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 그들은 역 앞에서 우연히 만난다
루브린 시에 도착한 카키는 여전히 비몽사몽인 레드럼을 부축하고 테이트와 함께 라스베트로 향했다. 처음엔 안전을 위해 테이트만 라스베트에 가려고 했지만, 지금쯤이면 하쉬도 돌아와 있을 거라는 의견 때문에 다 함께 가게 되었다.
"오! 라스베트의 주인장!... 하고 그 빨간 머리군."
카키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인상을 쓰고 있는 클린트와 레드럼을 발견한 뒤 어색한 표정이 된 시안이 있었다.
"아! 시안 씨. 그리고... 클린트 씨였던가요? 안녕하세요. 두 분이 아는 사이셨나 보군요?"
카키는 어째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인지 신경 쓰였지만, 자신이 클린트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태연하게 말했다. 반면 카키의 질문에 당황한 시안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응? 아! 어... 그.. 그렇지! 응! 그나저나 이 밤중에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여관은 어쩌고?"
카키가 시안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순간 그제까지 인상을 쓰고 있던 클린트가 카키에게 다가왔다.
"남는 방 있나?"
카키는 진지한 표정의 클린트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 확인은 해봐야겠지만요. 어차피 가는 길이었으니 함께 가시겠어요?"
"그러지. 힘들어 보이는데 그 빨간 머리는 내게 넘기게."
"아뇨. 폐를 끼칠 수는 없죠."
"괜찮네. 나하고도 안면이 있는 녀석이니까. 사양할 것 없네."
클린트는 그렇게 말을 한 후 테이트에게 기대듯 끌려가고 있던 레드럼을 넘겨받았다. 시안은 자신에게 엄청난 공격을 했던 레드럼이 클린트와 아는 사이라는 것을 보고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었군'이라며 멋대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테이트는 갑자기 나타난 시안과 클린트를 유심히 살폈다.
'젊은 쪽은 제복을 보니 특경이고, 다른 쪽은 주인장이 저번에 이야기했던 클린트라는 대장장이인가. 단순히 우연이라기엔 시기가 미묘하군.'
라스베트로 향하면서 카키는 시안과 클린트에게는 여관에 괴한이 침입했다고 설명했다. 클린트는 카키의 말을 듣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지만, 따로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응? 뭐야? 빌어먹을 영감쟁이?"
천천히 라스베트로 걸어가던 와중 드디어 잠에서 깬 레드럼이 자신을 들다시피 끌고 가는 클린트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오랜만이군."
클린트는 레드럼을 내려놓으며 인사했다. 카키는 레드럼이 어떻게 클린트와 아는 사이인지도 궁금했지만 혹시나 레드럼이 마물에 대해 이야기할까 봐 조금 걱정됐다. 그러나 레드럼은 이미 마물에 대해서는 머리에서 지워진 듯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
"이 영감쟁이야! 대장간을 며칠이나 비워놓고 어딜 다녀온 거야?"
"잠시 일이 있었다. 뭔가 만들 생각이었나?"
"당연하지! 오래간만에 좋은 매개랑 소재를 구했거든! 기왕 이렇게 된 거 바로 대장간으로 가지!"
"하아... 원하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우선 오늘은 좀 쉬고 싶군. 게다가 라스베트에 괴한이 침입했다면 그쪽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겠지."
"괴한? 아! 어... 그렇지. 그래! 음... 그럼 어쩔 수 없지."
레드럼은 클린트가 말한 괴한이라는 단어에 의문을 품었지만, 카키 쪽을 슬쩍 쳐다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키는 그 모습을 보고 쓰게 웃고, 앞장서서 가는 테이트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멋대로 동행하기로 해서."
"뭐, 합리적인 결정이지. 미심쩍은 상대는 눈에 닿는 곳에 두는 편이 좋아. 여차하면 전력이 될 수도 있고. 물론 적이 늘어나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이 인원으론 이미 답이 없을 테니까."
카키는 테이트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라스베트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라스베트로 가는 길에 레드럼과 클린트는 카키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했고, 테이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걸어갔기 때문에 카키의 말동무는 자연스럽게 시안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리니언 대장님이 안 보이시는데 루브린을 떠나신 건가?"
"아! 그리니언 씨는 의뢰 때문에 잠시 다른 곳에 가셨습니다. 아마 내일이면 돌아오시지 않을까 싶네요."
"흐음... 지난번에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리고 떠나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다시 뵐 수 있다니 다행이군. 그나저나 라스베트를 습격했다는 괴한은 어떻게 생겼나?"
"글쎼요... 오늘은 저도 여관을 일찍 닫고 자고 있었기 때문에 어두워서 제대로 보진 못했거든요. 다만 그림자로 미뤄봤을 땐 덩치가 제법 컸습니다."
"흐음... 아무리 외곽이라곤 하지만 루브린에서 강도질이라니 간이 부은 놈이군. 일단 도착하면 자네는 밖에서 대기하도록. 내가 안전을 확인한 뒤에 조사를 진행할 테니."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실례지만 클린트 씨와는 어떻게 아시는 사이신가요?"
"응?! 크흠... 자네가 그게 왜 궁금한가?"
시안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카키는 그런 시안의 표정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겉으로는 송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클린트 씨는 루브린 시에서 꽤 오래 지내셨고, 시안 씨는 루브린이 초행이라고 들었거든요. 뭔가 의외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예... 예전에 조금 신세를 진 적이 있거든. 우연한 기회에 철마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주인장이 보였던 거야."
"그렇군요. 하긴 전 레드럼 씨랑 클린트 씨가 지인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으니까요."
"레드럼? 붉은 공학자 레드럼 말인가?!"
빡!
시안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뒤에서 다가온 레드럼이 시안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치며 말했다.
"나는 '붉은 머리의 공학자'다! 가만 보니 이 놈 그때 그 건방진 특경 놈 아니냐!"
"이런 씨... 크흠.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꽤 강하게 맞은 것인지 얼굴을 찌푸린 시안은 금방이라도 욕을 내뱉을 듯했으나 무언가 깨달았는지 몸을 부르르 떨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드럼 로렙므다."
시안은 그리니언에게 했듯이 레드럼에게도 열렬한 동경의 시선을 보냈고, 기분이 풀어진 것인지 레드럼은 으쓱거리며 걸어갔다. 카키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 낮게 한숨을 내쉬고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어느덧 라스베트에 도착했을 때, 카키는 라스베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하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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