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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보관소

마왕은 용사를 죽이지 않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판타지

RO4dh
작품등록일 :
2019.11.10 06:44
최근연재일 :
2020.05.11 18: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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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02
추천수 :
931
글자수 :
280,874

작성
20.03.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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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66화 - 여관주인의 방 문은 거칠게 열린다

DUMMY

카키는 촌장을 방으로 안내한 뒤 여관 앞에 작은 팻말을 세웠다. 이미 머물고 있는 손님들의 출입은 상관없지만, 더 이상의 손님은 받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라스베트는 루브린 시 내에서 나름대로 좋은 평판을 얻고 있긴 하지만 객실이 가득 차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때문에 카키가 세운 팻말도 토벌 의뢰를 받은 용병단들이 한 번에 모일 때나 쓰던 것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오롯이 접객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카키는 팻말을 세워두기로 결정했다.


'촌장님이 3일 전에 마을을 떠나셨다고 했으니 나와 통화한 것은 촌장님이 아니었다는 거겠지. 목소리를 바꿔주는 공학품이라도 썼던 걸까? 그렇다면 그 통화에서 들은 내용도 모두 거짓이라는 건가?'


카키는 오늘 찾아온 촌장 쪽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방을 안내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져봤지만, 촌장은 진짜가 아니라면 알지 못할 이야기들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말투나 버릇 같은 것들도 진짜의 그것과 똑같았기 때문에 카키는 전화 통화를 했던 촌장 쪽이 가짜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때는 세세한 이야기들을 물어보지 않았으니 그쪽이 이쪽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알고 있을지는 미지수군. 그러고 보니 통화를 했던 촌장님이 가짜라면 코발트가 그 자식에 대해 물어봤다는 것도 거짓일까... 확실히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긴 했으니까. 코발트에게서 받은 편지들을 살펴봐도 그 자식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고.'


계속되는 고민에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카키는 카운터를 정리하고 조금 일찍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손님들의 출입이 잦았기 때문에 카운터에 앉아 곁 잠을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카키는 생각할 것이 많을 땐 충분히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그 가짜 촌장은 어째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거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마치 내게 그 정보를 들려주고 싶어 하는 듯한 분위기였는데...


그리고 왜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걸까? 그리니언 씨가 마을에 도착하면 내게도 바로 소식이 닿을 거라는 걸 모르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주인장! 뭐야? 어디 나갔나? 아무 안내 없이 카운터를 비워놓을 녀석은 아닌데... 주인장!"


침대에 누워서도 여전히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카키는 카운터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고 카운터로 향하자 거기엔 떨떠름한 표정의 레드럼이 있었다. 카키는 얼굴에 한가득 죄송하다는 표정을 짓고 피곤한 음색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피곤해서 오늘은 좀 일찍 영업을 마치려고 했거든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드럼은 피곤해 보이는 카키의 모습을 보고는 그제야 오늘 카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떠올리고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뭐, 주인장도 편하게 쉬는 날이 있어야지. 나도 가끔은 4시간이나 자기도 하니까 말이야."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음... 그게 말이지.... 아무래도 반지 개량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서 말이야. 한 일주일 정도 더 걸릴 것 같은데 괜찮겠나?"


카키는 우물쭈물 말하는 레드럼의 기색이 이상했지만, 자세히 캐묻지 않고 대답했다.


"네. 어차피 현관에 방범용 공학품들도 설치해주셨으니까요. 너무 급하게 하실 필요는 없어요."


카키의 대답을 들은 레드럼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뭔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카키는 레드럼이 자신에게 뭔가 다른 용건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레드럼은 끝내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그럼 푹 쉬게."


레드럼과 교류한 지 1년도 채 안된 카키였지만, 저 상태로 방에 올려 보냈다 간 한밤중에 발작적으로 자신의 방을 두드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올라가는 레드럼을 불러 세웠다.


"저기... 또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괜찮으시면 방에서 차 한잔 하시죠."


"그... 그럴까? 뭐, 자네가 잠이 오지 않는다면 조금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겠지."


카키는 눈에 보일 정도로 표정이 밝아지는 레드럼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카키의 방으로 안내받은 레드럼은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끌어 침대 앞에 두고 앉았다.


카키는 레드럼을 안내해 둔 뒤 차를 끓여와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에잉... 객실에 비해서 너무 비좁은 게 아닌가 싶은데, 아예 빈 방 하나에서 자는 편이 낫지 않나? 이런 곳에서 잠이나 제대로 자겠냐 이 말이야!"


"하하. 저는 이 방도 좋습니다. 어차피 카운터에서 지내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뭐, 본인이 괜찮다면야... 그나저나 주인장."


"네. 말씀하시죠."


"그... 자네 고향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돌아가신 것 말이네만..."


카키는 계속해서 우물쭈물거리는 레드럼의 모습이 신선했지만, 묵묵히 레드럼이 말을 마치길 기다렸다.


"혹시 흉수에 대해서 짚이는 것이 있는가?"


"글쎄요. 저도 레드럼 씨에게 전해 들은 뒤로 별다른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음... 그런가..."


"저 레드럼 씨. 혹시 공학품 중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변조하는 공학품도 있나요?"


