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 마공작은 동료의 패퇴에 미소짓는다
테이트는 카키를 숙직실로 안내한 뒤, 린그 수용소로 가기 전 챙겼던 몇 가지 장비를 반납하기 위해 특수무기창고로 향했다.
'반납이라는 표현은 조금 이상한가? 어떻든 무단으로 가져간 모양새였으니.'
테이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창고의 문을 열었다. 창고 안에는 귀족들의 호위 때 잠깐 입었던 최신식 방마복과 각종 무기들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지만 테이트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안 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테이트는 창고 구석에 있는 선반 앞에 멈춰서 품 속에서 몇 가지 공학품을 꺼냈다.
'재밍 장치는 넣어 놓고... 음성 녹음장치는 아직 가지고 있는 편이 좋겠군. 처음 가지고 나올 때도 생각했지만, 일개 시의 경찰서에 이런 물건들이 있다니 월급이나 올려줄 것이지.'
테이트는 그런 푸념을 했지만 내심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루브린 시가 아무리 서쪽 평원과 맞닿은 국경이라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부의 일이지 경찰의 일이 아니다. 물론 하쉬같은 마족들이 종종 시내에 숨어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치안을 위해 필요한 장비라고 볼 수도 있지만, 대개 그런 사건들은 특경이 담당한다.
'그러고 보니 테비르에도 특수장비창고는 없었군. 뭔가 이유가 있는 건가?'
장비의 반납을 마친 테이트는 특수장비창고의 문을 다시 잠그고 나와 루브린 서 밖으로 향했다. 시내 쪽으로 걸어가던 테이트는 코트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후우... 제국만이 아니라 마족 쪽에서도 관심을 보이다니, 원래도 꽤 큰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사건이 아니라 전쟁이라도 마주한 기분이군. 개죽음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려나? 주인장의 상태도 걱정이고...'
테이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조금 전 카키의 중얼거림을 떠올렸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의 기세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압박감과 차가운 눈빛. 물론 그 후로 별다른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테이트는 그 모습이 눈에 밟혔다.
'주인장도 저주를 받았거나 세뇌 마법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뭔가 더 숨기고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 직업병이 도진 건지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만 꼬이는 건지 어째 믿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기분이군.'
그렇게 담배를 피우며 한참 서있던 테이트는 이내 결심이 선 듯 담배를 비벼 끄고 발걸음을 옮겼다.
'성가신 일에 말려들게 하는 것 같아 조금 죄송하긴 하지만, 그래도 연락은 한 번 드려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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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이 말이 아니군. 지나가는 용사한테 시비라도 걸었던 모양이지? 이오스."
헤이나르는 피투성이가 된 채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이오스에게 빈정거렸다. 이오스는 그런 헤이나르의 말에 뭔가 반박하려 했지만, 상처가 벌어진 것인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의외군. 자존심 강한 네놈이 내 성에. 그것도 집무실로 텔레포트를 해오다니. 설마 네놈을 그렇게 만든 녀석에게 날 소개라도 시켜줄 생각이었나?"
"..."
"흐음... 입을 열지 않을 거라면 그만 내 성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위상현이라는 인간에 대해 알고 있나?"
헤이나르는 갑작스러운 이오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위상현? 처음 듣는 이름이군. 아하. 너를 그렇게 만든 게 인간이고 그 녀석의 이름이 위상현인가 보지? 평소에 인간을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네놈이 인간에게 당했다라... 하하! 유쾌한 일이군."
헤이나르가 통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자 이오스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소리쳤다.
"웃을 일이 아니다! 끄..윽.."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통스러워하는 이오스를 보고 헤이나르는 나무라는 듯 말했다.
"저주 같은 편법에 의지하니 그렇게 된 거다. 너도 바젤도 마공작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부족한 모양이야."
헤이나르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잠시 고개를 떨궜던 이오스는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 휘광을 봤다."
"휘광이라고?"
이오스의 말을 들은 헤이나르는 조금 전 여유롭던 표정을 얼굴에서 지우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구전되는 용사의 것과는 조금 다른 듯했지만, 비슷한 힘이었다. 내 투기는... 그 녀석의 휘광을 뚫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지."
자조하는 듯한 이오스의 말을 들은 헤이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휘광이라... 그렇군. 그래서 네 놈이 날 찾아온 거였어. 바젤에게도 갈 생각인가?"
"... 그 녀석에겐 네가 전해줬으면 좋겠군. 나는 생리적으로 그 녀석과 맞지 않아."
헤이나르는 바젤과 이오스의 관계를 떠올리고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아... 좋다. 재밌는 소식을 가져왔으니 바젤에겐 내가 전하도록 하지."
헤이나르의 대답을 들은 이오스는 한숨 돌렸다는 표정으로 텔레포트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준비되자 이오스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헤이나르에게 말했다.
"혹여나 그 인간을 찾아가 싸울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헤이나르. 네놈이 우리들 중에 가장 강하다고 해도 마왕이 아닌 이상 휘광 앞에선 무기력할 뿐이야."
이오스가 그 말을 남기고 모습을 감추자 혼자 남은 헤이나르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설마. 기다리고 있던 참이라고."
- 작가의말
오늘은 조금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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