 용병들에게 신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으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확인이 필요해서 말이오."
그리니언은 진지한 표정의 상현을 잠시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 숨겨봤자 끈질기게 알아낼 것 같으니 대충 설명하지. 여기엔 용사 일행의 죽음에 대한 조사의뢰를 받고 왔어. 현장이 이 근처 기도 하고, 촌장에게 몇 가지 질문도 하려고. 오늘 이른 아침에 촌장과 통화도 했지. 그런데 와봤더니 촌장은 없고 시체들만 널브러져 있었다. 뭐, 그런 이야기야."
"과연. 확실히 그 사건은 미심쩍은 데가 많았으니 따로 의뢰를 하는 사람이 생겨도 이상하진 않군. 그리고 이른 아침에 통화한 촌장이 보이지 않는다. 음... 덕분에 많은 정보를 알게 됐군. 협조 고맙소."
그리니언은 한 손에는 주먹을 쥐고 다른 손으로 맞대며 자신에게 내미는 상현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언젠가 여각이 자신에게 했던 포권이라는 인사라는 것을 떠올리고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별말씀을. 아! 강요는 아니지만 협조에 감사한다면 혹시 용사 일행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좀 말해줄 수 있을까?"
그리니언의 질문을 들은 상현은 잠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음... 원래라면 수사에 대한 정보는 기밀이지만, 신용을 저버리라고 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군. 확실히 여러모로 수상한 사건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그 사건에서 가장 수상했던 건 흉기였소."
"흉기?"
그리니언은 뭔가 새로운 정보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빛냈다.
"그렇소. 용사와 성녀. 마검사 모두 검에 의한 자상이 사인이었는데, 상흔을 생각하면 현장에 남아있던 것들 중에 흉기로 사용될 만한 건 마검 리그람뿐이었던 모양이오."
상현의 이야기를 들은 그리니언은 김이 샜다는 듯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에휴. 그거야 범인이 자기 무기는 가져갔기 때문이겠지."
"그렇소. 그럼 마검 리그람을 부러뜨리고 회수해 간 무기는 대체 뭐라고 생각하시오?"
"음?"
"비슷한 수준의 경도를 가진 무기였다면 리그람이 부러졌을 때 그 무기의 파편이나 흔적이 남을 법도 한데, 현장에는 전혀 그런 흔적이 없었다고 하오. 그렇다면 리그람 보다 월등히 강한 소재 거나 다루는 사람이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는 것 아니겠소?
하지만 마검 리그람보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검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오. 그리고 마검 리그람을 부러뜨릴 만한 실력자라니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그런 것이 가능한 건..."
그리니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마왕뿐이라오."
- 작가의말
끊는 부분이 조금 애매해서 오늘은 조금 짧습니다.
내일은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휴재입니다.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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