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있다
하쉬는 다가오는 카키와 다른 사람들을 보고 빠르게 판단했다.
'카키 씨와 테이트 씨. 특경 애송이에 레드럼 씨. 그리고... 클린트 씨? 레드럼 씨나 테이트 씨는 몰라도 다른 두 사람이 있으니 섣불리 마물 이야기를 꺼내는 건 위험하겠군.'
한편, 카키는 그런 하쉬에게 재빠르게 말을 건넸다.
"아! 하쉬 씨. 괜찮으세요? 여관에 괴한이 침입해서 잠시 대피했었는데..."
하쉬는 카키의 괴한이라는 표현에 눈빛을 빛내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랬군요. 어쩐지 여관 문이 잠겨있고,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어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이미 여관 안을 샅샅이 뒤지고 창문으로 뛰어나온 하쉬였지만, 자신이 마족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시안에게 여관 안에 있었다고 말하면 귀찮은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방금 도착했다는 듯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여관 문은 제가 잠갔었는데, 공학품으로 탈출하느라 그대로였던 모양이네요... 앗! 그럼 괴한이 아직 안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카키는 뒤에 있는 사람들도 대화를 들을 수 있도록 경악하는 척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관 안에 인기척은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죠."
하쉬는 그런 카키에게 웃으며 말했고, 그런 하쉬에게 시안이 다가왔다.
"혹시 그 괴한이라는 게 너 아닌가? 마족?"
"여전히 버릇이 없는 꼬맹이군. 나를 의심하는 건 그리니언 씨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겠지?"
"크..크흠... 어디까지나 확인 절차다. 그리니언 대장님을 의심하진 않지만, 만에 하나를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유능한 특수 경찰의 자세니까."
"대단하시군. 그럼 유능한 특수 경찰 분께서 앞장을 좀 서주셨으면 하는군."
"네놈이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
"거기 하쉬르단이냐?"
"오랜만이군요. 레드럼 씨. 그냥 하쉬라고 불러주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네놈이 마족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 하쉬르단! 현관문은 네가 열어라."
"역시 그 말도 안 되는 방범 장치를 만드신 건 레드럼 씨였던 모양이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저번에 왔을 때 저한테도 제대로 작동했었습니다."
"당연하지! 그게 아니라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는지 확인해보려는 거다!"
하쉬는 낮게 한숨을 쉬고는 라스베트의 현관 앞에 섰다. 그가 여관의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에 손을 올리려고 하자 현관 양쪽에서 작은 기계가 나와 하쉬를 조준하더니 이내 마나를 쏴댔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뿐하게 뒤로 뛰어 피한 하쉬는 됐냐는 듯 레드럼 쪽을 쳐다봤다.
"음... 마나 감지 센서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군. 역시 마물의 침입은 다른 경로로 이뤄진 모양이야. 어이! 거기 특경 애송아!"
"넵!"
"일단 앞장서서 들어가 봐라. 뭐, 하쉬르단 녀석이 기척을 못 느꼈다면 안에 누가 숨어있거나 하진 않겠지만."
레드럼의 말을 들은 시안이 라스베트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레드럼에게 말했다.
"권위에 약한 인간이군요?"
"저 정도면 솔직하기라도 하니 그나마 나은 편이지. 네놈이 그냥 기척만 살폈을 것 같지는 않고. 뭔가 알아챈 게 있으면 말하지 그러냐?"
"확실하진 않지만 마물의 기운이 좀 남아있는 듯하더군요."
"마물이라고?"
뒤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클린트가 마물이라는 이야기에 다가와 물었다.
"아! 오랜만에 뵙습니다. 클린트 씨.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루브린에서 꽃집을 하고 있는 하쉬라고 합니다. 뭐, 이미 제 이름을 들으셨을 테니 대충 정체는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미안하군.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말일세. 아무튼 방근 한 이야기 말이네만..."
하쉬가 다시 입을 열려던 그 순간 라스베트 안에서 시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체가 하나 있습니다! 흔적으로 봐선 마물에게 찢긴 것 같군요."
하쉬는 시안의 말이 끝나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보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다섯 사람은 천천히 라스베트의 안으로 들어갔다. 카키는 시안이 발견했다는 시체가 촌장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색이 좋지 않았다. 테이트는 그런 카키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들면 카운터에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카키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거든요."
카키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마음을 다잡았다. 2층으로 올라가자 시안이 모두에게 다가와 말했다.
"피가 굳은 상태나 마물의 흔적으로 봐선 시간이 꽤 지났군요. 아마 두 분이 도망... 아니 탈출하신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살해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마물이 나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군."
시안은 자신의 말을 끊은 테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그렇습니다. 여관 곳곳에 마물의 기운이 남아있는데 비해 손상된 벽도 없고 창문에도 별다른 흔적이 없습니다. 현관을 이용했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방범장치나 문이 멀쩡했던 걸 생각하면 그것도 불가능하겠죠. 제 생각엔..."
"목격했던 괴한은 한 명이었습니까? 누군가 마물을 데리고 침입한 것이라면 마법을 통해 마물과 탈출했을 가능성도 있을 텐데요."
시안은 테이트에게 뭔가 한마디를 쏘아붙이려고 했으나 이내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두 분이 아는 사이인 건가? 아무리 레드럼 씨가 있다지만 시안 씨가 너무 고분고분한 느낌인데?'
카키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 이내 테이트에게 대답했다.
"저와 레드럼 씨가 본 것은 한 명뿐이었습니다. 물론 발견하자마자 탈출했기 때문에 내부에 몇이나 더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법으로 탈출한 것도 아닐 겁니다."
하쉬는 테이트와 카키의 대화를 듣다가 말했다.
"흥! 마족 놈이 말하는 걸 누가 믿어..."
"뭔가 근거가 있으십니까?"
테이트는 시안의 말을 끊으며 하쉬에게 물었다. 하쉬는 잠시 두 사람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말해도 별로 신뢰받지 못할 것 같으니 저보단 레드럼 씨께서 설명하시는 것이 좋겠군요."
"응? 나 말이냐?"
레드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하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 방범 시스템 인가 하는 것에 좌표 제한을 걸어두신 것이 레드럼 씨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그런 걸 귀찮게 왜 해놓겠냐! 너 같은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이런 여관에 게이트 같은 걸 열 생각을... 할 리가?"
레드럼은 말을 이어가다가 표정을 굳혔다. 그 모습을 본 하쉬 역시 급격히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일단 여기서 빨리 나가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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