"응? 아, 뭐 그렇지. 연홍 매개와 황록 매개를 적절하게 배합하면 목에서 나오는 진동을 마나 개입을 통해 비틀어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할 수 있네. 이걸 응용하면 단순히 사람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마물의 목소리까지 재현이 가능한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연홍 매개보다 오히려..."


카키는 신나서 설명하는 레드럼의 말을 끊는 것도 뭐해서 잠시 레드럼의 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카키는 레드럼의 설명이 앞으로 몇 분 정도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는 일찍 끝났다.


"그렇군요. 혹시 그 공학품을 만드는 건 어렵나요? 매개가 비싸다거나?"


"음... 단순히 누가 말하는 지를 숨기기 위한 거라면 초보자들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구조지만, 특정인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거라면 제법 어려운 편이지. 한데 그건 왜 묻는 건가?"


카키는 레드럼에게 어느 정도까지 설명을 해도 괜찮을지 잠시 고민했지만, 늦은 시각에 자신이 걱정되어 찾아온 이 괴짜 공학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로 했다.


카키는 3일 전에 출발했다는 촌장이 오늘 여관에 도착했고, 하루 전에 촌장의 목소리와 통화했다는 이야기만 레드럼에게 설명했다.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그것도 주인장처럼 싹싹한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면 상당한 물건이겠군. 꼬맹이 녀석이 의뢰를 하나 들어주기로 했으니 그 음성 변조 장치를 확보하라고 말해둬야겠구먼!"


카키는 레드럼의 말을 듣고 더욱 의문에 빠졌다. 그 정도의 장치를 준비하려면 꽤나 많은 노력이 들어갈 텐데 진짜 촌장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번거로운 작업을 하면서 내게 전한 메시지가 그 자식에 대한 몇 마디라면 수지가 너무 안 맞는데...'


레드럼은 카키가 아무 말없이 생각에 빠져있자 조금 뻘쭘했는지 차를 홀짝거리다가 카키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주인장.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자네가 오늘 만났다는 촌장은 지금 어디에 있지?"


카키는 뜬금없는 레드럼의 질문에 상념에서 벗어나 대답했다.


"아마 위층에서 주무시고 계실 겁니다. 왜 그러시죠?"


"아니. 말 그대로 혹시나지만 말이야... 그 정도로 정교한 음성 변조 장치를 만들 수 있는 놈이라면 피므루 시로 가는 전화를 중간에 낚아채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


"그 말씀은...?"


"어느 쪽도 '진짜'일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카키는 레드럼의 말에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카키의 방 문이 거칠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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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 그녀는 인질로서 가치가 없다 20.05.11 69 1 6쪽
87 87화 - 서장은 부하에게 취조당한다 +1 20.05.06 48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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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화 -대장장이는 뜻밖의 손님을 맞이한다 20.04.30 56 1 5쪽
84 84화 - 시종은 영웅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4.21 51 1 6쪽
83 83화 - 마공작은 동료의 패퇴에 미소짓는다 +1 20.04.20 54 2 6쪽
82 82화 - 여관주인은 잠을 설친다 20.04.18 61 1 8쪽
81 81화 - 공작은 마공작의 안위를 걱정한다 20.04.16 35 2 7쪽
80 80화 - 용병은 뒤늦게 알아차린다 20.04.14 45 1 7쪽
79 79화 - 마족의 기준은 조금 다르다 20.04.13 43 2 7쪽
78 78화 - 가명은 대개 유치한 것들이 많다 +1 20.04.11 47 2 6쪽
77 77화 - 경찰은 수사자료를 넘긴다 20.04.08 52 2 5쪽
76 76화 - 그는 나지막이 말한다 +1 20.04.07 69 1 8쪽
75 75화 - 대장장이는 버릇처럼 수사한다 20.03.31 70 2 7쪽
74 74화 -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있다 20.03.30 61 2 7쪽
73 73화 - 그들은 역 앞에서 우연히 만난다 20.03.27 64 1 7쪽
72 72화 - 용병은 마왕을 떠올리며 전율한다 +1 20.03.24 63 2 7쪽
71 71화 - 철마는 어둠을 뚫고 달린다 20.03.23 126 2 7쪽
70 70화 - 공학자는 간단한 사실에 감탄한다 20.03.20 61 2 8쪽
69 69화 - 용병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1 20.03.18 78 2 6쪽
68 68화 - 용의자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20.03.17 75 3 7쪽
67 67화 - 마족은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다 20.03.16 69 5 7쪽
» 66화 - 여관주인의 방 문은 거칠게 열린다 +1 20.03.13 87 2 8쪽
65 65화 - 배신자는 애써 외면했다 20.03.12 161 3 7쪽
64 64화 - 용병단의 아지트는 2층 가정집이다 20.03.11 65 3 8쪽
63 63화 - 여관주인은 옛 지인과 조우한다 +1 20.03.09 102 4 8쪽
62 62화 - 마녀는 인간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2 20.03.06 85 3 8쪽
61 61화 - 소식지는 대개 진실과 거짓이 적당히 섞여있다 20.03.05 86 3 8쪽
60 60화 - 범죄자는 최신 기술에 감탄한다 +1 20.03.03 81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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