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 범죄자는 최신 기술에 감탄한다
면회를 마친 테이트가 면회실 밖으로 나오자 초조한 표정으로 테이트를 기다리던 소장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오! 무사히 나오셨군요. 그래. 어떻게. 듣고 싶으신 것들은 다 들으셨습니까?"
테이트는 잠시 소장의 얼굴을 살피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요. 저 놈이 말하는 내용의 절반 이상이 헛소리 같아서 정리가 잘 안되는군요. 하여간 범죄자 놈들이란! 아무튼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만 바빠서."
"아. 네. 살펴가십시오."
테이트가 천천히 걸어 나가자 소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만연했던 미소를 지우고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시온에게 말했다.
"카콜을 소장실로 불러오게."
"네. 알겠습니다."
발자국 소리도 없이 사라진 시온을 뒤로하고, 소장실로 돌아온 소장은 의자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며 중얼거렸다.
"헛소리라... 이 시기에 카콜 녀석의 면회를 요청한 걸로 봐선 뭔가 짚이는 게 있었던 모양이지만, 고작 시골뜨기 형사가 눈치채긴 힘들겠지."
잠시 후 들려온 노크 소리에 대답하니 시온이 끌고 온 카콜을 땅바닥에 패대기치며 들어왔다. 소장은 잠시 인상을 찌푸린 후, 담배를 끄고 천천히 카콜에게 다가왔다.
"그래. 방금 전에 만난 녀석이 뭘 물어봤나?"
"어... 어차피 면회실에는 감시용 공학품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미 다 들었던 것을 확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렇군요. 감시에 뭔가 이상이 있었던... 크헉!"
소장은 자신의 발길질에 괴롭다는 듯 기침을 하며 쓰러져 있는 카콜을 잠시 쳐다보다가 옆에 서있는 시온에게 말했다.
"버릇이 없군. 시온."
"네."
시온은 대답을 마친 후 쓰러져있는 카콜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무릎을 꿇고 앉게 만들었다.
"크헉!"
카콜은 채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몸에 충격이 가해지자 이내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러나 그런 카콜을 바라보는 소장과 시온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너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돼. 녀석이 뭘 물어봤고, 너는 뭐라고 대답했나?"
"혀.. 혈석에 대해 묻더군요. 나는 내가 아는 사실을 말했지만, 그 남자는 어쩐지 실망한 표정이었죠."
"혈석이라... 그런 헛소문을 믿고 네놈을 찾아오다니 미친놈이었군. 그밖에는?"
"그것 외엔 글쎄요. 혈석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흥미가 식었는지 이곳 생활에 대해서 몇 가지 묻고는 나가버렸거든요."
"자꾸 되묻게 하지 마라 몇 가지라는 건 어떤 것이었지?"
소장은 카콜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치며 물었다.
"크으윽... 식사는 제 때 나오는지, 방은 혼자서 사용하는지, 의복은 몇 벌이나 지급되는지 그런 생활에 대한 질문들과 건강상태를 묻더군요."
"그래서?"
"딱히 숨길 것도 없는 질문이니 솔직하게 말했죠. 식사는 하루에 한 번, 방은 6인실. 의복은 두 벌로 세탁해서 교대해 입고. 건강은... 좋지 않다고요."
카콜의 대답을 들은 소장이 시온을 바라보자 시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시온. 이 자식은 당분간 독방에 넣는다. 관리는 일임 하마."
"네. 소장님."
시온이 카콜을 끌고 소장실을 나가자 소장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일단 시온이 거짓말은 아니라고 하니 확실하겠지만, 나중에 녹화된 내용과 대조해봐야겠군. 그나저나 루브린 서라... 오릭 그 자식. 부하관리 하나 똑바로 못하는 건 여전한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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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그 수용소에서 나온 테이트는 시내로 걸어가 한적한 카페를 찾았다. 커피를 주문하고 난 테이트는 긴장이 풀렸는지 카페 소파에 기대 눕듯이 앉았다.
'아마 카콜 그놈은 위험해지겠지. 어쩌면 입막음을 위해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뭐, 애초에 사형 집행 예정인 놈이었으니 상관없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
테이트는 면회실에서 카콜가 나눴던 대화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하하! 무슨 소리를 하시나 했더니 제가 불로불사를 소망한다고요? 똑똑한 분이라고 생각했는... 공학품? 재밍? 그게 뭐죠?... 호오. 이곳 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 보군요. 하긴. 루브린 서의 서장은 겉보기와 달리 꽤나 유능한 사람이었죠.... 알겠습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죠.
어디에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혈석이라는 건 형태가 그리 오래 남는 것이 아니에요. 당연히 어중간한 방법으론 만들 수 없는 물건이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이상한 것은 저희가 아니라 제국과 용사 일행이죠.
만약 전승이 사실이라면 마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혈석을 손에 넣은 마족이 새로운 마왕으로 즉위하거나, 마왕님을 쓰러뜨리고 혈석을 손에 넣은 용사 일행 중 한 명이 불사자가 됐을 텐데 그렇지 않았어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마왕님이 살아있을 거라는 우리들의 주장은 충분한 근거가 있어요. 그에 비해 마왕님의 죽음은 마족들과 제국의 증언이 전부일뿐 혈석의 행방이나 새로운 마왕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었죠.
음? 그럼 왜 살인을 했느냐고요? 글쎄요. 그것까지 전부 말하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이런! 나름대로 협조적으로 대해드렸는데 그렇게 화내시다니, 아무래도 열정적이시라는 말은 정말이었던 모양이군요.
어찌 됐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는 혈석이나 불로불사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제가. 아니 저희가 원하는 것은 마왕의 재림과 제국의 파괴. 새로운 질서의 창조뿐이니까요.
이야기는 여기까지군요. 네? 이곳의 생활 말인가요? 흐음... 그렇군요. 식사는 하루에 한 끼만 제공됩니다...]
'지능 범죄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바보는 아니지만, 헛소리를 거르더라도 꽤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많았군. 장비창고에서 재밍 도구를 가지고 온 건 정답이었던 모양이고.'
면회실에서 나왔을 때 소장의 눈에 어린 섬뜩한 기운을 떠올린 테이트는 어느새 종업원이 가져다줬는지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들어 천천히 마셨다.
'거를 정보를 걸러보면 이번 면회로 얻은 것은 역시 마왕의 죽음 뒤, 정확히는 혈석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점과 제국 공무원들은 그다지 믿음직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카콜 녀석의 행동 원리를 생각할 때 역시 3년 전 그 사건의 끝에는 마왕의 탄생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정도인가.'
어느새 커피를 다 마신 테이트는 카페를 나섰다.
'당대의 마왕에겐 꼬박꼬박 님자를 붙이며 마왕님은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녀석이 [마왕의 재림]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부터가 모순이니까. 그 녀석이 충성하는 [마왕님]과 그 녀석이 재림을 기다리는 [마왕]은 다르다는 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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