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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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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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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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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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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Episode 03. 얼굴 없는 가희-PAradox IRruption(1)

DUMMY

MS엔터테이먼트 앞으로 도착한 시영은 우선 경비실로 다가갔다.


경비원은 처음 보는 시영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시영은 자신의 이름과 아미의 이름을 댔다. 방문표를 확인하는 경비원은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음을 확인하고는 시영에게 아크릴 목걸이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나가실 때 여기 와서 반납하시면 됩니다.”

그것은 [특수 방문자]라 쓰인 목걸이다. 시영이 중학생이었을 때, 수련회에서 썼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새삼 오랜만에 보는 아크릴 목걸이에 좋지는 않았던 수련회의 기억이 떠올랐다.


“네, 알겠습니다.”

시영은 공손하게 인사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출입문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유마 씨네?”

오랜만에 온 유마의 연락. 시영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시영 군입니까?”

“네, 저예요. 유마 씨 맞으세요?”

“물론 제가 맞습니다.”

조금은 심심한 농담과 함께 유마는 웃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오랜만에 안부 차 전화한 겁니다.”

“아, 저는 요즘 바쁘게 지내요.”

“시영 군도 바쁘셨군요.”

“유마 씨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저야 물론 과학자니까 연구했습니다. 할 일이 조금 적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일은 없더군요.”

유마는 한숨을 쉬었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느껴지는 한탄에 시영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황은 달랐지만, 여러 상황 때문에 조금이지만 유마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오싹한 동영상, 황금의 괴도, 그리고 해방기 소지자까지. 모두가 시영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끝이 보이니 다행입니다.”

“축하드려요.”

“시영 군은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그랬기에 시영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유마가 고생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게?”

“혹시 유마 씨는 해방기 소지자에 대해서 잘 알고 계세요?”

“해방기 소지자? 아···”

뭔가를 깨달은 유마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그러고 보니 시영 군과는 해방기 관련 대화를 나누지 않았었군요.”

“그게 뭐예요?”

“원래 저는 해방기 소지자들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드립니다. 뭐, 해방기를 얻게 된 경위는 제각각이겠지만, 모두가 똑같은 물건을 가졌기에 사용법 정도는 알려드리죠.”

“아뇨,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이번에도 시영은 단칼에 거절했다. 유마는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었기에 수긍했다.


“뭐, 시영 군이 물어보신 대로 저는 해방기 소지자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을 읽으시는 유마 씨니까 여쭤보고 싶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모르는 것도 대답해드릴 수밖에 없잖습니까.”

유마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요. 누가 궁금한 겁니까?”

“음···”

시영은 고민했다. 그것은 고속과 아미에 대해서였다. 최근 자신에게 다가온 이 두 사람이 무척이나 궁금했고, 공교롭게도 이들은 시영이 처한 여러 상황 중 최소 하나 이상에는 속해 있었다.


고개를 천천히 올리는 시영. MS엔터테이먼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제 봤던 카테고리의 광대가 떠오르자 조심스럽게 입이 열렸다.


“아미 씨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아미 양. 그녀는 아이돌입니다.”

“···그건 알아요.”

당황한 시영은 옆 머리를 넘기는 시늉을 했다.


“조금은 속을 알 수 없는 분이죠. 물론 전 그분의 마음을 읽었지만, 아마 대부분은 그 사람의 마음을 전혀 모를 겁니다.”

“겉과 속이 다른 분이신가요?”

“언짢은 일이 있어도 최대한 웃음으로 넘기는 분이죠. 조금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할 분은 아닙니다.”

유마는 긴장을 삼켰다.


“그럼 아미 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죠?”

“음악입니다.”

“음악이요?”

“그렇습니다. 시영 군은 혹시 아미 양이 속한 그룹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시영은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페, 페어리?”

“역시 알고 계셨군요. 페어리의 노래는 전부 아미 양이 작사, 작곡합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음악을 꽤 잘 만드나 보네요?”

시영은 어느새 수첩을 꺼낸 자신을 자각했다.


“재능만 보면 왜 아이돌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분입니다.”

“그럼 항상 음악 생각밖에 없는 분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네?”

수첩에서 춤추던 시영의 손은 멈춰버렸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거 잊지 않으셨죠?”

“그, 뭐였지? 음, 겉과 속이 다르다는 그 말이요?”

“그렇습니다.”

“혹시 사실은 음악을 안 좋아한다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유마는 새삼 단호했다.


“그럼 뭐죠?”

“이건 저밖에 모르는 거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유마는 심호흡 뒤에 말을 이어갔다.


“아미 양은 음악의 천재고, 음악의 천재인 것은 맞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마치 제가 과학에 갖는 열정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아미 양은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궁금해해요?”

“그렇습니다. 아미 양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

시영의 손은 다시 움직였다.


“마치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그녀조차 모르는 무언가입니다. 뭐, 제가 아미 양과 이런 대화를 나눈 지도 거의 4개월이 지났으니 지금은 찾았을지도 모르겠군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찾았으면 좋겠어요.”

“동감입니다. 그나저나 아미 양에 대해서는 왜 물어보신 겁니까?”

“이번 의뢰인이 아미 씨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유마는 단번에 수긍했고,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이어 시영에게 해방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언제라도 찾아와도 된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들어가 볼까?”

시영은 조심스럽게 MS 엔터테이먼트로 들어갔다.


“시영 씨!”

들어가자마자 아미가 다가왔다. 시영은 당황하여 몸을 움찔거렸다.


“기다리느라 힘들었어요.”

“아, 네.”

시영은 은근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은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 주말임을 감안해도 굉장히 이른 시간이었다.


“그럼 가볼까요?”

“누구에게 가는 거죠?”

“따라오시면 알아요.”

아미는 손을 내밀었고, 시영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많이 기다렸지?”

아미가 시영을 데려간 곳은 소속사 내 매점이었다. 마침 장사를 시작한 매점 아주머니와 벤치에 앉은 종희가 있었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종희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아미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기 이번 소문의 진실을 밝혀주실 시영 씨라고 해.”

“안녕하세요!”

종희는 처음 보는 시영에게도 깍듯하게 인사했고, 시영 역시 종희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럼 앉으세요.”

아미는 시영을 자리로 안내했고, 시영은 종희와 마주 보게 앉았다.


“그런데 의도는?”

“의도는 어제 다쳐서요. 저녁에는 연습도 못 했어요.”

“정말? 얼마나 다친 거야?”

“누구한테 얻어맞은 거 같은데··· 괜찮다고만 그러니까···”

종희는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시영은 상황은 몰랐지만 안 좋은 일에 안타까워하며 수첩을 꺼내 [의도는 부상]이라고 적었다.


“뭐 적으세요?”

아미의 물음에 시영은 수첩을 건네주었다.


“어머, 정리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시영은 시선을 종희에게 고정한 채 가지고 온 문서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종희 씨, 갑작스럽지만 제가 가져온 걸 읽어주시겠어요?”

“이게 뭔가요?”

문서를 건네받은 종희는 조심스럽게 한 장씩 넘겨보았다. 그것은 다양한 SNS에서 가져온 글이었다. 내용은 당연히 오싹한 동영상으로 인한 두통이었다.


“혹시, 종희 씨가 작성한 글이 있는지 해서요.”

“죄송하지만, 저는 SNS를 하지 않아요. 괜히 논란 같은 거 만들기 싫어서요.”

“아, 그래요?”

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영 씨는 SNS를 안 하시나요?”

아미는 수첩을 돌려주었다.


“메신저만 해요. 그럼, 종희 씨, 제가 가져온 글을 읽어주시겠어요?”

“아, 네.”

종희는 조심스럽게 SNS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많이 준비하셨네요.”

새삼 감탄하는 종희. 시영의 고개는 자연히 끄덕거렸다.


“종희 씨, 그리고 의도 씨라 하셨죠? 두 분 말고도 두통을 느낀 분들이 많아요. 저도 느꼈고요.”

“그렇군요.”

“혹시 종희 씨가 느꼈던 두통의 종류는 어떤 건가요?”

“탐정님이 가져오신 것과 다르지 않아요. 소름 돋게 똑같아요.”

절반쯤 읽은 종희는 대충 넘기기 시작했고, 시영은 예상한 반응에 수첩을 폈다.


“저도 사실 종희 씨와 똑같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이게 단순한 두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실 거예요.”

“그렇죠. 동영상을 오래 본 것도 아니고, 특정 동영상을 본 것으로 두통을 느끼는 건, 확실히 수상해요.”

“보통은 두통이 사람마다 달라야 하죠. 당장 저와 종희 씨는 많은 부분이 다를 게 분명한데도 소름 돋게 증상이 똑같아요.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그렇네요.”

종희는 조심스럽게 긴장을 삼켰다.


“종희 씨는 그 영상을 봤을 때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나요?”

“아뇨, 없었어요.”

“어디서 보셨나요?”

“소속사 앞에서요. 아, 의도랑 같이 봤어요.”

시영은 종희가 하는 말을 전부 수첩에 적었고, 이 밖에도 다양한 것들을 질문했다.



“시영 씨, 방금 그건 너무 쓸데없이 않았어요?”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아미가 입을 열었다.


“종희가 마지막으로 먹은 식사 같은 건 왜 물어보시죠?”

“이번 의뢰는 단순한 소문으로 알려져 있죠. SNS에 글을 올린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을 거예요.”

시영은 아미를 바라보았다.


“SNS를 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전부 조사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죠. 설사 한다고 해도 몇 명이나 조사에 응해줄지도 미지수고요.”

“그건 맞아요.”

“설상가상 의도라는 분은 지금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운 상태잖아요. 그래서 종희 씨에 대해서 많은 걸 알아야 해요.”

“어째서죠?”

“두통을 느낀 원인을 저와 종희 씨에게서 찾아야 하니까요.”

시영은 종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똑같은 증세의 두통을 느꼈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정상적인 두통이라면 그렇게 될 수도 없어요.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다를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느꼈다는 건, 저와 종희 씨를 비롯한 모두의 공통점이나 행동이 방아쇠가 됐을 수가 있어요.”

“아, 그렇군요.”

종희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그 역시 아미의 생각처럼 쓸데없는 질문이 많다고 여겼지만, 시영의 의도를 이해한 순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종희 씨는 꿈이 있나요?”

“꿈이라면 당연히 세계를 무대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이죠!”

종희는 오늘 그 어떤 때보다 자신감 있게 말했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아이돌··· 멋진 꿈이네요.”

시영은 미소를 지었고, 쑥스러워진 종희는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그때 종희의 배에서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종희야, 밥 안 먹었니?”

“네, 선배님. 시영 씨가 언제 오실지 몰라서···”

“그래도 밥은 먹었어야지.”

아미는 그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제 의도 몫까지 연습했거든요. 덕분에 늦잠 자서 밥 먹을 시간은 없었어요.”

종희는 시선을 돌렸고, 시영은 콧바람을 내쉬었다. 이어 그의 시선은 옆의 매점을 향했다.


“종희 씨,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네?”

“제가 사드릴게요.”

예의상 거절하는 종희. 그럼에도 시영은 그를 데리고 강제로 매점으로 다가갔다.



“괜히 제 후배 때문에··· 죄송해요, 시영 씨.”

“아뇨, 저 때문에 밥 못 드신 것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종희 씨가 잘 드셔주시니 저야 좋죠.”

“감사합니다, 시영 씨!”

종희는 갓 만들어진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바삭거리는 토스트의 소리가 시영과 아미의 귓속으로 다가왔다.


“혹시 카테고리는···”

“당신이 시영이라는 사람인가요?”

때마침 정장을 입은 여인이 다가왔다.


“네, 제가 시영인데요?”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사장님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장님이요?”

시영은 아미를 바라보았다. 아미는 놀란 토끼 눈으로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지금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시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 시영 씨!”

“다녀올게요. 종희 씨는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시영은 비서의 안내로 자리를 옮겼다.


“사장님이 왜··· 시영 씨!”

“저, 아미 선배!”

의도의 부름에 아미는 걸음을 멈췄다.


“혹시 안 바쁘시면 연습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연습···?”

아미의 시선은 시영에게 향했다. 그는 새삼 비장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돌아오신댔으니까···”

아미는 의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례합니다.”

시영은 조심스럽게 사장실 문을 열었다.


“자네가 시영이라는 친군가.”

“네, 제가 시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시영은 사장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인사성은 바른 친구군. 일단 자리에 앉게.”

시영은 사장이 가리킨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가 그들의 앞으로 커피를 가져왔다.


“커피 좋아하나?”

“배려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몸에서 안 받습니다.”

“아, 그래?”

사장은 비서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고, 시영의 앞에 놓인 커피는 회수되었다.


“자네가 아미를 도와 This Illusion의 소문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잘 되나?”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군.”

사장은 수긍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실례지만, 자네는 우리 아미와 무슨 관계인가?”

“네?”

사장의 물음에 시영은 별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지만, 그의 눈빛을 바라보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그런가?”

“아, 아뇨.”

“우리 아미와 무슨 관계지?”

그는 평범한 것을 물어보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딸을 둔 아버지가 묻는 듯한 느낌. 시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해결사와 의뢰인의 관계입니다.”

“···정말 아무 관계도 아닌가?”

“그럼 제가 여쭙겠습니다. 사장님은 아미 씨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뭐?”

당돌한 시영의 질문에 헛웃음을 지은 사장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흥미로운 질문에 기꺼이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의 소중한 인재지.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아이다. 왜 그런 걸 묻는 건가?”

“그럼 종희 씨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요?”

“종희? 아, 그 노래 잘하는 애를 묻는 건가?”

“종희 씨를 비롯한 MS 엔터테이먼트의 모두요.”

“···당연히 소중한 아이들이지. 왜 그런 걸 묻지?”

“진심인가요?”

“그럼 진심이 아니면 자네가 어떻게 할 건가?”

사장은 시영이 가소로웠다. 일개 해결사, 그것도 탐정 제자인 그가 하는 말은 털 끝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사장님이 This Illusion에 무슨 짓을 벌인 게 아닐까 하고···”

“자네··· 제정신인가!”

사장은 격노했고, 시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별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시영은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묘하게 위협적인 모습에 사장은 몸을 움찔거렸다.


“무슨 수작인가!”

“이걸 봐주시겠어요?”

시영이 품속에서 꺼낸 건 수첩이었다.


“수첩?”

“이 부분을 봐주세요.”

수첩을 펼친 시영은 This Illusion으로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적힌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사장은 그것을 심각한 표정으로 읽어내렸다.


“저도 두통을 느꼈고,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 사장님만큼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날 의심하는 건가?”

“지금은 믿고 싶어요.”

“믿고 싶다?”

사장은 시영을 노려보며 수첩을 돌려주었다.


“사장님을 믿고 싶어요.”

“왜지?”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진심이라면, 아미 씨를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알려주세요.”

“아미를 위해서라도?”

사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뮤즈가 누구죠?”

“···뮤즈를?”

“소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This Illusion을 부른 뮤즈의 정체를 알아야 해요.”

“어째서지?”

사장은 피식거렸다.


“뮤즈가 그러지 않았다는 증거만 찾으면 저는 사장님을 비롯한 MS 엔터테이먼트의 모두를 믿을 수 있어요.”

“굳이 그러지 말고 그냥 의심하게나.”

“왜 그래야 하죠?”

“뮤즈는 극비라네. 그리고 자네 같은 애송이가 날 의심해봐야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맞는 말이에요.”

시영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감히 의심해서 죄송했습니다.”

시영은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걷기 시작했다.


“···이봐 자네.”

시영이 문 앞에 다다랐을 무렵, 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대로 나가면 내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도 나갈 생각인가?”

“네.”

시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기분이 나빠서 나가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부끄러워서 나가는 건가?”

“말씀드렸잖아요.”

시영은 몸을 돌려 사장을 바라보았다.


“사장님을 믿으니까 그냥 나가는 거예요.”

“···뭐?”

사장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표정에 흔들림 없는 목소리. 그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제가 그랬잖아요. 지금은 사장님을 믿고 싶다고요.”

“···날 의심하는 게 아닌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에요. 진짜 그런 거라면 모르겠지만, 전 사장님을 믿고 싶어요. 설마 소속사의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한다는 사장님이 거짓말을 하는 건가요?”

“허어, 저 친구···”

사장은 피식거렸다. 당돌했지만 신기하게도 건방져 보이지는 않았다.


“사장님 말씀대로 전 아무것도 아니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설마 거짓말하신 건가요?”

시영은 정색했고, 사장은 손사래를 쳤다.


“그 말은 내가 무례했네, 사과하겠네.”

“···그래요?”

“그래서 다시 묻겠네, 자네는 뭐지?”

“박시영이라고 합니다.”

“포부 같은 건 없나?”

“모두의 미소를 보고 싶어요.”

“미소?”

사장은 입꼬리를 올렸다.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군.”

이내 고개를 저으며 시영을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로 웃긴 상황이었지만, 가장 골 때리는 건 저 검은 모자가 진심으로 대답했다는 점이다.


“시영, 내가 왜 아미를 가장 아끼는지 알고 있나?”

“왜죠?”

“그 아이는 빛나는 수정과도 같아. 가장 빛나지만, 그만큼 깨지기 쉽지.”

“깨지기 쉽다?”

“그 아이가 자네에게 의뢰를 부탁한 게 맞나?”

“네.”

“그런가.”

사장은 알 수 없는 한탄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쩌면 그 애가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지.”

사장은 시영을 바라보았다.


“모쪼록 아미를 잘 부탁하지.”

“고생하세요.”

시영은 목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사장과 했던 이야기를 적고는 구내매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아미는 종희의 연습을 도와주기 위해 자리를 옮긴 상태였고, 두 사람을 기다리던 시영은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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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블러드리아(2) 20.07.23 35 0 14쪽
26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블러드리아(1) 20.07.22 36 0 14쪽
25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3) 20.07.22 34 0 12쪽
24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2) 20.07.21 37 0 12쪽
23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힘(1) 20.07.21 34 0 12쪽
22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Game Over(2) 20.07.19 40 0 15쪽
21 Episode 02. 블러드리아의 마석-Game Over(1) 20.07.19 27 0 12쪽
20 Episode 01. 묶인 천사-귀신 소동(2) 20.07.19 32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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